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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뉴웨이브 애니메이션계의 전설, 야마다 나오코

씨네플레이

<목소리의 형태>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감독, 야마다 나오코 감독의 신작 <너의 색>이 이번에 개봉했다. 야마다 나오코는 독창적인 시각과 섬세한 연출로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유망주다. 일상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감정의 흐름을 세밀하게 그려내며, 캐릭터의 내면을 대사보다 표정과 제스처, 연출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하는 작품들을 선보였다. 특히 인물 간의 미묘한 감정선과 눈에 보이지 않는 관계의 변화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데 탁월한 연출가로, ‘다리’를 통해 감정을 보여주는 것이 대표적. 그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 오로지 다리만으로 캐릭터의 성격이나 지금 그가 느끼고 있는 감정, 그리고 인물 간의 관계를 보여준다.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을 화면에 담아내며, 캐릭터의 시선, 손짓, 움직임 등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타고난 연출가, 야마다 나오코. 그의 작품을 ‘감성적’이라고 느끼는 이유도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감정들 덕분일 것이다. 그의 작품은 감정의 진폭이 크지 않은 일상의 순간을 아름답게 포착하며, 그러한 순간이 얼마나 큰 울림을 줄 수 있는지 보여준다. 대사가 아닌 사물을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특유의 연출기법 덕분에 그는 TV 애니메이션을 넘어 영화계에서도 종횡무진하는데, 이번에 개봉한 영화 <너의 색> 역시 앞서 말한 야마다 나오코의 장점이 오롯이 녹아든 작품이다. 오늘은 야마다 나오코의 신작 <너의 색> 개봉 기념 그의 연출작 중 영화에 포커스를 맞춰 소개해보고자 한다.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야마다 나오코의 작품은 무엇인지, 댓글로 이야기해주시길.


<더 무비 케이온!>

〈더 무비 케이온!〉(2013)
〈더 무비 케이온!〉(2013)

 

<더 무비 케이온!>은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TV 애니메이션 <케이온!>의 극장판으로, <케이온!> 연출을 맡았던 야마다 감독이 극장판까지 이어 연출했다. <케이온!>은 ‘경음악’을 의미하는 일본어 けいおんがく(케이온가쿠)에서 따온 말로, 우연히 고등학교 경음악 동아리에 입부한 소녀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경음악은 소규모 악단이 연주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대중음악이지만 <케이온!>에서의 경음악은 밴드 음악처럼 쓰이고 있다. 이렇게만 설명하면 ‘음악 애니메이션이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고등학생들이 케이크 먹고 차 마시는 이야기에 밴드 음악을 살짝 곁들인 정도라 평화로운 일상 애니메이션에 가깝다. 치열하게 연주하거나 팀원끼리의 음악적 견해가 충돌하는 장면이 많은 일반적인 음악 애니메이션과 달리 <케이온!>은 주인공들의 일상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더 무비 케이온!〉(2013)
〈더 무비 케이온!〉(2013)

 

<더 무비 케이온!>에서는 주인공들이 런던으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낯선 런던 속에서 그들은 늘 그렇듯, 밝고 경쾌하게 공연을 한다. 런던 내 회전초밥집에서 우연찮게 공연을 하게 된 그들은 어색하지만 최선을 다해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다. 문화가 달라도 음악으로, 진실됨으로 관객과 호흡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다만, 아즈사를 위해 ‘천사와 만났어’를 부르는 장면은 TV 애니메이션과 연결되는 등 <케이온!>을 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으니 만약 흥미가 생긴다면 정주행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평화롭고 무해한 것들이 사랑받는 요즘, <케이온!>의 무해력은 많은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줄 테다. 


<타마코 러브 스토리>

〈타마코 러브 스토리〉(2014)
〈타마코 러브 스토리〉(2014)

 

<타마코 러브 스토리>는 TV 애니메이션 <타마코 마켓>의 극장판으로, <더 무비 케이온!>과 마찬가지로 애니메이션 연출을 맡았던 야마다 나오코 감독이 극장판 연출을 맡았다. <타마코 마켓>은 일본 교토의 한 상점가를 배경으로, 떡집 딸 타마코(스자키 아야)와 주변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소소하고 따뜻한 일상을 담고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원작이 있던 <케이온!>과 달리, <타마코 마켓>은 야마다 감독이 직접 기획했는데, ‘떡집 딸'이라는 독특한 캐릭터 설정도 직접 했다고. 일상의 소소한 재미와 독특한 캐릭터들, 그리고 교토 특유의 고즈넉한 일본 분위기와 정겨운 느낌이 잘 살아있는 작품이다. 얼핏 보면 같은 작품이라 착각할 수준의 작화 스타일에 평화로운 일상물이라는 점에서 <케이온!>과 많이 닮아있지만, 연애 요소가 있다는 점에서 매우 다르다. 

