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영화들을 되돌아보며 극명하게 호불호가 갈렸던 영화 3편을 뽑아봤다. 작품에 대한 호불호는 사는 곳의 문화와 사회에 따른 영향을 받을 수 있고, 또 개인의 취향이 깊이 연관된 영역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영화는 천차만별의 취향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영화계의 다양성은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하고,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게 하는 작품들에 의해서 늘어난다. 올 한 해에도 대담한 시도를 통해 여러 의견을 낳게 하는 영화들이 있었다. 그중 3편만 뽑아서 소개한다. 여기서 언급한 의견이 자신과 다르더라도 신경 쓸 필요 없다. 그대들의 취향은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 생각해 보길 바란다.
〈애스터로이드 시티〉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이 총출동해 기대를 모았다. 톰 행크스, 스칼릿 조핸슨, 제이슨 슈왈츠먼, 마고 로비에 이어 웨스 앤더슨 사단인 틸다 스윈튼, 제프리 라이트, 애드리언 브로디, 윌렘 대포, 토니 레볼로리 등이 출연했다.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가상의 사막 도시 ‘애스터로이드 시티’에서 벌어진 전대미문의 사건을 다룬다. 애스터로이드 시티에 전쟁 사진작가 스틴벡(제이슨 슈왈츠먼)과 천재 소년인 그의 아들 우드로, 유명 배우 밋지 캠블(스칼릿 조핸슨)과 그녀의 딸 다이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모여든다. 이들은 행성 궤도를 관찰하기 위해 한데 모여 밤하늘을 바라보던 중 우주에서 날아온 외계인을 목격한다. 근접 조우를 경험한 후 사람들은 동요하고, 외계의 존재를 해석하려고 한다. 이들은 미지의 존재를 맞닥뜨리고 각자 삶의 의미를 찾아 나서기 시작한다.
1955년의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냉전 시대의 불안한 기운으로 가득 차 있다. 1950년대는 핵탄두가 언제 날아올지 몰라 전쟁에 대한 긴장으로 팽배했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불안에 떨며 각종 음모론과 종말론을 만들어 냈다. 그들의 불안은 지금 팬데믹 이후의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불안과 닮아 있다. 전 세계를 휩쓴 전염병으로 인해 완전히 바뀐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기존의 가치관으로는 풀 수 없는 새로운 문제들을 맞닥뜨리고 있다. 마치 애스터로이드 시티에 모여든 사람들이 미지의 존재를 처음 맞닥뜨린 것처럼.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올해 가장 극명하게 호불호가 갈린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 매체인 <씨네21>과 외신 <로저 에버트>, <인디펜던트>는 올해의 베스트 영화 10위 안에 꼽은 반면, <버라이어티>의 수석 영화 평론가는 이 영화를 올해 최악의 영화 다섯 편 중 하나로 꼽았다. 호파는 웨스 앤더슨의 형식이 정점에 달한 디오라마를 통해 인간의 연약함을 잘 다루었다고 언급했다. 불호파의 공통된 의견으로는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여전히 웨스 앤더슨의 강박증적인 양식에 얽매여 있으며, 서사를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을 들었다.
〈바비〉

마텔 사의 바비 인형을 모티브로 한 <바비>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여성 감독 그레타 거윅이 메가폰을 잡고, 노아 바움벡이 공동 각본으로 참여한 작품이다. 또 배우 마고 로비가 연기와 제작을 함께 맡으면서 기대를 불러 모았다. 바비(마고 로비)는 핑크색으로 물든 바비랜드에서 늘 완벽한 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불현듯 죽음을 생각한다. 그후 바비의 일상에는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특히 바비는 자신의 몸에 셀룰라이트가 생긴 것을 보고는 점점 생기를 잃는다. 바비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켄과 함께 현실 세계로 가 그녀의 주인을 찾아 나서고, 새로운 세상을 마주한다. 그레타 거윅 감독은 이전작 <레이디 버드>와 <작은 아씨들>에서 여성의 성장을 은유적이고 세심하게 그려냈던 것과는 달리 이번 작품은 페미니즘에 대한 주제를 직접적으로 다루었다.
