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와 완성도, 완성도와 인기. 둘 다 잡는 영화는 흔치 않다. 그리고 그 두 가지 성과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건 더 어려운 일이다. 상업영화의 본산지 할리우드의 나라 미국은 그런 영화들을 치하하고자 1989년부터 '국립영화등기부'를 운영하고 있다.
이 국립영화등기부는 공개한지 10년 이상 된 영화 중 “문화적, 역사적, 혹은 미학적으로 중요한 것”을 선정해 보존하는 데 의의를 두고 있다. 즉 이 등기부에 오르는 것만으로 해당 영화는 문화든 역사든 미학이든 성취를 거둔 것이 있다고 국가(정확히는 영화보존위원회 회원들)의 인정을 받는 것이다. 이렇게 인정 받은 영화는 미국 의회도서관에서 보존하는 대상이 된다.
매년 등기부에 새로 등록할 영화(최대 25편)을 선정하는 것은 의외로 흥미진진하다. 신규 영화를 폭넓게 고르는 편이라 고고한 예술영화만 있지도, 그렇다고 완전 대중적인 영화만 있는 것도 아니다. 올해 합류하는 25편 영화 역시 고전영화나 미국에서 특히 인기 있는 영화가 다수지만 한국에서도 오랜 시간 사랑받는 작품도 있어 반갑기까지 하다. 이번에 국립영화등기부에 오른 신작 25편과 그중 한국인도 기뻐할 만한 영화들을 소개한다.
A Movie Trip Through Filmland (1921)
<8시 석찬>(Dinner at Eight, 1933)
Bohulano Family Film Collection (1950s-1970s)
Helen Keller: In Her Story (1954)
<레이디와 트램프>(Lady and the Tramp, 1955)
<도시의 가장자리>(Edge of the City, 1957)
We’re Alive (1974)
Cruisin’ J-Town (1975)
<아람브리스타> (¡Alambrista!, 1977)
<패씽 쓰루>(Passing Through, 1977)
<페임> (Fame, 1980)
<마돈나의 수잔을 찾아서> (Desperately Seeking Susan, 1985)
The Lighted Field (1987)
<메이트원> (Matewan, 1987)
<나 홀로 집에> (Home Alone, 1990)
<퀸 오브 다이아몬드> (Queen of Diamonds, 1991)
<터미네이터 2> (Terminator 2: Judgment Day, 1991)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 (The Nightmare Before Christmas, 1993)
<결혼피로연> (The Wedding Banquet, 1993)
<마야 린의 비전> (Maya Lin: A Strong Clear Vision, 1994)
<아폴로 13> (Apollo 13, 1995)
<뱀부즐리드> (Bamboozled, 2000)
<러브 앤 바스켓볼> (Love & Basketball, 2000)
<노예 12년> (12 Years a Slave, 2013)
<스타로부터 스무 발자국> (20 Feet from Stardom, 2013)
<레이디와 트램프>

월트 디즈니의 쟁쟁한 애니메이션 사이에서 <레이디와 트램프>의 대표 명장면은 여전히 날것처럼 살아있다. 아마 이 영화를 안 본, 제목조차 처음 듣는 사람도 이 장면은 알 것이다. 애지중지 자란 레이디와 떠돌이로 사는 트램프가 스파게티를 먹으며 조금씩 가까워지는 이 장면. 이후 수많은 작품에서 패러디되고 오마주되는 이 장면만으로도 <레이디 앤 트램프>의 파급력은 칭송할 만하다.

물론 영화 외적으로도 <레이디와 트램프>는 이정표이다. 이 영화를 개봉하면서 월트 디즈니는 처음으로 배급 산업에도 뛰어들었고(브에나비스타 픽처스) 흥행 성공으로 제작과 배급을 병행하는 거대 미디어로의 발판을 마련했다.
<나 홀로 집에>


개봉한지 32주년을 맞이한 <나 홀로 집에>는 올해 정말 거한 생일상을 받는 듯하다. 얼마 전 맥컬리 컬킨이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이름을 올리면서 한 차례 축하를 받았는데, 이번엔 영화가 국립영화등기부에 등록돼 국가에서 인정한 엔터테인먼트 영화가 됐으니 말이다.
<나 홀로 집에>는 크리스마스날 얼떨결에 집에 홀로 남겨진 케빈(맥컬리 컬킨)이 2인조 좀도둑 해리(조 페시)-마브(다니엘 스턴)에 맞서 집을 지켜내는 과정을 그린다. 어린 소년이 도둑들을 골탕 먹이는 모습에서 속 시원한 웃음을 자아내고, 케빈이 무서워하던 주변인에게 도움을 받으며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히는 전개는 단순 코미디 영화 이상의 여운을 남겼다. 공개 당시부터 지금까지, 크리스마스 하면 떠오르는 영화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터미네이터 2>


