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문>

먼저 김용화 감독을 위한 변명부터 해야겠다. 감독은 가만히 있는데 왜 내가 변명을 하냐고? 사실이다. 내가 굳이 변명을 대신할 이유는 없다. 그래도 일단은 좀 들어보시라. 김용화 감독은 <더 문> 관객과의 대화 행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직까지 한국 관객분들이 SF를 대하는 거리감이 상당하다고 느꼈다" 즉각적으로 포화가 쏟아졌다. 영화를 못 만들어 놓고 애먼 관객을 비난하는 거냐며 커뮤니티도 기사도 난리가 났다. 포인트가 잘못된 이야기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당신이 280억 제작비를 들여 누적 겨우 50만을 기록한 영화를 연출한 감독이라면 팬들이 잔뜩 모인 자리에서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는가. 감독은 속상함과 애석함과 미안함이 섞인 감정으로 무슨 말이라도 하려다 그런 말을 했을 뿐일 것이다. 가만 생각해 보면 한국 관객이 SF를 대하는 거리감이 상당한 것도 사실이다. 물론 그건 장르에 대한 호오 때문이라기보다는 지난 한국 SF영화들에 느낀 실망감으로 인한 거리감일 것이다. 결국 이유는 SF영화를 만드는 한국 감독과 제작사들에 있다. 아, 그러니까 이건 결국 김용화 감독을 위한 변명이 아니다.


<내츄럴 시티>나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까지 가지는 말자. 이 영화들이 등장했던 2000년대 초반은 SF 장르를 시도하기에는 아직 한국 장르영화 시장 자체가 무르익지 않았던 시기였다. 어쨌거나 그들은 시도를 했고 맹렬하게 망했다. 그리고 20년 동안 이 장르는 어둠 속에 묻혀 빛을 볼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7광구>도 있지 않았냐고? 그 영화는 그냥 없었던 걸로 치자. 그래도 괜찮다. 한국 SF영화의 본격적인 태동은 2020년대로 보아야 한다. 조성희 감독의 <승리호>, 연상호의 <정이>, 배우 정우성이 제작한 시리즈 <고요의 바다>와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시리즈 <택배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극장용으로 기획됐다가 결국 OTT를 선택한 <승리호>, <정이>와는 달리 김용화의 <더 문>은 대담하게 극장 개봉을 시도했다. 사실 나는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과 엄태화 감독의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이 목록에서 제외할 생각이다. 전자는 판타지를 섞은 일종의 마블 영화에 가깝고 후자는 재난영화 장르 속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정이>

결론적으로 단 한 편도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이건 좀 절망적인 상황이다. 조성희, 연상호, 김용화 같은, 장르적 상상력을 충분히 인정받아 온 중견 감독들이 내놓은 SF영화가 모조리 비평적-흥행적으로 재앙에 가까운 결과를 낸 건 절망이라고 해도 좋다. 물론 넷플릭스 같은 OTT로 공개한 영화는 흥행을 따질 수는 없다. 다만 나는 확신한다. 이 모든 영화들은 코로나 판데믹이 지난 이후 극장 개봉을 했더라도 충분한 수익을 기록하지 못했을 것이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나는 이 영화들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덫이 됐다고 주장할 참이다. SF영화 제작 붐은 두 가지 기본 요소가 갖추어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자본력과 기술력이다. SF는 돈이 많이 드는 장르다. 감독들이 상상하는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프로덕션에 막대한 자본을 투자해야만 한다. 2020년대 한국 영화계는 수백억을 투자할 만한 자본력을 갖췄다. 여러 특수효과 스튜디오의 오랜 도전으로 이제는 상상력을 화면에 구현할 만한 기술력도 얻었다. 대자본 SF영화들이 만들어질 수 있는 기본이 완성된 것이다. 그러니 시나리오를 가져오라! 우리도 한번 만들어보자! 한국 투자사들은 아직 보수적인데 넷플릭스는 SF 좋아한대! 때가 왔다!


