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옥 같은 터널에 갇혀있던 느낌”. 영화의 대사를 인용한 김형주 감독의 소감은 <승부>가 표류했던 시간의 고통을 엿보기 충분하다. 조훈현과 이창호라는 희대의 바둑 천재가 사제로 만나 라이벌로 거듭나는 시간을 담은 <승부>는 주연 배우 유아인의 마약 투약 혐의로 공개가 거듭 미뤄졌다. 2023년 넷플릭스로 공개될 예정이었던 <승부>는 2년의 시간이 지나 3월 26일 극장에서 관객들을 만날 준비를 마쳤다.
<승부>가 그 지난한 시간을 지나 극장에 당도할 수 있었던 건 영화의 가능성을 알아본 사람들이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언론배급 시사회 후 <승부>는 호평을 받았다. 시사회 당시 다소 긴장한 모습이었던 김형주 감독도 한시름 놓은 듯 한결 가벼운 모습으로 기자들과 대화를 나눴다. 3월 21일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만난 김형주 감독은 “조문 간 얘기를 많이 물어보시더라”라며 유아인 배우를 만났던 그 당시를 회상했다. 감독의 말마따나 “행복”과 “지옥 같은 터널”을 모두 안겨준 유아인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승부>를 연출한 김형주 감독의 속내와 생각을 전한다.
(유아인과) 연락을 주고받았냐는 질문이 많았다. 연락을 따로 한 적은 없고 작년에 (유아인의) 부친상이 있어서… 한 다리 건너 아는 PD에게 연락이 왔다. 갈까 말까 많이 고민하다가 조문 가는 게 도리이지 않나, 작업을 같이 했는데 (싶었다). 조문을 짧게 하고 유아인에게 사과를 들었다. 상황이나 자리가 자리인지라 대화를 길게 하진 못했다.
유아인이 죽을죄를 지었다고 했다는데 다른 이야기는 없었나.
그게 다다. “미안하고 드릴 말씀이 없다”. 제 기억으로는 그렇게 말했다. 아까 인터뷰하고 나온 기사를 아는 친구가 보내줬는데, 제목보고 제가 그렇게 말한 줄 알았다.(웃음)

촬영 후 4년 만에 개봉이다.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다.
생각보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개봉하게 됐는데 제작보고회도 그렇고 언론 시사회도 그렇고 생각보다 담담했다. 사연이 많은 걸 아시다보니 공식 석상에서도 살살 해주시고.(웃음) 자리를 다 마무리하고 새벽에 택시를 타고 집을 가는데, 택시에서 좋게 써주신 기사 하나를 봤다. 그때부터 눈물이 터지기 시작해서 집에 내릴 때까지 울컥했다. 기사님도 흘깃흘깃 보시더라.(웃음) 후련하다. 관객분들이 어떻게 보실지만 남았다.
현장에선 긴장해보였는데 오늘은 많이 풀어지신 거 같다. 4년 동안의 우여곡절을 들려준다면.
그래도 저는 그나마 나았다. 사건(유아의 마약 복용 보도)이 벌어지기 전에 후반 작업까지 끝난 상태였다. 후반 작업 중에 사건이 알려졌다면 많은 생각을 했을 거 같다. 어떻게 영화를 마무리해야 할지. (더 건드릴 수 없는 상황이)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이다. 첫 보도는 제 기억으로 실명 보도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누가 큰일 났구나’ 했는데 수일 내로 저도 사실을 접해서 여러 방면에서 확인했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이 영화는 어떻게 되려나, 어디로 가나…. 그걸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했던 거 같다. 상황을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견뎌낼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 이미 (영화를 완성해) 납품이 끝난 상태였다. 공개 한두 달 전이었다.
그 사이에 결혼을 하셔서 결혼으로 이겨내셨다는 얘기도 있었다. (일동 웃음)
(혼인이) 인륜지대사다. 이슈는 이슈로 덮어야 하지 않나.(웃음) 오래 만난 여자친구와 결혼하자 했다. 눈 떠보니 신랑입장~ 하고 있었다. 혼자일 때보다 나은 거 같다. 그저께는 집에서 울수 없어서 밖에서 더 울고 들어갔다.(웃음)
윤종빈 감독(<공작>, <수리남> 연출)과 공동 집필했다. 시나리오의 어떤 부분들을 담당했고 조율하면서 썼는지 궁금하다.
무 자르듯이 이건 누가 했다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티키타카가 왔다갔다 했던 것 같다. 서로 신경 썼던 건 바둑을 모르는 관객이 많을 테니…. 저는 데이터를 찾아보며 설명하려고 치중했다. 반대로 윤 감독님은 철저히 모르는 시선으로 써 내려갔다. 트리트먼트부터 같이 주고받았다.
이 소재를 쓰고 싶어서 쓴 것인지, 아니면 제안이 들어와서 쓴 것인지도 궁금하다.
소재를 처음 제안한 윤 감독님 와이프가 제 학교 후배이기도 하다. 조훈현과 이창호의 이야기가 재밌다, 그래서 그걸 윤 감독님이 듣고 저에게 제안을 주셨다. 자료 조사하니 너무 재밌어서 제가 하겠다 했다.
어린 시절 이창호(김강훈)와 성인 시절 이창호(유아인)의 성격 차이가 도드라진다. 이 부분을 묘사하는데 고민이나 걱정이 되진 않았나?
바둑팬들은 ‘야 이거 저거 아닌데’ 할 수 있겠다. 실제로 바둑을 접하기 전 이창호 국수(가 승부욕도 강하고 개구쟁이기도 하고 이런 내용이 자서전에 있었다. 돌부처라는 성인 이창호가 자기 바둑을 만들면서 변모하는 과정이 아역과 대비되길 바랐다. 실제 성격을 아역 시절까지 적용한다면 변하는 지점이 설득력이 없을 것 같았다. 이 스토리를 모르는 분이 쉽게 이창호라는 캐릭터를 접하고 성인이 바뀌더라도 자연스럽게 이입을 하길 바라서 친근한 성격으로 가져왔다.

