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기사 카테고리

Movie & Entertainment Magazine from KOREA
>인터뷰

[인터뷰] 〈계시록〉 신현빈 “연희를 통해 감정의 모호함을 받아들였다”

이진주기자

<괴이>(2022)를 시작으로, <계시록>과 <얼굴>, 그리고 현재 촬영 중인 <군체>까지. 배우 신현빈은 연상호 감독의 세계 안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차근히 넓혀가고 있다. 지난 21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계시록>에서는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또 하나의 얼굴을 꺼내 들었다. 극 중 신현빈은 실종 사건의 용의자 양래와 그 주변을 맴도는 목사 민찬의 뒤를 끈질기게 쫓는 형사 연희 역을 맡았다. 인물의 감정을 겉으로 내세우지 않고, 끝내 안으로 쌓아올리는 방식으로 절제된 연기의 정수를 보여줬다. <계시록>을 찍으며 ‘억눌린 감정을 쌓아올리는 인물’이 되어갔다는 배우 신현빈. 그가 말하는 ‘연희’와, 그 시간을 지나며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에 대해 들어본다.


넷플릭스 〈계시록〉 배우 신현빈(제공=넷플릭스)
넷플릭스 〈계시록〉 배우 신현빈(제공=넷플릭스)

 

오늘 <계시록>이 넷플릭스 글로벌 비영어 부문 1위를 기록했습니다. 소식 들으셨을 때 어땠어요?

너무 신기했어요. 방금 전에도 (류)준열 씨랑 그런 얘기 했거든요. “이런 일이 진짜 생기는구나” 하면서요. 어떤 분들은 제작 기간이 짧은 편인데도 공개되고 되게 빨리 순위가 올라갔다고도 하시고요. 넷플릭스는 전 세계에 동시에 공개되잖아요. 그러다 보니 또 새로운 방식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감사하고, 또 좀 얼떨떨하고 그렇습니다.

 

촬영하시면서 해외 반응이 좋을 것이라는 기대는 하셨나요?

‘해외에서 통할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찍진 않았어요. 그런데 시나리오를 봤을 때, 이건 어떤 특정한 이야기라기보다는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라고 느꼈어요. 각자가 자기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때로는 실체도 없는 걸 깊이 믿기도 하고, 반대로 눈앞에 있는 현실을 못 믿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생각해 보면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겠다 싶었어요. 물론 이야기 안에 분명 한국적인 특성도 있지만요. 예상보다 많은 분들이 봐주신 것 같아 감사하고, 또 신기해요.

 

넷플릭스 〈계시록〉 배우 신현빈(제공=넷플릭스)
넷플릭스 〈계시록〉 배우 신현빈(제공=넷플릭스)

 

매 작품이 저한테는 그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이거든요. 이번 작품 역시도, 특별히 다른 기준으로 보기보다는, 그 시기 제게 주어진 중요한 이야기였어요. 다만 이번엔 작업할 때는 그저 눈앞의 장면에 집중하다 보니까, 이게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에서 어떻게 소비될지에 대해선 크게 생각하지 못했어요. 오픈을 준비하면서, 그리고 공개 이후 결과가 수치로 바로 보이면서, ‘아, 이건 좀 다르구나’ 실감했죠. 관객이 접하는 방식도, 그 반응의 속도도 확연히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시나리오를 처음 보셨을 때, ‘연희’라는 인물에 대해서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처음엔 좀 어려웠어요. “왜 이러는 걸까?”, “왜 이런 선택을 하지?” 그런 생각이 들었고요. 근데 동시에 그걸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더라고요. 쉽게 알 수 없다는 게 오히려 매력으로 느껴졌어요. 뭔가 감정이 겉으로 표현되지 않지만 안에서는 계속 흔들리는 사람 같았거든요. 그런 인물이라면, 저 역시 조심스럽게 따라가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넷플릭스 〈계시록〉 배우 신현빈(제공=넷플릭스)
넷플릭스 〈계시록〉 배우 신현빈(제공=넷플릭스)

 

 

연희는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꾹꾹 눌러놓는 인물로 느껴졌어요. 연기하시면서 어떤 부분이 어려우셨나요?

