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작’ 스물여섯에, 이들에게는 ‘은퇴’라는 딱지가 붙었다. 춤과 노래가 좋아, 아이돌을 동경해서 십 대부터 뛰어든 K-팝 산업의 현장. 좋아하던 춤과 노래를 누구보다 열심히 했지만, 산업을 이끌어 가는 성인들에게 이들은 그저 소모품에 불과했다. <힘을 낼 시간>은 지금도 조명 받고 있는 거대 아이돌이 아닌, 경쟁에서 밀려난 중소아이돌 그룹 멤버들의 이야기다. 불공정한 계약은 기본 디폴트값인지 모른다. 사실상 그룹이 유명무실해졌어도 계약이 묶인 채 옴짝달싹 못하고, ‘여돌’이라는 이유로 노출이 당연시되고, 짧은 흰 팬츠 차림을 위해 피임까지 하는 대목에 도달하면, 지금 우리가 K-팝의 성과와 미명 아래 무슨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 반성이 들게 된다.
그룹 ‘러브 앤 리즈’의 수민(최성은)과 사랑(하서윤), ‘파이브 갓 차일드’의 태희(현우석)가 마치 영화 속 캐릭터가 아닌 마치 실재 존재했던 그룹 같은 기시감이 드는 건, 남궁선 감독이 실제 아이돌들을 취재해 써 내려간 리얼한 시나리오가 바탕이 되어서다. <힘을 낼 시간>은 과도한 경쟁과 착취의 산업에서 떨어져 나온 이 세 사람의 잠깐 동안의 제주 여행을 따라가는 로드무비다. ‘이미’ 스물여섯이나 되었지만, 단 한 번도 ‘또래처럼’ 놀아 보지 못한 이들에게 주는 잠깐 주는 여유시간이다.
남궁선 감독의 전작을 함께 한 <십개월의 미래>(2019)로 전주국제영화제, 부일영화상 등에서 신인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은 최성은이 수민 역으로 등장한다. 전작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책임감 있는 그룹 리더의 모습으로 최성은의 넓은 연기 폭을 확인 시켜주는 연기다. <아이를 위한 아이>(2022), <돌핀>(2024) 등을 통해 독립영화계의 새로운 축을 만들어 가는 현우석이 태희로 등장한다. 배우 특유의 해맑은 웃음이 이번 역에서는 태희의 아픔을 가릴 가면처럼 활용된다. 상실감에 정신과 치료까지 받는 사랑 역의 하서윤은은 독립영화계의 새로운 발견이지만, 시청률 높은 KBS 주말 드라마 <다리미 패밀리>의 경찰 수지 역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배우다. 최소한의 스태프로 꾸린 현장, 콘티와 대사가 없는 구간에서 오히려 배우로서의 확장을 느꼈다는 세 배우가 <힘을 낼 시간>이 준 에너지와,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힘’이 무엇인 지 들었다.

영화 참여 과정부터 이야기해볼게요. 최성은 배우는 <십개월의 미래> 이후 남궁선 감독과 두 번째 작업입니다. 이번 작품은 제안받기 전에 먼저 관심을 보이면서 하고 싶다고 한 걸로 알고 있어요.
최성은 감독님도 저도 ‘다음에도 같이 하자’ 이런 성격이 아닌데, <십개월의 미래>가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만났을 때 감독님이 이 작품을 준비 중인 걸 알게 됐어요. 시나리오는 읽기 전이었는데, 감독님의 촬영 계획을 듣고 흥미로웠어요. 감독님과 친한 촬영감독님과 같이 배우에게 자유를 주고 따라가면서 로드무비 형식으로 찍을 거다, 그 컨셉이 저한테 확 와닿더라고요. 감독님 단편 작업에서 본 색깔이 묻어나는 작품이었고, 저도 그런 방식의 작업을 너무 하고 싶었던 차였어요. 그래서 시나리오를 받아서 보는데 글이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용기를 내서 제가 하고 싶다고 한 거죠. 이미 감독님이 생각하던 다른 분이 계셨던 것 같아서, 감독님 결정만 기다린 거죠.

