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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챠에서 만난 인생 힐링극 2편

성찬얼기자

'돈복사가 된다'는 소문이 나고 열린 대OTT의 시대. 절대강자가 없는 춘추전국시대마냥 OTT 플랫폼도 (넷플릭스를 빼면) 여전히 승자 없는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그 와중 아마도 온라인으로 이런 글까지 찾아 읽는 분들에게 가장 좋은데 별로이고, 별로인데 또 좋은 OTT라면 아마도 왓챠일 텐데 자본으로 승부하는 시장에서 유일하게 자본이 아닌 개성이 돋보이는 플랫폼이라 그럴 것이다.​

필자는 그 개성에 사로잡혀 있는 구독자에 가깝다. 왠지 모르겠지만 왓챠는 유독 마니아 감성을 자극하는 데 특화돼 있는데, 특히 장기구독자들에게 극찬 받는 부분은 바로 일본 콘텐츠일 것이다. 일본 드라마 신작, 애니메이션 신작, 명작이라 소문난 것까지. '없을 법한 게 있다'는 왓챠의 장점은 이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왓챠의 탄탄한 일본 콘텐츠풀을 찾다가 만난, 필자의 마음을 한껏 가볍게 해준 힐링물이 있다. 2023년이 가고 새로운 순간을 맞이할 이때에, 대부분은 희망에 차있겠지만 필자처럼 불안함도 느끼는 이들도 있을 터. 그런 이들을 위해 추천하는 '힐링 콘텐츠'. 하나는 드라마, 하나는 애니메이션으로 장벽이 느껴질 수 있겠지만 한 번만 '츄라이츄라이' 해보길 권한다.


<나기의 휴식> 凪のお暇

본인이 직장 생활, 사회생활에 깊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럼 <나기의 휴식>을 틀기 전에 심호흡부터 하자. 1화 시청이 조금 고달플 수 있다. <나기의 휴식>은 여러 면에서 눈치 보던 나기(쿠로키 하루)가 회사를 때려치우면서 겪는 일들을 그리고 있으니까.​

평범한 직장인 오시마 나기는 평범한 나날을 보낸다. 서로 뽐내기 바쁜 동료들 사이에서 '응응' '맞아맞아' 연발하고, 자신을 통제하려는 남자친구 가몬 신지(타카하시 잇세이)를 위해 매일 아침 악성 곱슬을 생머리로 만들며 평범하게 살고 있다. 그러다 우연찮게 접한 소식에 그대로 쓰러져버렸고, 결국 모든 걸 다 던져두고 낡은 아파트로 이사한다.​

행복한(줄 알았던) 나기의 평범한 일상들
행복한(줄 알았던) 나기의 평범한 일상들

나기가 낡은 아파트에서 보내는 시간에서 진짜 '휴식'이 시작된다. 도심에서 멀리 도망쳐온 만큼 이 아파트의 사람들은 참 이상해보인다. 파티광 같은 옆집 남자 곤(나카무라 토모야), 매번 자판기 밑에서 동전을 찾는 미도리 할머니(미타 요시코) 등등 이웃이 아니었으면 휙 지나가고 말았을 사람들인데, 이웃이라서 우연찮게 계속 마주하게 되고, 그러다가 이 사람들에게 위로도 받고 일상을 나누게 된다.

​<나기의 휴식>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매번 남에게 맞춰 살던 나기가 누구에게도 맞추지 않고 나로 살기 시작할 때, 그 주변 사람들의 면모가 온전히 드러난다는 것. 어쩌면 내가 사회적 모습을 내려놓지 못했을 때, 상대도 마찬가지였던 건 아닐까? 나기가 처음 접한 사람을 알아가고, 전에 알던 사람을 새롭게 바라보는 순간들은 시청자들에게 재밌는 광경이면서 동시에 나의 주변을 돌아보게 한다. ​

함께 앉아서 오손도손 얘기를 나누고 싶어지는 풍경
함께 앉아서 오손도손 얘기를 나누고 싶어지는 풍경

애정하는 드라마라 힘을 주고 말해버렸다. <나기의 휴식>은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재밌게 볼 수 있는 드라마다. 굉장히 억압된 환경에서 시작해서 그렇지, 나기가 낡은 아파트로 이사한 후로는 자신도 모르게 빙긋빙긋 미소를 짓게 될 것이다. 해보고 싶은 걸 하는 나기의 모습에 흐뭇했다가 예상치 못한 우연에 두근거리다가 생각보다 하찮은 해결책에 웃게 될 테니까. 나기-곤-신지 세 사람의 기묘한 관계가 이어지면서 점점 '바보'가 되는 곤은 필자가 뽑는 웃음벨.​

현지에서 맹활약 중인 쿠로키 하루(왼쪽)와 타카하시 잇세이의 합이 기막히다​
현지에서 맹활약 중인 쿠로키 하루(왼쪽)와 타카하시 잇세이의 합이 기막히다​

