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걷는다. 목적지를 향해 절박하게 옮기는 그 발걸음은 곧 다른 이의 귀기 어린 몸짓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또 한 연인의 경쾌한 동작으로 옮겨간다. 그러더니 이내 삶의 공간을 가득 메우는 혼령들의 행진이 영화를 뒤덮는다. <달이 지는 밤>은 걸음걸이로 연결된 영화다. 여기엔 누군가를 찾고 싶어서, 만남을 뒤로 하고 떠나야 해서, 일상을 단단히 붙들기 위해서 걷는 사람이 가득하다. 이들이 걷는 장소는 산과 계곡이 인구 적은 동네를 감싸는 소도시 무주. <달이 지는 밤>은 무주산골영화제가 ‘한국의 개성 있는 감독들을 응원하고 지지하기 위해 시작한’ 제작 지원 프로젝트의 첫 번째 결과물로, 무주에서 무주 군민들의 참여를 통해 완성된 영화다. 프로젝트의 출발을 함께 한 감독은 김종관과 장건재. 각자의 리듬과 색깔로 영화 여정을 꾸려온 두 연출자는 공간과 소재를 느슨하게 공유하며 두 개의 단편을 만들었다. 각각 독립된 영화로 봐도 무방하지만, 두 단편은 보름달이 자취를 감추는 새벽 기운 아래서 하나로 만난다.

김종관이 연출한 첫 번째 영화는 텅 빈 거리에서 눈을 뜬다. 이윽고 터미널에 도착한 버스에서 허름한 차림의 여자(김금순)가 깨어난다. 그녀는 해숙이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끝까지 그렇게 불러주는 이 없는 외로운 존재다. 헝클어진 머리, 붉게 물든 얼굴, 부르튼 입술. 어떤 사연을 품었을지 짐작하기조차 어려운 몰골로 해숙은 부지런히 걷는다. 폐허가 된 건물을 지나고 험한 산을 오른다.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괴상한 소리를 웅얼대면서. 영화는 어떤 정보도 주지 않은 채 잠자코 그녀의 뒤를 따른다. 이 여정은 얼마간 이런 식이다. 카메라는 해숙이 걷고 머무는 자리를 구석구석 비추며 이상한 행보를 주시한다. 어느덧 폐가에 도착한 해숙은 초를 켜고 방울을 흔들며 무당의 의식을 치르는데, 과연 희미한 검은 형상이 나타난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새벽닭의 울음소리와 함께 해숙이 다시 길을 떠나면,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카메라가 돌연 집 쪽으로 과감하게 걸음을 옮긴다. 그제야 어느 이야기 하나가 시작된다.

현실의 장막을 찢고 등장한 검은 형체는 과거의 한 장면처럼 보이는 모녀의 순간을 폐가에 불러내 응시한다. 해숙의 딸 영선(안소희)은 무당 엄마를 퉁명스럽게 대하는 교복 입은 소녀다. “신병은 어떻게 걸려? 나도 편히 좀 먹고살게.” “넌 애미가 편하게 먹고사는 줄 아냐.” 살갑지 않은 모녀의 대화는 너덜너덜한 집안 풍경보다 더 스산하다. 그러나 곧 그 음산함을 압도하는 무거운 죽음의 퍼포먼스와 통한의 울음소리가 영화를 집어삼킨다.

침대에 누운 영선은 금방이라도 죽을 듯 자기 목을 조르고, 해숙은 걸개그림을 갈기갈기 찢어 입에 쑤셔 넣는다. 지금 여기엔 무당 엄마와 죽은 딸의 시간이 뒤엉켜있다. 영화는 애도를 위해 정돈된 인과를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뼈대만 남은 집이 그러하듯, 시공간을 나누는 문을 전부 열어 모든 것이 한데 마주치도록 한다. 검은 옷을 입고 거리로 나간 영선, 혹은 귀신의 행로는 마을 사람들의 시간과 기묘하게 어긋나며 영화를 더욱 불가해한 영역으로 이끌고 간다. 다만 중요한 건 그녀가 끝까지 걷는다는 점이다. 그 영속의 행위에 겹치는 해숙의 목소리는 생과 사의 경계를 부드럽게 허문다. 그렇게 무주의 겨울이 깊어간다.

