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년의 시간>은 계속된다. 지난 3월 13일 공개 이후 넷플릭스에서 <웬즈데이>, <기묘한 이야기> 시즌4, <다머-괴물: 제프리 다머 이야기>에 이어 영어 TV시리즈 부문 역대 최고 시청수 4위에 등극하며 <브리저튼> 시즌1과 <퀸스 갬빗>을 넘어섰다. 영국은 지난 2022년부터 시청률 조사기관 바브(BARB, Broadcasters Audience Research Board)와 넷플릭스의 제휴로 TV와 OTT의 데이터를 통합해서 시청률을 발표하고 있는데, <소년의 시간>은 제휴 이후 상위 50개 TV 프로그램 중 시청률 1위를 차지한 최초의 스트리밍 서비스 시리즈가 됐다. 최근에는 시즌2 제작 확정 소식과 더불어 시리즈의 배경이 된 영국에서 꽤 큰 정치적 파장을 일으켰다.


‘가디언’에 따르면, <소년의 시간> 공개 직후 공동 작가 잭 손은 정부에 “16세 미만 청소년의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할 것”을 촉구했고, “여성과 소녀에 대한 혐오를 부추길 수 있는 남성성과, 이른바 ‘인셀’ 문화의 영향이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년의 시간> 2부에 드러나는 ‘인셀’이란 ‘Involuntary Celibate’의 약자로 비자발적 독신주의를 말한다. 드라마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여기에는 80 대 20의 법칙이 있어서 오직 20%의 남자들만 여자들의 관심을 받는다. 이처럼 연애와 성관계에서 소외된 남성들이 불만을 공유하고 여성 혐오적인 사고방식을 퍼트리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비롯된 개념이다. 제이미 또한 인셀로 지칭되며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고 인터넷을 통해 왜곡된 세계관을 갖고 있었다. 그러던 중 SNS에서 자신을 비하한 동급생 케이티를 죽이게 된 것.

실제로 여러 나라에서 인셀 커뮤니티에 가입한 이들에 의한 범죄들이 종종 있었고, 영국은 여성 혐오 테러를 비롯해 기존의 극단주의 범죄와 결합하고 있는 인셀 문화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처럼 ‘스마트폰 사용 금지’ 이슈에 대해 브리짓 필립슨 교육부 장관은 “영국 학교의 스마트폰 금지에 대해 면밀하게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교육부는 지침의 효과를 이해하기 위해 학교를 모니터링하고, 가장 성공적으로 단속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이들 학교를 대상으로 심층 분석을 시작할 예정이다. 노동당의 아넬리제 미즐리 의원도 “<소년의 시간>이 의회와 학교에서 상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여성 혐오를 비롯해 여성과 소녀들에 대한 폭력에 맞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도 <소년의 시간>을 직접 언급했다. “10대인 아들과 딸과 함께 이 드라마를 보면서 아버지로서 큰 충격을 받았다. 부모이자 어른으로서 느끼는 두려움과 걱정에 공감이 됐다”며 “불편하게 느껴지더라도 학교에서 이 드라마를 볼 수 있게 되면 여성 혐오로 인한 영향, 온라인 급진화의 위험, 건강한 관계의 중요성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말했다. 이후 실제로 넷플릭스는 영국 학교 환경을 위해 2021년 설계된 영국 최초의 영화 전용 스트리밍 플랫폼인 ‘Into Film+’를 통해 <소년의 시간>을 무료로 시청할 수 있도록 했다. 키어 스타머 총리는 영국의 전 중등학교에서 <소년의 시간>을 볼 수 있게끔 협조해준 넷플릭스의 결정에 대해 지지하고 감사를 표하기 위해, 잭 손 작가와 넷플릭스 영국 콘텐츠 담당 부사장 앤 멘사를 비롯한 제작진을 초청해 간담회를 가지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잭 손은 “대화를 끌어내기 위해 이 드라마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 드라마를 전국의 학교에서 보게 된 것은 우리의 기대를 넘어선 일”이라며 “이를 통해 교사와 학생들이 활발하게 대화하는 것도 좋지만, 내가 진정 바라는 것은 학생들이 서로 대화하는 것”이라 말했다.

