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 거북선은 아직 없고, 고작 12척의 함선으로도 이기는 전장을 꿈꿨던 삼도수군통제사, 명량해전에서 기개와 열의로 가득 찬 장군은 앞서 한산 앞바다에서는 거북선을 앞세워 학익진을 펼치며 왜군을 섬멸하는 공적을 세웠다. 그리고 이제 한산대첩과 명량대첩에 이어 임진왜란 7년 전쟁의 종지부, 조선 일본 명나라가 뒤엉킨 동북아 역사상 최대 해상 전투 노량해전의 성과를 거쳐 사실상 그를 지지할 거북선도 없이, 이순신 장군은 ‘싸움이 급하다. 내 죽음을 내지 말라’는 말로 진정한 전쟁의 종결을 위해, 생명이 꺼지는 그 순간까지 군사들을 독려하는 진격의 북소리를 끝까지 멈추지 않는다.
2014년 <명량>이 도착한 이후 <한산: 용의 출현>(2022, 이하 <한산>) 그리고 김한민의 ‘이순신 3부작’의 최종장인 <노량: 죽음의 바다>(이하 <노량>)에 이르기까지, 김한민 감독 개인이자 한 연출자의 의지는 곧 한국영화의 성취와 직결되는 도전이자 결과였다. <명량>의 190억 원 제작비는 <한산>의 312억 원, 그리고 <노량>의 346억 원으로 몸집을 불려 왔다. 규모의 확장과 수반된 기술력과 함께 이순신 장군을 필두로 한 임진왜란 해전도 점차 모양새를 갖추었다. 최종장 <노량>은 <명량>이 전개한 드라마와 <한산>의 액션 스펙터클 두 요소를 152분의 러닝타임에 모두 녹여낸다. 7년 전쟁을 연구하고 스크린에 불러오는 동안 한국영화의 기술력이 확실히 발전했고, 김한민 감독의 연출 스타일도 확연히 달라졌다. 튀어나오는 감정의 모양새를 거침없이 밀어붙여 관객들의 감정을 끌어내고 독려했던 <명량>의 연출자는, 8년 후 작품인 <한산>에서 미니멀한 해전 액션 장면의 연출을 입증함으로써 장르영화에서 간결한 임팩트를 조율하는 호흡을 완벽하게 탑재한 연출자가 되었다.
3편 <노량>은 김한민의 연출사에서 앞선 두 편의 정반합으로 완성된 역작이다. 1716만의 기록적 스코어를 가진 감독으로서의 욕심을 내세우는 대신, 완급조절의 호흡을 가다듬은 작가적 태도를 견지한다. 152분이라는 러닝타임의 압박, 그중 100분 간이 액션 장면, 그 액션의 모두가 야간전투라는 액션의 도전지점도, 잘 알려진 이순신의 최후라는 드라마틱한 요소를 가지고도 <노량>은 관객이 기대하거나 예상한 모든 것을 오히려 거스르는 선택을 한다. 관객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한 욕망을 줄이고, 자신이 10년 동안 만들어 온 영웅의 최후를 작가적 의지로 채워나간다. 이것 역시 김한민의 도전과 욕심, 욕망이 모두 더해진 시도로 읽힌다.
소임을 다하고 죽어가는 장수의 위용이 떠오르는 태양과 맞바꿔 치는 그 절체절명의 순간을 위해 <명량>의 불같은 에너지와 <한산>의 통쾌한 액션 대신, 그는 백병전의 한가운데서 이순신 장군의 내면을 헤집고 들어간다. 함선 위에서 삼국의 장수들이 엉키는 해전이 펼쳐지는 가운데, 인간으로서 상실의 아픔을 겪은 이순신이 자신의 지나온 시간을 복기하는 장면이 레이어링 되는 씬은 <노량>의 백미이자, 전투 장면의 성취다.
