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영화제든 화제의 작품이 적어도 하나는 있다. 하물며 한 해의 막바지에 열리는, 한국 최고 규모의 영화제라면 화제작이 없을 수가 없다. 10월 4일부터 열린 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도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영화들이 있다. 거짓말 좀 보태서 영화의전당 방문객 아무나 붙잡고 "뭐 보러 오셨어요?"라고 했을 때 적어도 이 세 작품 중 하나는 나올 것이다. 많은 관객들의 관심을 받고, 피케팅을 이겨낸 실관람객들에게 호평을 받은 올해의 부산국제영화제 해외 영화 빅 3를 간단하게 정리한다.


가여운 것들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

출연 엠마 스톤, 마크 러팔로, 윌렘 대포

특이사항 2023년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이건 아닌데…' 싶으면서도 자꾸만 생각나고, 즐기고 싶은 그런 마음. 어렵게는 '길티 플레저'라고 하는 이 감정을 영화로 옮기자면 요르고스 란티모스만큼 적합한 감독도 없다. 그리스 출신의 이 영화감독은 어딘가 살짝 엇나간 듯한 환경에서 일어나는 부조리를 담담하게 그리며 영화계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다졌다. 그가 연출한 <송곳니>, <알프스>, <더 랍스터>, <킬링 디어>,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는 회화적인 이미지에서 불쾌한 감정을 빚어내는 데 알싸한 맛을 남기며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런 그가 선택한 신작 <가여운 것들>은 알라스데어 그레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한 과학자의 손에서 탄생한, 젊은 여성의 몸에 태아의 뇌를 결합시켜 태어난 벨라 벡스터의 일대기를 그린다. 원작 소설은 해당 내용을 "폐기물 더미에서 찾은 기록"이라고 능청스러운 뻥으로 시작하는데, 영화는 그런 뻥 대신 란티모스 감독 특유의 회화적이고 기이한 이미지를 부각한다.

사실 이 영화에서 란티모스 감독의 연출력도 기대포인트지만, 많은 이들이 특히 기대한 지점은 엠마 스톤의 연기일 것이다. 신체는 성인이나 두뇌는 유아인 인간의 움직임부터 감정의 변화까지, 엠마 스톤은 이 모든 과정을 영화에 스며들게 연기하며 "인생 연기"라는 평가마저 받고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수위 높은 장면 모두 소화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며 감독의 부담을 덜어주었다고.

기대작이 늘 호평을 받는 것은 아니나, <가여운 것들>은 영화제 실관람객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이란 타이틀과 어울리는, 그것을 넘어 내년에 열릴 아카데미 시상식까지 노려볼 만한 기이하고도 대중적인(수식어조차 이처럼 다른) 영화로 인정받았다. 국내는 2024년 개봉 예정.


괴물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안도 사쿠라, 나가야마 에이타, 쿠로카와 소야, 히이라기 히나타

특이사항 칸 영화제 각본상, 사카모토 류이치의 영화음악 유작

<어느 가족> 이후 프랑스(<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대한민국(<브로커>)를 경유한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다시 고국 일본에서 신작을 연출했다. 이번 작품 <괴물>은 히로카즈가 다시 돌아온 것은 물론이고, 처음으로 시나리오를 직접 집필하지 않아 화제를 모았다. 그런 그가 믿고 선택한 시나리오 작가는 사카모토 유지. <도쿄 러브스토리>, <마더>, <그래도, 살아간다>, <콰르텟> 등 명작 드라마와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공동 각본),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를 집필한 명작가로 이번 칸 영화제에서도 각본상을 수상했다.

이번 영화는 어딘가 이상해진 소년 미나토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시점으로 펼쳐진다. 엄마 사오리, 교사 미치토시, 미나토와 그의 친구 요리. 이렇게 인물들의 시점을 따라가는 영화는 각자가 가진 시선의 편협함을 담았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나 교사처럼 교육계에 헌신하는 사람에게 특히 인상적일 것이라는 후기가 인상적이다. 기대작인 만큼 야외 상영 4천석을 모두 매진시켰고, 실관람객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각본가 사카모토 유지 외에도 이번 영화의 포인트를 더 뽑자면, 올봄 세상을 떠난 사카모토 류이치가 음악감독으로 참여한 유작이라는 점. 사카모토 류이치는 고레에다 감독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이번 <괴물> 음악을 완성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어느 가족>에서 훌륭한 연기를 보여줬던 안도 사쿠라의 호연과 '아이 영화'의 대가 고레에다 감독 작품답게 쿠로카와 소야, 히이라기 히나타의 존재감이 상당하다는 후문. 일본 현지에선 6월에 개봉했으며, 국내는 11월 개봉 예정이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출연 오미카 히토시, 니시카와 료, 코사카 류지, 시부타니 아야카

특이사항 베니스영화제 은사자상 수상

이제는 고레에다 히로카즈만큼 한국 관객에게 익숙한 이름, 하마구치 류스케. 2021년 <드라이브 마이 카>와 <우연과 상상> 신작 2편 모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했던 전적이 있으니, 이번 신작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도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한국에서 최초 공개했다. 강렬한 제목에서 암시하듯, 하마구치 류스케의 기존 영화들과는 궤를 달리한다. 그럼에도 베니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인 은사자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뒀다. 다른 것보다 영화의 탄생 일화가 무척 독특한데,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음악을 맡은 에이코 이시바시가 하마구치 감독에게 '공연용 영상 제작'을 부탁했고 그게 우연찮게 장편화된 것이 이번 신작이다(원전인 공연용 무성 영상은 'GIFT'라는 제목으로 별도 공개 예정).

영화는 한적한 마을에 대기업이 글램핑장을 만들겠다고 들어서면서 일어나는 일을 그린다. 별다른 사건이 돋보이지 않는 일상적인 풍경을 그려온 하마구치 류스케는 이번 작품에서 양측의 갈등을 다양한 형태의 상황으로 묘사하며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갈등이 극에 치달은 후반부에 가면 '스릴러'나 '호러'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관객을 숨죽이게 한다. 그 와중에도 하마구치 감독의 주특기, 인물의 캐릭터성이나 맛깔나는 대사는 그대로 살아있어 이전과 다르면서 더 깊어졌다는 반응이 많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란 점을 빼면, 이번 작품은 특히 셀링 포인트가 없는데 그의 초기작처럼 주연 배우 모두 첫 작품이기 때문. 인기 배우를 기용하기보다 비전문배우를 기용해 참신하다면 참신한, 어색하다면 어색한 연기조차 작품의 분위기를 녹이는 그의 적성이 이번 영화에서도 적절했던 듯하다. 국내 개봉 시기는 미정.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