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함께 영화를 봅니다. 멜로물을 보며 연애 시절을 떠올리고, 육아물을 보며 훗날을 걱정합니다. 공포물은 뜸했던 스킨십을 나누게 하는 좋은 핑곗거리이고, 액션물은 부부 싸움의 기술을 배울 수 있는 훌륭한 학습서입니다. 똑같은 영화를 봐도 남편과 아내는 생각하는 게 다릅니다. 좋아하는 장르도 다르기 때문에 영화 편식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편집자 주-
마지막 산후 검진까지 마쳤다. 그 말은 산부인과를 더는 안 가도 된다는 것이다. 물론 건강을 위해 정기 검진은 받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선택적 사항일 뿐. 아기를 가지고 열 달. 낳고는 두 달 여간. 필수적으로 가야 하는 산부인과는 이제 끝이다.
둘째가 생기면 다시 오겠다는 너스레를 떨고 산부인과를 나오는 길. 기분이 뭔가 요상했다. 임테기 두줄을 확인하고 설렘 가득했던 첫 방문. 잘 크고 있는 건지 내심 걱정됐던 매 검사들. 그리고 꽤나 힘들었던 출산과 일련의 회복 과정들. 일 년여간의 대장정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뒤숭숭한 이 기분은 도저히 그냥 정리되지 않는다. 그래서 정주행 했다. 산부인과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은 시리즈물. <코우노도리>(='황새').
*길고 긴 이야기 중 인상 깊은 몇 회차를 저의 경험과 엮어봤습니다. 아이를 낳아 본 엄마들이여. 이 드라마를 꼭 시청하라. 드라마를 보는 동안 내 이야기 같아 눈물이 날 수 있으니 휴지는 반드시 준비!
기형아 검사
만약에...
2세를 가졌다는 기쁨을 안고 거쳐가는 검사들. 하지만 뜻밖의 이야기에 부부의 머릿속은 새하얘진다. 아이가 다운증후군일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이 내려졌기 때문. 건강한 아이. 순탄한 출산.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버린다. 부부는 우선 가족들과 상의를 한다. 가족들은 무조건 지우는 게 답이라고 말한다. 세상은 장애아에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말한다. 하지만 엄마는 눈물이 난다. 품어온 시간 동안 아가에게 수없이 해 줬던 말들이 생각나 도무지 결정을 못 내린다.

일정 시기가 되면 1차 기형아, 2차 기형아 검사를 한다. 그리고 요즘엔 '니프티 검사'라고 기형아를 더욱더 정확하게 선별해 내는 과정도 존재한다. 가격은 꽤 비싸다. 80만 원.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 검사를 큰!돈! 주고 한다. 사실 비싼 돈을 주고 검사를 한다는 것은 기형아가 나왔을 때 어떻게 할 지가 결정된 행위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부부도 고민을 했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검사를 하는 것은 하는 것이지만. 만약 기형아가 나온다면? 그때는 어떡할 거야? 하지만 그 질문에는 그 어떤 대답도 하지 못했다.
흡연은 무슨
과자도 끊는 마당에
흡연을 하는 임산부 이야기도 나온다. 아기를 품고 있음에도 여성은 담배를 끊지 못한다. 흡연이 태아에게 치명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담배를 끊지 못한다. 아기의 안전보다 본인의 욕구가 우선시되는 장면이다. 그런 임산부에게 의사는 단호하게 말한다. "저는 담배를 끊지 않는 임산부는 엄마가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의사는 예전에 금연을 하지 못한 임산부를 수술한 적이 있었다. 임산부는 태반 조기 박리로 수술대에 올랐는데 과다출혈로 사망하게 되고, 뱃속에 있던 아기는 뇌성마비로 소아병동 신세를 지게 된다. 현재의 흡연 임산부는 어떻게 될까. 최악은 사망이지만 최선도 그다지 괜찮지 않을 것이다.

