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가까우면서 먼 이름, 가족. 우리는 아버지, 어머니, 형제자매의 어디까지를 알고 있을까? 한집에서 살기에 당연히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부모님의 젊은 시절 꿈이 뭐였는지, 내 형제자매의 현재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인지에 대해 잘 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야간 병동에서 일하는 언니 유정(박예영)과 모범생 동생 기정(이하은)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부모님을 잃었다. 언니가 가장으로 집안을 건사하는 동안 동생은 학생의 본분을 지킨다. 어느 날, 학교에서 연락이 온다. 동생이 학교 화장실에서 아기를 낳고 버려서 죽게 만들었다고. ‘그럴 리가 없다’, ‘내 착한 동생이 한 일이 절대 아니다’라고 항변하지만, 동생을 만나는 것조차 금지되고, 답답한 언니 앞에 미스터리한 동생의 절친 희진(김이경)이 나타나면서, 언니는 조금씩 동생의 진실에 다가가기 시작하는데….
12월 4일 관객을 만나는 영화 <언니 유정>(감독 정해일)은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CGV상을 받으며 화제를 모았다. 가까운 사이이기에 다 안다고 생각했던 가족에게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예리하게 포착해내는 카메라가 돋보인다. 정해일 감독은 언니 유정 역할의 박예영 배우와는 단편을 포함해 세 번째 작업한 이번 영화로 장편 데뷔했다.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차마 드러내지 못했던 서로의 진심을 향해 나아가는 자매의 모습을 스크린에 그리면서, 일상에서 가족에게 무심했던 관객들에게 질문들 던진다. “영화를 보고 관객이 부모, 형제, 친구에게 안부 전화 한 통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정해일 감독을 만나 <언니 유정>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봤다.

장편 데뷔 축하드립니다. 개봉 앞둔 소감 한 말씀 부탁드려요.
그동안은 영화제 같은 데서만 상영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렇게 개봉을 하게 돼서 일반 관객을 만난다고 하니, 설레기도 하고 어떻게 보실지 궁금하기도 하면서 여러 감정이 복합적인 거 같습니다.(웃음)
<언니 유정>이라는 제목이 참 심플합니다. 처음부터 이 제목이었나요?
네. 처음부터 이 제목이었어요. 언니의 시점으로 영화가 진행된다고 생각했고, 그를 통해 가족 관계를 이야기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나리오를 썼거든요. 쓰다 보면 (파일을) 저장해야 하는데, 시나리오를 쓸 때 떠오르는 제목을 끝까지 가져가는 편입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라 그런 거 같아요. 단편 때도 그랬고요.
시나리오는 얼마 만에 완성하셨어요?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구상하는 데는 한 반년 정도 걸렸던 거 같고요. 정리가 얼추 되고 본격적으로 쓴 건 두 달이 안 걸린 거 같아요. 2019년에 썼는데, 코로나 때문에 촬영은 2022년에 들어갔습니다.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3년 후에 촬영에 들어간 건데, 초고랑 달라진 부분이 생겼을 것 같아요.
초고에서는 펼쳐지는 사건 중심으로 갔어요. 이건 배경이 좀 있어서 설명을 드리자면요, 제가 박예영 배우와 단편 두 편을 함께 했어요. 작업할 때마다 영화진흥위원회 제작지원을 신청했는데요. 일단 첫 번째는 ‘광탈’했고요.(웃음) 두 번째에는 단편 <더더더>와 장편 <언니 유정>을 냈는데, 단편만 된 거예요. 그래서 <언니 유정>을 찍고 싶으니까, 3개월 만에 <더더더> 작업을 마치고 2021년 초에 영진위에 다시 지원해서 됐습니다. 삼수를 한 셈이죠.
그러다 보니, 박예영 배우와는 <언니 유정>에 대해 논의할 시간이 자연스럽게 많아졌어요. ‘이런 일을 겪는 캐릭터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라는 질문을 많이 드렸죠. 초고에서 사건이나 플롯은 거의 변하지 않았는데, 인물 간 관계가 더 풍성해졌습니다. 사실 친구 희진(김이경) 캐릭터가 초고에는 없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상의를 하다 보니, 그런 상황에서 동생이 혼자 있지 않고, 친한 친구가 있었을 것 같고, 또 그 친한 친구에게는 모두 다 이야기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세 명의 캐릭터가 만나니, 그다음부터는 셋이 서로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인물들의 감정을 더 고민하게 됐습니다.
