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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아이들

씨네플레이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표현하는 아이들은 낯설다. 어른이 익히 아는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한 아이와는 거리가 있다. 아이들에겐 그들만의 세계가 있고, 높다랗게 내려보는 어른의 시선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감독은 ‘진짜’ 아이들의 모습을 포착하는 데 능하다. 전 세계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던 <아무도 모른다> 이후, 감독은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어느 가족>을 지나 다시 <괴물>로 돌아왔다. 어른은 모르는 아이들의 고통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괴물>은 <아무도 모른다>를 연상케 한다. 오늘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아이들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때론 밝고 유쾌하게, 때론 텅 빈 눈으로 어른을 응시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아이’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고 인간을 조명하는 감독의 시선을 따라가보자. 

 


아무도 모른다

 <아무도 모른다>는 1988년 일본에서 발생한 ‘스가모 아동 방치 사건’을 모티브로 삼았는데, 실제로 집에 어린이 4명만 두고 어머니가 집을 나갔던 사건으로, 아이들 모두 출생신고가 되어 있지 않았다. 영화 시작에서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는 감독의 말이 나오지만, 영화는 고발 영화라기보단 실화 바탕의 슬픈 극영화에 가깝다. 실제로 감독 역시 <아무도 모른다>에 대해 “비극이 아니라 성장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하기도. 어머니는 같지만 아버지는 모두 다른, 출생신고조차 되어 있지 않아 학교에도, 병원에도 갈 수 없는 아이들. 태어나서 ‘자신을 숨기는 거짓말’부터 배운 그들은 어느 날, 엄마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말과 함께 버려졌다. 그들은 ‘엄마가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들이 아니라는’ 사실에 슬픔을 느낄 새도 없이 현실을 살아가야 했고, 장남 아키라(야기라 유야)는 고작 열두 살에 ‘책임’이라는 단어를 쓸 줄도 모르지만 동생들을 책임진다. 다른 아이들 역시 아무도 구하지 않는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서로에게 의지하며 성장해나간다. 말 그대로, 성장이다. 실제로 장남 역을 맡았던 야기라 유야는 그 안에서 성장기를 겪으며 키가 크고, 목소리가 변했다. 감독은 이러한 연출에 대해 “작가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부자유를 받아들이고 바꿀 수 없음을 인정하는 태도, 그리고 이 자유롭지 못함을 재밌다고 생각하는 감각”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영화 속 아역 배우들은 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친다. 사실, ‘아역 배우’, ‘자연스러운 연기’라는 단어가 다소 어울리지 않을 만큼 유기된 아이들의 모습 그대로에 가깝다. 이는 감독의 독특한 연기 디렉팅도 한몫했는데, 그는 아이들에게 대본을 건네지 않고 말로만 상황을 설명한 뒤 아이들의 반응에 따라 대본을 고쳤다. 일례로, 영화 속 셋째인 시게루 역을 맡았던 키무라 히에이는 감독에게 ‘무선 조종기를 갖고 놀아도 된다’라는 말만 듣고 놀고 있었는데, 장남 아키라 역이었던 야기라 유야가 갑자기 화를 내자 정말 화난 줄 알고 그날 내내 유야의 뒷모습만 쳐다보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그만큼 현실과 연출의 경계 없이 아이들의 모습을 그대로 담은 셈. 칸 영화제에서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야기라 유야의 연기에 대해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결국 잊혀지지 않는 건 야기라 유야의 얼굴이었다”고 평하기도 했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아무도 모른다>가 비극이라면,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이하 <기적>)은 동화다. 규슈 신칸센 개통을 기념한 영화 제작을 요청받은 고레에다는 <아무도 모른다>와는 다른 아이들의 모습을 영화에 담고 싶어 수락했고, 그렇게 고레에다표 동화가 완성되었다. 주인공 오사코 코이치(마에다 코키)는 초등 6학년으로 부모님의 이혼으로 엄마 오사코 노조미(오오츠카 네네)와 가고시마현에 살고 있다. 그의 동생인 키나미 류노스케(마에다 오시로)는 아버지인 키나미 켄지(오다기리 조)와 후쿠오카현에 있다. 코이치는 화산이 폭발해 가고시마가 사라져 가족 모두 다시 함께 살길 바라고 있다. 그래서 그가 바라는 기적은 화산 폭발이다. 그는 신칸센이 엇갈리는 순간 소원을 빌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얘기를 듣고 기적이 필요한 다른 아이들과 함께 여행길에 오른다.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는 기적, 좋아하는 선생님과 결혼할 수 있는 기적, 배우가 되는 기적, 가족이 다시 함께 살 수 있는 기적처럼 거대한 기적은 결국 이뤄지지 않는다. 그러나 여행길에서 그들은 꾀병을 눈감아주는 선생님이나 하룻밤을 보낼 수 있게 자리를 내어준 노부부처럼 작은 기적을 ‘만난다’. 