현우석 배우는 남궁선 감독님과 첫 작업인데요. 최근 <아이를 위한 아이> <돌핀>등으로 독립영화 관객들에게 꾸준히 모습을 선보이고 있어요. 많은 작품 제안이 오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 작품에 끌린 이유는 무엇인가요.
현우석 아니에요. 막 많은 작품이 오지는 않고요. (웃음) 항상 느끼는데 정말 좋은 타이밍에 좋은 순간에 좋은 시나리오가 와요.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갑자기 어느 타이밍에 딱 온 게 너무 좋아서 하고, 그에 대해 조금씩 결과물이 나오고 계속 작업을 하게 되더라고요. 이건 그냥 좀 운이 많이 좋았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이 작품 제안받았을 때 SBS 월화드라마 <치얼업>을 끝내고 체력적으로 좀 힘든 상황에서 만났는데, 영화 제목 따라 저도 ‘힘을 더 내볼까’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탄탄하고 좋은 시나리오가 온 거예요. 이건 안 할 수가 없다. 또 내레이션 부분의 대사들도 너무 좋았어요. 제가 아이돌 쪽은 아예 모르는 이야기긴 했지만 어쨌거나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공감도 많이 갔었고 뭔가 한번 들여다보고 싶었어요. 영화 속 대사에서 저 역시 따뜻한 감정을 전달받았던 것 같아요.

하서윤 배우는 아이돌 출신이 아닐까 싶었는데요. 독립영화의 새로운 얼굴이기도 하고, 또 사랑이라는 역할이 가진 이미지와도 맞아서 이 작품으로 영화 팬들의 인지를 확실히 얻으실 것 같았어요. 세 분 중 오디션으로 캐스팅된 걸로 알고 있는데요.
하서윤 <힘을 낼 시간> 오디션 전까지 개인적으로 좀 힘든 시간을 보냈었어요. 오디션을 보고 떨어지고 이런 과정을 계속 반복하다 보니 심적으로 많이 힘들더라고요. 그런데 이 작품 미팅을 하고 대본을 보면서 아이돌이라는 직업을 가진 영화 속 인물이 현재 배우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저와도 정말 비슷하다 싶었어요. 세 친구들이 뭔가 힘든 상황에만 고여 있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희망적인 모습이 지금 내가 느끼고 싶어 하는 감정과 맞아떨어졌어요. 그래서 이 작품을 너무너무 하고 싶어서 감독님께 정말 뭐든 할 수 있다고 강하게 어필을 했어요. 노래 영상을 보내달라고 하셔서, 블루투스 마이크로 MR 틀어서 불렀어요. 춤은 제가 몸치인데, 사실 메인 댄서 역할인지 모르고 덤빈 거였어요. 촬영 전까지 셋이서 정말 매일매일 연습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나요. 아이돌인 줄 아셨다니 저한테는 너무 극찬이십니다. (웃음)
현우석 기본적으로 아이돌 역할이니 춤과 노래 모두 잘해내야겠다는 부담이 컸어요. 그래서 정말 연습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제가 부르는 조광래라는 가수분의 노래는 처음 들어 본 곡이었어요. 아예 몰랐어요. 그래서 정말 어쩌지 하고 걱정을 했는데, 감독님께서 편하게 하라고 해 주셔서 풀어놓고 편하게 불렀던 기억이 나요.

주목받지 못해 은퇴한 아이돌이라는 ‘실패’를 안고 길을 떠나는 세 친구인데, 이 셋에게도 마치 각각의 색깔이 달라요. 마치 아이돌 그룹에서 가졌던 성격, 책임감, 부담감이 길을 떠나서도 고스란히 드러나는데요. 캐릭터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고심한 부분, 중점을 두고 표현한 부분은 어떤 것이었나요. 먼저 최성은 배우님께, 리더로서 책임감과 죄책감을 고스란히 느끼는 수민에게 배우로서 공감하는 지점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최성은 수민이가 가지고 있는 어떤 지점이 저랑도 되게 닮아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 수민이는 저보다 훨씬 더 책임감이 있지만 저 역시 스스로에게 뭔가 잘한다 잘한다 이렇게 해준다기보다는 채찍질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해요. 처음 수민이는 노래하고 춤추는 게 좋아서 아이돌이 되고 싶었을 텐데, 산업 안에서 업계가 원하는 걸 하다 보니 어느새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를 쉽게 잊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그 당시에 제가 느끼고 있었던 고민이랑 되게 맞닿아 있었어요. 그래서 수민이한테 되게 다가가기가 오히려 쉬웠어요. 오히려 제가 많이 고민한 건 수민이 가진 죄책감이라는 키워드였어요. 현재 수민을 가장 크게 휩싸고 있는 감정일 거라 생각했고 그 마음을 이해하는 데 시간을 많이 드렸던 것 같아요.

