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일은 의욕이 가득해서 저마다 목표를 세운다. 특별한 목표는 아니다. 새해 목표 3대장이라 불리는 ‘금주’, ‘독서’, ‘운동’을 2024년 다이어리에 날짜만 2025년으로 수정해도 될 정도로, 뻔한 새해 목표다. 아마 모두가 이와 비슷한 모습으로 새해를 보내지 않았을까. 하지만 1월 1일엔, 정말로 올해는 변할 수 있을 것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샘솟는다. 그렇다면 신년이 2주 정도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그 목표를 향한 열정은 유효한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며 덕담을 오가는 시기가 약간 지나고 연말연초의 들뜬 느낌이 사라진 지금, 대부분은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을 것이다. 그렇게 올해도 ‘해야 하는데…’만 생각하며 1월을 보내고 있다면, 그런 당신에게 영감을 줄 영화를 추천하고자 한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서는 막연한 다짐보단 눈으로 보여주는 게, 진짜 살아있는 이야기를 듣는 게 더 자극이 되는 법. 새해 목표별 어울리는 영화 5편을 소개한다. 만약 리스트에 여러분의 목표가 없다면 저마다의 새해 목표를 댓글에 써보는 것도 좋다.
새해엔 꼭 술 끊어야지 <어나더 라운드>

연말연초에는 늘 술 약속이 따르는 법. 영 회복되지 않는 몸과 머리가 깨질 듯한 숙취로 ‘올해엔 진짜 술 끊는다’라고 다짐을 매 아침마다 하고 있다면 <어나더 라운드>를 추천한다. 영화는 ‘혈중 알콜 농도가 0.05%가 되면 더 적극적인 성격이 된다’라는 가설을 실험해보는 40대 남성 교사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선생님 수업 재미없어요”라는 말을 듣는 지루하고 지친 교사로 니콜라이(마그누스 밀랑)의 40번째 생일에 가설을 직접 실험해보자, 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의욕 없는 학생들, 더 의욕 없는 선생, 데면데면한 아내와 가족. 이 우울한 일상에서 탈출하기 위해, 그들은 “언제나 최소 0.05%의 혈중 알콜을 유지할 것, 그리고 밤 8시 이후엔 술을 마시지 않을 것”이라는 2가지 원칙을 세우고 실험에 돌입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실험은 마치 성공하는 듯 보인다. 아내와 관계도 풀어지고, 학생들도 깔깔 웃으며 그의 수업을 듣는다. 마치 젊었을 적의 열정과 자신감이 돌아온 듯한 기분을 느끼며 마틴(매즈 미켈슨), 톰뮈(토마스 보 라센), 니콜라이, 피터(라르스 란데)는 점차 술을 마시게 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뭐야, 술 권장 영화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어나더 라운드>는 여기서 이야기를 끝내지 않는다. 점차 술을 많이 마시며 자제력을 잃어가던 그들은 처음의 원칙을 잊은 채 술을 퍼붓기 시작한다. 이내 술 없이는 아무것도 시도하지 못하는 알콜의존증세까지 보이며 술로 일궜던 일상은 확실히, 그리고 빠르게 이전보다도 무너져내린다. 영화는 ‘술을 끊어라’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장단점을 아주 명확하게 보여주면서 ‘마시고 안 마시고는 당신의 선택’이라는 듯 극을 마친다. 특히 영화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해방감과 공허함을 동시에 연출하며, 술의 이중성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딱 한 잔. 오늘도 이렇게 다짐했다면 <어나더 라운드>를 보며 ‘나는 진짜로 자제할 수 있는가’,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한번 되짚어보자. 오늘의 내가 원하는 것이 더 나은 일상과 약간의 자신감이라면, 필요한 건 술이 아니라 마음을 다잡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새해엔 책 좀 읽어야지 <디태치먼트>