 

〈타마코 러브 스토리〉(2014)
〈타마코 러브 스토리〉(2014)

 

<타마코 러브 스토리>는 <타마코 마켓>에서의 평화로운 일상에 비해 타마코의 성장과 사랑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늘 떡 개발에 골몰하는 타마코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본격적으로 자신의 미래를 고민한다. 그러던 와중, 소꿉친구이자 라이벌 떡집 ‘오지야’의 아들인 모치조(타마루 아츠시)에게 고백을 받고 혼란스러워하는데, 부끄러움과 혼란스러움, 당황, 그리고 설렘이 한데 뭉쳐버려 도망가 버리는 장면 연출은 그야말로 청춘 드라마의 한 장면이다. <타마코 러브 스토리>는 고백을 계기로 타마코의 감정이 조금씩 변화하고, 두 사람이 각자의 길을 향해 나아가면서도 서로를 소중히 여기며 한 걸음씩 다가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거창한 드라마나 화려한 사건 대신, 작은 순간들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서정적인 작품. 


<목소리의 형태>

〈목소리의 형태〉(2017)
〈목소리의 형태〉(2017)

 

<목소리의 형태>는 오이마 요시토키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야마다 나오코 감독 작품 중 국내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인기몰이를 했던 작품이다. 작품은 청각 장애를 가진 소녀와 과거 그를 괴롭혔던 소년이 다시 만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로,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고 성장해 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목소리의 형태>는 왕따, 장애, 피해자와 가해자, 소통의 어려움 등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진정한 용서와 치유의 메시지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준다. 주인공 이시다 쇼야(이리노 미유)는 어렸을 적 따분함이 싫다는 핑계로 청각장애가 있는 니시미야 쇼코(하야미 사오리)를 괴롭힌다. 지속적이고 끈질긴 괴롭힘에도 버티던 쇼코는 결국 전학을 가게 되었고, 쇼야는 왕따 주동자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서 왕따를 당한다. 쇼코의 전학 이후 6년간 외톨이로 지내던 쇼야는 마지막으로 쇼코를 찾아가 진정한 사과를 하기 위해 노력한다. 

 

〈목소리의 형태〉(2017)
〈목소리의 형태〉(2017)

 

가해자가 피해자를 찾아가 용서를 구하는 모습은 늘 의구심이 따를 수밖에 없다. 실제로 극중에서도 쇼코의 동생은 사과하기 위해 찾아온 쇼야를 보며 ‘자기만족 때문이라면 오지 마라’라고 말하거나, 두 사람이 다시 신뢰를 쌓아나가는 과정을 위선으로 보는 주변 친구들에 의해 두 주인공의 진심은 늘 진실함을 증명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쇼야는 자신의 내면에 숨겨진 두려움과 외로움을 마주하고, 쇼코와 함께 극복하며 성장해 나간다. 야마다 나오코 감독은 자칫 한쪽으로 치우칠 수 있었던 스토리를 균형감 있게 보여준다. 특히 두 사람이 마주하며 느끼는 불안과 희망, 그리고 서로에게 다가가는 미묘한 감정을 아름다운 배경과 작화, 그리고 소품을 통해 섬세하게 표현하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그들의 이야기에 깊이 몰입하게 만든다. 