태희는 어디서도 살아남을 것 같은 밝음이 있긴 하지만 사실은 되게 안으로는 되게 상처가 많은 인물이기도 하죠. 관객들에게 안쓰러운 느낌, 연민을 자아내는 캐릭터이기도 한데요.
현우석 수민은 정말 리더로서 무너지지 않는 중심축을 가지고 있고, 사랑이라는 친구는 그런 수민이 너무 필요한 상태고, 태희는 책임감을 진 수민이에게 피식피식 가끔 웃음을 줄 수 있는 친구라, 셋이 서로 상호 보완이 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이 셋의 결이 정말 잘 맞고 밸런스가 진짜 잘 맞는다, 그런 관계성을 생각하면서 연기했던 것 같아요. 제가 연기한 태희는 성격적으로 저와 비슷한 점이 많은 친구인데요. 촬영 당시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면 저한테 그냥 태희 그 자체인 상황들이 좀 있었던 것 같아요. 연기를 하면서 태희한테 한 가지 배웠던 거는,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렇게 웃어넘길 수 있구나 였어요. 태희라는 친구가 가진 깊이와 상처들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 좀 많이 생각을 해봤어요. 정말 현우석이라는 사람을 성장시켜줬던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어요.

감독님은 현우석 배우 특유의 미소가 태희와 닮았다, 캐스팅에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하셨는데요. 태희에게는 아이돌로 ‘훈련된’ 겉치레 웃음으로 보일 수 있는 레이어를 주어야 했는데요. 어떻게 접근하셨나요.
현우석 그런데 막상 특별히 어려운 것이 없었던 게, 감독님께서 그냥 편하게 연기를 하라고 하셨을 때 그냥 한 것 같아요. 저는 제가 그렇게 웃는지는 몰랐거든요. 내가 저렇게 웃었겠구나 화면을 보고 발견한 거죠. 그게 재밌더라고요. 크게 뭔가 연기로 보여주려 한 게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나오는 모습이 태희가 된 거예요.

수민과 태희가 대사로 또 내레이션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과 달리, 사랑은 그룹 활동으로 겪은 트라우마가 겉으로도 여실히 드러나는 캐릭터인데요. 실제 정신과 치료로 약을 복용 중이고, 말수도 가장 없는 인물이죠.
하서윤 맞아요. 그래서 사랑이라는 인물을 분석하려고 했을 때 막막함이 컸었어요. 대사를 많이 입 밖으로 안 내뱉고 오히려 혼자 생각하고, 그 안에 되게 복잡한 생각들이 있는데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하지. 그래서 감독님께 여러 가지 소품들을 활용하면 어떨지 제안을 드렸어요. 그런데 감독님께서 사랑이가 가진 아픔이 티가 안 났으면 좋겠다 하시면서 “사랑이는 그냥 자기만의 세상이 있는 친구야”라고 방향성을 잡아주셨어요. 사랑이의 내면으로 더 파고들어야겠다 싶었죠. 이 친구는 왜 이런 행동을 할까, 어떻게 살아왔을까.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사랑이는 어찌 됐든 아픔이 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한다고 생각했었고, 그것으로 인해서 자신 안에 있는 아픔과 슬픔의 감정에 대한 물음표를 채워나가면서 사랑이만의 세상을 구축하려고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저도 엄청 활발한 성격이라기보다는 조금 차분한 면이 있어서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았는데요. 사랑이처럼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생각들을 멈추고 싶어서 음악을 듣는다거나 멍을 때리면서 이렇게 이제 갑자기 딴 길로 새거나 이런 부분들이 닮아 있다라고 생각을 했었어요.

