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깜짝할 새에 2023년의 마지막이 다가왔다. 2022년 최고의 신작 영화를 정리했던 게 벌써 1년이라니. 무상함을 느낄 새도 없이 올 한 해를 정리해야 할 때가 되었다. 로튼 토마토에서 선정한 올 한 해 가장 빛나는 10편을 소개한다. 2023년에 개봉한 영화 중 로튼 토마토 지수가 높은 작품들을 정리했다. 만약 동점이라면 리뷰가 더 많은 작품이 우선순위로 선정했다. 국내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작품들도 있지만, 이번 기회로 작품성 좋은 새로운 영화를 보며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것도 좋은 선택. 그럼, 로튼 토마토에서 선정한 2023년 최고의 영화 TOP 10을 소개한다.
*2023년 12월 24일 기준.
1위
<더 퍼스트 슬램덩크>
토마토 지수 100%(리뷰 41개) / 관객 지수 98%
“심장이 쿵쾅거리고, 숨이 멎을 듯이 멋진 만화를 각색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성공적으로 슛을 쐈고, 득점했다.”

90년대를 겪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바로 그 작품, ‘슬램덩크’가 극장 애니메이션으로 개봉한다는 소식에 전 세계 수많은 팬들이 주목했다. 개봉 전까지 어떠한 스토리도 공개하지 않은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부풀 대로 부푼 기대감을 비하인드 스토리, 송태섭의 모습을 보여주며 완벽하게 충족한다. 원작자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감독과 각본에 직접 참여했는데, 그는 이야기의 초점을 기존 주인공인 강백호가 아닌, 송태섭으로 잡은 이유에 대해 “20대 때 연재한 ‘슬램덩크'는 몸집이 크고 엄청난 능력과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주인공을 다뤘지만, 그로부터 26년이 지난 지금은 아픔을 안고 있거나 아픔을 극복한 존재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며 이유를 밝혔다. 원작에 없는 오리지널 성장기로, ‘슬램덩크'에 대한 추억이 있는 팬들은 물론, 배경지식이 없는 세대 역시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2위
<안녕하세요 저 마거릿이에요>
토마토 지수 99%(리뷰 217개) / 관객 지수 95%
“사춘기의 고난을 산뜻하고 솔직하게 그려낸 이 영화는 오랫동안 기다려온 주디 블룸의 대표작을 완벽하게 재현한다."

주디 블룸은 미국의 대표적인 청소년 소설 작가로, 영화 <안녕하세요 저 마거릿이에요>는 그의 소설 『안녕하세요 하느님, 저 마거릿이에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50년이 넘었음에도 시대를 초월하는 성장 스토리와 통찰력으로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는 원작 소설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긴 이 작품은 11살 마거릿(애비 라이더 포트슨)의 사춘기와 성장통을 다루고 있다. 뉴욕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뉴저지 교외로 이사하여 새 학교에서 새 친구들과 어울리며 사춘기를 겪는 마거릿은 친구 관계는 물론, 갑자기 변해버린 자신의 몸 등 여러 상황에 대한 불안감을 하느님에게 이야기한다. 종교 영화기도 하지만, 사춘기 소녀의 예민한 감수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 성장영화로서의 비중이 훨씬 크다. 사춘기 딸의 머릿속이 궁금하다면 추천하는 작품.
3위
<블랙베리>
토마토 지수 98%(리뷰 201개) / 관객 지수 94%
“<블랙베리>는 유머만큼이나 날카로운 지성을 바탕으로, 한 시대를 정의하는 기기(블랙베리 스마트폰)의 흥망성쇠를 흥미롭게 살핀다.”