그런 부분이 제일 고민이 많았던 것 같아요. 감정을 폭발시키거나, 뭔가 확실하게 표현하는 인물은 아니잖아요. 오히려 계속 억누르고, 눌러놓고, 또 안에다가 쌓아두는 느낌이 강했죠. 근데 그런 인물일수록, 진짜 감정이 어딘가에는 계속 흐르고 있어야 하니까… 그걸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가 고민이었어요. 몸을 많이 움직이는 역할도 아니고, 말수도 적은 편이라서 더 그랬고요. 그 안에 연희가 가지고 있는 의심, 혼란, 망설임 같은 걸 계속 간직하면서 연기해야 했어요. 카메라에 담기지 않더라도 그 감정은 항상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촬영했어요.

 

촬영 현장 분위기는 어땠어요? 기억에 남는 분위기나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되게 조용했어요. 진짜로요. (웃음) 어떤 작품 현장보다 정적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집중이 잘 되더라고요. 대사도 많지 않고, 톤도 굉장히 절제돼 있어서 그런 환경이 더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다들 조금씩 긴장하면서 촬영했던 느낌이에요. 말은 많이 안 했지만, 각자 자기 역할에 되게 집중하고 있었던 현장이었어요. 그런 분위기라서 더 몰입해서 연기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류준열 배우와의 호흡은 어땠나요?

생각보다 같이 연기한 장면이 많진 않았어요. 몇 개의 인상적인 장면들이 있긴 한데, 전체 분량으로 보면 그렇게 많지는 않았거든요. 그런데도 인상이 강하게 남은 건, 아마 둘 다 되게 조심스럽게 접근했던 것 같아요. 준열 씨는 그 상황 속에서 진심으로 반응해주는 스타일이거든요. 그래서 연희란 인물로서, 제가 어떤 상태로 있어도 상대방이 진짜처럼 반응해주니까 저도 편하게 들어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촬영 전에 뭔가 많은 얘길 하진 않았지만,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호흡이 맞았어요.

 

마지막 폐모텔의 롱테이크 장면이 특히 기억에 남는데, 촬영 당시 어땠나요?

그 장면은 정말 리허설을 많이 했어요. 배우들도 동선이 많고, 카메라도 쭉 따라가야 해서 한 번에 촬영하려면 진짜 많이 맞춰야 했거든요. 그래서인지 그 신은 좀 연극처럼 느껴졌어요. “자, 이제 시작합니다” 하면 모두가 딱 긴장하고, 거기서부터는 그냥 흘러가는 거예요. 그리고 거기서 연희가 한 번 크게 흔들리잖아요. 모든 감정이 모여서 튀어나오지는 않지만, 스스로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요동치는 순간. 그런 걸 놓치지 않으려고 했던 기억이 나요. 다시 봐도 그 장면은 저한테 특별해요.

 

넷플릭스 〈계시록〉 배우 신현빈(제공=넷플릭스)
넷플릭스 〈계시록〉 배우 신현빈(제공=넷플릭스)

 

 

연희는 조직 안에서 믿음과 의심 사이에서 계속 흔들리는 인물이에요. 그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배우님 스스로도 영향을 받으셨을 것 같은데요.

맞아요. 감정적으로 계속 긴장 상태에 있다 보니까, 현장에서도 뭔가 계속 조심스러워졌어요. 평소보다 감정을 더 예민하게 들여다보게 됐던 것 같아요. 뭔가에 확신을 가지는 순간도 없고, 그렇다고 확실하게 거부하지도 못하는 상태… 그게 되게 불안정하잖아요. 그 감정을 계속 간직하면서 촬영했는데, 그런 불확실함이 저한테도 전이된 느낌이 있었어요. 현장에서는 그렇게 계속 연희로 살아가다가, 촬영 끝나고 나면 좀 멍해지기도 했고요.

 

연희라는 인물은 어떤 면에서 특별했나요? 다른 인물들과 달리 유독 오래 마음에 남는 이유가 있을까요?

