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은 수녀들
감독 권혁재
출연 송혜교, 전여빈, 이진욱, 문우진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살리려는 명분으로 모든 금기에 맞서는 ‘수녀 버디 무비’
★★★☆
사제가 아닌 수녀들. 빛의 영광이 아닌 지옥의 두려움을 껴안아야 하는 이들. 악령이 들린 소년을 살리기 위한 사람들의 금지된 사투는 밝은 빛이 아닌 깊은 어둠을 향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검은 수녀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전작의 줄기를 충실하게, 혹은 의도적으로 따라잡으면서도 악령에 맞서는 것이 곧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는 명분 하나로 모든 금기에 맞서는 ‘수녀 버디 무비’. 가톨릭 교리 내 남성 중심 질서를 박차고 나온 유니아와 미카엘라의 결합은, 영화 바깥으로 시선을 확장했을 때 오컬트 장르 내 여성 투톱이라는 흔치 않은 풍경과 공명하며 의미를 더한다. 구마 의식 자체의 박진감이 다소 느슨하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지적할 만하지만, 적절한 장르적 쾌감을 두른 채 인정받지 못한 자들이 만든 하나의 걸음을 향해 간다는 점에서 인상적.
이지혜 영화 저널리스트
금기를 깨는 김에 더 나아갔더라면
★★☆
<검은 사제들>과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는 <검은 수녀들>은 <검은 사제들>의 플롯을 그대로 따라간다. 구마 베테랑 유니아 수녀(송혜교)가 부마자를 구하려 노력하고, 트라우마를 가진 미카엘라 수녀(전여빈)가 보조로 합류한다. 구마를 믿지 않던 미카엘라가 유니아의 영향으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성장하는 가운데 수녀들의 구마의식은 이중고를 겪는다. 과학과 이성의 시대에 지탄 받는 퇴마에서 사제 서품을 받지 못한 수녀는 교단의 도움마저 받지 못하고, 사령이 들린 아이는 입만 열면 여성혐오를 쏟아낸다. 여성 관객의 공감을 받을 만한 요소가 많지만 이를 엮어내는 데 부실했고, 긴장감이 극에 달해야 하는 구마의식이 평이하게 연출되면서 아쉬움을 남긴다.
반지의 제왕: 로히림의 전쟁
감독 카미야마 켄지
출연 브라이언 콕스, 가이아 와이즈, 루크 파스콸리노, 미란다 오토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반지전쟁 200년 전
★★☆
이미 <반지의 제왕>과 <호빗> 시리즈로 만들어진 세계관에 기반한 애니메이션이다. 이 시리즈의 팬이라면 반길 만한 작품으로, 미국과 일본이 합작했으며, 주로 <공각기동대> TV 시리즈를 연출했던 카미야마 켄지가 연출했다. 실사판 <반지의 전쟁>에 미치진 못하지만, 전투 장면의 스펙터클은 나름의 호쾌함과 스케일을 지닌다.
애니멀 킹덤
감독 토머스 카일리
출연 로망 뒤리스, 폴 키르셰, 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 톰 메르시에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공존할 것인가, 배척할 것인가
★★★☆
설정은 간결하지만 그로부터 발생하는 감흥은 한 방향으로 특정할 수 없을 만큼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간다. 잘 빚은 우화의 특징이기도 하다. 인간에게 동물화가 시작된 원인은 불명으로 남겨두고 이후의 양상을 쫓아간 선택이 주효했다. 영화는 점차 생명을 준 부모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찾아 진정한 독립을 이루는 성장 스토리, 팬데믹에 대응하는 동시대의 풍경, 배척과 관용을 둘러싼 모든 사회적 이야기로서의 확장성을 품고 환상적으로 날아오른다. 아내이자 어머니가 부재한 상황 속 부자(父子)의 관계성을 다룬 것도 흥미로운 지점.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차별과 혐오 시대에 쓰여진 독창적인 우화
★★★☆
<더 랍스터>(인간이 동물로 변화)를 껴안고, <엑스맨>(주류 사회에서 축출된 소수자)을 경유해,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완전에 가까운 사랑의 형태)로 비상한다. 변이냐 퇴화냐가 아니라, 어떻게 ‘공진화(이종이 서로 도움을 주며 진화)’할 것인가에 대한 독창적인 우화. 혹은 근사한 대답.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
인간의 가치와 모순에 대한 철학적 물음을 던지는 프랑스 판타지 영화. 가족과 친구 등 사랑하는 사람들이 동물로 변해간다는 설정이 영화를 보는 내내 ‘나라면 어떻게 할까?’라는 질문을 띄운다.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하고 차별하는 인간 사회에 대한 메시지를 색다른 방식으로 전하는 영화다. 가족의 동물화를 지켜보는 아버지 역의 로망 뒤리스와 아들 역의 폴 키르셰의 깊은 연기가 가족애 이상의 감정을 느끼게 한다. 외형적 흥미만 주는 게 아니라 이야기와 캐릭터의 심리를 전달하는 동물 특수 분장도 굉장히 뛰어나다.
