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향에서 국숫집을 하는 미연(김정난)과 아들 기훈(박지훈)의 일상은 여느 가족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살갑게 엄마의 식당 일을 거드는 듬직한 아들 기훈은 어느 날 엄마가 알츠하이머에 걸렸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듣고, 아이돌 꿈을 이루기 위해 가족과 담을 쌓은 하나뿐인 여동생 지은(김보영)에게 연락을 한다. 하지만 동생은 그런 오빠를 차갑게 대하기만 한다. 엄마의 병은 점점 악화해 아들을 아빠(이필모)로 착각하기까지 하는데, 이 가족에게 다시 행복은 찾아올까?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한 가족의 보편적이면서도 특별한 이야기를 담은 <세상 참 예쁜 오드리>(감독 이영국)이 10월 23일 관객을 만난다.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먼저 선보인 이 영화에 대해 관객들은 눈물을 흘리며 깊은 공감을 표했다. 평범한 듯 보이지만 서로에게 너무나 특별한 엄마와 아들, 그들에게 닥친 시련과 이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진정한 가족의 의미가 스크린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눈물의 여왕>(연출 장영우‧김희원, tvN, 2024), <사랑의 불시착>(연출 이정효, tvN, 2019), <구미호뎐>(연출 강시효‧조남형, tvN, 2023), <재벌집 막내아들>(연출 정대윤‧김상호, JTBC, 2022) 등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뿜어낸 조연으로 열연을 펼쳐온 김정난 배우가 첫 스크린 주연을 맡았다. <세상 참 예쁜 오드리>에서 김정난 배우는 기억은 사라져 가지만, 영원히 예쁜 엄마 오미연 역을 맡았다. 젊었을 때 오드리 헵번이라 불렸던,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자에서 남매의 엄마가 돼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자식을 지키려는 엄마의 절절한 사랑을 오롯이 표현하며,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올해 최고의 한 해를 보내고 있는 김정난 배우는 첫 스크린 주연작에 대한 부담으로 고사했던 이유부터, 캐릭터 구축을 위해 다큐멘터리를 찾아보며 알츠하이머 환자를 분석했던 일들, 촬영 현장에서의 에피소드와 함께 30년 넘는 연기 생활을 가능하게 했던 원동력까지 때론 담담하게, 때론 유쾌한 웃음으로 설명했다. <세상 참 예쁜 오드리>가 “작지만 정말 좋은 영화, 보고 나면 꼬투리 잡고 싶지 않은 영화”라고 말하는 김정난 배우와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첫 스크린 주연작입니다. 소감이 남다를 거 같은데, 개봉 앞둔 소감이 어떠세요?
기자간담회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발가벗겨진 느낌처럼 아주 부끄럽고 그래요.(웃음) 민낯이 그대로 보이기도 하고, 큰 스크린에 나오는 모습을 보면 당사자는 되게 당혹스럽거든요. 영화는 TV 드라마랑 다르게 돈을 내고 시간을 내서 극장까지 작품을 보러 오는 거잖아요? 관객이야 전체 스토리를 보면서 저만 보는 건 아니지만, 저는 잘한 것보다 못한 것만 보이기도 하고요.
영화를 끌고 나가야 하는 타이틀롤이다 보니, 작품 들어가기 전에 마음가짐도 달랐을 것 같습니다.
어릴 때는 주인공 많이 했어요. 그런데 주인공의 책임감에 대해 잘 몰랐죠. ‘찍어도 찍어도 끝이 없네’, ‘대사가 왜 이렇게 많아’, ‘내일 영하 10도라는데 얼어죽으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요.(웃음) 나이가 드니까 주연에 대한 무게감과 책임감을 알겠더라고요. 다행히 (박)지훈이, (김)보영이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어요. 둘이 잘해줘서 고생을 덜 한 거 같습니다.

이영국 감독님 말로는 처음에 오미연 역할을 고사하셨다고요. 출연을 망설인 이유가 뭐였나요?