 

여행이 끝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그들은 더 이상 산타를 믿는 아이들이 아니다. 이따금 화면에 비치는 낯설 만큼 성숙한 그들의 얼굴에 관객은 당혹스러울 정도다. 하지만 아이들의 낯설 만큼 성숙한 얼굴이야말로 성장 그 자체다. 여정에서 부모의 개입은 없다. 부모는 그저 떠나기 전 아이들의 모습과 돌아온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볼 뿐이다. 성장의 과정은 볼 수 없으며, 이미 달라진 아이들의 모습을 단편적으로만 볼 수 있다. 영화는 부모는 보지 못했던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아이들은 기적을 바라는 과정에서 불합리를 경험하고, 바라는 것을 모두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점차 깨달아간다. 아이 특유의 ‘전능감’을 잃고 어른처럼 현실을 알아간다. 감독은 아이들이 성장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을 때 어른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란 질문에 “아이의 여정을 쫓아다니지 않고, 현관 앞에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어른이 내가 바라는 모습”이라며 “내 아이가 지금 3살인데, 아이가 더 자랐을 때 보여줄 수 있는 영화를 만들자는 생각으로 찍었다”고 답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낳은 정과 기른 정’을 서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영화는 6년간 기른 아들이 사실은 남의 아들이었을 때 벌어지는 두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인 료타(후쿠야마 마사하루)는 성공한 건축가이지만 냉담하고 엄격한 아버지다. 그는 아들 케이타(니노미야 케이타)가 느긋하고 경쟁심이 없어 영 마음에 들어하고 있지 않았는데, 자신의 피가 섞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역시 그랬군”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그는 혈연을 선택하지만, 이내 ‘아버지가 된다는 것’에 대해 배워나간다. 아버지는 혈연이 아닌, 들인 시간만큼이라는, 어쩌면 당연한 사실을 알게 되면서 영화는 마무리가 된다. 

 

영화는 아버지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두 아이의 연기 역시 훌륭하다. 크고 울망한 눈을 갖고 있는 케이타는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잘 배운 도련님’ 태가 나지만 타고나길 경쟁이 싫고 온건한 성격이다. ‘강해지기 위한 미션’이라 말하며 자신을 두고 친자를 선택하는 아버지에게 상처받았지만 아버지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아준다. 료타는 영화 초반에 ‘내 아들인데 왜 나를 닮지 않았을까?’라는 불만을 품었지만 영화에서 두 사람은 꼭 닮은 모습으로 나온다. 케이타가 도련님 태가 나는 것도, 예의 바르게 상대방을 대하는 모습도, 차분한 행동거지도, 모두 료타의 모습에서 보고 배운 것들일 테니. 친자인 사이키 류세이(황 쇼겐)는 외모는 어린 시절 료타와 닮았지만 장난스럽고 따뜻한 아버지 사이키 유다이(릴리 프랭키) 아래에서 자라면서 장난스럽고 활발하다. 료타가 류세이를 데리고 오면서 그의 장난기를 훈육하지만 류세이는 “왜?” 라고 반문하며 충돌한다. 기질적인 고집스러움은 자신과 닮아있음에도 료타는 그에게서 ‘혈연이기에 당연히 닮은 것들, 이해하는 것들’을 발견하지 못한다. 여담이지만, 류세이의 말버릇 “왜?”는 쇼겐의 원래 말버릇이라고. 

