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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부조리를 향해 일단 질러버리는 주인공들이 매력적이다”, 〈아침바다 갈매기는〉 박이웅 감독

주성철편집장
〈아침바다 갈매기는〉 박이웅 감독 (사진제공=(주)고집스튜디오, (주)트리플픽쳐스)
〈아침바다 갈매기는〉 박이웅 감독 (사진제공=(주)고집스튜디오, (주)트리플픽쳐스)

 

박이웅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아침바다 갈매기는>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뉴 커런츠상을 수상했다. 뉴 커런츠는 부산국제영화제의 대표적인 경쟁 부문으로, 아시아 신예 감독들의 첫 번째 또는 두 번째 장편을 대상으로 하는데, 뉴 커런츠상은 바로 최우수작에 주어지는 상이다. 중국을 대표하는 주동우 배우가 뉴 커런츠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아침바다 갈매기는>은 이 외에도 KB 뉴 커런츠 관객상, 아시아영화진흥기구(NETPAC)상까지 수상해 올해 부산에서 최초 공개된 한국영화들 중에서는 가장 화제의 영화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은 어촌 마을에서 탈출을 꿈꾸는 젊은 어부 용수(박종환)는 늙은 선장 영국(윤주상)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사고로 자신의 죽음을 위장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 영국은 한 달이면 용수의 가족에게 보험금이 지급될 거라는 말을 믿고 계획에 동참하지만, 용수의 죽음을 믿지 않는 엄마 판례(양희경)와 베트남인 아내 영란(카작) 등 가족들로 인해 계획이 어긋날 위기에 처한다. 동시에 이로 인해 한 작은 어촌 마을에 이런저런 갈등이 빚어지게 된다.

 

김혜윤 배우에게 청룡영화상과 대종상 신인여우상을 안겨주고, 감독 자신도 대종상 신인감독상을 받은 데뷔작 <불도저에 탄 소녀>(2021)처럼 <아침바다 갈매기는>도 보험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다. 다만 <불도저에 탄 소녀>가 아버지의 사고 이후 19세 소녀 혜영(김혜윤)이 어른들의 세계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그렸다면, <아침바다 갈매기는>의 영국(윤주상)은 세대를 초월해 혜영과 닮았으면서도, 보다 폭넓게 현재 우리 세계와 맞물린다. 점차 소멸해가고 있는 지방 한 작은 마을의 사건과 그를 둘러싼 풍경이 베트남전의 기억이라는 역사성과도 만난다. 그리고 날 것 같은 에너지로 가득한 영화를 오랜만에 만났다는 흥분감도 생긴다. 혜영과 영국처럼 부지런히 작업해온 박이웅 감독을 만났다.


〈아침바다 갈매기는〉
〈아침바다 갈매기는〉

한예종 영화과 전문사 시절 졸업작품으로 준비한 영화로 안다. 장편 데뷔작 <불도저에 탄 소녀>보다 먼저 쓴 작품이라는 얘기인데.

맞다. 2008년에 독립 장편 프로젝트로 쓴 시나리오였다. 내가 맨 처음 완성한 장편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다. 1년여 정도 붙들고 있다가 2009년에 초고가 나왔는데 여러 가지로 미흡했고, 스스로 준비가 덜 됐다는 생각에 더 이상 진행하지 못했다. 그러다 먼저 <불도저에 탄 소녀>를 만들고 개봉까지 했는데, 프로듀서와 함께 두 번째 영화로 <아침바다 갈매기는>을 해보자고 했다.

 

데뷔작 <불도저에 탄 소녀>와 몇몇 공통점들이 보인다. 일단 두 영화의 주인공들이 모두 문신을 하고 있다. <불도저에 탄 소녀>의 주인공 혜영은 용 문신을 하고 있고, <아침바다 갈매기는>의 영국도 해병대 문신을 하고 있다. <불도저에 탄 소녀>는 최초 제목이 <용 문신을 한 소녀>이기도 했는데, 혜영은 그걸 가리기 위해 팔토시도 차고, 영국은 나중에 그 문신이 훼손되는 과정을 겪는다. 그리고 혜영과 영국은 성별도 나이도 완전히 다르지만, 굉장히 다혈질이라는 점에서 무척 닮았다.