처음 캐스팅 제안을 받았던 때 개인적으로 멘탈이 완전히 붕괴된 상태였어요. 17년 키웠던 고양이가 하늘나라에 간지 얼마 안 된 애도 기간이었어요. 반려묘와 이별은 처음이라 우울증 약을 먹을 정도로 매일 울면서 잠에 들지 못할 정도로 괴로웠죠. 그럼에도 <구미호뎐> 시즌2를 포함해 작품 2개를 하고 있었으니, 한가한 편은 아니었죠.
그러던 차에 이 영화가 들어왔어요. 작은 영화다 보니 일단 짧은 시간에 찍어야 하고, 로케이션 장소가 춘천인데 매일 출퇴근하며 촬영할 자신이 없었어요. 출연 씬도 많았고, 고양이 6마리를 돌봐야 하는데 이런 멘탈로 제대로 할 수 있을까가 우선 걱정이었죠. 게다가 오미연 역할을 잘못 표현하면 실제 병을 앓고 있는 분들께 누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한몫했죠. 쉬운 역할은 아니잖아요. 연기가 아무리 상상의 산물이긴 하지만, 제가 겪어보지 않은 일이라도 분명 겪고 있는 분들이 많을 테니까요. 감독님이 직접 시나리오도 써 주셨지만, 제가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힘들겠다는 판단으로 다른 좋은 배우가 하면 좋겠다고 말씀드렸죠.
그런데 결국 마음을 돌려 출연을 결심한 계기가 있을까요?
이영국 감독님이 자꾸만 “김정난 배우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역할”이라고 하셔서요.(웃음) 결국 고양이를 연로하신 부모님께 부탁드렸죠. 집에 와서 좀 봐달라고 부탁드리고, 춘천으로 출퇴근하면서 찍었습니다. 25회차 안에 끝내야 하는 영화여서, 어떤 컷이든 세 테이크 이상 안 간 거 같아요. 마음껏 연기해보지 못했다는 생각에 개인적인 아쉬움도 남긴 하지만, 그래도 저 아니면 안 된다는 연출자가 있었기에 출연을 결심했습니다.

아무리 연출자가 원해도 대본에 공감이 안 되면 할 수 없을 것 같은데요. 처음 대본을 보고 어떤 느낌이셨어요?
대본은 무척 공감이 갔어요. 울면서 읽었죠. 마음도 아프고요. 따뜻하고 좋은 스토리였어요. 그런데 제가 그런 부분을 잘 구현하지 못할까 걱정이 됐어요. 저는 보기와 다르게 작품이 들어오면 굉장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에요. 스스로에 대한 의심도 많고요. 도전하는 걸 좋아하면서도 막상 계약서에 도장 찍고 나면 그때부터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타입입니다.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는, 머리와 생각과의 싸움이 시작되는 시간이니까요. 정말 창작의 시간이에요. 나이가 들수록 더 힘들어지기도 하고요. 새로운 걸 자꾸 만들어내야 하는 사람이다 보니, 고흐가 왜 귀를 잘랐는지 이해가 되더라고요.(웃음)
<세상 참 예쁜 오드리>는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초청받기도 했어요. 관객들 반응이 어떻던가요?
놀랐죠. 반응은 좋았어요. 저는 연차가 있는 배우다 보니 냉정하게 작품을 분석하는 편인데요. 편집본 보면서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관객분들이 너무 좋아해주시니까 생각보다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은 희망도 생겼어요. 사실 요즘 한국 영화들이 너무 자극적인 소재가 많고, 잔인하기도 한데요. 우리 영화는 조금 다른 결로 받아들여질 거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알츠하이머를 앓는 엄마’라는 캐릭터 구축을 위해 다큐멘터리를 많이 참고하셨다고요.