 


어느 가족

<어느 가족>의 원제는 <좀도둑 가족>이다. 여섯 명으로 구성된 가족이지만 그중 법적으로 가족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집주인이자 연금을 받고 있는 하쓰에 할머니(키키 키린), 가출하고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는 아키(마츠오카 마유), 파칭코 주차장의 주차된 차에서 구출된 쇼타(죠 카이리)와 부모에게 아동폭력을 당하고 있던 유리(사사키 미유), 그리고 가짜 부부인 노부요(안도 사쿠라)와 오사무(릴리 프랭키)까지. 쇼타의 아버지 격인 오사무는 쇼타에게 좀도둑질을 가르치고, 학교는 “집에서 공부할 수 없는 아이들이나 가는 곳”이라 설명한다. 할머니는 독거노인 연금을 받고 있으나 집에는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아키는 업소에서 가짜 사랑을 연기한다. 이외에도 영화는 오로지 가짜들의 이야기로만 이뤄져 있다. 그럼에도 가족을 이루며 온정과 신뢰에 기대어 살아간다. 

 

<어느 가족>이 특별한 이유는 그 신뢰가 무너졌을 때부터다. 쇼타는 차에 갇혀있던 자신을 오사무가 구해줬다 믿었지만, 실은 단지 도둑질을 하려다 발견했을 뿐이라는 생각이 미치자 가짜로 이뤄져 있던 좀도둑 가족의 세계에 현실을 개입시킨다. 여느 때와 같이 도둑질을 하던 그는 일부러 들키고, 다치고, 경찰에 잡힌다. 그렇게 따뜻하고 단단해보였던 좀도둑 가족은 현실에 의해 무너지고, 세상은 그들을 ‘유괴범’이라 불렀다. 쇼타는 오사무에게 실망하고, 오사무도 쇼타에게 “이제 아저씨로 돌아갈게”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쇼타는 오사무를 ‘아빠’라 생각하고, 린을 여동생으로 느낀다. 가족에게 실망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가족이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영화 속 그들은 여전히 서로를 가족으로 여긴다. 

 


괴물

이번에 개봉하는 <괴물>은 데뷔작 <환상의 빛>(1995) 이후 처음으로 직접 쓰지 않은 각본으로 연출한 작품이다. <괴물> 각본은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로 국내에서도 유명한 사카모토 유지가 집필했는데, 그가 먼저 고레에다 감독에게 연출을 제안했다고. 그는 “소재도 방법도 모두 공격적이어서 혼자서는 쓸 수 없었다”며 받아들인 이유를 밝혔다. 영화는 교권과 학생 인권의 충돌을 다루고 있다. 초등학생 아들이 어느 날 여기저기 흙으로 더럽혀진 채, 귀에서는 피가 나 붕대를 감은 채 돌아왔다. 그는 “선생님이 잡아당겨서 피가 났어”라고 답한다. 그길로 학교에 달려간 엄마는 교장과 교사를 향해 사건의 진상을 물으며 분노하지만 교사는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계속해서 사죄한다. 그래서 때렸느냐, 라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사죄만 반복하는 교사들. 보고서에는 “교사의 손과 학생 코 사이에 접촉이 있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영화는 가해자로 지목된 교사와 피해자인 아이, 그리고 그의 어머니까지 총 3가지 시점으로 사건을 바라본다. 작품의 근간을 이루는 진실은 하나가 아니며, 복잡하게 상호 이해관계에 따라 얽혀 있다. 시점이 바뀔 때마다 영화는 사건의 새로운 전모를 보여준다. 감독은 “어머니는 학교라는 조직을 이해하지 못하고 괴물이라 생각하고, 학교는 어머니를 괴물로 여긴다. 아이도 자신의 내면에 싹튼 알 수 없는 감정 너머에서 괴물을 본다”라고 작품에 대해 언급했다. 학부모는 교사의 무책임함에 분노하고, 교장은 사태를 무마하고자 하고, 그 과정에서 아이들의 진실은 뭉개진다. 주변인은 단편적인 사실만을 보며 잘잘못을 따진다. 시점에 따라 인물에 대한 관객의 판단이 완벽히 뒤바뀌는 상황을 보여주며, 영화는 누구나 누군가에겐 괴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현 사회에서 가장 대두되는 문제를 여러 시선에서 바라본 <괴물>은 순백의 피해자를 기대하며 가해자로 여겨지는 이들에게 보복성 테러를 하지 않았는지 관객들에게 묵직하게 질문한다. 이렇게만 말하면 지루하다 여길 수도 있겠지만 영화는 <아무도 모른다>보다도 훨씬 극영화의 특징을 잘 살렸다. ‘시점’이라는 영화적 트릭을 활용해 영화만이 줄 수 있는 재미를 극대화한 게 핵심. 


씨네플레이 객원기자 김명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