반면 아역 시절 김강훈 배우의 등장 분량이 꽤 된다. 그래서 영화에 몰입하기 충분하다.
이런 사건이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약점이라고 생각했다. 성인 배역이 빨리 등장하는 게 연출자 입장에서 좋으니까. 그럼에도 이창호란 캐릭터에게 관객들이 친근해질 시간이 필요했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정했다.
이창호 국수와도 실제로 만남을 가졌나?
조훈현, 이창호 실명을 쓰고 싶어서 두 분 다 찾아뵀다. 조훈현 국수는 영화에서처럼 대화를 주도하시고 직설적인 반면 이창호 국수님은 정말 상상이상으로 말씀이 없으셨다. 그 만남의 자리를 끝내고 싶어 하시는 거 같았다.(웃음) 그래서 빨리 보내드렸다. 조 국수님은 시사회로 보셨고, 이 국수님은 대국이 있어서 시사를 못 봤는데 ‘기대하고 있다’고 제작사 통해서 말씀해주셨다. 한국 기원 쪽에서 많이 도와주셨다. 제가 풍문으로 듣기로는 충무로가 예전부터 조국수님 영화를 한두 편 제안했는데 거절당했다고 들었다. 정확하진 않다. 그런 얘기를 들어서 두려움을 안고 연락을 취했는데, 그 사이에 세월이 흘렀고 심경의 변화가 있으셨는지 (허락하셨다). 제 추측으로는 이번 영화가 침체된 바둑계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허락하신 느낌이다. 이창호 국수님은 선생님이 하신다니까…라고 추측을 해본다.