이제는 사라졌지만, 스마트폰이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블랙베리 병'이라는 게 있었다. 다른 스마트폰에서는 볼 수 없는 쿼티 자판과 독특한 디자인으로 소유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성능도 매우 떨어지고, 자체 OS의 퀄리티 역시 부족해 불편함이 매우 커 ‘예쁜 쓰레기'라고도 불렸다. 하지만 디자인으로 애플, 안드로이드와의 성능차를 메울 수 없을 지경에 이르자, 더 이상 블랙베리 병을 앓는 유저는 보이지 않는다. 피처폰이 대세인 시절, 인터넷 검색이 가능한 스마트폰으로 한때 시장을 장악했던 블랙베리는 왜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을까. 영화 <블랙베리>는 블랙베리의 흥망성쇠를 공동 창업자 마이크 라자리디스와 짐 발실리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려낸다.
4위
<고질라 마이너스 원>
토마토 지수 98%(리뷰 146개) / 관객 지수 98%
“<고질라 마이너스 원>은 등장인물의 사연이 액션의 중심을 잡아주는데, 대량 살상 장면 사이사이에 나오는 설득력 있는 이야기가 매력적인 괴수 영화다.”

(이하 원 발음은 고지라가 맞으나 한국 대중들에게 익숙한 고질라로 표기한다) <고질라 마이너스 원>은 고질라 시리즈의 30번째 실사 영화로, 고질라 캐릭터 탄생 7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이다. 괴수 영화지만, <고질라 마이너스 원>은 굉장히 무거운 작품으로, 전쟁의 참혹함과 생존자의 분투를 그대로 보여준다. 장르의 특성상 블록버스터를 기대했지만, 오히려 어두운 전쟁영화에 가깝다. 주인공 역시 괴수와 맞서는 영웅이 아닌, 죽음을 두려워하는 평범한 군인이다. 주인공 시키시마 코이치(카미키 류노스케)는 전쟁 당시 자살특공대원으로, 죽음이 두려워 기기가 고장났다고 거짓말을 한 뒤 오오도섬에 불시착한다. 그곳에서 고질라에게 오오도섬 정비대원들이 몰살 당하는 모습을 보고 죄책감과 PTSD에 시달리는 그는 러닝타임 내내 “염치없는 놈"이라는 전 국민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죽지 않고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아간다. 고질라라는 전 세계적인 소재를 활용해 일본 전쟁의 광기를 표현하고, 공감을 얻은 이 영화를 두고, 비평가들은 “할리우드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보여주는 영화"라며 극찬을 남겼다.
5위
<라이 레인>
토마토 지수 98% (리뷰 129개) / 관객 지수 89%
“로맨틱 코미디 팬 여러분, 반가운 소식입니다. 영리하고 재밌으면서도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 새로운 작품을 찾는 분이라면 <라이 레인>을 만나보세요.”

<라이 레인>의 스토리는 특별히 새롭지는 않다. 이별을 겪은 두 20대 남녀 야스(비비안 오파라)와 돔(데이비드 존슨)이 우연히 서로 자신의 이별을 공유하다가 호감이 생기는 이야기로, 오히려 너무 일상적이라 글로만 보면 ‘싱겁네'라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단순 줄거리로는 알 수 없는 게 바로 영화의 매력. <라이 레인>은 현시대의 모습을 가장 잘 포착한 로맨틱 코미디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주인공 야스와 돔이 마주치는 장소는 전시장의 성 중립 화장실로, 전시장은 이해하기 어려운 현대 미술 사진으로 가득하다. 돔이 전 연인이 자신의 오랜 친구와 바람피운 썰을 풀고, 야스가 새로운 여친 행세를 하며 한방 먹이는 장면은 그야말로 요즘 돌아다니는 ‘사이다 썰’에 가깝다. 관계 역시 절절한 사랑보다 낯섦과 호감, 자존심 사이를 방황하는 두 주인공의 모습은 어딘지 익숙한, 요즘 청춘의 모습을 닮아있다.
6위
<사랑은 낙엽을 타고>
토마토 지수 98%(리뷰 123개) / 관객 지수 77%
“엇갈린 두 연인에 대한 기발한 이야기,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핀란드 영화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가 만든 생명력 넘치는 보석 같은 작품이다.”