여고에서 영아 유기 사건이 벌어진다는, 파격적인 아이디어는 어떻게 태동한 것인지 궁금해요.
조카가 태어나면서 시작된 아이디어였어요. 매형이 해외 발령을 받아서, 조카가 태어나기 전부터 누나랑 다 같이 우리 집에서 살게 됐죠. 임신, 출산 이런 건 저랑 다른 세상 이야기였는데, 막상 조카가 태어나고 가족이 정말 행복해졌어요. 아기 하나 태어난 건데, 가족들이 부대낄 일들이 많아지더라고요. 조카 예방 접종하러 병원 가는 차 안에서도 엄마랑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시간도 생겼고요.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의 과정을 통해 가족이 서로의 진심을 알게 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자료 조사를 하다 보니 너무 안타까운 사건들이 많더라고요. 생명이 잉태되는 순간부터 인간으로 인정되는 것도 아니고, 사산하는 경우는 아예 인간으로 인정도 못 받더라고요. 장례를 치르는 부모가 너무 안타까웠죠. 의학적, 법적으로 복잡한 지점들이 많더라고요. 아이러니했어요. 내 조카는 이렇게나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말이에요.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길까, 고민하다가 용기를 내서 도전했습니다.

기정(이하은)은 학교에서 ‘영아 유기 사건’ 당사자로 자백합니다. 언니가 간호사인데 왜 말을 못 했을지 그 점이 영화 초반 관객들이 답답한 부분일 것 같아요. 절친 희진을 통해 동생은 단 거 안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듣는 건 그런 궁금증을 증폭시키고요. 몰입하게 만드는 부분인데요. 아까 희진이 초고에는 없던 캐릭터라고 하셨는데, 희진 캐릭터가 등장하면서 이렇게 추적극 같은 형식이 된 거 같아요. 영화 구성은 처음부터 이렇게 구상하셨던 건가요?
독립영화든 상업영화든 저는 장르가 있는 영화를 좋아해요. ‘장르는 관객과의 약속’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언니 유정>은 장르가 바뀝니다. 처음에는 미스터리였다가 나중에는 세 명의 관계성을 이야기하는 영화로 바뀌죠. 장르는 약속이라는 말을 못 지켰다기보다는, 제가 좀 선을 넘은 지점인 거 같은데요.(웃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어요. 처음부터 미스터리로 시작해서 그 너머에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찾아보고 싶었거든요. 바티칸의 진실을 파헤치는 영화 <스포트라이트>(감독 토마스 매카시, 2016)를 비롯해서 제가 좋아하는 미스터리 영화들이 대부분 그런 형식이어서 참고도 했고요.
갑작스러운 사고로 부모를 잃고 자매 둘만 남은 상황에서 보통 둘은 의지하기 마련이죠. 이 영화에서는 자매는 그렇게 가정 형편이 어렵다거나 성향이 다른 것도 아닌데 시나브로 사이가 벌어진 모습으로 나옵니다. 둘은 어디서부터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한 거로 생각하셨나요?
요즘 가족의 특징 같은 거로 생각해요. 제가 어렸을 때, 예전에는 아침에 아버지 출근 전에 같이 밥을 먹었죠. 식구(食口)의 의미는 한자 그대로 같이 밥 먹는 입이잖아요? 부대끼면서 밥 같이 먹으며 이야기하는 사람들인데요. 저도 3년 전까지는 부모님과 살았는데, 각자 일들이 너무 바쁘다 보니까, 밥도 다른 시간에 먹게 되더라고요.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 크게 잘못한 일도 아니고, 미워하는 것도 아닌데, 현실이 팍팍하다 보니 같은 집에 살면서도 마주치거나 이야기하는 시간이 줄어들더라고요.
<언니 유정>도 마찬가지예요. 유정과 기정은 같은 집에 살고, 고모도 가끔 들러 도와주죠. 그런데 유정은 밤에 출근해야 하는 가장이고, 기정은 학생으로 낮에 학교에 있어야 하니 시간대가 달라지고, 자연스럽게 대화가 사라졌을 거예요. 함께 밥 먹을 시간도 없어졌을 거 같고요. 그렇게 조금씩 멀어진 거라고 표현하고 싶었어요.