처음에는 솔직히 잘 이해가 안 됐어요. 왜 이런 반응을 하는지, 왜 이걸 못 벗어나는지. 그런데 그게 오히려 흥미로웠어요. 연희는 어떤 확신이나 신념을 가진 사람이기보다는, 끝없이 고민하고, 흔들리고, 버티고 있는 사람이잖아요. 그런 모습이 요즘 저희가 겪는 현실과도 좀 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계속 생각하게 됐던 것 같아요. 단순히 ‘이해’하고 끝나는 인물이 아니라, 계속 따라가게 되는 그런 인물?

 

작품 전반에 깔려 있는 ‘믿음’이라는 키워드는 배우님께도 어떤 식으로 남으셨는지 궁금해요.

사실 이번 작품 하면서 “나는 뭘 믿고 살고 있지?”라는 생각을 저도 많이 하게 됐어요. 그냥 일상적으로는 별생각 없이 지나가는 질문이지만, 이 작품을 하면서 그걸 계속 붙잡게 되더라고요. 어떤 걸 믿고 있고, 그게 나를 어떻게 움직이게 하는가에 대해… 진짜로 많이 생각했어요. 딱 정리된 답은 아직도 없는데, 그런 고민을 하게 된 계기였던 건 확실한 것 같아요.

 

혹시 촬영 중 실제로 감정이 올라와서 놀란 순간도 있으셨어요? 연희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 장면들이 특히 인상적이었거든요.

그런 장면 몇 군데 있었어요. 감정을 겉으로 막 쏟아내지는 않지만, 내부적으로는 굉장히 큰 요동이 있는 순간들이 있거든요. 그중에 하나는, 연희가 어떤 선택을 하고 나서 되게 짧은 침묵을 갖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때 진짜 제가 말이 안 나올 정도로 감정이 올라왔던 기억이 있어요. 근데 연희는 그 감정을 끝까지 꾹 누르고 있어야 해서, 그걸 표현하지 않는 방식으로 계속 가져가야 했거든요. 그런 게 어려우면서도 인상 깊었어요.


넷플릭스 〈계시록〉 배우 신현빈(제공=넷플릭스)
넷플릭스 〈계시록〉 배우 신현빈(제공=넷플릭스)

 

이번에 파격적인 숏컷 스타일링을 선보이셨어요. 덕분에 연희라는 인물이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고요. 외적인 변화가 내면에도 영향을 줬을까요?

그런 부분이 정말 컸어요. 외형적으로도 뭔가 단단해 보이는 이미지가 생기니까, 말투나 태도, 몸의 움직임까지도 자연스럽게 달라지더라고요. 처음에 머리를 자르고 거울 봤을 땐 좀 낯설었는데, 점점 익숙해지면서 ‘아, 이게 연희의 얼굴이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되게 많은 걸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인물이었어요. 외형이 내면을 대변해주는 느낌도 있었고요.

 

작품을 마치고 난 뒤, 배우 신현빈으로서도 어떤 변화나 질문이 남았는지 궁금해요.

음… 뭔가 명확하게 변했다고 하긴 어렵지만, 고민의 결이 조금 달라졌다고 해야 할까요? 전에는 어떤 인물의 감정을 설명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이 사람이 왜 이럴까?’라는 걸 같이 느껴보려고 하는 쪽으로 바뀐 것 같아요. <계시록>을 하면서 확실하게 정리되지 않은 감정도 충분히 중요한 지점이 될 수 있다는 걸 느꼈고요. 연희를 연기하면서 저 스스로도 그런 감정의 모호함을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본 관객들에게 어떤 감정이 남길 바라시나요?

각자 자기만의 질문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나는 뭘 믿고 있지?”, “내가 믿는 건 어디서 왔을까?” 같은, 그런 질문이요. 영화가 어떤 정답을 주진 않잖아요. 저도 여전히 답을 찾고 있는 중이고요. 그냥 이 이야기를 통해 한 번쯤 멈춰서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셨다면, 그걸로 충분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