그게 출연 고사의 한 이유기도 했죠. 암이라든가 신체적인 병을 표현하는 것도 힘들긴 하지만, 정신적인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의 역할은 사실 제게 미지의 영역이잖아요. 주변에 그 병을 앓은 분들도 없으니 그들의 삶을 관찰할 기회가 없어서 너무 막연했어요. 저는 다큐멘터리에 많이 의존하는 편입니다. 날것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으니까요.
유튜브를 찾아보니 알츠하이머 관련 영상이 너무 많더라요. 하나하나 찾아봤는데, 정말 너무 달랐어요. 이상한 소리를 한다거나 집을 잃어버리는 것들처럼, 약간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각자 표현하는 스타일들이 달랐어요. 예쁘게 또는 과격하게 우는 분들이 있었고, 의외로 젊은 나이에 알츠하이머에 걸려서 부모가 자식을 돌보는 케이스도 있었죠. 모든 걸 제가 다 표현할 수는 없어서 영화에 맞게 사용할 수 있을 만한 포인트를 뽑아서 캐릭터를 만들었습니다.

알츠하이머, 치매 하면 줄리안 무어가 나왔던 <스틸 앨리스>(감독 리처드 글랫저‧워시 웨스트 모어랜드, 2015)나, 안소니 홉킨스가 나온 <더 파더>(감독 플로리안 젤러, 2021) 같은 영화도 떠오르는데요. 레퍼런스로 삼은 극영화는 없었나요?
하나도, 하나도 안 봤어요. 볼 수도 있는데, 저도 모르게 순간순간 따라 하는 게 생길까 봐요.
워낙 연기 베테랑이시지만, 알츠하이머 환자 역할은 처음이다 보니, 소화하기 쉽지 않았거나 특히 공들여 찍은 장면이 있다면요?
공들여 찍지 않은 씬은 한 씬도 없고요.(웃음) 아무래도 제가 오미연이 아닌 기억을 잃었을 때는 자신이 오드리 헵번이었을 때 과거를 보여주는 거니까 더 사랑스럽게 그리려고 했어요. 남편을 정말 사랑했던 오드리의 모습을 보여주려 더 신경을 썼던 거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미연이 냉장고 옆에서 자는 장면이 너무 슬펐어요. 남편이 얼마나 그리웠으면 남편 사진이 붙어 있는 냉장고 앞에서 잘까…. 남편이 비참하게 눈앞에서 죽었으니, 그 충격으로 병이 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관객에 따라 살아온 경험이 다 다르니까 오열하는 포인트가 다를 거 같아요. 어떤 분은 이름 오미연에서 연 자를 잘 못 쓰는 장면에서 그렇게 눈물이 났다고 하더라고요.
기억을 잃었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오거나 하면서 감정 기복이 많았을 텐데요. 이런 걸 잘 조율해가는 연기 노하우가 있다면요?
‘짬빱’이죠!(웃음) 특별한 연기 노하우가 뭐가 있겠어요? 연륜이고, 그런 거 아닐까요? 가끔 벽에 부딪히고 생각 안 날 때는 너무 괴롭기도 하죠. 그날 해결 안 돼서 잠도 못 자고요. 그러다가도 현장 나가서 카메라 딱 돌 때 연기가 나올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그래도 내가 헛짓을 하진 않았구나’, ‘오래 한 우물 파고 연기 성실하게 한 게 이런 데서 보이는구나’ 하고 느껴요.

치매 연기로 소중한 아들 못 알아보는 알츠하이머 환자를 영화에서 간접 체험한 소감은 어떤가요?
걸린 사람은 잘 모르는 거 같아요. 본인은 사실 모르는 병이잖아요. 얼마나 아픈지 기억을 못하니까요. 그런데 가족들이 정말 힘든 병이잖아요. 엄마가 자식을 못 알아보고, 갑자기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남처럼 행동할 때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요. 얼른 좋은 약이 나와서 이런 병 좀 없으면 좋겠어요.