김한민 감독은 순천에서 나고 자랐다. <난중일기>를 놓치지 않고 대상을 연구하며 마침내 3부작을 완성했다. <노량>까지 오는 동안 이순신 3부작 구현의 시간만 10년, 구상의 시간까지 더하면 그 두 배의 시간 동안 이순신으로 자신의 연출 역사를 써 간 한 감독의 작업은 광화문 광장의 쇳덩이 동상에 박제된 이순신 장군을 아주 정교한 정으로 깎아내려, 그 안의 혼을 불러내는 작업처럼 대단해 보인다. 누구도 엄두를 내지 않았던 도전과 성취다. 소명처럼 이순신 장군에게 영화로 말을 걸고 답을 구해 온 김한민 감독에게 그간의 시간을 물어보았다.

<명량> <한산>에 이어 <노량>까지 3부작을 끝낸 지금 기분은 어떠신가요.
우리 이순신 장군님의 워딩을 좀 빌리자면 천운이었어요. <명량>을 하던 2014년에 세월호 참사가 있었고 <한산> 때는 코로나가 강하게 훑고 지나갔기 때문에 개봉과 촬영이 모두 쉽지 않았죠. 어쨌든 지금 돌이켜보면 그래도 이렇게 완결할 수 있었던 게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감개무량합니다. 오히려 더 긴장된 마음이 더 커요. 이제는 이순신 3부작을 정리해야 하는 아쉬움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홀가분한 마음이 안 들어요. 그래도 이렇게 또 끝나는구나 하는 지점에서 안도감 같은 건 있는 것 같아요.
한편으로 또 시작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벌써 차기작으로 <징비록>을 바탕으로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다루는 드라마 <7년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고 발표하셨는데요. 연출자로 이 시기의 역사에 지속해서 끌리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임진왜란의 가장 무서운 점은 조선을 두 동강 내 가지려는 명나라와 왜구 사이의 강화 협상이었어요. 이순신의 무력과 한음 이덕형의 기지가 없었으면 조선이 그 상태로 쭉 갔을 수도 있다, 그러면 경기도 이북은 명나라 세력권에 들어가 있고 경기도 이남, 흔히 말하는 삼남 지방은 왜의 세력권으로 들어가서 그렇게 유지가 됐을 수도 있다, 그런 점이 무서운 거죠. 그래서 임진왜란 7년은 우리가 처참하게 당했던 사실을 잊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외세에 의한 ‘분단’의 시도들이 그 시대에 벌써 있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어요. 우리가 배제된 세력 싸움에 한반도가 언제든지 그런 상황에 부닥칠 수 있고, 또 지금 처해 있다는 게 안타까운 거죠. 역사가 진행되는 데 있어서, 그래서 어떤 완전하고 의미 있는 종결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우리는 명확히 알아야 한다 생각했어요. 이 지점을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고 수행하시다가 돌아가신 분이 바로 이순신 장군이죠. 이걸 요약해서 꼭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이순신 장군이라는 하나의 대상을 통해 한국사의 물줄기를 잡아 나가는데요. 한 대상을 10년 넘게 연구하고 영화로 만드는 데 있어서 사명감이나 애착이 남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어떤 불굴의 의지로 이순신에 천착하고 이런 건 아닌 것 같아요. 그것보다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어요. 이순신 3부작을 하다 보니까 어느새 10년이 가버렸어요. 그리고 각각의 해전에 의미가 있기 때문에 모두 만들어야 하겠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 생각에 흔들린 적은 없고 오히려 어떻게 돌파해 나갈까 이런 생각은 있었던 것 같아요.
<명량>의 최민식, <한산>의 박해일에 이어 이번 <노량>의 김윤석 배우까지. 세 명의 이순신에게 다른 특징을 부여함으로써 이순신 장군을 입체적으로 묘사하는 시도를 하는데요. 주인공을 달리해 기존 시리즈 영화와는 또 다른 결을 만들어내는 선택이기도 하고요. 다르지만 같은, 같지만 다른 세 캐릭터를 어떻게 규정하고 만들어 나갔나요.