2023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핀란드 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프롤레타리아 3부작인 <천국의 그림자>(1986), <아리엘>(1988), <성냥공장 소녀>(1990)을 잇는 작품이다. 세계적인 명성에 비해, 국내에선 비교적 아는 사람만 아는 감독인 아키 카우리스마키는 냉소적이고 고전적인 연출로 유명한데, 여기서 말하는 ‘고전적인 연출'이란, 미장센만 일부 차용한 게 아니라 정말 구식 연출 방식을 의미한다. 무성영화처럼 느껴질 정도로 카메라 워킹과 조명까지 구식으로 연출한 덕에 시대와 동떨어진 느낌을 주는데, 2023년 작인 <사랑은 낙엽을 타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시종 무표정하게 말하는 주인공들과 우울한 분위기, 다소 따라잡기 어려운 냉소적인 유머까지. 우크라이나 침공 소식을 전해주는 라디오로만 세상과 연결되어 있는 여자와 알코올에 중독된 남자는 달콤한 말을 속삭이지도, 서로 닿지 못해 안달내지도 않고 일단 자꾸 어긋나 만나지도 않아 ‘둘이 과연 사랑에 빠질까’ 싶지만 이 두 사람을 통해 전하는 ‘사랑의 필요성'은 오히려 그 어떤 낯간지러운 말보다 깊이 와닿는다. 고전 영화 팬이라면 이번 기회에 아키 카우리스마키에 입덕해보는 걸 추천한다. 그의 영화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고전 영화의 오마주를 발견하는 것도 또 다른 재미.
7위
<올 오브 어스 스트레인저스>
토마토 지수 93% (리뷰 126개) / 관객 지수 92%
“<올 오브 어스 스트레인저스>는 인간의 감정에 기반한 환상적인 렌즈를 통해 깊은 슬픔과 사랑을 탐구한다.”

<올 오브 어스 스트레인저스>는 야마다 타이치의 소설 『이방인과 보낸 여름』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원작은 처자식과 헤어져 홀로 살고 있는 시나리오 작가 하라다 히데오가 고향 아사쿠라에 갔다가 어릴 적 사고로 죽은 부모를 만나게 되는 이야기다. <올 오브 어스 스트레인저스>는 인기척 없는 런던의 타워 맨션에서 살고 있는 시나리오 작가 아담(앤드류 스콧)이 같은 맨션에 사는 수수께끼 거주자 해리(폴 메스칼)를 만나는 이야기로, 해리와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히고, 나중엔 30년 전에 사고로 돌아가신 부모님까지 만나게 된다. 로맨스 장르에 미스터리를 끼얹어 감정선을 팽팽히 하고, 그 과정에서 가족을 엮어 감동까지 챙긴 실속 있는 작품이다.
8위
<조이랜드>
토마토 지수 98%(리뷰 86개) / 관객 지수 67%
“<조이랜드>는 억압된 가부장제 사회에서 성별과 성 지향성에 대해 놀랍도록 솔직하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조이랜드>는 파키스탄 가부장제 인습에 의해 고통받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 하이더르(알리 준조)는 가사노동을 하고, 아내 뭄타즈(라스티 파루크)가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돈을 번다. 부부는 하이더르의 아버지와 형 부부, 조카 넷과 함께 사는 대가족으로, 직업이 없는 자신을 못마땅해 하는 아버지 때문에 하이더르는 급히 트랜스젠더 여성 비바(알리나 칸)의 공연장에 백댄서로 취업하고 자신의 일을 사랑했던 뭄타즈는 전업주부가 되며 집안에 고립된다. 집 밖으로 나선 하이더르는 비바와 사랑에 빠지며 성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집 안에 갇힌 뭄타즈는 아들을 임신하며 마치 ‘보석'처럼 대해진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비바와의 무대를 성공적으로 해낸 하이더르의 모습을 보며, 관객은 ‘행복한 결말'을 예상하지만, 현실은 노래 부른다고 행복해지지 않듯 인물들은 쉬이 행복해지지 않는다. 가부장제는 기본적으로 여성에게 박하다. 영화 역시 이를 놓치지 않는다. 하이더르가 비바와 사랑에 빠지고 성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동안, 뭄타즈는 남편을 잃고 임신한 채 외롭게 지내며 인간으로서의 자유를 잃어간다. 영화는 사랑으로 성 정체성을 깨달아가는 이야기에서 벗어나, 이슬람의 억압된 성 역할과 가부장제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루며 그로 인한 비극에 대해 일갈한다. 단순 LGBTQ 영화로만 접근하면 아쉬운 작품.
9위
<더 비스츠>
토마토 지수 98% (리뷰 66개) / 관객 지수 89%
“로드리고 소로고옌은 야수와 함께 갈리시아의 시골 마을로 우리를 데려가, 인간 본성이 타락한 이야기 속에서 긴장과 불안이 들불처럼 번져나가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프랑스 국적의 외국인 부부(데니스 메노셰와 마리나 포이스)가 스페인 시골 마을에 정착하게 된다. 10가구도 채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이지만 그렇기에 외지인에 대한 텃세가 굉장하다. 스페인 시골 마을로 이주했다가 사고를 당한 네덜란드 부부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Santoalla>(2016)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토지 사용권이나 문화적 차이, 오해로 인해 스페인 토착주민과 네덜란드 외지인 부부 사이의 갈등이 커지다가 네덜란드 부부 중 남편이 실종되는 사건이 있었다. 영화는 풍력발전에 주민이 모두 동의하면 보상을 받을 수 있었는데, 이주민인 프랑스 부부가 반대하면서 텃세가 시작된다. 두 집단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으로 웬만한 공포영화 저리가라 할 정도다.
10위
<풀타임>
토마토 지수 98% (리뷰 58개) / 관객 지수 93%
“로르 칼라미의 매력적인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 <풀타임>은 돈을 벌어 재정 상황을 유지하는 일상이 때로는 스릴러의 긴장감을 느낄 수 있게 만든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일깨워준다.”