바둑을 모르다가 영화를 준비하면서 찾아보시고 하셨는데, 영화를 준비하면서 바둑에 대해 어떤 점을 알게 되셨는지.
바둑을 모르시는 분들처럼 저도 정적이고 초읽기도 길고 (그렇게 생각했다). 실제 바둑은 생각보다 너무 치열하고 처절한 싸움이었다. 바둑기사들은 대국을 두고 나면 4킬로가 빠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고도의 에너지가 필요한 스포츠다. 인상적이었던 건 흔히 말하는 복기였다. 승자와 패자가 마주 앉아서 그 경기를 되돌아보며 내가 한 실수, 상대가 잘한 점을 돌아보는 것이 바둑이란 건 품격이 있구나 싶었다. 바둑은 더 배우고 싶었는데 알수록 더 설명하고 싶어서 그렇지 않았다. 어느 정도 모르는 체로 만드는 것이 좋기에 거리를 두었다.
현역인 실제 인물을 다루니 인물 표현에서 고민이 있었겠다. 다큐멘터리적으로 맞는지, 아니면 영화답게 픽션을 가미한 캐릭터로 가는 것이 맞는지 등.
말씀대로 정말 부담스러웠다. 바둑계의 레전드시니까 (잘못하면) 바둑팬들에게 난리가 날 것 같았고. 그래서 아역 시절의 성격도 조심스러웠다. 영화의 극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 실제 사건이 벌어진 타임라인에서 비튼 것이 있다. 스승과 제자가 만나는 시점도 실제로는 이미 만난 적이 있지만, 최고의 자리에서 제자를 거둔다는 것과 언젠가 자신을 쓰러뜨릴 어린아이를 만난다는 효과를 위해 그렇게 설정했다. 영화에서의 첫 대국도 실제로는 세 번째 대결이었다. 영화상 힘을 주기 위해 처음인 것처럼 연출했다. 조 국수가 영화에서와 달리 디테일하게 훈육을 하시진 않았다고 했다. 이미 완성된 제자였기에. 이런 식으로 조심스럽지만 큰 틀을 깨지 않는 것에서 노력했다. 첫 대국 이후 타임라인은 고증 그대로 갔다. 처음과 마지막 대국은 기보를 그대로 재현해서, 아는 분은 영화를 보고 ‘그때랑 똑같네’라고 하셨다.
영화 내 명언이 정말 많았다. 특별히 좋아하는 명대사를 뽑아주신다면.
조우진 배우(남기철 역)가 “바둑판 위에서 한 번 피하기 시작하면 갈 데가 없다”라는 대사를 한다. 그래서 저도 도망가지 않고 버텼다.(웃음)

바둑계의 두 전설이 등장하는 만큼 캐스팅도 중요했을 것이다. 어떤 과정을 거쳐 두 배우를 캐스팅했나.
이병헌 배우는 너무나도 팬이어서 데뷔하실 때부터 거의 모든 작품을 다 봤다 해도 된다. 감독이라면 누구나 해보고 싶은 (배우다). <승부> 시놉시스 작업할 때부터 이 사람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제작사도 너무 딱이라고 동의했고. 이병헌 배우가 캐스팅을 거절한다면 바둑영화가 워낙 마이너한 것이라 기획을 엎어야 하나 걱정까지 했는데 이병헌 선배가 캐스팅이 돼서 기분이 좋았다. 이창호 역은 극중 기풍이나 성격, 외모까지도 (조훈현과) 상반되는 캐릭터인데 실제로 이병헌 선배와 다름이 느껴지는 배우였으면 싶었다. 이병헌이란 배우에 아우라에 주눅 들지 않고 색깔대로 부딪힐 수 있는 에너지 넘치는 배우이길 바랐다. 유아인은 그동안 본인이 해왔던 퇴폐적이기도, 음울하기도, 광기 어린 것과 달리 묵직하고 단단하게 자기만의 해석을 통해서 잘 연기해주었다.

아무래도 바둑을 모르는 관객을 위한 설명이 필요한 영화인데, 반대로 설명이 너무 과하면 영화적 재미가 반감될 가능성이 있다. 그런 지점을 찾는 것이 고민됐을 텐데.
그 밸런스가 중요했다. 얼마나 친절하게 설명할 것이냐. 불친절하면 관객이 집중력을 놔버릴 것이고, 너무 설명하면 인물의 감정이 안 보이는 문제가 있을 것 같았다. 절충을 해서 지금 정도로 설정했다. 대국의 승부 과정도 중요하지만 대국의 유불리나 대략적인 맥락을 위한 최소한의 정보값을 주는 것으로 설명을 하려 했다. 모두를 만족시키면 좋겠지만, 아직 제가 그 정도 급이 안된다.
실제로도 두 국수가 대국 후에도 같이 사셨다고 하더라. 이런 부분은 어떻게 자료를 확보했나.
어느 정도는 같이 사셨다고 한다. 이창호 국수가 최고위 타이틀을 가져갈 때, 이창호 국수의 부모님이 분가를 해야 하나 고민했다 하셨다. 따로 취재는 하지 않았고 두 분의 자서전과 ‘월간 바둑’을 정독했다. 자서전과 당시 기사만 봐도 두 분이 스승과 제자 관계의 대결에 부담감이나 조심스러워하시는 게 보여서 자서전 이상의 정보는 안 나올 거란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뵀을 때 질문드려도 모범 답안 같은 말씀만 하셨다.
이창호 국수가 조훈현 국수의 자녀에게 밥을 먹이며 챙기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자서전에 애들을 챙겼다는 문구 정도는 있었던 거 같다. 같이 사는 동안 스승과 내제자의 관계지만 ‘작은엄마’라는 호칭을 쓰기도 했으니까 가족 같았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런 느낌을 줄 수 있는 장면이 딱 그 타이밍이었다.