메모리
감독 미셸 프랑코
출연 제시카 차스테인, 피터 사스가드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사랑과 구원으로 이르는 길의 난제들
★★★
기억이 고통이라면, 누군가와 새롭게 공유되는 기억이 가능할까? 기억이 사랑을 지탱하는 한 축이라면, 기억을 지워가는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까? 상반된 방식으로 기억이 작용하는 두 사람이 서로의 취약성을 껴안고 조심스럽게 사랑하는 과정은 전반적으로 섬세한 접근을 보여주지만, 이는 연출보다는 연기의 기술이 만들어낸 분위기로 읽힌다. 사랑이 서로를 구원하는 길로 가기 위해 주인공들을 둘러싼 주변 캐릭터 설계가 조금은 도식적으로 느껴지는 면이 가장 큰 아쉬움이다. 주인공들의 갈망은 때로 그 의도가 불분명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는데, 캐릭터에게 관객이 100% 신뢰하지 못하게 만드는 구석을 남겨둔 덕분이다. 감독의 이 같은 선택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구간도 있지만, 인물이 가진 트라우마의 무게를 생각하면 조금은 불안정한 흐름처럼 느껴지는 효과도 적지 않다.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망각이 절실한 여자와 기억을 붙잡고 싶은 남자
★★★
잊고 싶은 기억을 지우지 못한 채 살아가는 여자.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이 지워지는 것을 막지 못하는 남자. ‘망각’이 절실한 여자와 ‘기억’을 붙잡고 싶은 남자의 만남은, O.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에 등장하는 연인만큼이나 애달프다. 그러나 이들이 만들어 나가는 관계는 애달프지 않다. ‘기억의 유무’가 보다 ‘기억을 대하는 자세’가 돋보이는 이들에게 어울리는 단어가 있다면, 그건 ‘기적’일 것이다. 제시카 차스테인과 피터 사스가드의 조합은 백번 옳다.
카라바조의 그림자
감독 미켈레 플라치도
출연 리카르도 스카마르치오, 루이 가렐, 이자벨 위페르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위대한 예술의 고통스러운 탄생
★★★
흔히 바로크 미술의 개척자로 일컬어지는 미켈란젤로 메리시 디 카라바조의 전기 영화. 영화는 그가 본격적인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한 1600년부터 39세의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하는 1610년까지 시간을 담는다. 그림에 대한 천재적 재능을 타고났지만, 거침없는 성격과 행동으로 범죄를 저질러 불안한 삶을 살았던 카라바조(리카르도 스카마르치오). 교황의 사면을 위해 파견된 ‘그림자’(루이 가렐)는 카라바조의 행적을 따라가며 그의 삶을 깊게 파고들며, 이 과정에서 그가 그렸던 그림들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드러난다. 화가로 인정받기 위해선 성화를 그려야 했던 시절, 그는 판타지의 세계를 상상하지 않고, 하층민들을 모델 모델로 성모 마리아를 그리는 파격적인 예술가였다. “화가의 시선은 사람을 향해야 한다”는 신념을 철저히 지켰던, 하지만 자신의 삶은 지키지 못했던, 천재 아티스트의 초상.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명과 암이 가득했던 예술가의 삶
★★★
빛과 그림자 대비가 가득한 자신의 작품 세계만큼이나 명과 암이 가득한 일생을 살다간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미켈란젤로 메리시’의 삶을 그린 영화. 살인을 저지른 후 도피 생활을 하는 카라바조(리카르도 스카마르치오)와 그런 카라바조의 뒤를 캐는 비밀 수사관 그림자(루이 가렐)를 통해 추적극 형식을 덧댔다. 감독의 상상에 의해 창조된 그림자는 단순한 가상 인물이 아니라, 당대의 편견과 교회의 권위와 혼돈이 인격화된 존재다. 영화는 그림자가 만나는 인물들이 서술하는 ‘각각의 카라바조’를 통해 평가가 엇갈렸던 화가의 삶을 재해석했다. ‘성모의 죽음’, ‘성 마태오의 소명’, ‘메두사’ 등 카라바조의 작품들이 또 하나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언데드 다루는 법
감독 테아 히비스텐달
출연 레나테 레인스베, 앤더스 다니엘슨 리, 바하르 파르스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사랑과 상실을 다룬 좀비 영화
★★★☆
유혈이 낭자하고 좀비 떼가 몰려오는 좀비 영화가 아니다. <렛 미 인> <경계선>의 작가 욘 A.린드크비스트의 원작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장르의 관습을 벗어나 전혀 다른 장르로 풀어내는 작가의 좀비 이야기는 가족 드라마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는 언데드가 되어 돌아온 가족을 맞이하는 세 가족에게 벌어지는 상황을 정적이고 차분한 연출로 보여준다. 테아 히비스텐달 감독은 공포와 스릴 대신에 사랑과 상실의 복합적 정서로 영화를 가득 채운다. 전형적인 좀비 영화의 공식에서 한참 벗어나 있어 홀로 아름답고 슬픈 영화다.