저도 혼자 사는 사람인데 어느 날 제가 이런 병이 온 줄도 모르고 그렇게 있다가 식구도 없는데, 아무 데나 방황하고 다니다가 경찰서에서 발견되면 상상만 해도 얼마나 끔찍한 일일까…. 가족이 있어도, 없어도 끔찍한 병인 거 같아요. 싱글들은 특히 더요. 빨리 좋은 약이 개발돼서 치료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세상 착한 아들 기훈 역을 맡은 박지훈 배우와 끈끈한 모자 관계를 보여주는데요. 준비 과정이 있었을까요?
그런 건 없었어요. 시간이 없다 보니, 모자의 정을 쌓을 정도의 시간은 더더욱 없었고요.(웃음) 촬영 들어가기 전에 밥 먹으면서 시간 보낸 게 다죠. 그래도 배우는 카메라 돌아가면 그 인물이 돼야 하는 거니까 프로답게 하는 거고, 또 지훈이가 잘 따라와 줘서 편했어요. 가끔 잘 맞추지 못하는 후배를 만나면, 선배로서 막 가르치기도 뭐한, 그럴 때가 있거든요. 가르친다고 해도 못 알아듣는 친구들도 있고요. 연기는 혼자 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같이 하는 건데, 어쩔 수 없을 때 본의 아니게 제가 원하는 그림이 나오지 않을 때도 있죠. 그런데 지훈이랑은 호흡이 잘 맞았어요.

박지훈 배우는 김정난 배우와의 호흡에 대해 “감히 말도 못 할 정도로 존경한다. 눈만 봐도 에너지가 통하는 느낌이었다”라고 말했는데요. 박지훈 배우와 호흡은 어땠나요?
지훈이는 배우의 길을 선택한 게 참 잘했다고 생각해요. 물론 무대 위 가수의 모습도 훌륭하지만, 이런 친구가 연기 안 했으면 어땠나 싶을 정도로요. <약한영웅 Class 1>을 보면서 이미 봤죠. 어린데도 불구하고 눈 속에 많은 게 담겨 있다 싶었어요. 배우는 눈빛이 참 중요한데, 그런 면에서 지훈이는 좋은 조건을 타고났다, 앞으로 할 수 있는 게 참 많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기본적으로 그가 가진 것을 떠나서, 재능이 있는 후배들이 너무 많아요. 지훈이는 태도와 자세가 너무 좋았어요. 작은 영화고 제 돈 써가며 한 영화인데요.(웃음) 작품이 마음에 드니까 와서 해보고 싶다고 하는 그 마음가짐, 연기를 대하는 태도 같은 것들이 참 좋았어요. 연기할 때도 참 열심히, 성실히 했어요. 그래서 예뻤고, 지금도 예쁘고요.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밝은 미래가 있는 후배라고 생각해요. 건전하기도 하고요.
<세상 참 예쁜 오드리>에서 관객들이 김정난 배우의 어떤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길 바라세요?
저는 한 이미지에 매몰되는 걸 경계하는 편이에요. <SKY 캐슬>(연출 조현탁‧김도형, JTBC, 2018) 전에도 1년 정도 공백기를 가졌어요. 그전에 코믹한 역할을 많이 했더니, 그런 대본들만 들어오더라고요. 저도 사람인데 무언가를 만드는 데 한계가 있잖아요. 저도 모르게 새로운 게 아니라 거기서 거기인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죠. 그럴 때는 쉬어요. 연극을 하면서 기다렸죠. 그때 <SKY 캐슬>이 들어왔어요. 특별출연 같은 역할이었는데, ‘이거 내가 정말 잘하는 전공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죠. 공연이 1주일 남은 상황이었는데도 출연하겠다고 했어요. 진짜 힘들었죠. 그리고 나서 또 엄청 ‘다크’한 작품들만 들어오더라고요.(웃음)
그래서 또 바꿔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좀 쉬었더니, <사랑의 불시착>, <구미호뎐>이 들어온 거고요. 이렇게 계속 변화를 주려고 노력해요. 그런데 최근에 어쩌다 보니 재벌 역할 하다 보니까 제가 되게 부자인 줄 알더라고요.(웃음) 새로 들어가는 드라마에서도 재벌 역이에요. 제가 그런 부자 이미지가 좀 있나 봐요.(웃음) 오드리는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서민 역할이지만요.

