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명은 소문과 같았다. 점심이 지난 시간 마주 앉은 기자에게 김대명은 '식사는 하셨냐'고 물었다. 그러고는 빈 종이와 펜을 꺼내 질문에 답할 준비를 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꽤나 침착하게 대화를 이어가려는 모습을 보였다. 배우 김대명은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에 대해서는 '치열함'을, 행복의 요소에 대해서는 '사람'을 여러 차례 거론했다. 일은 냉정하되 뜨겁게 하면서 사람에게는 응원과 따뜻함을 주고픈 그의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지난 17일 개봉한 영화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는 불법 영업소와 범죄 조직의 뒤를 봐주고 돈을 챙기는 비리 경찰 명득(정우)과 동혁(김대명)이 한탕을 위해 큰 사건에 뛰어들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배우 김대명은 본의 아니게 살인사건에 휘말리며 경찰과 범죄조직에 쫓기게 되는 경찰 동혁 역을 맡았다. '나 자신이 대견하다'고 당시를 회상한 김대명과 함께 5년 전으로 돌아가 영화의 비하인드를 들어보았다.
오늘도 메모장을 준비했다.
별로 적는 건 없다. 혹시 내가 까먹지는 않을까 해서 그렇다. (웃음)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은 2019년에 크랭크업 한 영화이다. 무려 5년 만에 개봉하며 다시 모이게 되었다. 낯설지는 않은가.
대본을 다시 봤다. ‘맞다, 그런 장면들이 있었지’라고 떠올렸다. 지난 5년간 중간중간 계속 연락을 했다. 감독님, 스태프들 모두 1년에 몇 번씩은 봤다. 그래서 당시의 느낌이 계속 남아있다.
(영화의 완성본을 보니) 옛날 찍었을 때가 생각나서 마음이 몽글몽글했다. 그때 다들 얼마나 열정적으로 촬영에 임했는지가 떠올랐다. 배우와 스태프들 대부분이 또래여서인지 더욱 똘똘 뭉쳐서 촬영했다. 다들 같은 생각일 것이다.
‘동혁’을 연기하기 위해 무려 10kg 이상을 감량했다고 들었다.
극의 순서대로 촬영을 진행했다. 감독님께서 동혁을 소년에서 성장통을 제대로 겪어서 남자가 되는 모습으로 표현하기를 기대했다. 멋있게 보이기 위해서 살을 빼는 게 아니라 죽음을 앞둔 고통을 느끼는 모습을 담아내고 싶었다. 그렇게 “제가 해볼 수 있는 데까지 해보겠습니다”라고 하고 살을 뺐다. 마지막에 보니 15kg가 빠져있더라.
어떻게 살을 뺐나. 박경림 씨와 같은 요가원을 다닌다고 하던데…
당시에는 촬영이 너무 많아서 요가를 하지는 않았고 (웃음) 음식을 많이 줄였다. 촬영 중에 뛰는 것도 워낙 많아서 그런지 많이 빠졌다.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의 연출을 맡은 감독 김민수는 이 작품으로 데뷔했다. 김민수 감독은 현장에서 어떤 스타일인가.
준비가 철저한 감독이다. 첫 작품을 하는 감독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워낙 조감독 생활도 오래 했고 시나리오 작업도 많이 한 감독님이어서 그런지 현장을 통솔하는 능력도 좋다. 참 많이 믿고 의지했다. (김민수 감독은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7)와 <킹메이커>(2022)의 각본을 맡았다.)
동혁은 극에서 가장 많은 고난을 겪는 인물이기도 하다. 연기하기에 쉽지 않았을 텐데 감정선을 어떻게 잡았나.
처음에는 동혁의 감정을 계산해 보고자 감정 그래프를 그리고자 했다. 그런데 감정의 굴곡이 많아 너무 복잡했다. 그 와중에 감독님이 이 감정의 파도를 그냥 오는 대로 받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현장에서 직관적으로 느낌이 오는 대로 받는 것이 중요하겠다고 생각해 최대한 솔직하게 리액션을 하는 데에 집중했다.
영화를 볼 때 그때의 느낌이 떠올라서 마음이 편하지가 않더라. 한편으로는 스스로가 대견하게 느껴졌다. 열심히 하고 있는 나 자신이 보였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게 아니고 감독님과 스태프들, 모든 배우들이 그랬다. 연기할 때 진짜 힘들었다.
*이하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동혁은 복합적인 인물이다. 뒷돈을 받으며 도박을 일삼지만 명득과 그의 딸, 여자친구까지 주변의 인물에게는 한없이 따뜻하다. 동혁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분석하고 받아들였나.