뿐만 아니라 각 캐릭터의 개성을 완벽하게 소화한 배우들에게 푹 빠지게 될 것이다. 요즘 일본영화에서 자주 보는 얼굴, 쿠로키 하루는 그야말로 나기 그 자체. 나긋나긋하게 나기를 홀리는 곤 역의 나카무라 토모야도 그렇지만, 역시 이 드라마 최고의 배우는 타카하시 잇세이다. 드라마가 잠시 시선을 나기에서 신지로 돌릴 때면, '천하의 *놈'하고 욕먹어도 싼 신지마저 재평가하게 된다. 그리고 그 재평가를 가능하게 하는 건 때로는 영악하고, 때로는 감춰진 마음을 순진하게 내비치는 신지를 빙의 수준으로 연기한 타카하시 잇세이 덕분이다.

​아 참, 이 드라마를 지금 같이 추운 겨울에 보기 좋은 이유 하나 더. 배경이 여름이다. 고장 난 선풍기 하나로 더위를 견디려는 나기의 기행(?)은 그 추위에서 벗어나 나긋하고 기분 좋은 열기를 선물해 줄 것이다.


<스킵과 로퍼> スキップとローファー​​

〈스킵과 로퍼〉
〈스킵과 로퍼〉

드라마에서라도 사회생활이 보기도 싫다면, 혹은 <나기의 휴식>이 끌리지 않는다면 애니메이션 <스킵과 로퍼>를 추천한다. <스킵과 로퍼>는 타카마츠 미사키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시골에서 도쿄로 진학한 미츠미와 그의 반 친구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일본 콘텐츠에서 흔하디흔한 일본 학원물인데, 이 애니메이션은 다르다. 왜냐하면 진짜로 '학교생활'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우리가 떠올리는 일본 학원물은 다른 관심사를 품곤 한다. 예를 들면 연애라든가, 방과 후 모임 같은 취미생활이라든가. 아니면 아예 배경만 학교인 장르물이나 배틀물이라든가. 그런데 <스킵과 로퍼>는 미츠미와 친구들의 관계, 그들이 보내는 학교생활에 집중한다. 그래서 흔한 학원물이지만 동시에 깔끔한 재미를 선사한다. 처음 만난, 심지어 이렇게나 다르다 싶은 아이들이 친해져서 소소하게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학창 시절에 함께한 친구들의 얼굴이 떠오를 것이다.​

미츠미와 친구들을 보면 서로 닮은 구석이 없는데도 절친이 됐던 친구들이 떠오른다
미츠미와 친구들을 보면 서로 닮은 구석이 없는데도 절친이 됐던 친구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아마 이 깔끔한 재미는 주인공 미츠미의 캐릭터 덕분이다. 미츠미는 관료가 돼 (본인의 고향 같은) 시골 지역을 부흥시키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그만큼 노력한 덕분에 입학도 수석. 그렇지만 상대를 무시하거나 노력한 만큼 인정받으려 으스대지 않는다. 애니메이션 주인공치고는 미형과 거리가 있는 외형처럼, 미츠미는 어딘가 색다른 면이 있어 정말 '친구 삼고 싶은' 사람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매력은 주변 사람들뿐만 아니라 시청자들까지 사로잡는다.​

미츠미와 축을 이루는 또 한 사람은 입학식 날부터 우연찮게 친구가 된 소스케이다. 잘생긴 외모로 인기가 많고 다정한 아이지만 사실은 '될 대로 돼라' 식으로 사는 쪽에 가까운 그는 미츠미의 우직하고 솔직한 면을 보며 조금씩 끌리기 시작한다. 미츠미가 소스케에게, 소스케가 미츠미에게 알게 모르게 힘이 되는 과정은 연애물의 달달함과 청춘물의 상쾌함을 동시에 안겨준다. ​

늘 열심인 미츠미(오른쪽)과 허허실실 소스케의 조합… 최고다
늘 열심인 미츠미(오른쪽)과 허허실실 소스케의 조합… 최고다

이 애니메이션은 얕고 깊다. 갈등은 얕고 캐릭터는 깊다. 매 회마다 나름의 고충이나 갈등이 있지만 그것을 억지로 질질 끌지 않는다. 주인공 미츠미처럼 솔직하게, 혹은 소스케처럼 속 안에 삼키며 학교생활을 이어간다. 그리고 그 과정을 지켜보기에 시청자들은 캐릭터 하나하나를 사랑하게 된다. 한마디로 스트레스 받지 않으면서 보기에 좋고,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에게 마음 한구석을 내주기에 좋다.

​이래도 저래도 감이 잘 안 잡힌다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프닝 영상(오프닝곡 '멜로우'(メロウ))을 정말 딱 한 번만 찍먹해보시라. 그러면 바로 '이건 한 번 볼 만하겠는데?'생각이 곧바로 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