‘세상 참 예쁜 오드리’라는 제목이 유치한 것 같으면서도 보고 나면 따뜻한 느낌이 들어요. 원래 다른 제목이 있었는지, 또 제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도 너무 좋아요! 처음 제목은 이게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짧은 제목이었는데 별로 임팩트가 없었고, 금방 금방 바뀌었어요. 이걸로 바꾸길 잘한 거 같아요. 엄마에 대해서 잘 표현한 제목 같아서요. 배우로서 이 제목에서 영감을 얻은 부분도 있어요. 아, 역할이 세상 참 예쁜 오드리구나 하면 떠오르는 것들도 있잖아요. 그래서 연기에 도움을 받기도 했고요.
아까 제가 다큐멘터리를 참고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인상 깊은 분들이 몇 분 계셨어요. 제 어머니뻘 연배이신 한 분은 정말 다소곳하게, 가방을 이렇게 어깨에 크로스로 딱 매고 계세요. 자신의 집에 있는데도, 집에 돌아가야 한다고 문 앞에서 구두 신고 가만히 계신 분이었어요. 남편이 “여보, 여기가 우리 집이야” 하는 데도 한두 시간을 앉아 계세요. 그러니까 본인이 전에 살던 집만 기억하는 거예요. 이사 온 집이 낯설어 ‘왜 남의 집에 있냐, 집에 가야 한다’고 하시는 분이었죠.
최근 <신사의 품격> 쇼츠가 유행하면서 ‘김정난 배우=드라마 필수 인력’이라는 말도 나와요. 과거 연기가 다시 언급될 거라고 예상하셨어요?
‘드라마 필수 인력’이라는 말이 진짜 있어요?(웃음) 10년도 넘었잖아요. 그때는 유튜브를 거의 안 보던 시기여서, 너무 웃기네요. 좀 다른 이야기긴 한데, <신사의 품격>에서 배우들이 휴대폰 보면서 너무 신기해서 “야, 나중에는 뭐 여기서 얼굴 보면서 통화하면 되겠다?”이런 대사를 하기도 했거든요. 아, 그래서 지금 그 쇼츠를 봐도 재미있나 보네요.(웃음)

젊은 시청자들에게 인기를 얻은 기분은 어떠세요?
몰랐어요. 짤만 돌아다닌다고 생각했지, 그걸 찾아서 작품을 처음부터 본다는 생각은 못했거든요. 제일 놀라는 건 <타짜>(감독 최동훈, 2006)죠. ‘좀 탱탱한데? 하는 느낌?(웃음) 20년 됐으니까요. 배우들은 굳이 본인의 과거 작품을 찾아보는 건 아닌데, 가끔 영상이 뜨면 볼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면 과거에 내가 이렇게 연기했구나, 이때는 이런 의상이 유행이었구나 하고 느끼죠.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센 언니‘, ’부자 언니‘에 대한 갈망은 여전한 거 같아요.(웃음)
과거 작품 보면서 촬영 당시 스트레스받았던 게 생각나기도 할 것 같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촬영 들어가기 직전까지 스트레스를 받는 타입이에요. 캐릭터를 딱 구축할 때까지요. 그다음부터는 너무 편하게 할 수 있어요. 결정하고 톤 잡고, 스타일, 말투 태도 이런 거 정하고 나면 너무 재밌죠. 그런데 거기까지가 힘든 거예요. 진짜 <사랑의 불시착> 때도 그랬고, <구미호뎐>도 그랬어요. <눈물의 여왕> 때도 정말 감독님, 작가님께 우는소리 많이 했어요. 전화해서 “감독님 어떡해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서 잠도 못자요”이러면 감독님이 “잘하시잖아요, 믿어요!”라고 하세요. 그러면 “아무것도 안 떠오르는데 왜 저를 믿어요!”하며 또 뭐라 하고요.(웃음) 과거의 이야기가 되고 보니 웃으며 이야기하게 되네요.