유아인도 그렇고 조우진, 문정희, 고창석 등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나다. 현장에서 느낀 감정이나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나.
조우진 배우야 사석에서도 보는 사이다. 연기 내공이 탄탄한 분이라, 코미디부터 ‘여 썰고 저 썰고’ 해도 문제없는(웃음) 팔색조 같은 배우다. 약간의 의상만 갖춰 입어도 느낌이 나는, 고수의 느낌이 있었다. 유아인 배우는 그날이 생각난다. 테스트 촬영 때 헤어와 메이크업하고 이병헌과 유아인, 나란히 투샷을 잡았다. 행복했다. 나만 정신 차리면 되는구나 싶더라.(웃음) 너무나 행복했다. 그 스틸컷으로 포스터를 써도 되겠다 싶었다. 영화가 차분한 영화라 현장도 차분하게 돌아갔다. 얄궂은 날이다 싶은 건 두 배우가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됐는데 유아인 배우가 수상한 다음날이다. 그날 촬영이 조훈현이 이창호와의 대국에서 지고 함께 복기하는 장면이었다. 어질어질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그날 이병헌 선배님 오셨을 때 눈치를 봤는데, 이병헌 선배가 “오늘 찍는 게 아인이가 상 타고 내가 못 탔을 때 그런 기분인 거죠?”라면서 농담을 해주셨다. 스태프들이 불편할까봐 그렇게 농담을 하신 거였다. 그날이 기억에 남는다. 선배님 정말 어른이시다 싶었다.

이 이야기는 이창호 국수의 시선에서 신동의 성장담으로도 좋았겠다. 그럼에도 조훈현을 극의 화자로 삼은 이유가 있다면.
말씀한 대로 신동의 이야기로도 방향성을 잡을 수 있다. 다만 두 사람의 관계에서 드라마틱하다고 본 건, 최정상을 두고 스승과 제자가 대결하는 일이 거의 없다. 이 구도는 제자가 불세출의 재능을 가져 일어난 일이니까. 스승의 입장에서 자기 제자에게 타이틀을 뺏겼을 때 어떤 심정일까, 잘 가르쳤다고 기뻐해야 하나 다음엔 밟아야겠다 생각하려나, 그런 부분에 흥미가 있었다. 저는 최정상을 찍어본 적 없지만 톱클래스에 있다가 바닥을 찍으면, 사라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걸 반등해서 올라간 게 인간 승리의 드라마 같은 느낌이었다. 또 그렇게 반등해서 제자와 재회하는 것에 개인적으로 마음이 갔다.
두 국수가 패색이 짙어질 때 보는 광경이 대비된다. 조훈현은 돌이 피를 흘리듯, 이창호는 돌이 쪼개지듯 본다. 이렇게 차이를 둔 건 실제 두 분에게 들은 감상이었는지, 아니면 두 분의 스타일을 대비해 연출한 것인지 궁금하다.
자서전에 있던 건 아니다. 첫 대국은 화면이 뒤집어지는 것으로 표현했다. 원래는 뒤에 CG가 있는데 잘랐다. 카메라가 뒤집어지면 조훈현 국수의 바둑알이 떨어지는 컷이었다. 자신의 성이 무너지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이창호 국수의 패배는 돌부처의 느낌처럼 단단한 느낌인데, 자신만의 석상에 금이 간다는 느낌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구상했다.
영화의 엔딩은 다시 재회해서 조훈현이 승리를 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클라이맥스인데 굉장히 담백하게 표현했다.
결과를 다 아는 대국이기도 했고, 승부의 과정보다 승부에 임하는 두 사람의 성장이 이미 이뤄졌다고 생각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제자에게 도전하는 스승이나 최고의 자리를 지키는 스승의 길을 따라걸으며 성장했을 제자도 그렇고. 대국이 클라이맥스라고 생각해서 그 부분만 4~5회차 찍었다. 배우들에게 이 대국을 즐기는 마음으로 연기해주셨으면 좋겠다 요청했다. 승부의 과정과 결과만큼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신경을 많이 썼던 거 같다. 그 뒤의 이창호에게도 스승이 겪은 것처럼 부침이 있었겠지만, 그 대국을 즐기는 느낌으로 보이길 바랐다. 그 한 판이 다가 아니니까. 감정적으로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뒤에 에필로그 시퀀스도 있고. 계속 앞으로도 두 사람은 만날 거고 승부를 펼칠 거야, 이런 느낌으로 담백하게 하고 싶었다.
유아인 배우가 영화의 진입장벽일 수밖에 없다. 그걸 뛰어넘을 만한 셀링포인트를 말씀해주신다면.
제가 강요할 수 없는 것이고, (<승부> 관람은) 대중의 선택이고 권리시다. 그래도 극장에서 보면 눈과 귀가, 여러 가지 인생의 희로애락을 느낄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있는 그대로 봐달라는 원론적인 말씀밖에 못 드리겠다.

