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 개봉한 <모아나>의 속편 <모아나 2>가 11월 27일 개봉한다. 8년 만에 돌아온 속편은 전작에 이어 모아나와 마우이가 다시 한번 바다로 항해를 떠나는 모험을 다룬다. 전작 <모아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사상 최초로 폴리네시아, 즉 오세아니아의 군도를 배경으로 삼아 화제를 모았다. 이 지역 원주민들 폴리네시아인들은 뛰어난 항해술로 전 세계 곳곳에 뿌리내린 민족인데 지역마다 각각의, 폴리네시아인 공통의 문화가 아우러지며 발전돼 대중문화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최근 하와이와 뉴질랜드 지역 영화인이 점점 늘어나면서 이들의 문화를 만나는 문턱이 조금씩 낮아지고 있다. <모아나>와 함께 폴리네시아인의 문화를 돌아볼 수 있는 영화들을 소개한다.
<모아나>


먼저 <모아나>는 폴리네시아인들의 행동 양식과 그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마우이 신화'를 영화에 녹였다. 널리 항해했던 민족이 섬에 정착하게 됐지만, 모아나는 바다로 나아가는 선조들의 모습에 이끌리다가 섬을 구하기 위해 섬을 떠난다. 영화에서 표면적으로 다루고 있는 주제는 아니지만 선조들의 역사와 자신의 정체성이 함께 이어지면서 발현되는 과정을 그리는 점이, 폴리네시아인들에게 정서적 공감을 일으켰다고 볼 수 있다. 극의 주역으로 등장한 마우이는 폴리네시아 신화에서 가장 유명한 영웅적 인물인데, 지역마다 그 성격이나 성장 과정이 조금씩 다르다고 한다. 그래도 그가 한 행적만큼은 동일하게 전승되고 있으며, 인류를 위해 하늘을 들어올리고 섬을 바닷속에서 끄집어내는 등 신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전설들은 <모아나>에서도 마우이의 넘버 'You're Welcome'에서 소개된다.


이 <모아나>가 폴리네시아인들의 지지를 얻은 건 작품 내외에서 해당 문화를 온건히 담아내려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기 때문이다. 먼저 주연 모아나와 마우이를 포함, 대다수 캐릭터들을 해당 문화권과 혈통의 배우들로 채용했다. 음악에서도 폴리네시아 퓨전 음악을 선보이는 오페타이아 포아이와 함께 작업했고 작품의 배경 또한 폴리네시아인들이 이주를 멈추었던 역사적 사실을 전제로 풀어냈다. 그렇게 새로운 문화권을 그린다는 도전에서 출발한 <모아나>는 월드 와이드 성적 6억 달러를 돌파했고, 현재 개봉을 앞둔 속편 외에도 실사화를 준비 중이다.
<내 인생 특별한 숲속 여행>

현재 할리우드를 가장 뜨겁게 흔든 폴리네시아인이라면, 배우로는 드웨인 존슨과 제이슨 모모아가 있을 것이고, 감독로는 타이카 와이티티가 있을 것이다. 타이카 와이티티는 단편영화 연출 시절부터 꾸준히 마오리족, 뉴질랜드 원주민 등의 이야기를 다뤄왔고 첫 장편영화 <보이> 또한 마오리족 소년과 그의 허풍쟁이 아버지의 일화를 그렸다. 당장 국내에서 볼 방법이 없는 <보이>를 제외하면 <내 인생 특별한 숲속 여행>이 영화에 그의 민족성을 곁들인 영화 중 가장 최신작이다. 한국 개봉명은 꽤 따듯한 느낌이지만 원제는 'Hunt for the Wilderpeople'(헌트 포 더 와일더피플)로 블랙코미디적인 영화의 성격이 좀 더 잘 드러난다. 사고뭉치 리키는 위탁가정에 맡겨져 벨라, 헥터 부부와 함께 지내게 된다. 살가운 벨라와 달리 헥터는 리키와 거리를 두는데, 문제는 벨라가 먼저 세상을 떠나면서 서먹서먹한 두 사람만 세상에 남겨진 것.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두 사람이 숲에 고립되면서 수색대가 창설돼 두 사람의 여정은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꼬인다.