연기가 힘들진 않으세요?
힘들어요. 연기가 쉽지 않아요. 어릴 때도 쉽게 생각한 건 아니지만, 뭐랄까요, 그냥 막 했던 거 같아요. ‘난 열정 있어!’, ‘연기에 대한 열정이 엄청나!’ 이런 마음으로 막 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책임감이 커지고 배우로서 무게가 너무 달라요. 그런 게 참 부담스럽긴 하지만 어쩌겠어요. 그것이 배우의 숙명인 것을.

힘이 들 때는 요즘도 여전히 BTS 노래로 위로를 받으시나요?(웃음)
BTS의 ‘00:00(Zero O’Clock)’이 벨소리에요. 촬영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오늘 정말 연기 못했구나, 하는 마음에 부끄러워질 때 이 노래를 딱 들으면 기분이 달라져요. 가사가 정말 주옥같은데요. 그래, 12시가 지나면 새로운 아침이 오고, 지나간 일들이 되겠지 하는 마음이 들어요. 조금 다른 이야긴데요, BTS 완전체를 다시 보긴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이제 아이돌이라기보단 아티스트로 각자 활동을 하면서 가끔 이벤트성으로 뭉치지 않을까요? 개인적으로 BTS를 워낙 사랑하지만, 워낙 개개인이 가진 실력이 출중하니까요.
BTS 멤버들을 연기로 만날 수도 있잖아요?
BTS를요? 인연이 되면 보는 거고요.(웃음) 사실 배우가 이렇게 많은데도 안 만나지는 사람들은 안 만나져요. 제가 30년 넘게 연기를 했는데, 정말 존경하고 좋아하는 김혜선 배우를 아직 못 만났다니까요? 그런데 만약 제가 BTS를 작품에서 만난다면?(웃음)
BTS 말고 힘을 주는 존재가 있다면요?
고양이 집사는 늘 고양이에게 위안을 얻죠.(웃음) 원래 7마리였는데, 재작년에 한 마리 갔으니, 이제 6마리죠. 많이 키우니 힘들어요. 나이들이 많아서 병원을 밥 먹듯 드나드니 촬영하면서 돌보는 게 보통 일이 아니네요. 작품 수를 늘리지 않은 것도 여러 작품을 하면 고양이들을 돌볼 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해요.

인터뷰 초반에 고민 끝에 출연을 결심한 작품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제 개봉을 앞두고 ‘그래도 잘 선택했구나’ 하고 느끼는 부분이 있나요?
<세상 참 예쁜 오드리>에 관객이 많이 들면 ‘하길 정말 잘했구나’하는 생각이 들 것 같은데요?(웃음) 잘했다고 생각해요. 당시에는 고민도 많았지만, 결국 좋은 후배들도 만났고, 제가 보기에 작품이 잘 나왔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 작품이 아주 완성도 있다고 이야기하진 않아요. 너무 짧은 시간에 촬영해야 해서 컷도 많이 못 땄고, 그러다 보니 편집에 대한 아쉬움도 있으니까요. 물론 제 연기의 단점도 있을 테고요.
그런데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다 보고 났는데도 꼬투리 잡고 싶지 않은 영화요. <세상 참 예쁜 오드리>가 그런 영화라는 마음이 들었어요. 저는 배우다 보니 촬영을 하고 나면 ‘저 씬은 컷을 더 나눠서 풍성했으면’, ‘테이크를 좀 더 가서 깊이 있는 연기가 나왔으면’ 하고 냉정하게 평가하는 편인데요. 이번 영화는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만든 작품이라고, 그래서 잘 나왔다고 생각해요.
