
<한국이 싫어서> <대도시의 사랑법> 등, 최근 청년 세대의 고충을 미시적으로, 또 거시적으로 담아낸 작품이 속속들이 개봉하고 있다. 오는 26일 개봉하는 영화 <결혼, 하겠나?> 역시 얼핏 한선우(이동휘)라는 개인의 사연에 주목하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주관적인 경험을 통해 보편적인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영화다.

오랜 연인 우정(한지은)과의 결혼을 앞두고 선우에게는 경제적, 심리적 재난이 닥친다. 아버지(강신일)가 갑작스럽게 뇌출혈로 쓰러져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된 것. 안 그래도 아버지는 어머니(차미경)와 이혼한 상태인 데다가, 큰 빚을 지고 있고, 아버지의 어머니인 할머니는 치매를 앓고 있으며, 아버지의 형제들은 아버지를 외면한다. 그 와중, 선우가 적은 시급을 받으며 시간강사로 일하던 학교에서는 연봉 3천만 원짜리 전임 교원 자리가 난다. 선우와 우정은 결혼, 할 수 있을까?

사소하고도 보편적인 영화 <결혼, 하겠나?>는 청년에게 돋보기를 대어 ‘일상의 재난’에 주목하는 작품이다. 진짜 재난은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거창한 상황이 아니라, 사적인 영역에서 발생한다는 걸 뼈저리게 알게 된 청년 세대는 결혼, 직장 등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서 현실의 벽에 마주한다.
얼핏 제목에서는 로맨틱 코미디의 기운이 비치지만, 사실 영화는 전혀 로맨틱하지 않다. <결혼, 하겠나?>는 ‘생계형 코미디’라는 장르를 표방하며, 청년의 고민과 현실을 ‘웃프게’(‘웃기면서 슬프다’는 뜻의 신조어로, 겉으로는 웃기지만 곰곰이 따져 보면 처지가 슬프다는 뜻) 그려낸다. 영화는 거기에 가족, 사회 문제 등을 복합적으로 엮어냈다. 극 중 선우 삼촌(박성근)의 말마따나, 누군가는 “가난은 전염병이고, 모질어야만 살 수 있다고” 말하는 한편, 영화는 마땅히 복지를 받아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 기초수급 복지조차 신청하기 어려운 사회의 사각지대를 아우르기도 한다.

지난 16일 오후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는 <결혼, 하겠나?>의 언론배급시사회와 기자간담회가 진행됐다. 현장에는 김진태 감독과 배우 이동휘, 한지은, 차미경 배우가 참석해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김진태 감독에 따르면, <결혼, 하겠나?>는 자신의 자전적인 경험으로부터 출발한 영화다. 기자간담회에서 김진태 감독은 “6~7년 전, 아버지가 몸이 안 좋아지셨다. 그때 기초수급이라는 것도 알게 되고, (복지를 받기 위한)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이게 어쩌면 나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라고 영화를 구상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김 감독은 “영화적으로 많이 각색을 했지만, 아이디어는 나의 경험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현실적인 것들 안에서 많은 고민을 해야 하지만,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고민에서부터 영화가 시작”되었다고 전했다. 더불어 배우 이동휘는 이 영화에 출연한 이유를 설명하며 “우리가 길을 지나가다 보면, 연인들이 거리를 두고 심각하게 싸우는 모습을 본다. 그런 사람들을 현미경으로, 돋보기로 들여다보면 스토리가 영화같이 그려질 수 있다”라고 밝혔다.

김 감독이 영화의 제목을 <모라동>에서 <결혼, 하겠나?>로 변경한 이유도 그와 같은 맥락이다. <결혼, 하겠나?>는 당초 <모라동>이라는 제목으로 2023년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된 바 있으나, 개봉 시기를 확정하며 제목을 변경했다. 김진태 감독은 영화의 제목을 변경한 이유에 대해 “‘모라동’이라는 제목은 사적인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나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제목으로 변경했다. 제목은 이동휘 배우의 아이디어다”라고 전했다. 김 감독은 “청년들에게는 깨고 싶어도 깨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유리 천장이 존재한다. 그래서 ‘이 둘이 결혼을 할 수 있을까, 과연 어떻게 될까’라며 영화 이후의 이야기를 우리가 같이 고민해 보면 좋지 않을까”라며 제목에 담긴 의미를 밝혔다.

김진태 감독의 경험으로부터 출발한 영화지만, <결혼, 하겠나?> 속 인물들의 감정은 분명 다른 상황에 처해 있는 청년들 역시 공감할 법한 그것이다. 배우 이동휘는 “어떤 작품은 상상을 통해 캐릭터를 구현해야 할 때가 있는데, 이 영화는 나로부터 출발했다. 선우라는 인물에는 감독님의 모습도 담겨 있지만, 선우의 무기력함, 그리고 벽 앞에서 좌절하는 모습 등에는 나 자신을 투영해 보려 했다. (선우에게서) 내가 학교를 다 떨어지고 재수학원에 다니면서 도통 미래가 보이지 않았을 때의 모습을 봤다”라고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선우를 연기했음을 밝혔다.

<결혼, 하겠나?>는 출연진들의 ‘미친 연기’가 극을 능수능란하게 끌고 가는 작품이기도 하다. 관록의 배우 차미경, 강신일은 물론이고, 특별출연한 유재명까지 담담하면서도 가슴을 울리는 연기를 펼친다. 더불어, 배우 이제훈은 수달 전 한 유튜브에 출연해 <결혼, 하겠나?> 속 이동휘의 연기가 ‘미친 연기’라고 평한 바 있는데, 이동휘는 “제훈이 형이 아무래도 나의 소속사 대표이기 때문에 좋게 얘기해 준 게 아닌가”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이동휘가 출연한 영화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를 봤다면, 이동휘의 진가는 ‘현실 연기’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결혼, 하겠나?> 역시 마찬가지다. 이동휘는 <카지노>나 <범죄도시4>와 같은 장르 연기도 물론 일품이지만, 현실적인 고민을 품고 있는, ‘평범한 청년의 얼굴’을 표현하는 이동휘는 가히 압권이다. 선우의 연인 우정을 연기한 한지은 역시, 코미디와 진지한 감정 연기를 오가며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배우 한지은은 <결혼, 하겠나?>에 대해 “옆집에서, 친구에게서 등 가장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희로애락이 모두 들어 있는 영화”라고 말했다. 한지은은 “일상의 힘든 순간에도 늘 유머는 섞여 있다”라고 코미디와 드라마를 오가는 영화의 톤에 대해 설명했다. 배우 차미경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맞게 될 모든 재난에 대해 지혜로움, 그리고 그걸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라며 26일 개봉하는 <결혼, 하겠나?>에 따뜻한 관심을 줄 것을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