때가 아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문제는 너무 분명하다. SF영화를 연출한 감독들의 나이는 대부분 40대에서 50대다. 조지 루카스, 스티븐 스필버그와 제임스 카메론이 SF 장르를 마침내 메이저 장르로 끌어올린 70년대 말과 80년대 어린, 혹은 청년 시절을 보내며 SF영화들을 탐미했던 세대다. 그 시기 리들리 스콧의 <에일리언>과 <블레이드 러너>를 비롯한 몇몇 영화들은 SF가 엔터테인먼트를 넘어선 가히 철학적인 질문까지 던지는 아트가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할리우드 SF영화와 SF문학의 세례를 받은 일본 아니메, 애니메이션 작가들이 <아키라> <공각기동대> 같은 시대적 걸작들을 내놓은 것도 그 시기였다. 여러모로 1980년대는 이후 만들어진 거의 모든 SF영화의 어떤 토대가 구축된 시대였다. 2000년대 할리우드 SF영화들은 1980년대 선배들의 세계로부터 완전히 떼어놓고는 이야기할 수조차 없다.

<고요의 바다>와 <택배기사>

다만 많은 다음 세대 할리우드 작가들은 1980년대의 출발점으로부터 뭔가 다른 창의적인 이야기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워쇼스키 자매의 <매트릭스> 시리즈,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 <인터스텔라> <테넷>, <디스트릭트 9> <오블리비언> <그녀> <그래비티> 등은 전 세대 선배들의 유산에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가미해 만들어진 훌륭한 SF영화들이다. <가타카> <문> <엑스 마키나> 같은 영화들은 거대 자본 없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만으로도 좋은 SF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증거다. 어쨌거나 할리우드는 뭔가 새로운 걸 하려고 애쓰고 있다. 문제는 한국이다. 2020년대 SF영화를 만든 한국 감독들의 상상력은 1980년대의 어느 지점에 정확하게 멈춰있다. 그들은 어린 시절 좋아했던 할리우드 영화와 일본 아니메의 레퍼런스들을 잔뜩 끌어온 뒤 이리저리 조합해서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래서 2020년대 한국 SF영화들은 감독들이 좋아했던 영화들의 레퍼런스로만 가득하다.

<승리호>

하나하나 이야기해 보자. 조성희 감독의 <승리호>가 떠올리게 만드는 영화들은 다음과 같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많은 요소들, <스페이스 트러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엘리시움> 등등등. 연상호 감독의 <정이>가 떠올리게 만드는 영화들은 다음과 같다. <공각기동대> <로보캅> <블레이드 러너> <애드 아스트라> <엣지 오브 투모로우> <아이, 로봇> <소스 코드> <매트릭스> 등등등. 시리즈인 <고요의 바다>는 그냥 통째로 <에일리언> 시리즈의, <택배기사>는 원작 웹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드 맥스>를 포함한 오랜 할리우드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들의 레퍼런스 짜깁기나 마찬가지다. <더 문>은 <그래비티> <마션>을 빼놓고는 아예 존재 자체를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더 중요하게 지적해야 할 문제는 각각의 감독들이 자신들이 끌어온 레퍼런스에서 더 나아갈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사실이다. 레퍼런스로도 좋은 영화를 만들 수는 있다. 레퍼런스만으로 좋은 영화를 만들 수는 없다. <정이>의 문제는 연상호 감독이, 자신이 오랫동안 사랑해 온 영화의 레퍼런스들을 끌어온 다음 레퍼런스들이 이미 해낸 방식으로 이야기를 끌어나간 뒤 레퍼런스들이 닫은 방식으로 영화를 닫는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어떠한 창조적인 지점도 없다. <더 문>의 김용화 감독도 마찬가지다. 더 심각하다. 요즘 한국 감독들은 지난 할리우드가 이미 해낸 레퍼런스 위에 할리우드에 가까운 기술적 스펙터클을 한국에서 한국 배우들을 데리고 해내면 관객들이 재미있어할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2020년대의 한국 관객은 더는 그렇지 않다. “우리도 이 정도는 할 수 있네"라며 후한 별점을 주는 관객들의 존재는 이미 사라졌다. 코로나 판데믹 이후 한국 관객은 (좋은 방향으로) 더 까탈스러워졌다. 이제 한국 관객은 할리우드 영화와 한국 영화를 직접적으로 비교한다.

