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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순탁 작가의 〈컴플리트 언노운〉, 티모시 샬라메는 진짜 밥 딜런이 되었다

씨네플레이
〈컴플리트 언노운〉
〈컴플리트 언노운〉

* 전기 영화이므로 당연히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이유로, 이 글을 읽고 <컴플리트 언노운>을 보는 것도 제법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밥 딜런에 대한 해외 석/박사 논문을 살펴보면 결국 찾다가 포기하게 된다. 이유는 단순하다. “너무 많기” 때문이다. 정말이다. 한도 끝도 없이 나온다. 한국과 미국을 비교하면 밥 딜런의 위상은 천양지차다. 해외에는 ‘딜러놀로지(Dylanology)’라는 학문이 실제로 존재한다. 밥 딜런의 음악을 각 잡고 연구한 역사가 이미 오래됐다. 한국의 경우 일단 논문부터 몇 편 안 된다. 앨범 판매량도 처참하다. 대부분이 아는 노래를 꼽는다면 손가락 3개, 많아야 5개로 충분하다. 영화 제목 그대로 ‘컴플리트 언노운’이다. 나도 안다. 밥 딜런 마니아가 한국에 존재함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컴플리트 언노운>은 미국 영화다. 그것도 지극히 미국적인 영화다. 그렇다면 믿을 구석은 하나밖에 없다. 당대의 슈퍼스타가 주연을 맡았다는 것이다.

〈컴플리트 언노운〉
〈컴플리트 언노운〉

티모시 살라메에게 할 수 있는 최대의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다. 그는 이 영화에서 진짜 밥 딜런이 되었다. 영화 속에서 그는 밥 딜런처럼 말하고, 밥 딜런처럼 노래한다. 그냥 복제에 불과한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전혀 그렇지 않다. 이를테면 티모시 샬라메와 <컴플리트 언노운>은 밥 딜런이라는 역사에 대한 깊이 있는 주석이다. 주석은 원본을 뛰어넘지 못한다. 그러나 주석은 원본을 더 풍요롭게 해줄 수 있다. 바로 이 영화의, 더 나아가 잘 만들어진 전기 영화의 존재 이유다.  

〈컴플리트 언노운〉
〈컴플리트 언노운〉

영화를 온전히 느끼고 싶다면 1960년대 미국 역사 공부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먼저, 밥 딜런은 미네소타 히빙 출신으로 그의 표현에 따르면 그곳은 “너무 추워서 반항조차 할 수 없는” 광산 마을이었다. 일찍이 이 후미진 마을을 탈출한 밥 딜런은 뉴욕에서 역사상 가장 단단한 신을 발견했다. 바로 그리니치 빌리지의 포크 리바이벌 신이었다. 이 신을 중심으로 수많은 포크 뮤지션이 활동하는 다양한 명소가 생겨났다. 그중에서도 카페 와(Café Wha?)와 가스라이트(The Gaslight), 포크 시티(Folk City) 등의 클럽이 중요하다. 이 클럽들에서 ‘후테나니스(hootenannies)’라고 불렸던, 일종의 오픈 마이크의 밤이 열렸기 때문이다. 이 카페들과 후테나니스의 광경이 영화에 다 나온다.

〈컴플리트 언노운〉피트 시거(에드워드 노튼)
〈컴플리트 언노운〉피트 시거(에드워드 노튼)

오픈 마이크의 밤에 비트족의 시(詩)와 포크 뮤지션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비단 시와 노래만은 아니었다. 당시 포크 뮤지션 중 많은 수가 스탈린주의자 혹은 트로츠키주의자였다. 그들은 노래를 하다가도 모여서 언쟁을 벌였다. 영화 초반에 나중 밥 딜런에게 기회의 문을 열어주는 포크 뮤지션 피트 시거(Pete Seeger)가 반국가 혐의로 재판받는 신이 나온다. 피트 시거는 공개적으로 자신이 공산주의자임을 밝힌 뮤지션이었다. 그의 거대한 존재감은 곧 어쿠스틱 포크 가수는 공산주의자라는 맹신을 낳았다. 이 재판은 바로 이런 배경으로 인해 벌어진 실제 사건이었다. 영화 후반부에 피트 시거는 밥 딜런의 ‘전기화된(electric)’ 포크에 격렬하게 저항하다 못해 도끼를 들고 전기선을 끊어버리려 한다. 아주 유명한 실화다. 피트 시거 연기는 에드워드 노튼이 맡았다.