영화에서 학교도, 경찰도 도움을 주지 않습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영아 유기는 물론 큰 죄죠. 학생의 일탈은 학교와 사회에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럼에도 기정의 마음을 한번 들여다보려는, 보듬어주려는 어른이 없습니다. 어른들은 철저히 시스템의 매뉴얼대로 살아갑니다. 여고생 손목에 수갑을 채우면서요. 이렇게까지 냉정하게 설정한 이유가 있을까요?
제가 좀 잔인하게 표현하긴 했죠. 사실 주변에 기정이나 희진이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분명히 있어요. 담임 선생님이나 고모라든가요. 그런데 저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유정이가 뭔가 오롯이 깨닫고 홀로 이 일을 해결해야지만 두 자매의 진심을 알 수 있을 거로 생각했어요. 되게 잔인한 감독 같기는 하지만, 유정이를 제외한 어른들은 조금 전 말씀하신 것처럼 좀 더 매뉴얼적이고, 서로 손에 피 안 묻히려고 하는 식으로 태도를 좀 고구마처럼 답답하게 만들었던 거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이제 배우들에 대해 질문드릴게요. 정성일 평론가가 언니 유정을 연기한 박예영 배우를 두고 “기이한 배우다. 영화에서 종종 비스듬히, 다소 설명하기 힘든 각도로, 생각지 못했던 타이밍에, 상대방을 바라본다. 일종의 괴력.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고 극찬했습니다. 감독님 역시 단편 <인사3팀의 캡슐커피>, <더더더>로 박예영 배우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하셨는데, 박예영 배우만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이번 영화의 어느 부분에서 그 장점들이 드러났는지도 궁금합니다.
전체적인 영화를 생각하는 배우에요. 예를 들어 A, B, C라는 캐릭터가 있는데, 연출이 C를 요구하면 보통 배우들은 C만 준비하는데요. 박예영 배우는 영화 전체 스토리를 보면서 A, B, C를 다 생각해서 연기합니다. 너무 좋았고 감사했죠.
예전에는 감독의 머릿속에 있는 컷들을 배우들이 그대로 말하고 표현해야 제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영화는 마치 생명과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떤 배우, 어떤 스태프들을 만나느냐,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감독인 제가 생각한 것과 조금 다른 모양으로 나오더라도 그게 낫다는 걸 알게 됐어요. 예전엔 무조건 정사각형이어야 했고, 마름모는 절대 안 됐죠. 그런데 이제는 마름모도 사각형이고 영화에 더 어울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영화를 더 좋아지게 할 수 있는 배우가 바로 박예영 배우입니다.
캐릭터도 입체적으로 생각하는데요. 본인 대사뿐 아니라 상대 배우 대사까지 세심하게 잘 챙겨줘요. 뭐가 나을지 의견도 주고요. 박예영 배우의 강점이 드러난 장면이 너무 많은데, 하나만 말씀드리면, 기정 대사였어요. 기정이 대사가 많이 없는데, “언니가 생각이 안 났어”라는 대사를 현장에서 박예영 배우가 생각해셔 영화에 넣게 됐죠. 칼로 푹 찌르는 것 같은 대사였죠.

말씀하신 것처럼 대사가 많지 않습니다. 특히나 유정은 감정을 고스란히 얼굴에 담았다가 폭발시키는 장면도 많았고요. 현장에서 어떻게 디렉션을 주셨나요?
일단 감정적으로 유정이가 쏟아내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박예영 배우에게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던 거 같아요. 배우님의 소중한 사람이라면 저 장면에서는 어떤 생각을 할까, 무슨 이야기를 할까 하는 부분을 떠올려주면 좋겠다고요. 고모에게 성질을 내거나, 동생에게 화를 낼 때도 그렇게 이야기했던 거 같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 상상하면서 시나리오를 썼고요.
감정을 유지하거나 폭발시키는 장면에서 촬영이 돋보이더라고요. 인물별로, 씬별로 컷 사이즈가 달라요. 특히 유정이 나오는 모든 장면에서 유정의 감정은 스크린을 뚫고 나올 것 같기도 하고 툭툭 흘러내릴 것처럼 느껴져요.
유정 모습을 풀샷으로 잡을 때 헤드룸 공간을 높게 주기도 했고, 바스트 샷을 잡을 때는 리드룸(샷에서 인물이 나아가는 방향의 여백-편집자 주)을 답답하게 잡는 등 카메라의 프레임에 유정의 감정과 서사를 담으려고 집중했어요. 박예영 배우와 단편 2편을 작업할 때 편집도 제가 했는데요. 모든 숏와 테이크를 보고 정석대로 편집을 하면서 박예영 배우의 연기 중 덜어내는 부분이 너무 아깝다는 걸 알게 됐어요. <언니 유정>은 장편이지만 회차가 너무 적고, 주 52시간도 지켜야 하니 어떻게 찍을지를 늘 고민했는데요, 박예영 배우가 단편에서 그렇게 잘했던 걸 알고 있었으니 믿음이 있었습니다.
