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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뿌리부터 흔드는 위기를 어떻게 받아들일텐가 〈사운드 오브 메탈〉

김지연기자

 

어떤 삶이든, 위기 하나 없는 삶은 없다. 그리고 그런 위기는 대부분 지나고 나면 '별 거 아니'라고 여겨지는 것도 적지 않다. 그렇기에 눈앞에 닥친 일이 때때로 크게 보일지라도, 그것들을 견뎌내고 살아갈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렇게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일이 내 삶과 나란 존재를 송두리째 흔드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갑자기 청각을 잃은 드러머 루빈처럼 말이다.

 


2019년 아마존 프라임으로 공개된 <사운드 오브 메탈>은 불쑥 찾아와 존재를 흔든 위기를 묘사한다. 루빈(리즈 아메드)은 메탈 밴드의 드러머다. 밴드라고 해도 멤버는 그와 보컬리스트 루(올리비아 쿡) 두 사람이다. 심지어 루는 그의 연인이다. 그러니까 이 밴드는 루빈의 삶이며 사랑이고 가족이다. 밴드는 투어 공연을 할 만큼 그럭저럭 인기도 있다. RV를 타고 투어를 다니며 여자친구와 음악을 하는 루빈의 일상은 볼품없어 보여도 꽤 행복해보인다.

 

문제는 갑자기, 그의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징조도 없이 갑자기 세상의 모든 소음이 죽듯 루빈의 귀는 들리지 않는다. 청력 테스트를 받아보니 청력의 80%가 손상됐고 고작 20%만 살아있단다. 다시 들을 수 있는 방법은 외이도를 우회하는 이식 수술을 받는 것뿐이고, 수술비는 약 4만 달러라고 한다.

그 어떤 사소한 질병이라도 사람의 마음을 흔들기 충분한데, 청각 이상은 루빈에게 특히 치명적이다. 단지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에게 음악은 루와의 연결고리이자 유일한 삶의 낙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투어 장소로 운전하는 내내 그가 즐길 수 있는 거라곤 루와 함께 나누는 대화뿐이다. 그래서 루빈은 처음에 자신의 장애를 인정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할 수 있다는 듯 무대에 올라 드럼을 내리친다. 그렇지만 그 기분도 잠시, 루빈은 공연 도중 무대를 내려가고 루가 그 뒤를 쫓아온다.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루가 하는 말도 제대로 듣지 못하는 루빈은 간신히 고백한다. 귀가 들리지 않는다고.

 

청각 장애 커뮤니티를 이끄는 조(왼쪽)
청각 장애 커뮤니티를 이끄는 조(왼쪽)

투어를 담당하던 관계자는 루빈의 상태를 듣고 청각장애 커뮤니티를 알려준다. 커뮤니티를 이끌고 있는 조(폴 라시)는 루빈에게 마약 중독 때문에 청력에 이상이 생긴 걸 알려주면서 '루를 포함해 외부와의 연락을 모두 끊는 것'을 조건으로 커뮤니티에 합류하는 걸 제안한다. 루빈은 차마 루를 혼자 둘 수 없어 거절하려 하지만, 루가 루빈을 위해 먼저 절연했던 아버지에게 돌아가기로 결정하자 루빈은 루의 뜻에 따라 당분간 커뮤니티에서 살게 된다.


루빈은 커뮤니티에 조금씩 적응하기 시작한다.
루빈은 커뮤니티에 조금씩 적응하기 시작한다.

이쯤에서 관객은 두 가지 전개를 예상할 수 있다. 하나, 갑작스러운 청각 장애에 절망한 루빈이 끝내 적응하지 못하고 절망하는 것. 화를 전혀 모를 때, 조용하지만 시끄러운 '대화'에 끼지 못하는 루빈의 모습이 제시되면 이런 전개를 예상하게 된다. 하지만 루빈은 적응한다. 그는 청각 장애 청소년들과 어울리며 빠르게 현실에 적응한다. 걸림돌이 없던 건 아니지만 그것이 그가 커뮤니티에 녹아드는 데 영향력을 미치진 못한다.