<아침바다 갈매기는>의 영국이 먼저 만들어진 캐릭터였지만, 그것이 영화화되지 않은 채로 <불도저에 탄 소녀>의 혜영이 만들어지게 됐으니 분명히 그대로 이어진 영향 같은 게 있을 거다. 당시에는 <아침바다 갈매기는>이 왜 영화화되지 못했을까, 하는 고민을 하다가 두 번째 시나리오는 완전히 다르게 가보자고 생각해서 젊은 여자 혜영을 주인공으로 만든 이유도 있다. 그리고 시골이 아니라 도시로 배경을 삼은 이유도 다 거기 있다.

 

〈아침바다 갈매기는〉
〈아침바다 갈매기는〉

 

<불도저에 탄 소녀>라는 제목을 패러디하자면 <아침바다 갈매기는>는 ‘보험금을 탄 소녀’라는 부제를 붙일 수도 있다. 두 영화 모두 서사의 중심에 보험금과 합의금이 중요한 소재로 쓰인다.

어떤 분께서는 한 편 더 이런 영화를 만들면 ‘보험금 3부작’이 되지 않겠냐고도 했다.(웃음) 보험금을 탄다는 행위, 그리고 보험금으로 서로의 관계가 재설정되는 것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만 허락된 이상한 허점 같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건은 범죄와 연결되어 있고, 좋지 않은 행위인 건 분명한데 가해자와 피해자가 경계가 없는 경우도 있어서, 우리 사회의 어떤 비어있는 부분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실행에 옮기려고 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누군가를 해하거나 해서 이득을 얻는 행위가 아니기에 손쉽게 마음먹을 만한 일이 아닌가, 그걸 딱히 범죄로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역시 자본주의 사회에서만 가능한 유혹일 것이다.

 

어촌 마을 중심으로 굉장히 취재가  잘 된 이야기다. 혹시 출신 배경과 관계가 있는지, 아니면 지인의 도움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어떻게 얼마나 준비했나.

일단 나는 그냥 서울 사람이다.(웃음) 솔 직히 마음만 먹었을 뿐, 완전히 모르는 세계였다. 쓰기로 결심하고 무작정 부산까지 가서 동해안을 따라 올라가며 고성에 있는 통일전망대까지 쭉 훑었다. 숙박도 했지만 차박도 하면서 어촌 사람들을 만났다. 새벽 3시쯤 사람들이 나와 물건을 내고 경매하는 모습도 보고, 그저 사람들을 훔쳐보기도 하고 할아버지나 할머니에게 다가가 얘기도 걸면서 그 느낌을 익혔다. 그렇게 다시 서울로 돌아오기까지 총 40일 정도 걸렸다. 취재라면 취재라고 할 수도 있겠다.

 

 

〈아침바다 갈매기는〉
〈아침바다 갈매기는〉

용수가 실종된 뒤, 마을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홀로 남은 베트남인 아내 영란을 향해 ‘베트남에서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 정도’라며 보험금 얘기를 꺼낸다. 그런 사람들에게 과거 조합 결성 문제로 갈등이 생겨 이 마을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남자 형락(박원상)이 ‘도대체 그게 사람이 할 소리냐’고 화를 내면서 새로운 다툼이 생긴다. 그리고 실종된 아들이 돌아오길 바라며 매일 항구에 나가는 판례의 모습 등에서 여러모로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영화 속 거의 모든 대사는 2008년에 쓰였다. 그러다 2014년 4월 16일에 세월호 참사가 있었는데, 보상금을 둘러싸고 영화 속 상황과 정말 비슷한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그로 인해 대사를 고쳐 쓴다거나 이야기의 큰 줄기가 바뀐 건 없지만, 이 영화를 더 잘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중요한 계기였던 건 맞다.