동혁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착하다는 것이다. 안 해도 되는 배려를 하는 등 더 인생이 꼬여간다. 이 지점이 이 인물의 삶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그걸 연기하는 나 역시도 복잡했다.
착한 사람인 만큼 고아원 동기인 친구 광석의 죽음을 보았을 때 동혁으로서는 너무 고통스러운 시간이었겠다 싶다.
맞다. 어릴 적부터 친구인데 나 때문에 죽는 거니까 그 과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괴롭다. 그럼에도 ‘나는 살아야겠다’라는 생각이 들고 ‘이 순간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싶어서 그런 행동을 했다고 본다.

극 중 명득과의 관계가 굉장히 돋보인다. 죽어가는 딸아이의 수술비를 구하기 위해 이 사건에 뛰어든 명득에 비해 동혁은 그 원동력이 약해 보이는데 명득과 함께 이 사건에 뛰어든 이유가 무엇인가.
동혁은 형제나 가족이 없다. 동혁에게 명득은 가족 그 자체이다. 그렇기에 마지막에 한 인생을 책임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영화 이후 해외로 떠난 동혁은 어떻게 살았을까.
글쎄. 커피 가게에서 알바를 하거나 귤 농장 같은 곳에서 일하지 않았을까. 최대한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선택을 했을 것이다.
촬영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지점은 무엇인가.
굉장히 추웠다. 특히 맨몸으로 물에 들어가는 장면에서는 옆에서 뜨거운 물을 계속 데우면서 촬영했다. 컷 하면 나왔다가 몸 좀 풀고 다시 찍고 했다. 게다가 시간도 많지 않았다. 남양주 세트장에서 촬영했다. 우리가 남양주 세트장 마지막 팀이었다. (남양주종합촬영소는 2019년 10월 문을 닫았다.) 아마 기한이 정해져있었을 것이다. 마지막 날까지 열심히 찍었다.
2006년 연극으로 데뷔 후 배우로 18년 차다. 그간 많은 작품과 캐릭터가 지나갔는데 더 해보고 싶은 작품이 있는가.
돌이켜보면 결국 내가 지향하는 대로 왔던 것 같다. 특정 장르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없고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더 깊게 해보고 싶다. 드라마 <미생>, <슬기로운 의사생활>과 같이 주위의 사람들에게 더 깊은 사람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김대명에게 ‘사람’은 매우 중요한 키워드인 것 같다.
맞다. 작품을 고를 때 일단 이야기가 즐거워야 하지만 같이 하는 사람들이 좋아서 하는 경우가 많다. 그 사람들이 잘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참여한다. 내 욕심보다는 내가 잘 해낼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참여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느끼고 끌리는가.
선한 사람. 요즘 선한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느낀다. 과거에는 능력치가 높은 사람들을 좋아했는데 요즘은 내가 응원하고 싶은 사람이 좋다. 내가 힘이 될 수 있으면 함께 작업하면서 시너지가 나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특히 신원호 감독님의 <슬기로운 의사생활> 할 때 영향을 많이 받았다. 무엇이 진짜 행복한지를 알게 되었다. 팀원들과 함께 목표를 향해 달려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2월 ‘에그이즈커밍’의 <맛따라 멋따라 대명이따라>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나영석 PD와 함께 맛집을 다니는 콘텐츠에 많은 이들이 반응했다. 예능은 적성에 맞나.
아직 부끄럽다. <맛따라 멋따라 대명이따라>도 재미있어 해주시는 게 신기하고 감사하다. ‘다 이렇게 다니는 거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맛도 맛이지만 식당의 바이브를 중시한다고 했다. 그 ‘바이브’라는 것이 뭔가.
요즘 웬만한 식당의 음식은 다 맛있다. 그런데 예를 들어 주인 할머니가 30년 넘게 찌개만 끓인 가게가 있다고 하자. 그럼 그 음식을 나한테 끓어주신 게 너무 고맙다. 그리고 누군가를 데려가서 ‘이걸 30년 동안 하셨대’라고 이야기해주는 것도 좋다. 굳이 그 식당을 가서 먹는다면 그 한마디를 하기 위해서 아닌가 싶다.
<맛따라 멋따라 대명이따라>가 인기가 워낙 많아져서 평소에 식당에 갈 때 신경 쓰일 수도 있겠다.
약간 조심스럽긴 하다. 주인분이 나 때문에 마음 쓰이실까 봐… (웃음)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를 찾는 관객들이 어떻게 영화를 보았으면 하는가.
서늘해진 계절에 어울릴만한 작품이다. 영화의 쫀쫀한 느낌을 가지고 가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