<모아나>가 폴리네시아의 신화와 문화에 초점을 맞췄다면 <내 인생 특별한 숲속 여행>은 동시대 그 문화권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정서적 원천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다. 폴리네시아 스타들이 특히 자연과 환경에 목소리를 높이는 건 그들이 자연을 보는 시선에서 비롯된 것인데, 그런 시선을 이런 우당탕탕 소동극에서 가볍게라도 느낄 수 있다. 전혀 달라 보였던 두 사람이 숲이란 공간을 매개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은 타이카 와이티티만의 드라마 구축 방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 영화 속 뉴질랜드의 풍경을 보노라면 (비록 폴리네시아가 뉴질랜드인과 동일한 건 아니지만) 그들의 문화에 자연이 왜 그토록 중요한지 돌아볼 수 있다.
<마오리족의 복수>

폴리네시아 하면 자연, 공존, 평화 이런 것이 떠오르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역사까지 모두 평화와 조화로움만 있는 건 아니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편」에도 선정된 1983년 영화 <마오리족의 복수>(원제 Utu)는 영국의 식민지배에 대항한 원주민 테 웨케를 주인공으로 동족상잔까지 이어지는 비극을 그린다. 마오리족이지만 영국 군인으로 복무하던 테 웨케는 영국군이 자신의 마을을 짓밟는 것을 목격하곤 의병을 조직해 영국에 대항한다. 테 웨케의 전사들이 백인들의 마을을 공격해오자 영국군은 새로운 군인과 용병을 기용하여 테 웨케를 막으려 한다.

<마오리족의 복수>는 당시 낭만적으로, 혹은 지나치게 비하적으로 그려진 폴리네시아와 원주민들을 입체적인 인간으로 묘사하는 데 공을 들인다. 처음에는 테 웨케가 영국의 식민지배에 봉기하는 과정에서 영웅처럼 보이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그 또한 백인을 공격하며 피해자를 만드는 존재로도 묘사해 그 자신도 표적이 될 수밖에 없던 상황을 운명처럼 이끌어낸다. 그 과정에서 마치 그의 대칭이라도 된 듯 영국군에 고용된 위레무, 테 웨케의 손에 가족을 잃은 윌리엄슨, 영국군 엘리엇 대령과 스콧 대령 등이 단순한 선과 악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선 시각으로 관객을 이끈다. 영화는 감독과 촬영감독이 필름을 모아 새로 복원해 2013년 <우투: 리덕스>라는 이름으로 다시 공개되기도.
<어느 용병의 고백>

기습 넷플릭스 숭배를 한다면, 각 지역의 흥행작이나 특색이 묻어있는 작품을 만나보기 쉽다는 점이 장점이다(최근 화제작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처럼). <어느 용병의 고백> 또한 넷플릭스가 아녔다면 아마 한국에서 보기 어려웠을 가능성이 크다(아쉽게도 현재는 서비스 종료했다). 이 영화는 럭비 선수로 성공하고자 고향을 떠나 프랑스에 도착한 손 토켈라우의 일화를 그린다. 실화 기반은 아니지만 극중 손 토켈라우 역을 맡은 토키 필리오코는 실제로 폴리네시아 뉴칼레도니아(누벨칼레도니)에서 프랑스로 와서 성공한 왈라시아인 럭비 선수다. 그럼에도 실화 기반이 아닌 건 극중 토켈라우가 아버지의 행패에 도망친 것과 달리 필리오코는 부모님의 지원을 받은 것부터 천지차이기 때문. 필리오코 외에도 미카엘레 투가할라, 로랑 파키히바타우, 오마르 하산 등 폴리네시아 원주민 혈통의 선수 출신이 출연해 영화의 재미를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