더 나아가 <소년의 시간>은 시즌2 제작이 확정됐다. 아마존 프라임이 거절하면서 넷플릭스를 파트너로 택했던 <소년의 시간>은 이처럼 단숨에 전 세계적인 화제작이 된 것. ‘데드라인’에 따르면, 제작사 플랜B 엔터테인먼트는 시즌1 제작에도 참여하고 주연까지 맡았던 스티븐 그레이엄과 필립 바란티니 감독이 후속 시즌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갔다. 필립 바란티니가 그대로 연출을 맡는 만큼, 다루는 사건은 다르되 특유의 원테이크 스타일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베이비 레인디어> 등을 성공시킨 넷플릭스 영국의 앤 멘사는 “아마존의 거절이 고마웠다”는 말과 함께, 이러한 스타일의 <소년의 시간>이 성공하리라 확신했고 시즌2의 성공 역시 자신하고 있다.

플랜B의 사장 디디 가드너는 <소년의 시간>의 성공에 대해 “겉보기에는 작고, 지역적이며, 감정적인 이야기가 전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킬 수 있음을 잘 보여줬다”며 “남성의 폭력은 수년 동안 사회적 문제였으며, 수백만 명의 마음속에서 그 이야기를 풀 수 있는 열쇠를 찾은 것에 대해 중요한 의미를 두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플랜B의 공동사장 제레미 클라이너는 “에피소드를 원테이크로 촬영하는 필립 바란티니 감독의 스타일은 주제를 더욱 강화시켰다”며 “학교, 경찰서, 그리고 가정으로 자연스레 시선을 돌리며 흐름을 이어가고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처럼 스타일과 결합한 주제가 관객 내면 깊이 스며들었을 때, 정말 짜릿함을 느꼈다”는 소감을 더했다.

<소년의 시간>에서 13세 소년 제레미 밀러(오언 쿠퍼)의 아버지를 연기한 스티븐 그레이엄은 필립 바란티니의 이전 영화 <보일링 포인트>(2021)에서 주인공 셰프를 연기한 바 있다. 역시 원테이크로 촬영한 영화 <보일링 포인트>에 매혹된 제레미 클라이너는 그 스타일을 TV 시리즈에도 적용하고 싶어 했고, 플랜B의 회장이자 배우인 브래드 피트도 흔쾌히 동의했다. 초창기 아마존과의 회의에도 참석할 정도로 이 프로젝트에서 열정적이었던 브래드 피트는, 아마존과의 논의가 무산된 뒤에도 “반드시 만들 수 있다”며 제작진을 격려했다. 제레미 클라이너는 “<파이트 클럽>의 대스타가 그렇게 이끌어주니 깜짝 놀랐다. <소년의 시간>이 완성되게끔 추진력이 된 주인공이 바로 브래드 피트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스티븐 그레이엄과 브래드 피트는 가이 리치의 <스내치>(2000)에 함께 출연한 뒤 20년이 훌쩍 지나 <소년의 시간>으로 배우와 제작자로서 재회한 인연도 더해진다. <스내치>를 함께 하며 브래드 피트는 스티븐 그레이엄과 무척 친하게 지냈을뿐더러 그의 열렬한 팬이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소년의 시간>으로 데뷔한 오언 쿠퍼는 에메랄드 페넬 감독의 신작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에서 10대 히스클리프로 출연할 예정이다. <소년의 시간>에서 오언 쿠퍼는 같은 반 친구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13세 소년 용의자로 출연해 가족과 심리 상담사, 그리고 형사 사이에서 놀라운 연기를 펼쳐 보이며 주목받았다. 필립 바란티니 감독이 첫 오디션 테이프를 보고 난 뒤, 여전히 학생인 15세의 그가 연기 경험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으로 낙점한 것은 유명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