 

<아침바다 갈매기는>을 보면서 즉각적으로 느낀 영화적 쾌감이라면, 야외 로케이션이 굉장히 많다는 것이다.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뭔가 감독과 배우들을 비롯한 제작진이 진짜 생짜로 부딪혀가며 만들어 낸 영화라는 것이 반가웠다.

사실 다 말렸다.(웃음) 왜 바다에 나가서 영화를 찍느냐는 거다, 바다에 카메라를 대는 순간 지옥이라는 얘기였다. 한편으로  어시장에서 경매하며 생선들을 풀어서 막 죽이고 피가 보이는 장면들을 담아야 한다는 것도 부담이었다. 그런데 그게 이 영화의 리얼리즘에서는 중요하니까 적절히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침바다 갈매기는〉
〈아침바다 갈매기는〉

 

 

베트남전에 해병대로 참전했던 영국이, 세월이 흘러 한국에 와서 사는 베트남 여성을 도와주고자 애쓴다. 이 영화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그렇게 될 것이다. 영국 캐릭터도 그렇고, 여러모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출하고 주연을 맡은 <그랜 토리노>(2008)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랜 토리노>는 나중에 봤는데, 진짜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긴 했다. 그런데 그보다 사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그 이전작인 <밀리언 달러 베이비>(2004)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할아버지와 소녀와의 관계성도 그렇고, 영국이 경찰서에서 싸우는 장면 같은 것은 실제로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오마주 하는 느낌으로 찍으려 했다. <불도저에 탄 소녀>는 다르덴 형제의 <로제타>(1999)가 직접적인 레퍼런스가 되었다 할 수 있는데, 전체적으로는 켄 로치 감독님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것 같다. 힘든 상황에 내몰려 어쩔 수 없이, 범죄든 무엇이든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는 주인공들에게 관객이 감정이입을 하게 만들고 싶었다. 이 영화에서는 영국과 용수가 계획한 일이 성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거다. 켄 로치의 영화를 보면서, 삶의 밑바닥까지 가게 된 인물들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을 응원하는 마음이라고나 할까.

 

<아침바다 갈매기는 >은 윤주상 배우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아라한 장풍대작전>(2004), <형사 Duelist>(2005), <라디오 스타>(2006) 등 여러 영화에서 조연으로 출연하며 자신을 알렸지만, 이미 연극계에서는 여전히 주연 배우로 맹활약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간과하고 있던 노배우의 저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처음에는 캐릭터 자체에 대해 약간 부담을 느끼시면서도, 뭔가 좀 자신의 방식대로 표현해 보고 싶어 하신다는 인상도 받았다. 촬영 현장에서는 테이크를 여러 번 더 가게 될 때도 묵묵히 다 받아주셨다. 본인의 체력이 닿는 데까지 해보겠다는 의지 같은 게 느껴졌다고 해야 하나. 어딘가 영국은 아무래도 삭막하고 좀 팍팍하며 일단 ‘센’ 캐릭터인데다, 사실 과거 딸에게 했던 행위나 현재의 사건도 거의 범죄에 가깝다고 할 수 있으니, 그런 점들을 관객에게 납득시킬 수 있는 인물이어야 했다. 윤주상 선생님이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경험은 없다 하더라도, 연기자로서의 그를 모르는 관객은 아예 없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인지도가 있으니 더없이 좋았다. 사실 독립영화는 오디션 시스템으로 배우들을 뽑기 힘들다 보니, 염두에 둔 배우가 출연할 수 있을지 어떨지는 사실상 운이다. 그리고 얼마나 호흡이 맞고 목표가 비슷할지도 진짜 운이다. 게다가 영화에서 주연 경험이 없다고 하면, 기존 이미지를 갖다 쓰는 게 아니라 함께 새로운 걸 만들어내야 하니까 굉장한 모험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불도저에 탄 소녀>의 김혜윤 배우도 그렇고 이번 영화의 윤주상 선생님도 그렇고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아침바다 갈매기는〉
〈아침바다 갈매기는〉

 

 