나는 임당에 당첨됐었다. 임신성 당뇨. 이유는 가족력일 수도 있고 임신을 하면서 생긴 호르몬 변화 때문일 수도 있다. 가족력이 없기 때문에 나는 아마 후자일 것. 임당 판정을 받으면 지옥 같은 식단이 시작된다. 매일같이 손가락을 찔러 혈당을 기록해야 하는 불편함도 잇따른다. 임당은 말 그대로 당뇨이니, 관리를 안 하면 태아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친다. 음, 쉽게 설명하자면 임당 산모가 관리하지 않으면 태아가 설탕물에서 헤엄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한다. 군것질을 좋아하는 나는 임당 판정 후 과자 하나 마음대로 먹은 적이 없다. 내 몸만 생각했다면 몇 번이고 실패했을 풀과 단백질뿐인 허름한 식단. 하지만 아기를 생각하니 절로 관리를 하게 됐다. 여름 내내 그렇게 좋아하는 냉면 한 그릇 먹어 본 적도 없다. (냉면이 당뇨에 매우 치명적입니다) 모성애 하나로 버텼다. 흡연의 중독성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단 음식도 꽤나 중독성이 있지 않는가.
무통 주사가 없었다면

일본의 모성 신화를 잘 보여준 에피도 있다. 진통제의 사용 없이 출산의 고통을 오롯이 느껴야 하는 것이 신성한 출산이라 생각하는 이들의 이야기다. 제왕절개보다 자연분만을 선호하고, 수술을 하더라도 무통주사를 달지 않는다. 자연분만이 불가능한 몸인데도 자연분만을 고집하는 산모도 보여진다. 결국 조산사의 설득으로 제왕절개를 하긴 했지만 말이다.
말도 안 된다. 무통 주사 없이 출산을 하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자연분만을 꿈꿨던 적도 있지만 결국 제왕을 택했고, 수술을 받고 회복을 거쳐온 나는 단언코 말한다. 무통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수술을 끝내고 내 몸에 주렁주렁 달렸던 주사. 페인버스터와 무통주사가 없었다면 수술의 기억은 트라우마로 남았을 수도 있다. 그리고 아직도 선명히 기억나는 외침이 있다. 분만 대기실에서 수술 시간을 기다리던 중. 옆 침대에서 들려오던 자연분만 산모의 비명. "안되겠어요! 수술할래요! 의사 좀 불러주세요!"

내 단점이 유전 되면 어떡하지?
청각장애를 가진 부부가 주인공이었던 에피. 부부 모두가 청각장애를 갖고 있기 때문에 부부는 태어날 아이도 청력에 문제가 있을까 걱정한다. 자신들이 아이를 가져, 이 아이가 청각장애를 갖게 된다면 평생 죄스러움을 느낄 것이라 말한다. 다행히 아기는 청력에 이상 없이 태어난다. 부부는 아기의 귀를 몇번이고 매만진다. 그렇게 아이는 부부의 귀가 될 것이다.

남편은 혈관 쪽 건강이 좋지 않고 나는 시력이 좋지 않다. 그래서 항상 기도해왔다. 건강은 나름 건강 체질인 나를 닮고 시력은 안경점 근처는 가 보지도 않은 남편을 닮았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것이 건강뿐이겠는가. 책을 좋아하는 점은 나를 닮았으면 좋겠고. 느긋하고 온화한 성격은 남편을 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 가장 중요한 것은 외모. 여담이지만 아기가 태어나고 나는 쾌재를 불렀다. 아기가 뽀~얗게 태어났기 때문. 까무잡잡한 피부로 평생을 '23호'로 살아왔던 내게 남편의 백옥 같은 피부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나의 아기에게 뽀오~얀 남편의 우성 유전자를 물려준 것에 대해 기쁘고 또 기뻤다. 청각장애 에피에 갖다 붙이기에는 너무나도 사소하고 부끄러운 바람이기도 하다.

임신성 고혈압에 경련을 일으킨 임산부, 자궁경부암 임산부, 심장질환 임산부의 무통 분만, 장애를 갖고 태어나야 하는 아기, 임신 중 풍진으로 인해 시력을 잃고 태어난 아기, 21주 절박 조산, 임신 8개월의 중학생, 고혈압 증상의 고령 임산부, 500g 이하의 저체중 출산아 등
수많은 에피 중 이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뱃속에 생긴 작은 생명을 지키고 키우면서 무사히 출산하기까지는 온갖 위험과 싸워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