장건재가 연출한 두 번째 영화는 무주의 푸른 여름을 담는다. 집마다 선풍기가 달달거리며 돌아가고, 동네 사람들이 잘 익은 고추를 수확하는 계절이다. 한껏 열이 오른 거리를 성큼성큼 걷는 이는 군청 공무원 민재(강진아). 얼굴 찌푸리는 일 없이 공무를 수행하고 엄마와 시간을 보내는 그녀는 쾌청한 여름 하늘을 닮았다. 엄마는 그런 딸을 걱정한다. 기껏 서울에 보내놨더니, 고향으로 돌아와 ‘촌놈’이나 만난다고 타박이다. 그러나 민재는 함께 군청에서 일하는 태규(곽민규)와 느긋하게 장보고 개울에 발 담그는 게 마냥 즐겁다. 독거노인을 방문해 건강을 살피는 업무도, 엄마의 핀잔에 다정하게 응수하는 일도 그녀를 미소 짓게 할 뿐이다. 민재를 보고 있자면 티 없이 맑다는 흔한 수사가 마침내 제 주인을 만난 것처럼 느껴진다. 영화는 그런 민재를 쫓아 동네 곳곳을 살피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사소하고 정겨운 대화를 듬뿍 담아둔다. 걸음과 대화, 두 요소만으로도 이 세계는 풍요롭게 빛난다.

앞선 영화와 나란히 두고 볼 때 비교적 차분하게 인과를 따르는 모양새지만, 여기에도 비밀은 있다. 오랜만에 민재를 찾은 친구 경윤(한해인)은 지친 기색을 내보이더니 한밤의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민재의 엄마는 홀로 소주잔을 기울이다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과 조우한다. 태규가 전해주는 이야기는 여름밤을 제법 으스스하게 물들인다. 치매를 앓아 병원에 입원한 할머니 대신 집을 지키면서, 이따금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본다는 것이다.

그의 이야기 속 할아버지는 불현듯 구석에서 나타나 마루를 가로질러 저 너머로 사라진다. 이처럼 영화는 곳곳에서 유령이 솟아나고, 문득 고개를 돌렸을 때 소중한 이가 보이지 않는 상황을 능청스럽게 엮어놓았다. 그것이 이 영화가 죽음을 다루는 방식이다. 어떤 이들이 자연스럽게 산 사람의 시야에서 멀어지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애틋한 상대를 만나러 온다. 공존과 부재가 유연히 맞물려 돌아가는 이 영화엔 천천히 그리움의 정서가 쌓인다. 유령들이 어스름한 거리를 끝없이 걷는 대목은 아득한 신비로움도 함께 전한다.

<달이 지는 밤>은 영화제 기획 프로젝트로 탄생한 작품이지만, 김종관, 장건재의 영화적 관심사가 새로운 배경을 만나 연장된 경우이기도 하다. 김종관 감독은 <최악의 하루>(2016)에서 시작돼 <밤을 걷다>(2019)와 <아무도 없는 곳>(2019)까지 이어진 경계에 관한 탐구를 좀 더 실험적이고 과감한 방식으로 시도했다. 장건재 감독은 <회오리바람>(2009), <잠 못 드는 밤>(2012), <한여름의 판타지아>(2014)에서 그랬던 것처럼 명료한 시나리오 대신 영화에 등장할 사람들에게서 이야기를 길어내는 방식을 택했다. 여기엔 비전문 배우도 포함된다. <달이 지는 밤>의 두 번째 챕터엔 현지 주민들이 여럿 등장한다. 한편, 음악은 두 단편을 하나로 엮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각각 다른 음악감독이 작업했지만, 베이스와 첼로 등 묵직한 현악기의 존재감이 두드러지는 삽입곡들은 영화의 여백을 매우며 유령이 거니는 거리의 거대한 청각적 풍경을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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