고스트캣 앙주
감독 야마시타 노부히로, 쿠노 요코
출연 모리야마 미라이, 고토 노아, 아오키 무네타카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낭만 고양아
★★★
그림체가 리얼하거나 세련되진 않지만, 고양이 요괴 앙주의 넉넉하면서도 인간적인(?) 마음이 관객을 흐뭇하게 만든다. 앙주 외에도 인간 못지않게 삶을 즐기는 다양한 요괴들의 모습도 이 애니메이션을 따뜻하게 만드는 요소다. 여기에 외로운 소녀 카린의 성장담과 가족 이야기가 결합되어,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드라마가 완성된다. 아날로그 느낌 물씬 풍기는 만화영화.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이렇게 웃긴 고양이 요괴를 보았나
★★★☆
일반적인 애니메이션이 아니다. 실사 영상에 애니메이션을 덧입힌 로토스코핑 기법으로 제작한 애니메이션이다. 성장 드라마와 코미디에 능한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이 실사 연출을 맡고, <극장판 짱구> 시리즈 등에 참여한 쿠노 요코 감독이 애니메이션 연출을 맡아 이마시로 타카시 만화의 고양이 요괴 앙주를 생생하고 독특한 캐릭터로 완성했다. 앙주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이 묘한 고양이 캐릭터에 빠져든다. 고양이와 소녀의 우정담은 사후세계를 넘나드는 모험으로 이어지며 초월적인 재미를 선사한다. 연기파 배우 모리야마 미라이가 앙주의 목소리 연기를 맡아 캐릭터에 개성을 더했다. 높은 완성도와 개성 넘치는 유머, 깊이 있는 주제가 전 연령대를 아우른다.
문워크
감독 신현규
출연 유승목, 황지아, 김민경, 송동환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할아버지를 찾아서
★★☆
엄마의 트라우마와도 같은, 태어나 단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한 ‘가출한 할아버지’를 찾아 나선 손녀 정희(황지아)의 이야기. 사진을 단서 삼아 부산으로 떠난 무작정 여행기로, 가족의 화해를 위한 16살 소녀의 간절한 마음이 영화를 감싸는 가장 중요한 정서다. ‘여행+성장+가족’ 콘셉트의 따스한 드라마라 할 수 있는데, 여행 중 겪게 되는 위기 설정이 조금은 작위적이며 전체적인 톤을 해치지만, 정희 역을 맡은 황지아의 연기가 그 흠을 상쇄한다.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용기 낸 소녀의 모험이 꼭 위험천만해야만 했나
★★☆
중학생 정희는 엄마를 비롯해 가족에게 커다란 상처를 남기고 가출한 할아버지를 찾아 나선다. 영화는 가족의 문제를 직접 해결하려는 여성 청소년의 로드무비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진행 과정이 매끄럽지 못하다. 십 대 여성 캐릭터가 전면에 나서고 가족 구성원의 아픔을 다룬 작품이라는 점에선 한 발짝 나아간다. 주인공이 겪는 위기 상황에 대한 묘사나 가족의 트라우마를 드러내는 연출이 그다지 신중하지 않아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한다.
꼬마 판다 팡의 아프리카 대모험
감독 리처드 클라우스, 카르스텐 킬레리치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서로를 성장시키는 동물들의 대화합
★★★
아프리카에 간 판다 이야기. 꼬마 판다 팡은 사자 왕자의 선물로 납치된 친구 꼬마 용을 구하기 위해 머나먼 아프리카로 향한다. 이 애니메이션의 특징은 선입견을 깬다는 점이다. 판다가 주인공이어서 중국 애니메이션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네덜란드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이다. 판다와 전설 속 용이 친구 사이로 등장하며, 다른 대륙에 살고 있어 만날 수 없는 동물들이 한데 어울리는 풍경을 연출한다. 사자와 하이에나 같은 포식자들을 악역으로만 그리지 않고 어린 동물들의 성장과 우정에 초점을 맞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