파리 교외에서 두 아이를 혼자 기르고 있는 싱글맘 쥘리(로르 칼라미)는 파리의 호텔에서 룸메이드로 일하고 있다. 출퇴근 길은 멀고 일은 고되고, 아이들은 돌봐야 하고, 빚 갚으려면 급여가 높은 일자리를 알아봐야 하는, 숨 막히는 일상을 보내는 쥘리. 그러던 어느 날, 교통 파업으로 대중교통이 마비되어 모든 일상이 꼬여버린다. 아이들은 동네 할머니에게 맡긴 채, 해가 뜨기 전 출근하고 하루가 끝날 무렵 퇴근해 집에 도착한다. 편도 2시간의 통근길을 견디기 버거워 이직을 알아보지만 그마저도 파업으로 쉽지 않아 이직은커녕 지금 직장도 유지하기 어려운 쥘리의 일상을 영화는 긴박한 음악을 통해 마치 스릴러 혹은 첩보영화처럼 표현해낸다. 영화는 단순히 출퇴근의 어려움을 넘어, 어려운 상황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주변에 폐를 끼치는 워킹맘의 현실적인 모습, 생존권을 주장하며 파업하는 이들과 그로 인해 생존이 어려워진 또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준다. 영화는 결국, 누구나 자신의 상황에 의해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되는 삶을 ‘출퇴근’이라는 소재로 심도 있게 풀어나간다.
+여담
한국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은 아쉽게 13위로 TOP 10에 오르진 못했다. 하지만 충분히 소개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짤막하게 적는다.
13위
<혼자 사는 사람들>
토마토 지수 98% (리뷰 46개) / 관객 지수 76%
“고립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을 다룬 <혼자 사는 사람들>은 슬픔 또는 슬픔의 회피와 사람 사이에 세워진 기술적인 벽(스마트폰)을 탐구한다.”

진아(공승연)는 콜센터 우수 사원으로, 하루 종일 고객과 통화하지만 헤드셋을 벗으면 세상과 완벽하게 단절되어 혼자 산다. 혼자 먹고, 자는 그의 동반자는 스마트폰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신입사원(정다은) 1:1 교육을 떠맡으며 그토록 고요하던 혼자만의 일상을 위협받기 시작한다. 동시에 자신에게 끊임없이 시비를 걸어오는 이웃과 다급한 아버지의 전화로 점점 일상이 몰아세워지고, 그동안 왜 자신이 스스로를 고립시켜왔는지에 대해 직면하게 된다. 점차 혼자 살면서 사회적 교류를 기피하는 청년들이 늘어나는 한국 사회의 상실과 소외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룬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