<바비>는 개봉 17일 만에 전 세계적으로 매출 10억 달러를 넘기면서 흥행에 성공했다. 이로써 그레타 거윅은 전 세계 박스오피스에서 여성 최초로 매출액 10억 달러를 돌파한 감독이 되었다. 그러나 <바비>는 한국에서는 아쉬운 성적에 그쳤다. 여러 외신은 이에 대한 이유로 한국의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인 정서를 꼽았다. 공통적으로 <바비>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의견으로는 화려한 미장센과 인형놀이를 방불케 하는 연출, 폭소를 유발하는 메타 유머 등이 있다. 반면에 이 영화를 불호하는 사람들은 ‘컨셉이 과하다’는 의견을 드러냈다. 사실 필자는 이 영화에 대해 불호의 입장에 서있다. <바비>는 대중매체에 등장하는 몇몇 유력한 여성들의 모습을 통해 실제 여성들의 문화적, 제도적 여권 신장까지 이루어 냈다고 착각하는 페미니즘의 오류를 다루었다. 그러나 이런 대담한 시도는 군데군데에서 드러나는 허점으로 인해 무색해지고 만다. ‘바비랜드’의 바비들은 대부분 백인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다음으로 흑인이 소수를 차지한다. 반면에 동양권 여성은 단 한 명뿐이다. 이점에서 <바비>는 백인 페미니즘의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논바이너리를 비롯한 제3의 성을 대변하는 인물인 앨런의 서사는 지극히 빈약하다. 앨런은 여성인 바비와 함께 약자로 규정되지만 그의 배경 설명은 끝까지 드러나지 않고, 바비들을 도와주는 보조적 존재에만 그친다. 소수자들을 더 민감하게 다루지 못한 점은 끝내 이 영화에 아쉬움을 남긴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호러 영화의 장인 아리 에스터가 만든 악몽 코미디 영화다. 이 짓궂은 악몽 코미디는 주인공 보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편집증을 앓는 보(호아킨 피닉스)는 아빠의 기일에 맞춰서 엄마를 보러 가려 한다. 공항으로 떠나기 전날 밤 그는 이웃과 난데없는 소음 시비에 휘말려 늦잠을 잔다. 간신히 짐을 챙겨 나왔지만 집 열쇠를 도난당하고, 불안을 잠재우려 먹었던 약의 주의 사항을 뒤늦게 발견하면서 생명의 위험에도 처한다. 밀려드는 사고 끝에 잠시 숨을 돌리던 찰나 갑작스럽게 엄마의 사망 소식까지 전해 듣는다. 이제 보는 엄마의 장례에 참석하기 위한 긴 여정을 떠난다. 영화는 평온했던 엄마의 태내를 그리워하는 아이가 다시 모성이라는 절대적 사랑을 회복하기 위해 회귀하는 여정처럼 보인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 지나친 나머지 세상을 위험 가득한 곳으로 인식한 모나에게서 자란 보는 그 역시 세상을 적대시하며 심리적인 퇴행을 보인다. 영화는 관객이 보의 심리와 감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줄곧 그의 시점으로 그려낸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를 옹호하는 이들은 대부분 영화의 거침없는 형식 실험에 동의했기 때문이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도 “세계 영화계에서 보기 드물게 비범한 새로운 스타일의 감독이 탄생했다. 매우 독특하고 강력한 스타일로 이 정도 수준의 작업을 할 수 있는 감독은 몇 안 된다”고 언급하며 영화의 독특한 스타일에 대한 찬사를 표했다. 불호파의 공통된 의견으로는 영화의 화려한 눈요기와 파편적인 구성에 의해 정작 중요한 캐릭터 구성은 무너졌다는 평이 우세했다. 또 이 영화의 유머에 대해 전혀 웃기지 않았다는 부정적인 반응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