<리즈와 파랑새>

 

〈리즈와 파랑새〉(2018)
〈리즈와 파랑새〉(2018)

 

<리즈와 파랑새>는 교토 애니메이션에서 제작한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TV 애니메이션 <울려라! 유포니엄>의 스핀 오프 작품이다. <울려라! 유포니엄>은 고등학교 관악부를 배경으로, <케이온!>과 음악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서로 다른 방향을 지향한다. <케이온!>이 가벼운 일상물이라면 <울려라! 유포니엄>은 악기부터 연주 장면까지 굉장히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진지한 음악 애니메이션을 지향했다. 특히 인간관계에서 차이점이 두드러지는데, 큰 갈등 없이 늘 무해하고 느긋한 <케이온!> 주인공들과 달리, <울려라! 유포니엄>은 청소년기 여자아이들이 동성에게 느끼는 우정 혹은 그 이상의 복잡한 감정을 묘사하는 데 힘을 쓴다. 

 

〈리즈와 파랑새〉(2018)
〈리즈와 파랑새〉(2018)

 

<리즈와 파랑새>는 <울려라! 유포니엄>에서 노조미(토우야마 나오)와 미조레(타네자키 아츠미)의 미묘한 심리 변화를 집중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주인공인 미조레와 노조미는 같은 관악부에 속해있지만, 둘 사이에는 알 수 없는 거리감이 존재한다. 미조레는 오보에를 연주하며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성격을 지녔고, 노조미는 플루트를 연주하는 밝고 사교적인 소녀다. 외톨이였던 미조레에게 늘 밝고 적극적인 노조미는 반짝이는 존재였기에, 노조미와의 우정보다 중요한 것은 없을 정도로 노조미를 애틋이 여긴다. 졸업을 앞둔 두 사람은 마지막 콩쿠르 합주곡에서 ‘리즈와 파랑새’를 준비하고, 작품은 동화 「리즈와 파랑새」 이야기와 미조레와 노조미의 이야기를 엮어서 감정선을 전개한다. 예술을 하고 있다면 누구나 맞닥뜨리는 ‘재능’의 영역. <울려라! 유포니엄>에서도 재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사이의 갈등을 꾸준히 중요한 주제로 다루는데, <리즈와 파랑새>는 이러한 갈등에 서로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더해 짙은 감수성을 남긴다. 큰 갈등 없이도 섬세한 감정의 흐름만으로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리즈와 파랑새>는 소녀들이 자신만의 색깔을 찾고 서로에게서 독립하는 과정을 통해 관계의 복잡함과 성장의 아픔을 진지하게 탐구하며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너의 색>

〈너의 색〉(2024)
〈너의 색〉(2024)

 

이번에 개봉한 야마다 나오코 감독의 신작, <너의 색>은 한 소녀의 성장기를 음악과 색채로 버무려낸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이다. 주인공 토츠코(스즈카와 사유)는 어릴 때부터 사람이 ‘색’으로 보이지만, 유일하게 자신의 색만은 보지 못하는 캐릭터로, 어느 날 너무도 아름다운 색을 갖고 있는 키미(타카아시 아카리)라는 소녀를 만나고, 거기에 가업이 아닌 음악의 길을 가고 싶어하는 소년 루이(키도 타이세이)까지 더해 밴드를 결성하게 된다. 미션 스쿨이라는 독특한 배경에 색을 본다는 특이한 설정, 그리고 갑자기 ‘밴드’라니. 처음 소개를 봤을 땐 도대체 왜 미션 스쿨이어야 하며, 색을 보는 인물이 왜 갑자기 음악을 하는가, 에 대한 의문이 있었으나 작품을 보고 나니 그 의문이 가셨다. 

 

〈너의 색〉(2024)
〈너의 색〉(2024)

 

<너의 색>은 저마다 갖고 있는 고민을 털어놓으며 음악으로 공감하고, 하나가 되는 과정을 ‘색’이라는 시각적 표현으로 드러낸다. 특히 파스텔 빛으로 일렁이는 화면은 스토리 없이 해당 장면만 봐도 ‘아름답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유롭고 감각적이다. 이러한 부드럽고 유연한 작화 스타일이 독특한 밴드 음악과 만나면서 애니메이션 이상의 작품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든다. 작품을 볼 당시에는 예상했던 일본 애니메이션 밴드 음악이 아니라 다소 놀랐으나 영화가 끝나고 나면 ‘수금지화목토천 아멘’이라는 가사가 통통 튀며 귓가에 맴돈다. 익숙한 이야기에 색과 음악을 더해 생동감을 주는 <너의 색>은 한마디로 ‘영롱하다’. 쌀쌀해진 가을, 따뜻한 색감으로 마음을 채우고 싶다면 추천하는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