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온 서비스가 오는 12월 18일 종료된다. 구매나 대여 서비스는 종료되지만, 구매한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는 보관함 기능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네이버 시리즈온은 OTT 플랫폼에 없는 콘텐츠가 구비되거나 특정 콘텐츠 관련 부가영상을 제공하는 경우가 있어 이번 서비스 종료가 무척 아쉬운 마음이다. 비록 한 달여 밖에 남지 않은 시간이라도, 시리즈온에만 구비돼 있는 영화를 선정해 소개하고자 한다. 과거 한 번 소개했던 '넷없왓없시있' 콘텐츠 외에도 각종 플랫폼(U+모바일tv 제외)에 없는 영화들을 이 기회에 만나보는 건 어떨까.
이마리오의 <작은정원>(2022)

노인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라고 하면, 가장 먼저 단연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2014) <워낭소리>(2009) 등이 떠오른다. 그래서 조금은 색다른 노인 다큐멘터리를 한 편 소개한다. <작은정원>(2022)은 ‘노인 영화’의 전형적인 이미지에서 탈피한 작품이다.
살면서 할머니가 만든 영화를 본 적이 있던가. 평균 나이 75세 여성들이 영화를 찍는다. <작은정원>이 그리는 노인은 ‘노인’ 하면 곧바로 떠오르는 ‘소멸’ 혹은 ‘죽음’ 등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작은정원>을 키워드 하나로 소개하자면, ‘노인 성장 영화’라는 말이 어울릴 것이다.

어울리지 않는 것만 같던 ‘노인’과 ‘성장’이라는 단어는 <작은정원>에 이르러 더없이 잘 어우러진다. ‘언니’(영화 속, ‘작은정원’의 구성원들을 이르는 말)들은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 방법을 배우고, 동영상을 찍는다. 카메라 앞에서 서툴고 투박하게 연기도 한다. 그러다가, 자신들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만들고자 한다.
명주동은 강릉의 대표적인 도시재생 마을이다. 명주동은 강릉의 구도심으로, 명주동 토박이와 새롭게 이곳에 터를 잡은 젊은이들이 뒤섞인 동네다. 명주동 주민들이 골목길에 저마다의 화분을 가꾸는 모임으로 시작한 ‘작은정원’ 커뮤니티는 <작은정원>의 이마리오 감독을 비롯한 젊은 창작자들과 함께 다양한 활동을 펼친다. 그 활동의 일환으로 ‘작은정원’ 공동체는 지역 영화인들과 함께 극영화 <우리동네 우체부>와 다큐멘터리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를 만들어 나갔는데, 이 과정이 다큐멘터리 <작은정원>에 담겨 있다.

<작은정원>의 이마리오 감독은 2016년, ‘작은정원’ 모임의 언니들을 만났다. 이 감독은 서울에서 활동하다 강릉으로 터전을 옮긴 인물이다. 이 감독은 ‘작은정원’에서 3년간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기’ 수업을 진행했고, 그들과 함께 사진 전시회도 열었다. 그러다가 스마트폰 사진 수업은 ‘영화 찍기’ 수업으로 발전했고, ‘작은정원’의 첫 임무는 단편영화를 만드는 거였다. 문춘희, 김희자, 김혜숙, 박정례 씨를 비롯한 ‘작은정원’ 구성원들은 단편영화 <우리동네 우체부>의 각본을 쓰고, 연출하고 촬영하며 배우로 나섰다. 그들이 만든 <우리동네 우체부>는 2020년 제13회 서울노인영화제에 초청되어 ‘시스프렌드상’을 받았다. 극영화 연출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그들에게 주어진 새로운 과제는 바로 그들 자신이 주인공이 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것. <작은정원>은 ‘작은정원’ 공동체가 극영화를 만드는 과정과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거칠지만 소박하게, 정제와 가공을 최소화해 담았다.

<작은정원>은 ‘언니’들을 과거에 머무르는 노인, 혹은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에 회한을 일삼는 전형적인 노인의 이미지가 아닌, 마치 그들이 가꾼 작은 정원처럼 투박하고 소박하지만, 여전히 생명력과 가능성을 품은 존재로 그린다.
39년생부터 56년생까지, (촬영 당시) 평균 나이 75세의 여성들이 참여한 ‘영화 수업’은 단순히 핸드폰으로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을 넘어, 70, 80년 평생 몰랐던 ‘자신’을 낯설게 보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들은 또래 여성들이 모인 ‘작은정원’이라는 마을 공동체에서 우정을 나누고, 서로와 연대하고, 배움을 좇고, 한평생 제대로 들여다본 적 없던 자신의 존재를 발견한다.

그들은 ‘작은정원’ 공동체에서만큼은 ‘할머니’ ‘어르신’ ‘어머님’ 등 익숙한 호칭 대신 ‘언니’(성별에 관계없이 윗사람을 지칭하는 순우리말)라고 불리며 새로운 지식을 익히고, 호칭만큼이나 새로워진 자기 자신을 마주한다. 자신의 모습을 큰 화면에서 보는 게 어색하고 민망해서 눈을 가리던 언니들은 점차 욕심을 낸다. 그들은 헤드폰을 끼고 “레디, 액션, 컷”을 외치고, 연출을 고민하며, 순수한 창작의 즐거움을 느낀다.

영화 만들기에 참여한 ‘언니’들은 그간 품어왔던 나이 듦에 대한 부정, 자기혐오 대신 그 자리에 자기 인식을 심는다. 처음 핸드폰 카메라로 자신의 일상을 담아오라는 숙제를 받자, “늙은 얼굴 내세우기 창피하다” “(화면에 비치는 나의 모습이) 너무 나이가 많은 것 같다” “자세가 저렇게(구부러진 모습) 돼서 뭔 저런 데 나오나,라는 인식을 받을까 봐”라면서도 카메라에 담긴 자신의 모습에 적응된 후에는 “그전에는 내 눈에 상대방만 보이니까, 상대방 기준으로 살았는데, 뭐든지 양보하고, 섭섭해도 참았는데, (나를) 찍다 보니까, 내가 밝아지고 표현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라며 스스로의 변화를 눈치챈다.
한평생 ‘엄마’로, 혹은 ‘아내’, ‘할머니’로 살며 초점을 ‘나’가 아닌 타인에 두었던 언니들은 주인공 자리가 머쓱하고 어색하다. 자녀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물어보라는 과제를 받자 웃음을 터트리며 부끄러워한다. 그러고는 긴장하며 자식에게 전화를 건다. 그리고 그제야 타인의 눈에 비친 ‘나’를 인식한다.

주변인에서 주인공으로 변모한 ‘언니’들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보다 내밀한 이야기까지 털어놓게 된다. 그들의 삶이 담긴 다큐멘터리를 찍기 시작하자 그간은 그들에게 마이크를 쥐여주지 않아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그제야 비로소 술술 풀어놓는다. 가령 딸만 넷을 둔 김희자 언니는 과거에 시아버지가 자신의 남편에게 ‘다른 데에서 아들을 낳아 오는 건 어떠냐’라고 제안했다는 소식을 들었던 경험을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억울하고 분하고, 눈물이 한없이 났어요. 며칠을 울다가 남편에게 헤어지자고 했죠. 나는 우리 딸들을 아들 부럽지 않게 키우면서 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라고 자신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며, 언니들은 일련의 자기고백과 공동체적 치유의 과정을 경험한다. 대본으로는 쓸 수 없는, 거칠고 투박한 감동이 이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