또 유정의 얼굴에서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기정이나 희진이랑 대화할 때를 제외하고 간호사, 교사, 경찰들과 이야기할 때는 인물들의 리버스샷으로 편집하지 않고, 유정만을 스크린에 보여줬어요. 사운드로만 상대방의 반응을 처리해서 관객이 유정의 감정에 오롯이 몰입할 수 있도록요. 그런데 이렇게 찍다 보니, 상대역으로 나온 배우들이 당연히 리버스샷 찍을 거로 생각해서 준비하고 있었는데, 제가 ‘OK’ 하고 씬을 마무리지으면 “혹시 이쪽은 안 찍으시나요?”라고 물어보셔서 너무 죄송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웃음)

주연 3인방 중 두 배우를 오디션으로 선발하셨습니다. 기정 역의 이하은 배우는 <모범형사> 시리즈와 <학교 2021>, <악귀>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는데요. 감독님께서는 “기정을 연기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배우”라고 하셨더라고요. 미스터리하고 복잡한 서사를 가진 희진 역에는 <스위트홈>, <세상 참 예쁜 오드리>에 출연한 김이경 배우가 맡았습니다. 어떤 점에 끌리셨는지 궁금해요.
언니 유정 역은 박예영 배우라는 확신이 있었는데, 동생 둘을 찾아야 했습니다. 연출팀과 그 나이 또래 배우 50~60명 정도를 리스트업했어요. 이미지가 맞고 스케줄 되는 배우로 10명을 추려서 만났죠. ‘열 명 중 두 명은 있겠지’, ‘둘 중 한 명은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요. 없더라고요. 촬영 두 달 전이었는데, 진짜 큰일 났다 싶었어요.(웃음)
그래서 오디션을 진행했습니다. 거의 100명 가까운 배우들을 만났어요. 연출팀이 찍어온다고 했는데, 불안해서 제가 따라갔어요. 거기서 100명 중에 두 명은 있겠지 했는데, 거기서 김이경 배우 한 명만 발견했습니다. 그때 강가미 PD가 <모범형사>에 나오는 이하은 배우가 좋다고 추천하셨어요. 그날 바로 찾아봤는데, 진짜 만나보고 싶더라고요. 다행히 스케줄이 됐고, 김이경 배우와 이하은 배우 둘을 거의 동시에 미팅하면서 희진, 기정 역할이 자연스럽게 부여된 거죠.
현장에서 두 배우에게 어떤 연기 디렉션을 주셨나요?
현장에서는 촬영 전날 제가 메시지를 보내는 편이었어요. 시간도 촉박하고, 배우들이 바빠서 정신이 없을 것 같으니, 제가 다음날 촬영할 씬을 곱씹으면서 예를 들면 ‘기정이 언니를 만나는 씬인데, 내 생각에는 이러저러한 감정일 것 같다’라는 식으로 최대한 알려주려고 했어요. 그러면 배우들이 그걸 숙지하고 현장에 오는 것 같더라고요. 현장에서 딱히 부탁드리지 않아도 잘해주셨던 거 같아요.
촬영 전날 감독님 문자라니, 배우들이 얼마나 부담이 됐을까요?(웃음) 예전에 어떤 감독님은 촬영 전날 그 장면의 전사부터 구구절절하게 설명한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불킥을 하고 싶습니다.(웃음)

<언니 유정>은 가족의 의미를 곱씹어 보게 합니다. 감독님은 이 영화에서 가족의 어떤 모습을 그리고 싶으셨나요?
‘가족에게도 전하지 못한 진심이 있다’, ‘다 안다고 생각했어. 우린 가족이니까’라는 영화 홍보 카피가 있어요. 요즘은 비단 가족을 떠나 다들 그런 거 같은데요. 최종 색보정을 하면서 오롯이 두 시간을 혼자 영화를 보고 집에 가는 길에 문득 “나는 엄마, 아빠의 꿈이 뭐였는지 알고 있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누나나, 진짜 친한 친구의 꿈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은데, 모르더라고요. 제가 무뚝뚝한 성격이기도 하지만, 마주치고 대화할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지만요. <언니 유정>이 관객들에게 가족, 가까운 사이라고 하면서도 몰랐던 것들을 조금 용기 내서 물어볼 수 있게 해주는 영화가 되면 좋겠습니다. 제가 최종 색보정을 끝낸 영화를 보고 극장에서 나서며 어머니, 아버지의 젊었을 때 꿈이 뭐였는지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처럼요.