집 천장을 뜯어내는 장면은 윤주상 배우가  직접 롱테이크로 연기해내시는 걸 보고 놀랐다. 배 위에서는 그야말로 진짜 평생 배 타며 살아온 사람처럼 느껴졌다. 한국 배우 중에서 「모비 딕」의 에이허브 선장을 찾는다면 그일 것만 같다고 해야 하나.(웃음)

윤주상 선생님이 그렇게 체력이 좋으신지 몰랐다 . 바다 위의 배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데도 딱 버티고 서서 모든 걸 해내시는 모습을 보니, 진짜 베테랑 선장 같은 느낌도 들고 지난 세월의 풍파가 그대로 느껴졌다. 그리고 천정 뜯어내는 장면은, 한 번 더 찍기 위해 여분의 천정 준비물이 있었는데 한 번에 그냥 해내셨다.(웃음) 준비된 여분을 쓸 필요가 없이 첫 번째 테이크로 충분했다.

 

양희경 배우를 보면서 느낀 점도 비슷하다. 1990년대에 <세상 밖으로>(1994), <내일로 흐르는 강>(1996)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는데 그 뒤로 잘 볼 수 없었고, 한참 뒤 <스카우트>(2007)에서 작품 속 선동열의 어머니 캐릭터도 좋았다. 마찬가지로 윤주상 배우처럼 ‘대한민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배우’이지만 상대적으로 기억나는 영화가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양희경 선생님과 그런 얘기도 나눈 기억이 있는데, 어느 순간 아이가 생기면 영화를 계속 하기 힘든 고충을 말씀하셨다. 영화는 한 번 하게 되면 몇 달씩 나가 있거나 매달려 있어야 하기 때문에, 좋은 영화 제의가 들어와도 TV 드라마를 우선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그러다보니 영화 제작자들의 연락이 끊겼다는 거다. 그런 점에서 <아침바다 갈매기는>의 판례 역에 대한 애착이 크셨다. 나뿐만 아니라 관객 모두 ‘적역’이라고 생각하셨을 거다. 윤주상 선생님 만큼이나 스크린을 장악하는 능력이 어마어마하시다. 그렇게 윤주상과 양희경 선생님 모두 기존에 해오셨던 것들을 싹 벗어던지고, 그동안 쌓여있었거나 안에 감춰져 있던 것을 이 정도까지 꺼내 보여주실지 몰랐다. 그저 감사한 마음뿐이다.

 

 

〈아침바다 갈매기는〉
〈아침바다 갈매기는〉

 

 

당신의 두 영화 모두 캐릭터가 정말 세다. 한편으로 분노 조절이 힘들어 보인다고 해야 하나.(웃음) 이 또한 거침 없이 직진하고 부딪히는 ‘불도저에 탄 감독’ 박이웅 영화의 중요한 특징이자 색깔이라 생각된다. 한편으로, 정작 감독은 어느 지점까지 나아가길 원했던 거나, 하는 궁금증도 생긴다.

기본적으로 시나리오에서 이미 만들어진 것이긴 하다. 막상 촬영현장에서 약해지지 말고 그대로 밀어붙이자고 생각한다. 그게 관객 입장에서는 중심인물에게 감정 이입하는 데 있어 괴리감이 생길 수도 있는데, 주인공의 행위를 보면서 느끼는 일종의 배덕감(背徳感)도 영화가 줄 수 있는 재미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불도저에 탄 소녀>의 혜영이나 <아침바다 갈매기는>의 영국 모두 부조리를 향해 일단 뒤끝 없이 질러버리는 인물들이다. 관객이 현실에서 결코 할 수 없는 것들, 감독인 내가 스스로 통쾌함을 느끼는 것들이 인물에게 투영된 것 같다. 지금 쓰고 있는 여러 시나리오 아이템들 중에도, 주인공은 아니라도 꼭 한 명씩은 그런 인물들이 있다. 단정하고 빈틈 없이 각 잡혀 있는 인물들보다 어딘가에 구멍이 나서 뭔가 뿜어져 나오는 캐릭터들이 좋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