올해 독서를 목표로 삼았다면,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부터 찾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다들 책 읽으면 뭔가 다르다고 하니까’, ‘좋다고 하니까’, ‘똑똑해지니까’와 같은 답변으로는 책을 지속해 읽기 어렵다. 독서를 해야 할 절실한 이유를 여전히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화 <디태치먼트>에서는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우리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라고 답한다. 사람들은 일상에서 무수히 많은 광고판을 본다. 영화에선 이를 “관념이 끊임없이 주입되고 있다”라고 표현한다. 이어서 한 번에 반대되는 두 가지 신념을 갖고 이를 동시에 진실이라 믿는 것, 즉 ‘이중사고’에 대해 이야기하며 아래와 같은 대사를 남긴다.
“거짓인 걸 알면서 고의로 그 거짓말을 믿는 것. 예를 들면, ‘행복해지려면 예뻐져야 해.’, ‘예뻐지려면 성형을 해야 해’. 오늘날 우리 청년들은 여자를 매춘부라고 주입받고 있어. ‘Bitches’ (중략)
그래서 우리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우리의 사고방식을 무뎌지게 만드는 것에 대항하여 싸우기 위해 우리는 읽는 법을 터득해야 해. 바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 우리 자신의 의식과 신념체계를 함양하기 위해. 우리는 이런 기술이 필요해. 보호하고, 보존하기 위해. 우리의 정신을 말이야.”
- <디태치먼트> 중

무수히 많은 광고판의 메시지에서 나의 생각은 살아남을 수 있는가. ‘내 생각’이라 믿었던 것은 온전히 내가 사고한 것인가. <디태치먼트>의 주인공인 헨리(애드리안 브로디)는 공교육 체계가 완전히 무너진 학교에서 문학 작품으로 학생들과 소통하려는 기간제 교사다. 이 설정만 보면 마치 <죽은 시인의 사회>가 떠오르지만, 영화는 <죽은 시인의 사회>가 보여주지 않은 현실의 교육 현장에 집중한다. 학생은 늘 분노에 차있고, 상담교사인 파커(루시 리우)에게 특히나 심한 독설을 퍼붓는다. 교사 역시 사람인지라 끊임없는 분노 앞에 무너질 수밖에 없다. 임계점을 넘은 상처와 고통은 결국 교사와 학생이 서로를 저주하는 관계로 만들고 무너진 교육 안에 있는 건 상처받은 인간들 뿐임을 보여준다. 교사가 학생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선 ‘무심함(detachment)’이 필요했다. 헨리는 무심함에서 벗어나려고 했으나 그 역시 평범한 인간이다. 키팅 선생과 같은 기적은 없다. ‘독서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그 역시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를 보살피지 못한 간호사에게 화풀이하는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영화는 저마다 결핍이 하나씩 있는 인물을 조명하며 ‘상대방을 이해하는 자세’에 대해 설파한다. 확실히 헨리는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끊임없이 무심함을 탈피하고자 하는 그의 자세는 자신의 사상을 지키기 위한 독서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독서를 해야 하는 이유가 필요하다면 이 영화를 보자. 스스로 사유하는 힘은 SNS 속 수많은 거짓으로부터 나를 지켜줄 수 있을 테니까.
새해엔 운동해야지 <레전드>

오늘도 늘어난 배를 쓰다듬으며 ‘운동해야 하는데…’라고 생각만 하고 있다면 <레전드>를 강력 추천한다. ‘운동 플레이리스트’ 썸네일로 늘 등장하는 영화로, 톰 하디가 쌍둥이 형제 레지와 로니 1인 2역을 맡았다. 깔끔하게 빗어 넘긴 포마드 머리에 맞춤 슈트를 입고 담배를 피우며 세상 성큼대며 런던 거리를 걸어다니는 톰 하디의 모습만 쇼츠에 돌아다녔는데, 그게 핵심이다. 다부진 체격에 날렵한 몸놀림으로 수트를 입고 액션신을 소화하는 톰 하디의 몸을 보고 있자면, 어쩐지 영화 볼 때 먹으려 꺼내놓은 맥주와 팝콘이 입에 잘 들어가지 않는 기분이다.


