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히어로’들의 활약이 거세다! 그동안 슈퍼히어로 이야기는 마블, DC 등 할리우드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국내에서도 특수한 능력을 갖춘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와 드라마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히어로물의 가능성을 점점 보여주고 있다. 단순히 장르 모방에 그치지 않았다. 한국이기에 가능한, 한국에서만 그릴 수 있는 참신한 스토리와 세계관을 어필하며,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는 중이다.
이들 K-히어로는 할리우드와는 다른 노선으로 흥미를 자아낸다. 할리우드의 히어로들이 세계를 넘어 우주를 구해야 하는 비장한 미션을 수행하는 이야기를 주로 그렸다면, 한국형 히어로들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웃이나 친구의 모습으로 현실을 살아가기 위해 히어로의 능력을 발휘하며 갈등과 위기를 극복한다. 덕분에 캐릭터와 거리감도 한층 더 가깝게 느껴진다. 이런 현실감 넘치는 히어로의 모습이 할리우드 히어로보다 시청자들의 공감을 받고 인기를 얻는 이유이지 않을까? 우주와 세계까지는 힘들지만, 적어도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의 안전만큼은 확실히 책임지는 최근 드라마 속 K-히어로들, 그들의 매력을 살펴보자.
무빙(2023) – 캐스팅이 슈퍼히어로급! 이야기는 울트라히어로급!
화제의 드라마 <무빙>은 2015년 공개된 강풀의 인기 웹툰을 영상화한 작품이다. 드라마는 초능력을 숨긴 채 현재를 살아가는 아이들과, 과거의 아픈 비밀을 숨긴 채 살아온 부모들이 시대와 세대를 넘어 닥치는 거대한 위험에 함께 맞서는 과정을 담았다. 제작 전부터 화려한 캐스팅에 이목이 쏠렸다. 류승룡, 한효주, 조인성, 차태현, 류승범 등 캐스팅만으로도 슈퍼히어로 못지않은 파워를 보여준다.
원작자 강풀이 드라마의 대본을 맡아 이야기의 힘을 보탠다. 원작의 탄탄한 스토리를 완벽하게 재현한 것은 물론, 새로운 인물과 에피소드도 설득력 있게 추가되었다. 한국 드라마 역사상 최대 제작비가 투입되어 작품의 완성도도 높였다. 여러 히어로가 등장하지만 개별 에피소드로 구성된 각자의 이야기가 영웅들의 서사를 촘촘하게 전달하여 드라마의 이해를 돕는다.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간절하게 지키는 한국형 히어로는 시청자들에게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이는 히어로임에도 그들이 겪는 고뇌와 감정을 시청자가 함께 공감하여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러한 것들이 K-히어로만이 가지는 특징들이 아닐까? <무빙>은 한국의 히어로물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준 작품이자, 강풀 유니버스의 포문을 연 드라마다. 앞으로 이어질 강풀의 세계관 속 히어로의 등장을 기다려 보자.
경이로운 소문2: 카운터 펀치(2023) – 악귀 잡으러 빨간 운동복(?)이 온다!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2: 카운터 펀치>는 앞서 소개한 <무빙>처럼 웹툰을 원작으로 한 히어로 시리즈물이다. 2020년에 공개된 <경이로운 소문>의 후속작으로, 전편의 등장인물에 신입 멤버가 추가되고, 새로운 능력으로 아귀들을 잡아 나서는 이야기를 담았다.
한국의 오래된 정서인 이승과 저승, 저승사자를 기본 모티브로 현대적 해석을 더한 세계관을 가진 점이 특징이다. 카운터들의 능력과 스타일도 재미를 더한다. 이승으로 도망친 악귀들의 악행을 막고 저승으로 돌려보내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카운터는 멋진 슈트 대신 빨간 운동복을 입고 싸운다. 촌스럽지만, 보면 볼수록 뭔가 ‘원 팀’의 느낌이 강하다. 까만 옷을 입은 무서운 저승사자가 아니라 우리 이웃과 같은 모습의 히어로로 친근감을 더한다.
동양의 정서와 휴머니즘에 더해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 또한 드라마의 힘을 보탠다. 시즌 1에서 카운터들의 사연을 듣고 눈물이 찔금했던 것이 사실이다. 시즌 2는 이미 다 아는 카운터들의 사연보다, 액션에 더 집중한다. 카운터와 악귀의 싸움에서 벌어지는 CG의 물량공세는 인상적이다. 다만 세계관과 화려한 스케일을 자랑했지만 캐릭터의 부족한 서사와 개연성 없는 전개는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구미호뎐1938(2023) – 구미호가 선사하는 판타지 액션
<구미호뎐1938>은 2020년 방영한 <구미호뎐>의 두 번째 시즌으로, 1938년에 불시착한 구미호 ‘이연’(이동욱)이 현대로 돌아가기 위해 펼치는 판타지 액션 활극이다. 지난 시즌 구미호와 인간의 판타지 로맨스와는 달리 미스터리와 레트로의 분위기가 부각되어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구미호뎐> 시리즈는 산신, 요괴, 이승과 저승 등 동양적 감성의 토대 위에, 구미호 설화를 효과적으로 접목시켜 세계관을 형성한다. 특히 시즌 2인 <구미호뎐1938>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했는데, 항일운동과 일본 요괴 처단이라는 역사적 사실과 판타지의 결합으로 흥미로운 스토리를 만들어 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산신'은 구미호, 부엉이, 호랑이 등 산을 지키고 담당하는 신령으로, 애니미즘 신앙에서 비롯된 한국의 대표적인 마을 수호신이다. 사람의 몸으로 산신의 능력을 발휘하며 백성을 구원하려는 모습은 K-히어로의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낸다.
전체적으로 드라마 <구미호뎐 1938>은 강한 한국적 색채와 빠른 전개로 지루함 없이 작품에 몰입하게 한다. 우리나라 고유의 다양한 요괴를 볼 수 있는 풍성한 볼거리와 특유의 코믹적인 요소가 결합된 새로운 액션-히어로물로 시청자들을 즐겁게 할 것이다.
아일랜드(2022) – 악을 잡으려고 악을 행하는 다크 히어로
드라마 <아일랜드>는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판타지 액션물이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악에 대항해 싸워야 하는 운명을 가진 인물들의 슬프고도 기이한 여정을 주제로 한다.
<아일랜드>는 제주 토속 설화를 바탕으로 ‘권선징악'의 기조를 충실하게 따른다. 드라마의 주인공이자 영능력자 ‘반'(김남길)은 악령을 퇴치하는 다크히어로다. 반은 인간, 반은 요괴인 비극적인 존재로, 악령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하지만 그 방법이 상당히 폭력적이고 비윤리적이다. 차갑고 독선적인 멘트와 행동도 전형적인 히어로와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그런 츤데레적인 모습이 캐릭터의 매력을 배가한다. 여기에 세상을 수호하기 위해 자신을 버리면서까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고뇌하는 부분은 히어로의 근원적인 질문을 부각시켜 시청자의 공감을 이끈다.
드라마 <아일랜드>는 원작 캐릭터와의 높은 싱크로율과 훌륭한 연기력의 캐스팅은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각색으로 달라진 원작의 스토리와 훼손된 캐릭터성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제주의 설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컨셉은 히어로물의 소재를 확장시키며 신선한 재미를 선사한다.
테일러콘텐츠 에디터 보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