영화 천재, 흥행 천재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터미네이터 2>. 제임스 카메론을 할리우드의 왕으로 끌어올린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이 영화에 대해 말하자면, 정말 몇 시간 동안 떠들 수 있는 팬도 상당히 많을 것이다. 미래에 인간의 지도자가 될 존 코너를 지키기 위한 사투를 그린 이 영화에서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액션스타로 완벽하게 자리 잡았다. 물론 린다 해밀턴의 카리스마, 에드워드 펄롱의 소년미, 로버트 패트릭의 존재감 모두 빼놓을 수 없다.
<터미네이터 2>는 특히 기술적인 면에서 오래 보존해야 할 작품이다. CG와 아날로그 특수효과를 적재적소에 사용해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작품의 위상을 더욱 빛내주고 있다. 제임스 카메론의 기술 이해도와 이를 활용한 연출력을 엿볼 수 있는 부분.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


개봉 30주년(북미 기준)을 맞이해 얼마 전 극장을 찾은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도 국립영화등기부의 일원이 됐다. 할로윈 마을의 스타 잭이 크리스마스에 매료돼 산타 대신 크리스마스를 준비한다는 스토리를 스톱 모션 뮤지컬로 풀어낸 영화다. 연출은 헨리 셀릭이 맡았지만 영화 전반에 흐르는 디자인이나 무드는 원안과 제작을 맡은 팀 버튼의 향기가 그득하다. 더불어 그의 영혼의 단짝 대니 엘프먼이 영화 속 스코어와 넘버를 담당해 오래도록 회자되는 명곡들을 선보였다. 이 영화만의 독창적인 감성에 팀 버튼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종종 속편 질문을 받기도. 영화를 기획하고 배급한 월트 디즈니는 할로윈 시즌에 해당 영화 관련 콘서트를 열기도 한다.

<아폴로 13>


우주 진출은 전쟁이었다. 당시 세계 강대국은 각자 우주 진출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 노력했다. 미국이 아폴로 11호로 달 착륙에 성공하며 인류 역사에 남을 환희를 맛봤지만, 반대로 가슴 쓸어내리는 순간도 자주 겪었다. 아폴로 13호의 사고와 귀환을 그린 <아폴로 13>도 의미가 깊은 영화 중 하나다.
아폴로 13호는 달 착륙을 위해 항해하던 중 산소 탱크 폭발 등 불길한 위기를 겪는다. 그럼에도 탐사대의 기지와 진 크래츠가 이끄는 미션 컨트롤 센터의 대처로 무사 귀환에 성공한다. <아폴로 13>은 이 과정을 당사자들도 인정할 만큼 현실적이고 사실적으로 영화에 옮겼다. 기적 같은 실화가 가진 동력과 론 하워드의 탄탄한 연출력 위에서 톰 행크스, 케빈 베이컨, 빌 팩스톤, 게리 시니즈, 에드 해리스가 펼치는 연기 앙상블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노예 12년>


올해 합류한 영화 중 가장 젊은 영화는 <노예 12년>이다. <스타로부터 스무 발자국>과 간은 2013년 개봉작이지만, <노예 12년>이 11월 개봉으로 가장 막내다. 10년 이상 된 영화만 후보인 국립영화등기부에서 10년 채우자마자 바로 선정했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노예 12년>은 역사적으로 보나 영화적으로나 보나 상당한 파장을 남긴 영화였다.
노예제가 있던 시절, '자유민' 솔로몬은 바이올린 연주자로 살다가 납치를 당해 노예가 되고 만다. 신분을 입중할 방법이 없는 그는 결국 12년간 노예 생활을 하게 된다.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노예 12년>은 인종차별로 점철된 미국의 역사를 다시 한번 고발할 뿐만 아니라, 평등이 무엇인지 다시금 돌이켜보게 한다. 추이텔 에지오포의 열연은 물론이고 각자 뜻을 품고 영화에 합류한 마이클 패스벤더, 베네딕트 컴버배치, 루피타 뇽오 등 배우들의 앙상블이 시대상을 더욱 뚜렷하게 형상화한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등장과 흥행,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 등 비평적 성과는 향후 할리우드에 중심에 설 '블랙필름'(주요 제작진이나 주요 인물이 흑인인 영화)에 더욱 힘을 실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