그렇다면 감독님이 생각하기에 좋은 가족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런 걸 물어볼 수 있는 가족이 좋은 가족인 거 같아요. 어렵다고, 부끄럽다고, 낯간지럽다고 생각하지 말고요. 가족이고, 친구니까 더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요? 요즘은 고민이 생기면 인터넷에 모르는 사람들에게 익명성에 기대서 물어봐요. 오히려 가까이 있는 가족, 친구에게는 못 물어보면서요. <언니 유정>에서 언니와 동생이 영화 후반부에 사이가 엄청 가까워진 건 아니지만, 이제는 조금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가 되잖아요. 함께 미역국 먹는 장면을 넣은 것도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의 의미를 짚어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알겠습니다. 이제 감독님 개인적인 질문을 좀 드릴게요.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결심하신 건 언제인가요?
고1 때였어요. 당시 반포고속터미널에 씨너스 극장이 있었는데요. 조조할인에 통신사 할인까지 하면 2,000원에 영화를 볼 수 있었어요. 그때가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나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 같은 좋은 영화가 쏟아져 나오던 시기였거든요. 황금기를 보내며 꿈을 영화감독의 꿈을 꿨던 것 같습니다.
그럼 대학에서 본격적으로 영화를 공부한 건가요?
그렇죠. 다행히 내신이 나쁘진 않아서 수시로 영화학과에 붙었어요. 막상 가 보니 제가 꿈꾸던 곳은 아니었지만요. 지금 생각하면 제 편견이었지만요. 사실 아버지께서 영화광이셨어요. 집에 그레고리 펙 배우 영화들이나 <대부>,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 DVD가 엄청 많았어요. 예전에 비디오방이 있었는데, 1만 원을 충전해두면, 한 편을 천원에 배달해줬는데요. 아버지께서 늘 만원을 채워두셨죠. 다른 거 하느니 비디오 빌려서 집에서 영화 보라고요. 그렇게 지지를 해주시면서, 자연스럽게 영화를 엄청 많이 보게 됐습니다. 또 학교 옆에 국립중앙도서관이 있는데, 거기 멀티미디어실에서도 영화를 많이 봤던 기억이 있네요.

영향 받은 감독이나 기억에 남는 영화가 있다면요?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감독님 너무 좋아했죠. 최동훈 감독님 스타일도 정말 좋아했고요. 대학에서 선배들이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감독 영화가 너무 좋다고, 엄청난 영화라고 하는데, 저는 ‘나도 나중에 저 정도는 찍을 수 있지 않을까’하고 시큰둥했던 기억이 있어요. 갓 스물을 넘긴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이야기죠. 지금도 그렇다고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15년 전 이야기고 진작에 그 마음은 고쳐먹었습니다.( 웃음)
곧 찍으시겠죠! 차기작은 뭐로 준비 중이세요? 개인적으로는 <언니 유정>을 보니 뭔가 호러 영화도 잘 찍으실 거 같아요.(웃음)
써둔 게 하나 있긴 해요. 장르로 보면 ‘소년 범죄 누아르’라고 할까요.(웃음) 아빠를 살려야 하는 아들이 있어요. 살리려면 자기의 장기를 이식해줘야 하는데, 아빠가 너무 미워서 주기가 싫은 겁니다. 기증자를 구해야 할까, 장기 밀매를 해야 할까 하면서 우당탕탕 벌어지는 일입니다.

어떤 영화감독이 되고 싶으세요?
‘어떤 사건이나 상황을 정해일이라는 사람을 이렇게 바라보고 싶어 한다’ 하는 저의 시선이나 생각이 묻어 있는 영화를 찍고 싶습니다. 저는 영화는 관객과 함께해야 완성된다고 생각해요. 영화감독이라는 걸 직업으로 삼을 수 있을지 고민이 굉장히 많았는데, 제가 천재는 못될지언정 성실하게는 하는 편이거든요. 꾸준히, 묵묵히, 천재감독보다 열심히 계속해서 하는 감독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