제주도 여행에서 돈이 없어 하게 된 귤 농장에서 귤 따는 노동이 세 인물에게 가지는 중요성이 큰데요. 아이돌 산업 안에서 제대로 가치 평가나 대가를 받지 못했던 셋이 오히려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고 당황하게 되는데요.
최성은 그것도 수민이가 먼저 하자고 제안을 하는데요. 수민이는 항상 그렇게 어떤 상황에서 답을 찾아내야 하는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수학여행’이라고 떠난 곳이었는데 거기서도 쉬지를 못하잖아요. 애초에 이 친구들은 어떻게 쉬어야 되는지도 모르고 이런 시간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까 그리고 거기 갔을 때도 사실 그렇게까지 열심히 딸 필요가 없는데도 열심히 하죠. 특히 수민이는 비정상적일 만큼 열심히 하잖아요. 그 모습을 통해서 정말 왜 얘는 이렇게까지 열심히 해야 하는 걸까. 정말 자신이 열심히 하고 싶어서 열심히 하는 걸까. 이 친구들이 이곳이 아닌 연습실이나 무대에 오르기 전 아이돌이었을 때 어떤 모습으로 개인의 삶을 살아왔을까가 조금 자연스럽게 그려질 수 있는 어떤 행동들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현우석 태희의 입장에서는, 재밌었을 거예요. (웃음) 즐겼을 거라고 생각이 들어요. 어쨌거나 무대 외에 여행지에서 만난 곳은 태희에게는 다 신기한 공간이었을 거예요. 난생처음 가는 수학여행이었고 귤 따는 것도 너무 재미있게 즐기고 있었을 거예요. 또 귤밭에서 새참을 먹는 시간에 작은 공연을 하잖아요. 거기서 너무 행복감을 느꼈을 거예요. 수민이가 있어서 안정감을 느꼈을 거고요. 아 저래서 수민이네 그룹이 더 잘 나갔겠구나 싶었죠. (웃음)
하서윤 저는 수민과 사랑이의 관계가 엄마와 딸의 관계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릴 때부터 사랑이는 수민이를 리더이자 엄마처럼 따라왔을 거고, 함께 한 시간이 엄청 길었을 테니 귤을 따면서도 수민이 눈치를 많이 봤을 것 같아요. 그러다 귤밭 사장님을 만나고 그분이 ‘편하게 여행을 즐겼으면 좋겠다’고 해줄 때, 정말 어른다운 어른을 처음으로 만난 게 아닐까. 사랑이는 아프고, 또 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캐리어도 잃어버리고, 그 과정에서 옆의 사람과 실랑이가 있어 사람을 때리게 되고 가진 돈도 그걸 수습하느라 다 주게 되죠. 그래서 귤밭에서 일을 하게 되고 수민이도 쓰러지게 되니, 죄책감이 제일 클 것 같아서 말은 안하지만, 상당히 복합적인 감정이 많았던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촬영 때는 귤밭의 귤이 너무 맛있고, 직접 귤을 따는 것도 너무 재밌었어요. 모닥불에 귤을 구워서 주셨는데 그것도 너무 맛있었고, 촬영 후에 돌아갈 때 한 봉지씩 귤을 싸주셔서 숙소 가서 다 같이 까먹고 그랬어요.

단출하게 꾸린 스태프, 자유로운 환경 안에서 로드무비 장르를 만들어 나갔는데요. 현장이 주는 흥미로움과 새로움은 어떤 것이었나요.
최성은 후반에 담에 매달려 있다가 넘어가는 장면이 있어요. 계획된 게 아니었고 촬영 중에 제가 그냥 넘은 거예요. 어떻게 되겠지 하는 생각에 넘었는데, 다들 컷을 안 하고 따라오시는 거예요. 몇몇은 넘어지기도 했고, 길이 아닌데 일단 갔죠.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했는데 다 같이 합심해서 한 장면을 위해 힘이 모아지는 그 순간은 정해진 포맷이 있는 영화였으면 절대 시도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하고 싶어도 눈치를 보거나 용기를 못 냈을 것 같아요. 핸드헬드지만 제 움직임을 따라와 준 촬영감독님 역할이 정말 컸어요. 믿어 주신 덕에 에너지가 전달되고 연기하기도 수월했던 것 같아요. 빠듯한 시간에 찍느라 원하는 만큼의 모험은 다 하지 못했는데, 아마 지금 다시 하면 더 많은 것들을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봐요. 이런 현장을 앞으로 얼마나 많이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하면 더 하지 못한 것도 아쉬울 수 있는 거죠.
하서윤 정말요. 그 마지막 부분에서, 그전까지 불안했던 상황이었다면 정말 이 캐릭터들이 올곧이 수학여행을 즐길 수 있는 장면을 촬영하게 되니까, 그땐 정말 우리도 여행을 하는 느낌이었어요. 시나리오상에서도 이 장면이 상황만 주어져 있고 대사가 따로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정말 자유롭게 모험을 할 수 있었고 우리가 정말 그 캐릭터가 된 듯 올곧이 빠져들어서 연기를 하고 있는 신기한 경험을 했던 것 같아요. 또 사랑이가 운동장 트랙을 뛰면서 발성 연습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트랙 안에 진짜 주민분들도 운동을 하고 계셨었어요. 그분들도 얼마나 당황스러우셨겠어요? 갑자기 달리면서 소리를 막 지르니까. (웃음) 그런 라이브한 느낌은 배우로서 처음 경험해 보는 일들이었어요.
현우석 정말 이렇게까지 아름다운 촬영장이 있을까 싶었어요. 에피소드들이야 많지만 저는 이해하고 배려하고 기다려주는 현장에서의 고마움이 더 큰 것 같아요. 그때는 제가 이런 감정을 많이 표현하지 않았는데, 혼자 있을 때 누나들이 챙겨주고 그런 게 너무 고맙더라고요. 그땐 왜 얘기를 많이 못 하고 마음을 더 활짝 열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어요. 다시 돌아간다면 더 마음 활짝 열고 찍고 싶어요. (웃음)