바둑 영화이다 보니 바둑알 소리 등 사운드에도 신경을 많이 썼을 것 같다.
바둑돌 소리의 특정한 순간, 국면 전환하는 사운드 등에 신경 썼다. 기사마다 기풍이란 것이 있으니까. 이런 것을 저만큼 사운드팀에서 고민을 많이 했다. 이럴 때는 날카롭게, 이럴 때는 둔탁하게, 말장난처럼 들리지만 (사운드팀에서) 요청한 대로 그렇게 해주셨다. 특별 대국실 같은 공간은 사운드적으로 많이 없어서 초시계 소리나 난로, 환풍기 소리 같은 것을 과장되게 느껴질 만큼 강조하기도 했다.
이병헌 배우의 연기에서 사람 이병헌이 중간중간 섞여있는 느낌이다. 같이 작업한 입장에서 희열이 있었을 것 같다.
뻔한 얘기지만 연기로 더 얘기할 게 없을 정도로 완성된, 위대한 배우이다. 말씀한 순간들을 저도 캐치할 때가 있다. 극 중에서 인터뷰 장면 같은 데서 ‘이런 모습이 있으시네’ 싶었다. 뭐가 됐든 모든 장면을 영화처럼 만드는 힘이 있다. 근사하고 클래식하게. 그런 게 놀라웠다. 감독으로서 매 순간 행복했다.
이병헌 배우 말로는 조훈현 국수가 담배 끊는 장면들이 편집했다던데.
아까운 장면이 많다. 조훈현 국수가 영화 보고 그러셨다더라. 자기는 바닥을 찍고 다시 올라오기까지 엄청난 노력을 했는데 왜 이렇게 짧냐고. 사실 마음가짐의 문제이지 않나. 담배를 버리고 등산을 엄청 다니는 등 그 시퀀스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빨리 두 사람이 최종 대국으로 만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고, 호흡도 미세하게 늘어지고. 뼈를 깎는 심정으로 아쉽지만 삭제했다. 유년 시절 문구를 보고 다잡는다는 심정으로 심플하게 구성했다.

영화를 만드실 때의 가치관이 궁금하다.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연출하는가.
메시지에 대한 강박은 없다. 제가 이야기 자체에 꽂히면, 주관적이고 추상적이지만 간다. <승부>도 그렇지만 휘발되지 않는 느낌의 이야기라면, 그리고 그 정서를 관객들에게 정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한다.
감독님에게 <승부>는 어떤 영화인가?
바둑으로 비유해야겠다. 저 나름대로 소신껏 깔아놓은 포석. 이창호 국수님도, 조훈현 국수님도 그렇고 “상대를 의식하지 않고, 라이벌은 내 자신이다”라는 교과서적인 말씀을 계속 하셨다. 저도 저 혼자 꾸준히 저의 수를 두겠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