<레전드>는 레지 크레이, 로니 크레이 형제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1960년대 영국 런던의 시골 마을에서 아마추어 복서였던 형제가 갱스터가 된 이후의 삶을 그리고 있다. 형인 레지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인물로 갱 집단을 키운 리더이나, 동생 론은 정신 이상을 앓으며 늘 심각한 사건들을 일으키는 동성애자였다. 사람을 죽이는 데도 거리낌이 없을 정도로 이성적 판단이 불가능했던 론의 뒤치다꺼리를 하던 레지, 그럼에도 그들의 우애는 견고했다. 하지만 레지가 프랜시스(에밀리 브라우닝)와 약혼하면서 갱스터 일을 청산하려고 하면서 두 사람 사이는 삐걱이기 시작한다. 갱스터에서 사업가로 변신하려 했던 레지에게 론의 예측불허한 사고들은 걸림돌이었다. 톰 하디가 이렇게 다른 두 캐릭터를 동시에 연기했는데, 전혀 어색함이 없다. 킬링타임 액션 무비라 작품성이 높게 평가된 영화는 아니지만 이 모든 것을 상쇄할 정도로 톰 하디의 연기력이 빛난다. 일각에서는 톰 하디의 최고 작품은 <매드 맥스>가 아니라 <레전드>라고 하기도. 수트 대신 퇴폐미를 입었다고 해도 좋을 만큼, 치명적이고 위태로운 모습은 이성적 매력에 대한 본능을 자극한다. 올해엔 영화 <레전드>와 함께 헬스장에서 ‘쇠질’을 하며 몸을 ‘레전드’로 만들어보는 건 어떨지.
새해엔 돈 많이 벌어야지 <파운더>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은 해가 갈수록 커져간다. 노동 가치가 하락하고, 월급만으로는 부자가 되기 턱없이 부족하다 느끼는 시대에 ‘진짜 돈 버는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파운더>를 추천한다. 영화의 주제는 간단하다. ‘맥도날드의 창업자는 누구’에 대한 이야기로 맥도날드 초대 회장 ‘레이 크록’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레이 크록(마이클 키튼)은 평범한 50대 셰이크 기계 판매원으로, 맥도날드 형제와도 고객과 판매원의 관계로 시작되었다. 맥도날드 형제는 30초 안에 햄버거가 나오는 최초의 패스트푸드 레스토랑 프로세스를 만든 인물로, 레이 크록은 돈 냄새를 맡고 프랜차이즈 사업 확장으로 맥도날드 형제와 계약을 진행한다. 처음엔 당연히 맥도날드 형제가 갑이었다. 레이 크록은 어떻게든 그와의 계약을 따내야 했기 때문에 불리한 계약 조항에도 프랜차이즈 사업 계약을 진행했다. 하지만 햄버거를 팔아서 남는 돈은 푼돈이었고 운영비는 막대하게 들어 그는 자본 잠식 상태에 빠지게 된다. 단가를 줄이고자 했으나 맥도날드 형제의 맛과 품질에 대한 고집을 꺾을 수 없어 파산 직전에 이른 그에게 소노본(B.J. 노박)은 부동산업을 제안한다. 바로 회사를 만들어서 맥도날드를 세울 ‘부지’를 사고 그 맥도날드 건물을 ‘임대’하는 방식으로 사업의 체질을 햄버거 판매업이 아닌 부동산업으로 바꾸는 것. 맥도날드 형제와의 계약 조건에도 없고, 자신만의 회사를 세울 수 있었기 때문에 레이 크록은 바로 ‘프랜차이즈’를 운영할 수 있는 맥도날드 회사를 세우고 맥도날드를 장악하게 된다.

