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의 쓰임새를 가장 잘 아는 감독이 만든 영화답다. 오는 4월 2일 개봉하는 영화 <로비>는 배우 겸 감독 하정우의 세 번째 연출작이다. <로비>는 하정우, 김의성, 강해림, 이동휘, 박병은, 강말금, 최시원, 차주영, 박해수, 곽선영 등 수많은 내로라하는 배우들을 모두 활용하면서도 그들이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판을 깐 모양새다.
배우 출신 감독만이 가진 장기를 활용한 영화 <로비>는 연구밖에 모르던 스타트업 대표 창욱(하정우)이 4조 원의 국책사업을 따내기 위해 인생 첫 로비 골프를 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영화 <극한직업>의 형사들이 위장수사를 하기 위해 치킨집을 차렸다가 맛집으로 소문나 고역을 겪었다면, <로비>의 ‘골알못’ 대표 창욱은 로비를 하기 위해 얼떨결에 골프를 치는데, 어쩌다 보니 꽤나 잘해서 문제다. 자고로 접대 골프의 핵심은 승부를 가리는 것이 아니거늘, 과연 창욱은 더러워도 싸워볼 수 있을까?


하정우 감독의 전작 <롤러코스터>가 비행기 안에서 벌어지는 소동극이라면, <로비>는 골프장을 무대로 각양각색의 인물들이 벌이는 소동극이다. 연출과 각본을 담당한 하정우는 이야기보다도 인물이 중심이 되는 영화를 만들며 화려한 멀티캐스팅의 출연진들이 제각각 다른 방향으로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게끔 설계했다. 지난 3월 25일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는 <로비>의 언론배급시사회와 기자간담회가 진행됐는데, 감독이자 주연배우인 하정우는 이날 급성 충수돌기염(맹장염) 수술로 인해 자리에 불참했다. 하정우는 배우들에게 “나의 병까지도 코미디로 승화해 달라”라고 전하며 개인사까지도 블랙코미디의 소재로 써먹는, 뼛속까지 ‘코미디 감독’의 면모를 보였다. 이날 현장에 참석한 <로비>의 김의성, 강해림, 이동휘, 박병은, 강말금, 최시원, 차주영, 곽선영 배우의 말을 전한다.

“급성 충수돌기염도 내가 선배”
광우 역 박병은
<로비>는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접대 골프 라운딩에 나서는 두 팀의 이야기를 중심 축으로 한다. 한쪽 팀은 창우(하정우), 진프로(강해림), 최실장(김의성), 박기자(이동휘)의 ‘신입 로비 팀’, 나머지 한 쪽은 광우(박병은), 조장관(강말금), 마태수(최시원), 다미(차주영)의 ‘베테랑 로비 팀’이다. ‘로비력’이 좋은 광우는 ‘기술력’이 좋은 창우와 대비되는 인물로, 조장관에게 로비하기 위해 조장관이 좋아할 만한 코스, 조장관이 좋아하는 배우까지 섭외한 로비 왕이다. 하정우가 연기한 창우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인물인 만큼, 영화 속 두 사람의 소위 ‘혐관’(혐오 관계) 케미가 돋보인다. 박병은은 “하정우 감독과는 대학 시절부터 선후배로 25년 넘게 꾸준히 봐온 관계라, 작품에서도 둘의 관계성을 만들어 나가는 데에 도움이 됐다”라고 케미의 비결을 전했다. 덧붙여 박병은은 “내가 중앙대학교 1년 선배다. 그런데 충수돌기염도 선배다. 저도 중학교 때 맹장 수술을 했다”라고 전하며 블랙코미디 배우다운 면모를 보였다.

“전작의 비호감을 모두 뛰어넘는 비호감 캐릭터”
최실장 역 김의성
김의성이 맡은 캐릭터 중, 가장 비호감을 꼽자면 당장 떠오르는 인물이 너무도 많다. <미스터 선샤인>의 친일파, <부산행>의 빌런 아저씨, <서울의 봄>의 국방부장관 등. 다만 이번 <로비>의 최실장은 현실에 있을 법한, 꼭 한번 봤던 것만 같은 캐릭터이기에 더욱 비호감인 인물이다. 최실장은 부패한 조장관(강말금)의 남편으로, 골프선수 진프로(강해림)의 열렬한(혹은 음침한) 팬이다. 김의성은 최실장을 두고는 “전작의 비호감을 다 뛰어넘을 만한, 비호감 인물”라고 칭하는 한편, <로비>를 두고는 “이상하고 재미있는 영화”라고 칭하며 “조심스럽게 천만 예상한다. 농담이다”라며 영화에 대한 애정을 표했다.

“나이 먹고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느끼게 된 영화”
박기자 역 이동휘
배우 김의성의 말대로 ‘비호감인 인물’들이 많고도 많은 영화 <로비>는 다양한 인물들이 다양한 종류와 방법으로 비호감을 발산한다. 이동휘가 연기한 박 기자 역시 한 비호감 하는 인물이다. 영화에서 아마 거의 유일하게 정상적인 인물인 진프로를 연기한 신예 배우 강해림은 이동휘의 박기자를 ‘가장 이상한 인물’로 꼽기도 했는데, 박 기자는 비리 부장기자로 창욱에게 로비 라운딩을 알선하는 인물이다. 배우 이동휘는 “영화를 보고, 나이 먹고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느꼈다. 절대 그렇게 살지 않도록 여러분들께 약속드리겠다”라며 자신의 역할을 반면교사 삼을 것이라 전하며 좌중에 웃음을 안겼다.

“대한민국 감독 중 가장 연기 잘하는 감독 하정우”
마태수 역 최시원
전적으로 배우와 인물, 대사가 중심이 된 영화인 만큼, <로비>는 배우들의 대사 합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그래서 하정우 감독이 선택한 방법은 대본 리딩을 공들여 하되, 현장에서는 배우들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었다. 조장관 역의 강말금은 “부분 리딩을 빼고 전체 리딩만 10번을 했다. (하정우 감독님이) 대본 리딩을 할 때 상당히 많은 얘기를 해 주셨다. 현장에서는 오히려 자유롭게 연기를 하도록 편하게 해 주시는 쪽이었다”라고 전했다. 다미 역의 차주영은 “어려운 부분은 시범도 보여주셨다”라며 배우 출신 감독과의 소통 경험에 대해 회고했다. 한편, 다미의 옛 연인인 마태수 역의 최시원은 “골프 카트에서 다미와 이야기를 하는 장면에서 싸이의 노래 한 소절을 대사처럼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다. 사실 그건 대본에 있었던 게 아닌데, 감독님이랑 브레인스토밍을 하다가 나온 아이디어다”라며 유연하게 촬영 현장을 운영하는 하정우 감독의 스타일에 대해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