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릴러 영화 <컴패니언>의 포스터 속에는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지만, 눈동자를 볼 수 없는 여성의 얼굴이 전면에 배치되어 있다. 여성의 기이한 얼굴 표정은 미스터리를 자아낸다. 그녀의 정체는 무엇일까? 로튼 토마토 94%에 빛나는, 해외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3월 19일 국내 개봉한 영화 <컴패니언>의 후기를 전한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두 번의 순간이 있다. 첫 번째는 조시를 만난 날이었고, 두 번째는 그를 죽인 날이다”. 영화의 첫 시퀀스에서 등장하는 아이리스(소피 대처)의 내레이션은 그녀의 남자 친구 조시의 죽음을 먼저 알리고 시작한다. 그들은 왜 파국을 맞았을까? 먹구름 속을 헤매는 듯한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는 아이리스는 슈퍼마켓에서 우연히 조시(잭 퀘이드)를 만난다. 서로에게 첫눈에 반한 둘은 각자의 오래된 공허함을 상대가 메워줄 거라 확신한다. 아이리스는 다정한 남자 친구 조시를 세상의 전부인 양 믿고 의지하고, 조시는 그런 그녀가 자신에게 딱 맞는 반쪽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 아이리스는 조시에게 이끌려 조시의 친구 캣과 일라이, 그리고 그들의 연인과 함께 휴가를 보내기 위해 외딴 호숫가의 별장으로 향한다. 그녀는 묘하게 경계심을 내비치는 조시의 친구들 사이에서 이따금 소외감을 느끼지만, 조시의 옆에서 로맨틱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평화로운 순간도 잠시, 아이리스는 피범벅이 된 채로 의자에 묶여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조시는 그녀에게 뜻밖의 말을 전한다.
사랑과 통제의 차이를 탐구하다

<컴패니언>은 코미디 시리즈 각본가로 독창적인 감각을 발휘해 온 드류 행콕 감독의 데뷔작이다. 드류 행콕은 ABC 시트콤 <서버가토리>, 좀비 로맨스 코미디 <마이 데드 엑스> 등 미국 TV 코미디 시리즈의 각본가로서 인정을 받았다. 그런 그의 작품답게 영화에는 곳곳에 유머가 배어 있다. 시종일관 긴장감을 자아내면서도 타율 높은 유머를 투척하는 영화는 그 속에 묵직한 메시지를 함께 머금고 있다. 영화는 아이리스의 내레이션으로 현대인이 느끼는 외로움의 감정을 상기시켜 두고 시작한다. 아이리스는 “모든 것을 덮고 있는 두터운 먹구름이 있는 것만 같은” 삶 속에서 사람들이 “세상을 보고 있지만,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컴패니언>은 방황하는 현대인의 소외감과 외로움을 그려내며, 외로움에서 탄생한 다양한 삶의 모습을 따라간다.
※ 여기서부터는 기사의 본문에 영화의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아이리스와 조시, 조시의 친구들은 캣(메건 수리)의 연인이자 러시아 갑부인 세르게이(루퍼트 프렌드)의 호화로운 별장에서 휴가를 보낸다. 그들의 평화로운 순간은 아이리스가 세르게이를 죽이면서 180도 뒤바뀐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아이리스는 조시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하지만 언제나 다정했던 조시는 태도를 바꾼 채 아이리스의 입을 막고, 이제껏 그녀에게 숨겼던 사실을 털어놓는다. “넌 로봇이야. 섹스를 도와주고, 정서를 지원하는 로봇이야”. 아이리스가 세르게이를 죽인 일도 세르게이의 재산을 탐낸 조시가 캣과 짜고 그녀의 컨트롤러를 조정해 벌인 일이다.


아이리스가 기억하는 그들의 완벽한 첫 만남은 만들어진 것이다. 그녀는 조시가 구매하고, 그에게 딱 맞는 반쪽으로 조정된 로봇이다. <컴패니언>은 아이리스를 현대 사회에서 생겨난 섹스봇과 리얼돌, 반려 로봇 등의 상징으로 삼고 사랑과 통제의 차이를 파고든다. 조시가 컨트롤러와 해킹을 통해 아이리스의 말과 행동, 외형 등을 조정하는 모습은 연인 간의 가스라이팅 문제도 은유한다. 사실을 안 아이리스는 자신을 종료하려는 조시로부터 도망친다. 조시는 통제 불가가 되어버린 아이리스를 쫓으며, 더욱 통제의 범위 안에 가두려 한다. 드류 행콕 감독은 조시의 모습으로 열등감에 빠져 일그러진 남성성을 지닌 채 섹스봇을 이용하는 무리를 비판적으로 제시한다. 조시는 이민자임에도 졸부가 된 세르게이를 마피아라 여기고, 그가 축적한 부도 옳지 않은 방식으로 쌓아 올린 것이라 추측한다. 조시는 세르게이가 애초에 선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를 죽이고 그의 돈을 가져가는 자신의 범죄도 합리적인 행동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세르게이는 마피아가 아닐뿐더러 단순히 잔디 사업으로 돈을 벌어들인 사업가일 뿐이다. 이민자에 대한 혐오와 자국민인 자신보다 부유한 세르게이를 향한 질투에 눈이 먼 조시는 자신의 편견에 갇힌 채 상대를 함부로 재단한다. 열등감에 빠진 그는 가까운 연인을 자신의 의견과 지시를 거스를 일 없는 로봇으로 대체한다. 자유롭게 감정을 교류할 수 있는 인간 여성이 아닌, 자신에게 모든 것을 맞춘 로봇으로 연인의 자리를 채운다. 조시가 대상화하는 로봇 아이리스는 성적으로 대상화된 <블레이드 러너>의 여성 레플리컨트의 뒤를 잇기도 한다.

그러나 감독은 섹스봇이 안고 있는 여성 대상화의 부정적인 단면과 함께 긍정적인 측면도 함께 전달한다. 영화에서 아이리스와 함께 등장하는 남성형 로봇 패트릭(루카스 게이지)은 게이 남성 일라이(하비 길렌)의 연인이다. 패트릭은 조시에 의해 재설정되면서 조시를 연인으로 인식하고, 그의 명령을 조건 없이 따른다. 조시의 명령을 듣는 패트릭은 같은 로봇인 아이리스에게 해를 가한다. 감독은 아이리스가 자유를 찾는 여정을 따라가는 영화에 또 다른 로봇인 패트릭까지 등장시킴으로써 섹스봇과 함께하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일라이는 조시와 달리 패트릭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연인으로서 존중한다. 실제로 성소수자에게 있어 AI 로봇, 섹스봇은 자신의 성적 취향을 자유롭게 탐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감독은 패트릭을 통해 로봇과 인간이 정말 진실되게 사랑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다. 또 섹스봇을 이용하는 조시와 일라이의 차이는 과학 기술을 사용하는 윤리의 중요성을 시사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