그럼 다른 하나. 루빈이 커뮤니티에 완벽하게 적응해 '청각장애인'으로서의 삶에 정착하고 평화를 얻는 것. 그것도 아니다. 루빈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와중에도 틈틈이 사무실에 숨어들어 루의 메일을 읽고 그의 일상을 찾는다. 듣는 것 이상으로, 소리로 먹고 살고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루빈은 여전히 '들리던' 시절로 돌아가길 꿈꾼다.

 

루빈의 애인이자 밴드의 보컬 루
루빈의 애인이자 밴드의 보컬 루

그렇게 루빈은 커뮤니티의 핵심 멤버가 될 것이라는 조의 예상과 달리 이식 수술을 받는다. 어떻게든 루와 보낸 행복했던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걸까. 그러나 이식 수술은 그의 청각을 완벽하게 돌려놓는 것이 아니었고(의사의 말을 인용하면 “소리를 듣고 있다고 뇌를 착각하게 할” 뿐이다), 루와 다시 만난 루빈은 결코 예전과 같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사운드 오브 메탈>의 날카로운 지점은 이 결론에 있다. 이런 유의 영화는 위기를 극복하는 주인공을 '성장'으로 포장하기 마련이다. 그것을 이겨내는 것이 승리이며 삶의 새로운 장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그러나 <사운드 오브 메탈>은 단호하게도 이미 파괴된 삶은 다시 복원할 수 없고, 그럴 수 있다는 믿음조차 환상임을 지적한다. 루빈은 음악이든 루와의 사랑이든 지난 삶의 조각을 기억하며 청각을 복원하려 하지만, 청각도 이전과 같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미 자신조차도 예전과 같을 수 없었던 것이다. 삶에 정답은 없다지만, 적어도 (듣는다는) 착각 대신 (듣지 못한다는) 직시가 중요한 것을 루빈은 마침내 깨닫는다.

<사운드 오브 메탈>은 이 순간들을 소리로 표현한다. 갑자기 청각이 들리지 않는 순간의 공포, 옅게 들리며 먼 거리감을 자극하는 소음의 답답함, 미끄럼틀의 진동으로 오가는 소소한 소통, 들린다고 할 수 없는 신경의 착각들까지.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처럼 <사운드 오브 메탈>은 '백문이 불여일청'이다. 한 번이라도 듣는 것에 문제를 겪어본 사람이라면 이 영화의 사운드 디자인이 얼마나 훌륭한지(그리고 얼마나 현실적으로 공포스러운지)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운드 오브 메탈>에서 유독 필요 이상으로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 있다. 조가 루빈에게 주는 '과제'다. 조는 루빈에게 방을 내주고, 그곳에 가만히 앉아 무언가 써 내려가도록 시킨다. 어떤 내용이어도 상관 없다. 누가 읽지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일종의 참선이나 폐관 수련처럼 읽힌다. 처음 그 방에 온 루빈은 그 고요를(또는 안 들리는 이 상황을) 참지 못하고 애꿎은 도넛만 으깬다. 그러다 점점 이 행동, 마구잡이 필기로라도 속을 비우는 것에 적응한다. 재밌게도 관객에겐 이 영화 <사운드 오브 메탈>이 그것과 비슷한 감각을 준다. 관객은 루빈의 상황에 맞춰 의도적으로 소리를 거둬내는 이 영화의 빈 공간에 우리의 생각과 잡념을 덜어낸다. 아무도 알지 못하고, 특별한 뜻도 없지만 그 잔여물들은 영화와 함께 사라진다. 루빈이 겪는 굴곡의 마침표에서 관객 또한 나름의 해답과 변화를 맞이하는 것이다. 이렇게 빈 공책과 같은 <사운드 오브 메탈>의 미덕을 다른 사람들에게 넌지시 권하고 싶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