<애드 아스트라>와 <그래비티>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미 한국문화는 전 세계적인 무언가가 됐다. 블랙핑크 노래가 두아 리파의 노래와 직접 빌보드에서 경쟁하고, 정국의 노래가 저스틴 비버의 노래와 경쟁하는 시대가 열렸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스펙터클로 승부하려면 할리우드가 해내는 정도는 보여줘야 관객은 감응한다. <정이>에서 김현주가 아무리 <공각기동대>와 <아이, 로봇> 스타일의 액션을 해내도 그건 지금 관객에게 ‘이미 오래전에 본 무언가'일 따름이다. <더 문>에서 도경수가 아무리 달 표면에서 월면차를 타고 질주해도 <애드 아스트라>의 놀랄 정도로 예술적인 월면 추격 장면을 능가할 수는 없다. <그래비티>에서 인간 배우들을 우주에 집어넣고 카메라를 정신 나간 듯이 돌리던 놀라운 시퀀스를 보며 감탄한 관객들에게 <더 문>의 특수효과로 만들어진 시퀀스들은 심심하기 짝이 없다. 비슷하게 할 수 있다고 해야만 하는 영화라는 건 없다. 300억으로 3,000억짜리 블록버스터와 대결할 수는 없는 일이다. 레퍼런스로만 가득한 시나리오라면 더더욱 안된다. 그렇다면 방법은 있는 걸까?

나는 아주 과격한 방법을 하나 제안할 생각이다. 일단 오리지널 시나리오는 잊어라. 완전히 잊어버려라. 창작자 여러분이 사랑하는 과거의 작품들의 레퍼런스로 가득한 오리지널 시나리오는 이제 폐기하는 게 낫다. 대신 SF문학에서 길을 발견하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우리가 목도한 가장 훌륭한 할리우드 SF영화 두 편 역시 오리지널 시나리오가 아니었다. SF문학의 각색이었다. 드니 빌뇌브의 <컨택트>는 우리 시대 가장 위대한 SF문학가 중 한 명인 테드 창의 원작(「네 인생의 이야기」)을 기반으로 했다. <듄>은 지난 시대 가장 위대한 SF문학가 중 한 명인 프랭크 허버트의 원작을 각색한 것이다. <블레이드 러너 2049>도 아마 SF영화 역사상 최고의 걸작일 <블레이드 러너>라는 원전이 있었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쓰지 않냐고? 여러분. 그것은 크리스토퍼 놀란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될 수 있는 사람은 몇 없다. 당신은 당연히 아니다.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도 있지 않냐고? 여러분. 그것은 카메론이다. 5,000억을 짊어진 카메론이다. 역시 당신은 아니다. 그러니 자신만의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꿈꾸지 말고 위대한 SF문학의 창고를 뒤져서 아이디어를 찾으라. 어렵지 않다. 당장 영화인 여러분의 주변만 쓱 둘러봐도 ‘이 소설은 꼭 영화화해야 한다고!’라며 열을 올릴 SF문학광들이 끝없이 튀어나올 것이다. 봉준호도 에드워드 애슈턴의 소설을 기반으로 <미키 17>을 만들고 있지 않은가. ‘그’ 봉준호도 말이다.


<크리에이터>

한국만 이 지경이 아니라는 사실을 마지막으로 언급하며 이 글을 끝내야겠다. 나는 가렛 에드워즈의 신작 <크리에이터>를 보고 한국 SF영화의 진한 향기를 느꼈다. 이 영화는 <터미네이터> <아바타> <블레이드 러너> <A.I.> <엘리시움> <공각기동대> <아키라> 「총몽」을 모조리 쉐이커에 넣고 흔들어 섞은 뒤 번드르르한 특수효과와 신파를 한 방울씩 넣어 완성한 SF 레퍼런스 칵테일이었다. 가렛 에드워즈는 나와 같은 1975년생이다. 지금 한국 SF영화를 만드는 한국 감독들과도 비슷한 나이다. 어쩌면 SF 장르에서 오리지널리티가 떨어져 가는 건 한국만의 문제도 아니었던 것 같다. 1980년대 SF 영화와 아니메를 보고 자란 세대는 어쩌면 그 풍요로운 아카이브 속에 상상력이 갇혀버린 걸지도 모른다. 슬픈 일이지만 역시 빠져나갈 방법은 있다. SF문학의 아카이브다. 거기에는 아직도 할리우드가 구현하지 못한 매력적인 아이디어가 가득하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제작자와 감독 여러분은 지난 SF문학의 아카이브를 뒤지는 것으로 다시 출발하면 된다. 필립 K. 딕과 로버트 하인라인과 알프레드 베스터의 걸작들도 저작권이 딱히 비싸진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권하고 싶은 건 그렉 이건의 단편집인데 이건 너무 내 취향이니 참고만 하시길 부탁드린다.


김도훈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