실질적으로 레이 크록이 고안해 낸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맥도날드 형제가 만든 시스템에 소노본이 기획한 부동산업을 입혔을 뿐. 그는 맥도날드 형제의 항의를 철저히 무시하고 그와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며 ‘맥도날드’라는 상표 소유권까지 가져간다. 그 과정에서 맥도날드 형제에게 주기로 한 돈과 로열티는 구두계약으로 처리하는데, 이 역시 단 한 푼도 지불하지 않았다고. 재능 있고 멋진 걸 만들어 내며 장인 정신을 고집하던 맥도날드 형제는 결국 모든 걸 빼앗기고 맥도날드라는 이름까지 잃어버린다. “프랜차이즈는 더 이상 생각 없소. 두 단어로 말하겠네. 품질 관리! 시시한 레스토랑 수십 개보다 근사한 레스토랑 한 개가 낫지”라는 그의 말에서 음식에 대한 진심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레이 크록은 “자네들이 안주하며 패배자 신세가 된 사이에 나는 미래를 거머쥘 걸세. 겁쟁이나 패자는 성공할 수 없지”이라 말하며 완전히 다른 철학을 보여준다. 결국 돈은 레이 크록이 벌었다. 로고 하나도 남의 아이디어였던 그가 맥도날드를 집어삼킬 수 있었던 건 단 하나, 바로 ‘맥도날드라는 이름에 대한 욕망’이다. 그는 ‘맥도날드’라는 이름을 갖고 싶어 했다. 이미 맥도날드 시스템을 알고 있었던 그가 구태여 맥도날드 이름을 사고자 했던 건 그 이름의 가치를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정말로 부자가 되고 싶은가. 가치를 알아봐야 한다. 남들보다 빠르게 알아보고 그 진가를 믿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갈등이 있다면? 그의 말처럼 “경쟁자가 물에 빠지면 입에 호수를 쑤셔 넣을” 정도의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파운더>는 진짜로 돈을 버는 사람은 누구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기회를 포착하고, 리스크를 걸고 이를 실행으로 옮기는 자가 결국 돈을 벌었다. 부자가 되고 싶다면 새해에는 자신의 목표를 위한 전략을 고민해보자. 무엇을 소중히 할지, 어디까지 타협할 수 있는지 점검하는 것은 부를 향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새해엔 날 더 사랑해야지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

학창 시절, 실없이 농담을 주고받던 친구들이 어느샌가 자신보다 훌쩍 앞서있는 것 같을 때. 나 빼고 모두가 잘 살고 있는 것 같고, ‘그 나이가 되면 많은 것들을 이뤘겠지’의 ‘그 나이’가 되었어도 여전히 이룬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 ‘누가 대기업에서 승진했다더라’, ‘연봉 1억 넘었다더라’, ‘사업했는데 성공했다더라’... 수없이 비교하다 결국 SNS를 닫고 나면 나를 사랑하는 행위는 저만치 멀어진 것만 같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데, 어떻게 비교하지 않고 오롯이 내 삶을 사랑할 수 있냐며 불행을 읊조리길 수십 번. 비교는 자학을 낳는다. 그렇기에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남과의 비교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가치를 인정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는 비영리 단체에서 기금 모금 활동을 하는 47세 남자 브래드(벤 스틸러)가 잘나가는 동창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사회를 바꾸겠다는 큰 포부를 갖고 시작한 비영리 단체 일이지만, 백악관 공보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자신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가진 크레이그(마이클 쉰), 사업에 성공해 은퇴한 빌리(제메인 클레멘트) 등 성공한 친구들을 보며 자신의 인생은 초라하다 느낀다. 패배자라는 열등감에 휩싸였을 때 아들 트로이(오스틴 에이브람스)가 하버드 대학 면접 대기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마치 자신의 실패를 아들이 뒤집어줄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10대엔 친구의 명문대 입학 소식에, 20대엔 SNS에 올라오는 취업 소식에, 30대엔 결혼 소식에, 40대엔 ‘얼마 모았다더라’라는 얘기에. 시절마다 비교할 거리는 끊임없이 생겨난다. 한량처럼 놀고먹었다면 억울할 일도 없겠지만, 대다수는 성실히 살아온 사람들이다. “나도 열심히 살았는데 왜”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고 어렸을 적 했던 선택에 뼈저린 후회를 하며 과거를 반추하게 된다. 그러다 자랑거리가 하나 생기면 질세라 인스타그램에 아닌 척 업로드를 한다. 영화 속 벤도 마찬가지다. 그러던 중 아들의 대학 입학 투어를 함께하며 자신이 가진 것과 잃어버린 기회들을 떠올리고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조금씩 알아간다. 영화는 결국 자기 연민에서 헤어나와 자신을 인정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난 나를 치켜세우거나 비하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써버렸다”는 벤의 말처럼 오늘도 누군가를 부러워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면, 브래드의 이야기를 추천한다. 자존감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닌, 나를 정확히 직시하고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한다. 오늘, 주변의 화려함에 흔들렸다면 거울을 보며 자신의 가치와 소중한 것들을 다시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