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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피해자라 생각하는 가족 안에서, 한 소녀의 힘겨운 생존기 〈문워크〉

주성철편집장
〈문워크〉 포스터
〈문워크〉 포스터

 

<문워크>는 모르고 살았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찾아 나선 한 손녀의 이야기다. 지난 몇 년간 한국 독립영화에는 ‘엄마와 딸’ 이야기가 많았다. 김세인 감독의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2021), 김진화 감독의 <윤시내가 사라졌다>(2021), 김정은 감독의 <경아의 딸>(2022), 이미랑 감독의 <딸에 대하여>(2023) 등으로 모두 여성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는 공통점도 있다. 공교롭게도 영화 속 엄마와 딸은 늘 소원하거나 갈등 관계에 있을 때가 많았다. 더불어 늘 서사에서 소외되어있는 관계일 때도 많았다. 남성 감독 신현규의 <문워크>는 그런 엄마와 딸의 관계 위에 세상에 없는 할머니, 그리고 할아버지의 서사를 입혀 헐거워진 가족 관계를 보다 너른 시선으로 조망하고자 한다.

 

〈문워크〉
〈문워크〉
〈문워크〉
〈문워크〉

 

 

<문워크>는 페트병에 소주를 담아 다니며 마실 정도로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엄마 유선(김민경)과, 그런 엄마를 지켜보며 ‘엄마의 사춘기는 언제 끝나게 될까’ 걱정하는 성숙한 딸 정희(황지아)의 이야기다. 일단 이 가족은 모였다 하면 싸운다. 이것부터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관객이 상당히 많을 것이다.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할머니 제삿날, 가출한 할아버지(유승목)를 찾아올 생각은 하지 않고, 할머니(김국희) 제사만 꼬박꼬박 지낸다고 타박하는 고모할머니(김자영)와 술에 절어 사는 엄마의 싸움은 내내 계속된다. 정희가 보기에는 늘 가족 탓만 하는 엄마가 불만이다. 할머니는 일찍 돌아가셨고, 그걸 할아버지 탓이라 여기는 엄마와의 갈등 끝에 할아버지는 집을 나가고 말았다. 자신에게 언제나 친절한 삼촌 윤권(송동환)도 언제나 가족 문제 앞에서는 별다른 말이 없다. 그렇게 정희는 왠지 자기만 모르는 가족의 비밀이 있는 것만 같다. 그 비밀을 풀기 위해 사진 속 할아버지를 찾아 가출을 단행한다. 오직 남자친구와 문자메시지로만 연락을 주고받으며, 1박이면 끝났을 법한 여정이 하루 이틀 더 늘어나게 된다.

 

〈문워크〉
〈문워크〉
〈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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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는 할아버지를 찾아 부산광역시 기장군으로 가기 위해 구포역에 내려 본격적인 여정을 시작한다. 무턱대고 나온 것이긴 하나, 언제나 답답한 집에만 갇혀있던 정희는 묘한 해방감을 느낀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지만, 또 할아버지를 찾겠다는 목적을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집을 벗어났다는 것만으로도 정희는 마냥 즐거운 것. 그런 점에서 소중한 각자의 ‘우리 집’을 지키기 위해 모험을 감행했던 윤가은 감독 <우리집>(2019)의 하나(김나연), 유미(김시아), 유진(주예림) 자매가 떠오르기도 한다. 정희 앞에 무한하게 펼쳐진, 아마도 정희가 처음으로 혼자서 마주했을 법한 바다와 수평선은 그 존재만으로도 <문워크>의 정서를 대변한다.

 

〈문워크〉
〈문워크〉
〈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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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정희는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에피소드 속에서 잃어버린 가족의 퍼즐을 맞추며, 어딘가 어설프지만 따뜻한 성장 여행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 여정이 영화 속 바닷바람처럼 따사로운 것만은 아니다. 내용으로 보건대 ‘12세 관람가’가 아니라 ‘15세 관람가’가 된 것처럼, 영화는 가출해서 낯선 곳에 홀로 남겨진 것이나 다름없는 정희가 겪는 여러 사건사고들도 담아낸다. 찜질방에서 자는 것도 여의치가 않기에 청소년 보호시설에 몸을 의탁할 수밖에 없는데, 거기에는 “말 잘 들으면 쉽게 돈 벌게 해주겠다”는 ‘무서운 언니’들이 있는 곳이다. 그처럼 집 떠난 해방감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꿋꿋이 정희가 견뎌내는 ‘혼자만의 시간’을 담아낸다.

 

〈문워크〉
〈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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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사춘기를 끝내기 위해 사진 속 할아버지를 찾아 모험을 떠나는 중학생 정희 역의 황지아 배우는 드라마 <머니게임>(2020), <왜 오수재인가>(2022), <남이 될 수 있을까>(2023)를 비롯해 <눈물의 여왕>(2024)에서 홍해인(김지원)의 고등학생 시절 역할로 출연하며 본격적으로 자신을 알렸으며, 영화로는 넷플릭스 영화 <제8일의 밤>(2021)에서 진수(이성민)의 딸로 출연했고 <문워크>를 통해 지난해 제12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에서 장편 배우상을 수상한 바 있다. <헤어질 결심>(2022)에서 송서래(탕웨이)의 남편 기도수 역으로 친숙한 유승목 배우가 사연 많고 인자한 할아버지, 최근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는 배우 김국희가 오직 플래시백으로만 존재하는 할머니이자 어머니로 등장해 영화에 무게감을 더한다. 한편, <문워크>는 충무로에서 오랜 시간 촬영과 조명으로 경력을 쌓다 <더블 패티>(2021), <구라, 베토벤>(2021), <당신이 잠든 사이>(2024) 등의 작품에서 촬영감독을 맡았던 신현규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그는 모두가 스스로를 피해자라 여기는 가족의 오해와 불화를 중학생 소녀의 따뜻한 성장 여행 이야기로 풀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