〈컴플리트 언노운〉
〈컴플리트 언노운〉

​밥 딜런이 뉴욕으로 오자마자 찾아간 사람은 존경해 마지않던 포크의 전설 우디 거스리(스콧 맥네어리)였다. 당시 우디 거스리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무너져 정신병원에 입원해있었다. 끝내 그의 곁을 지킨 인물이 조금 전에 언급한 피트 시거다. 우디 거스리의 경우 ‘This Land Is Your Land’라는 대표곡이 영화 속에서 흐른다. 조지 클루니가 주연한 영화 <인 디 에어>(2009)의 오프닝에서 샤론 존스 앤 더 댑 킹스(Sharon Jones & The Dap Kings)의 연주와 목소리로 나왔던 바로 그 곡이다. 피트 시거는 자신의 밴드 위버스를 통해 영화에도 나오는 ‘The Lion Sleeps Tonight(Wimoweh)’을 세상에 소개했다. 애니메이션 <라이언 킹>으로 더 유명해진 그 노래다. 기실 ‘The Lion Sleeps Tonight(Wimoweh)’는 아프리카 대륙을 향한 착취의 역사를 압축하고 있는 곡이다. 자세한 설명을 하면 글이 너무 길어지므로 이렇게 부기한다. 포털 사이트에 ‘피트 시거 배순탁 아프리카’라고 치면 읽을 수 있다.

〈아임 낫 데어〉
〈아임 낫 데어〉

이제 밥 딜런에 대해 얘기해야 할 차례다. 사실 밥 딜런은 정의하기 쉽지 않은 뮤지션이다. 일단 앨범을 엄청나게 많이 발표했다. 현재까지 정규 앨범만 40장이다. 지금까지 밥 딜런 관련 영화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아임 낫 데어>(2007)일 것이다. 감독은 토드 헤인스, 총 6명의 배우가 밥 딜런의 역할을 맡아 연기를 펼쳤다. 어떤 동료 가수는 밥 딜런을 이렇게 표현했다. “밥 딜런의 내부에는 12명의 밥 딜런이 있다.” 쉽게 말해 정의하기가 불가능한 뮤지션이라는 것이다.  

물론 밥 딜런의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나눌 수 없는 건 아니다. 1960년대 초반 그는 포크 순수주의자로 출발했다. 영화에서 작곡하는 장면까지 나오는 대표곡 ‘Blowing in the Wind’(1963)이 이 시절을 상징한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 밥 딜런은 어쿠스틱 포크를 버리고 포크 록을 과감하게 시도했다. <컴플리트 언노운>의 절정이 이 시기를 그린다. 영화에서 잠깐 언급되는 것처럼 그가 록을 선택한 건 무엇보다 비틀스의 영향이 컸다. 비틀스 역시 밥 딜런을 존경했다. 특히 존 레넌은 존경을 넘어 밥 딜런을 거의 숭배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던 차인 1964년 8월 28일, 당시 비틀스가 묵고 있던 뉴욕 델모니코 호텔에서 밥 딜런과 비틀스의 만남이 처음으로 이뤄졌다.

‘The Freewheeling’ 앨범 커버(왼)의 영화 속 재현(엘르 패닝 SNS 발췌)
‘The Freewheeling’ 앨범 커버(왼)의 영화 속 재현(엘르 패닝 SNS 발췌)

이때 자료를 보면 아주 재미있다. 요약하면 밥 딜런이 먼저 분위기를 풀기 위해 “내가 기가 막힌 대마초를 구해왔는데 함께 피자”고 제안을 던졌다. 비틀스는 당황했다고 한다. 그때까지 대마초를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밥 딜런이 이렇게 반문했다고 한다. “high(대마초에 취하다)라고 노래하는 곡이 있잖아요?” ‘I Want to Hold Your Hand’의 ‘hide’를 ‘high’로 잘못 알아들은 것이다.