이번 영화에서는 알츠하이머를 앓는 주부를 연기하셨는데요. 앞으로도 사회적 약자를 다루는 작품에 또 출연하고 싶은 생각이 있으세요?
우선 대본이 꼼꼼하게 만들어져야 할 것 같아요. 아무리 좋은 메시지를 준다고 해도 스토리가 허술하면 안 되죠. 오히려 ‘웰메이드’ 작품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전에 <말아톤>(감독 정윤철, 2005) 같은 영화 참 좋았잖아요? 장애인에 너무 초점을 맞춘다기보다는 스토리가 가진 힘이 보여야 할 것 같습니다. 장애인 이야기는 곁가지라도 드라마가 힘을 발휘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작품이 장애인에만 포커싱 되면 관객에게나 배우 모두에게 너무 부담스러울 거 같아요. 작품성 있는 영화라면 장애인에 저절로 관심을 가지게 될 테고요.

내년이면 연기를 시작한 지 35주년을 맞습니다. 지금까지 연기할 수 있는 원동력은 뭘까요?
그러니까, 그게 대체 뭘까요?(웃음) 어떡하다 제가 지금까지 연기를…. 이렇게 올 팔자였나 보다, 죽을 때까지 연기해야 하는 사람인가 보다, 이렇게 좀 운명에 순응하게 되는 거 같아요. 예전에는 ‘연기하다 다른 거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하는 마음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35년이나 연기판에 있다 보니, 미래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계속 있을 거 같아요. 물론 연기할 때는 스트레스도 받지만, 촬영장만 나가면 도대체 어디서 이런 에너지가 나오는 걸까, 할 정도로 바뀌는 걸 느끼거든요. 연기를 계속하도록 태어났나 봐요.(웃음)
나이가 든다고 해답이 딱 내려지는 건 아닌 거 같습니다. 현명해지고 앞길을 스스로 제시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더라고요. 60대가 돼도 그럴 거 같아요. 그게 고민이고, 힘들고, 여전히 헷갈리죠. 그렇다고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고요.(웃음)
배우 김정난에게 올해는 정말 특별한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눈물의 여왕>이 너무 시청자의 사랑을 받기도 했고요. <세상 참 예쁜 오드리>로 스크린 첫 주연작을 올리기도 했으니까요. 어떤 한 해가 될 것 같으세요?
어렸을 때부터 큰 욕심은 없는 편이었어요. ‘올해는 정말 연기대상을 받아야겠어’ 라든가 ‘한류스타가 되겠어’, ‘아카데미, 칸 레드카펫을 밟을 거야’ 같은 뚜렷한 목표가 없었죠. 이런 거 없이 제가 할 수 있는 걸 오랫동안 할 수 있는 게 인생에 럭키한 거라 생각합니다. 제가 좋아하고 잘하는 걸 보여줬을 때 사람들이 보면서 행복해 하는 거요. 그런 걸 오래 할 수 있다는 것도 제겐 너무 행복이죠. 저는 그 행복을 너무 넓히려 하지 않아요.
마지막으로 관객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요.
영화를 보는 관객마다 느끼는 바가 다를 거예요. 알츠하이머 가족이 있는 분들은 그대로 공감하는 부분이 있을 테고, 아닌 분들에게는 ‘저게 내 이야기, 우리 엄마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볼 수 있겠죠. 실제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이야기니까요.
한 가지 더요. 일부러 발품을 내서 돈을 내고 영화를 보러 오시는 관객들에게 너무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너무 감사해서 제가 실망하게 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고요. 그래도 ‘오늘 시간 내서 영화 보기를 참 잘했다’ 하는 생각이 드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주연인 영화라서가 아니라요, <세상 참 예쁜 오드리>와 같은 작은 영화들이 잘 되면 좋겠어요. 우리 관객들 수준이 워낙 높고 좋으니, 큰 영화뿐 아니라 작은 영화들에도 관심을 가져줄 거로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