‘힘을 낼 시간’이라는 제목에 맞게, 이 여행에는 다행히 위태로움보다는 위로와 이해의 순간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돌 사회에서 벗어나 가진 이들의 짧은 여행이 ‘회복’을 할 수 있는 선물처럼 다가오는데요. 배우님들이 이 영화의 ‘힘’을 정의해 주신다면요.
최성은 저한테는 어떤 ‘향’으로 기억될 수 있는 영화인 것 같아요. 지나가다가 어떤 냄새를 맡으면 어떤 순간이 확 기억이 날 때가 있잖아요. 영화만이 갖고 있는 어떤 고유한 냄새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의 냄새는 어떤 한 시기에 대한 기억인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제가 나온 영화나 드라마나 이런 걸 볼 때 그렇게 잘 보지 못하거든요. 그런데 처음으로 제 연기가 아니라 작품 자체를 봤던 첫 영화였던 것 같아요. 물론 제 연기에 대한 아쉬움이 안 보였던 건 아니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내가 이 영화에 참여하게 돼서 너무 행복하다라는 감정을 처음 느꼈어요. 서로가 상호작용을 하면서 힘을 내고 용기를 가질 수 있구나. 촬영 때보다 완성된 영화를 보고 그 점이 더 많이 와닿더라고요. 제가 느낀 감정처럼, 관객분들에게도 이 영화가 사랑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하서윤 후반부에 사랑이가 ‘지금은 힘을 낼 시간’이라는 중요한 말을 하게 되죠. 모든 사람들이 꿈을 가지고 사는데, 그 꿈이 이루어지면 정말 좋겠지만 만약에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너무 절망에 빠지지 않고, 잠시 숨을 돌리고 돌아보면 주변에 나의 편이 있다는 걸 느끼고 앞으로 나아갔으면 좋겠어요. ‘이제 괜찮아졌어’가 아니라 ‘앞으로 괜찮아질 거야’라는 그 의지, 삶에 대한 의지가 그 한마디의 대사에 다 담겨있다고 생각해요. 살아가면서 힘든 일들은 계속 찾아오니까요. 그럴 때 생각날 수 있는 영화, 꺼내보고 싶은 영화가 저한테는 개인적으로 될 것 같아요. 저에게 힘을 낼 시간을 준 영화인 것처럼 관객분들도 영화를 보시고 힘을 낼 시간을 받아가셨으면 좋겠어요.
현우석 이 영화의 키워드는 용기구나라는 생각이 좀 많이 들어요. 누구나 자신의 미래는 불안할 수 있죠. 그런데 귤밭 주인이 그냥 나가서 놀아, 괜찮아 하고 이야기해주는 게 너무 큰 위로라고 생각해요. 그냥 좀 사는데 힘을 빼고 살면 오히려 더 잘 살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인 것 같아요. 그래서 관객분들도 좀 그런 대사의 의미들의 메시지가 좀 잘 와닿으셨으면 좋겠고 좀 힘을 빼고 용기를 좀 얻어가셨으면 좋겠다 싶어요. 힘을 빼면 힘이 생긴다! 관객분들도 용기와 위로를 받고 싶으실 때 영화관에 가신다면 이 영화를 통해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