어쨌건 이때부터 밥 딜런은 비틀스가 몰고 온 로큰롤 열풍을 자신의 음악에 섞기로 결심한다. 문제가 있었다. 당시 포크 신이 로큰롤을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포크 쪽 입장에서 비틀스의 로큰롤은 “애들이나 하는 상업적인 음악”이었다. 반면 포크는 “음악으로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와 진보를 이끌어내는 순수한 음악”이었다. 예전 클래식 음악가들 중에 보면 대중음악의 ‘전기로 증폭한 사운드’가 음악의 순수성을 해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것과 똑같다. 어쿠스틱 악기만을 고집했던 당시 포크 뮤지션들은 전기 기타를 비롯해 음량을 인위적으로 증폭시킨 로큰롤을 조금도 인정하지 않았다.

〈컴플리트 언노운〉
〈컴플리트 언노운〉

밥 딜런은 1960년대 초반, 즉 비틀스와 로큰롤을 의식하기 전까지는 인권 운동, 전쟁 반대 운동과 강하게 연결됐다. 대표적으로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목사가 “I Have a Dream”을 연설했던 바로 그날, 같은 공간에서 노래까지 불렀다. 그런데 이때부터 수많은 언론과 대중이 그를 시대의 목소리로 규정하고 떠받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좀 좋았을 것이다. 마침내 원하던 성공을 손에 넣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점차 밥 딜런은 “나의 동의 없이 나를 규정하는 외부의 목소리”에 대해 반감을 느꼈다. 밥 딜런의 자서전을 보면 이렇게 써져 있다. “나는 어떤 세대에 내가 속해 있다고 생각해 본 적 없고, 나를 대변자라고 부르는 한 세대가 있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1964년에 발표한 ‘All I Really Want to Do’의 가사도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가사는 이렇다. “너를 단순화하거나 분류하고 싶지 않다”. 

〈컴플리트 언노운〉
〈컴플리트 언노운〉

밥 딜런은 스스로 신비를 창조한 인물이었다. 자신의 본명과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주변에 거의 얘기하지 않았다. 영화 속에서 여자친구가 “당신은 대체 누구야?”라는 식으로 불만을 터트린다. 실제로도 그랬다. 밥 딜런의 실존 여자친구 수즈 로톨로는 결국 그가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는 점을 깨닫고는 그를 떠나버렸다. 영화에 나오는 여자친구의 이름은 실비다. 엘르 패닝이 연기했는데 연인이었던 수즈 로톨로와 나중 결혼하고 이혼하는 사라 로운즈를 섞어놓은 가상의 캐릭터다. 10을 전체로 하면 수즈 로톨로가 8, 사라 로운즈는 2 정도라고 볼 수 있다.  

〈컴플리트 언노운〉포스터
〈컴플리트 언노운〉포스터

 <컴플리트 언노운>은 1965년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밥 딜런이 일렉트릭 세트를 들고 나와서 충격을 줬던 그 무대로 강렬하게 마무리된다. 서로 다른 버전의 포스터를 한번 보기 바란다. 티모시 살라메가 전기 기타를 들고 있다. 지금이야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악기지만 앞서 강조한 것처럼 당시 포크 신에서 전기로 증폭된 음악을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한데 그걸 밥 딜런이 저질러버린 것이다.

역사는 결국 밥 딜런을 승자로 기록한다. 이때 선보인 노래 ‘Like a Rolling Stone’이 빌보드 싱글 차트 2위에 오르면서 대히트를 친 것이다. 지금까지도 이 곡은 음악 잡지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곡”을 꼽을 때 5위 안에는 무조건 드는 팝 고전으로 인정받는다.

〈컴플리트 언노운〉
〈컴플리트 언노운〉

​만약 전기 영화의 첫 번째 미덕이 충실한 고증과 성실한 재현에 있다면 <컴플리트 언노운>은 적어도 음악적인 측면에서 나무랄 구석이 없는 작품이다. 밥 딜런은 1965년 포크 록 실험을 포함해 평생에 걸쳐 스스로를 낯설게 하는 균열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호명하고 분류하는 행위에 저항한 뮤지션이었다. 이 점을 기억하면 영화 보기에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그 모든 출발이 바로 이 영화가 그리는 1965년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의 일렉트릭 세트에 위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