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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명화] 독박육아 해봤다면 〈아빠가 되는 중〉

씨네플레이

부부가 함께 영화를 봅니다. 멜로물을 보며 연애 시절을 떠올리고, 육아물을 보며 훗날을 걱정합니다. 공포물은 뜸했던 스킨십을 나누게 하는 좋은 핑곗거리이고, 액션물은 부부 싸움의 기술을 배울 수 있는 훌륭한 학습서입니다. 똑같은 영화를 봐도 남편과 아내는 생각하는 게 다릅니다. 좋아하는 장르도 다르기 때문에 영화 편식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편집자 주-


임신 기간에 못했던 치료를 더는 미룰 수 없어 수술 날짜를 잡았다. 예전에 받았던 수술의 후속 관리 차원이라고 보면 된다지만, 그래도 어쨌든 이틀 정도는 시간을 빼야 했다. 시간을 빼는 일이 뭐가 어렵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100일도 안 된 아기가 있다. 

남편, 아기 혼자 잘 볼 수 있겠어?

결국 남편이 휴가를 썼다. 양가 어른들도 아기를 봐줄 여건이 되지 않기 때문. '남편이 아기를 보면 되지 뭐'. 쉽게 생각하면 그렇다. 여태껏 아기를 잘 봐온 남편이기도 하다. 하지만 남편은 혼.자. 아기를 본 적은 없다. 퇴근하고 와도 내가 있었고, 주말 또한 내가 있었다.

이 말인즉슨, 남편은 육아 팀플레이에 익숙하다는 것이다. 그런 남편에게 갠플(개인 플레이)를 맡겨야 하다니. 나 또한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육아 참여도가 높은 남편이지만 나 혼자 육아는 또 다른 문제다. 시뮬레이션대로만 흘러가면 만사 오케이다. 하지만 육아는 변수가 많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바로 육아다. 

〈아빠가 되는 중〉
〈아빠가 되는 중〉

<아빠가 되는 중> 주인공 맷도 덜컥 혼자 아기를 보게 된다. 물론 맷의 사연은 우리 부부와는 비교 불가다. 세상에 첫 울음소리를 내는 딸을 안는 순간, 맷의 아내는 세상을 뜨게 됐다. 갑작스러운 폐혈전증 때문. 탄생과 죽음을 하루 만에 겪은 맷. 사랑하는 사람 하나를 잃고, 사랑하는 사람 하나를 얻게 됐다. 그렇기에 슬퍼할 겨를도 없다. 맷은 딸 매디를 혼자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부모님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긴 한다. 아기를 키워주겠다고, 당신들 사는 곳으로 이사를 오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들이자 사위인 맷은 딸은 자신이 키우겠다고 말한다. 아내와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집을 떠날 수가 없다. 그리고 다짐한다. 죽은 아내를 똑 닮은 딸을 보며 다짐 또 다짐한다. 아내가 떠났지만, 아내와 함께했던 이곳에서 딸을 잘 키우겠노라고.

되는 게 없네, 아무것도 못 하겠어.

 

하지만 육아는 녹록지 않다. 유모차는 안 접히고, 애써 아기를 재웠더니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검진을 받으러 소아과를 가야 하는 것도 새까맣게 잊어버렸다.  밤새도록 우는 아기를 들어안고 힘들어하고, 아기가 다칠 때는 밀려오는 자책감에 눈물을 흘린다. 육아와 함께 직장 생활을 병행해야 하는 것도 맷에게는 벅차다. 하루 종일 우는 아기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 회사일을 하려니 죽을 맛이다. 거기에다 주변 사람들의 지나친 걱정과 위로, 그리고 간섭까지 더해진다. 맷은 점점 지쳐간다. 

〈아빠가 되는 중〉
〈아빠가 되는 중〉

 

그때 장인의 말이 생각난다. “육아에 관련해서 조언을 주자면, 놓아 버리는 걸세. 부모도 다 실패한다네 알겠나? 모든 걸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진 않지. 그것만 받아들이면 돼”.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육아.

 

이 대사를 우리 남편도 들었어야 했다. 남편의 증언에 따르면, 내가 집을 비우자마자 우리의 아기가 악동으로 변신한단다. 겨우 낮잠을 재웠더니 곧장 일어나서 울고 밥을 줬는데도 울더란다. 그런 아기를 안고 남편은 생각했단다. ‘착하던 애가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물론 아기는 똑같았을 것이다. 내가 있을 때나 남편 혼자 있을 때나. 하지만 둘이 보다 한 명이 보니 육아 난이도가 몇 배는 더 상승했을 터. 젖병을 씻어줄 동지도, 분유를 태워줄 동지도 없다. 오롯이 혼자만의 싸움. 화장실을 갔더니 아기가 운다? 그러면 해결책은 급히 끊고 나오는 것뿐이다. 맨투맨(MAN TO MAN) 육아는 눈코 뜰 새가 없다. 아기가 잔다고 쉴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 아기가 자는 시간은 아기가 깼을 때를 대비하는 시간. 젖병을 씻고, 아기 옷 빨래를 하고, 빨래를 널고, 기저귀를 채우고. 그러다보면 하루는 끝이 나게 돼 있다. 하루가 끝나고 남편은 생각했단다. '와이프는 이걸 혼자 어떻게 다 한 거야'.

 

경험치가 쌓이면 해결될 일이죠.

하루하루가 쌓여 갈수록 육아 스킬은 상승하는 법이다. 혼자 봐야 한다면 혼자 봐야 하는 것이 육아다. 아기를 도로 집어넣을 수도 없지 않는가. 아기는 커가고, 나는 그에 걸맞은 부모가 되어가면 된다. 그렇게 맷은 성장한다. 몇 시간째 우는 아기를 안은 채 지새운 밤은 계속 계속 흘러간다. 우는 딸에게 자장가를 불러주고, 분유를 먹이고, 쉴 새 없이 기저귀를 간다. 첫째 날에 분유를 엎었다면 둘째 날에는 분유는 제대로 넣었는데 물 조절에 실패한다. 하지만 셋째 날에는 우유 제조에 성공. 넷째 날에는 아기를 안고 한 손으로 분유를 태운다. 

〈아빠가 되는 중〉
〈아빠가 되는 중〉
〈아빠가 되는 중〉
〈아빠가 되는 중〉

 

그러다 맷의 딸은 학교 갈 나이가 된다. 갓난아기의 울음소리를 듣지 않아 편하겠다 생각하면 정말 큰 오산이다. 육아는 매 순간 또 다른 고난이 주어진다. 줏대가 생긴 딸은 치마교복을 입어야 하는 학교의 룰을 따르지 않겠다 말한다. 아빠와 단둘이 살아왔기에, 여성성이 다소 부족한 딸의 행동에 맷은 당황한다. 맷은 딸아이의 긴 머리를 예쁘게 땋아줄 솜씨도 없다. 딸아이를 위해 방을 예쁘게 꾸며줄 자신도 없다. 그렇게 맷은 또 한 번의 위기에 봉착한다. 

〈아빠가 되는 중〉
〈아빠가 되는 중〉

 

 

나의 남편도 그날 이후로, 육아 경험치가 조금 상승했다. 혼자 이틀을 치르고 나니, 힘듦과 동시에 내가 얼마나 힘들지에 대한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자유부인을 독려(?)하는 일도 잦아졌고, 또 혼자 아기를 보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많이 줄었다. 나 없이 아기를 재우는 법, 나 없이 아기를 달래는 법. 아기가 우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을 홀로 경험해보냐 안 하느냐도 중요한 일일 것이다.

 

남편의 미래도 맷과 같을까?

딸아이에게 채워줄 수 없는 부분은, 맷이 새로운 인연을 만남으로써 해결된다. 아무리 사랑으로 키웠지만 엄마의 빈자리는 클 수밖에 없다. 맷의 연인 스완은 맷의 딸에게 좋은 엄마가 되어줄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맷은 여러 육아의 관문들을 홀로 잘 헤쳐간다. 성별이 다른 아이기에 조심스러운 부분이 더더욱 있겠지만. 아빠와 자식이라는 관계는 매한가지일 것. 맷의 사랑이 있다면 자식이 누구건, 어떻건 간에 나 홀로 육아는 성공일 것이다. 

남편의 사랑도 기대가 된다. 우리 아기가 커 가는 것이 기대되는 것과 동시에, 남편의 육아도 기대가 된다. 남편이 좋은 아빠로 성장하는 과정. 맷 못지않게 좋은 아빠가 될 것 같은 남편을 응원한다. 물론 영화와는 다르게 엄마인 나는 아빠인 남편의 곁에 항상 있어 줄 것이다. 

그건 그렇고..

이번 주 주말에도 나 좀 나가도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