<명량>의 이순신은 용장(勇將)의 느낌, <한산>의 이순신 지장(智將)의 느낌, 그리고 <노량>의 이순신은 현장(賢將)으로 봤어요. <명량>에서는 모두가 두려움에 빠져 있던 상황에서 그걸 용기로 바꿔내는 그 중심점의, 매우 용맹한 장수로서의 이순신의 모습이 보이고 거기에 적합한 배우로서 최민식을 캐스팅했어요. <한산>에서는 굉장히 치밀한 지략과 전략, 전술을 가지고 전투가 수세에 빠져 있던 시기에 수세를 극복하고 공세로 전환하는 중요한 모멘텀이 됐던 전투를 이끌었죠. 냉철한 지략과 전략을 가진 젊은 이순신을 박해일이라는 배우로 특징지어서 내세웠죠. <노량>은 어떻게 보면 가장 지혜로운 장수의 면모를 드러냈어요. 미래를 내다보고 어떻게 이 전쟁을 종결해야 할 것인가를 거의 유일하게 고민했던 분이 노량전투의 이순신이지 않나. 거기에 맞는, 문무를 겸비한 느낌의 아우라를 보여줄 수 있는 김윤석 배우를 통해서 이순신의 또 다른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전체 153분의 러닝타임 중 노량해전이 벌어지는 해상 액션 장면이 총 100분 동안 펼쳐지는데요. 전투씬 안에 현장으로서의 지휘력, 내적 고뇌, 최후인 전사 장면까지 말 그대로 내러티브와 심리, 액션 모두를 아우르는 연출을 펼치는데요. 장면 설계에 대해서 말씀 부탁드립니다.
해전이 100분이나 되는데, 100분의 해전이 어디서 기인했느냐를 봤을 때 이순신이 말하려고 하는 것이 다 들어있다고 봤어요. 왜 이순신 장군님은 그렇게 치열하게, 집요하게 마지막 전투에 임하셨고 그리고 다들 끝난 전쟁이라고 하는 그 전쟁을 수행하려고 했는가. 이게 굉장히 큰 화두였고 그 화두에 대한 답을 꼭 얻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야지만 <노량>을 만드는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을 했고 그랬을 때 저의 해답은 완전한 종결, 완전한 항복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이건 제가 만든 결론은 아니고 이순신 장군의 어록과 여러 가지 기록들을 살폈을 때 거기에서 물씬 풍기는 어떤 지점을 제가 추출한 거예요. 그 결론을 가지고 <노량>을 이야기하면 장군님한테 절대 누가 되지 않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 지점을 가지고 100분의 해전이 설계되었고, 그 해전을 어떻게든 만들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물론 중간에 힘든 지점들은 많았지만, 특히 사운드나 이런 것들은 정말 힘들었어요. 하지만 어쨌든 개봉 날까지 사고 안 내고 만들 수 있게 되어서 천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명량>은 ‘물 없이’ VFX 기술로 해상전투씬을 찍는다는 도전의 시작이었는데요. 그로부터 1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이순신 3부작은 연출력에서는 충무로의 기술력의 발전과 액션 트렌드의 발전 과정을 그대로 입증하는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쉽게 말해 <노량> 때 풀었던 모든 액션은 <명량> 때 불가능했다고 보시면 돼요. 특히 밤에 벌어지는 해전 액션 장면은 <명량> 때는 도저히 찍을 수 없는 씬이에요. <명량> 때는 한 척의 배가 여러 척의 배들을 상대하는 싸움이었지만 지금은 조선수군도 함대, 왜군은 더 큰 함대, 명나라도 함대. 그 함대와 함대들이 얽히고 부딪히는 장면들을 묘사하는 것은 <명량>때는 불가능했어요. 기술적으로도, 자본으로도, 또 그걸 풀어내는 노하우도 부족했죠. <노량>에 와서 비로소 가능해진 지점이 매우 많았어요. 조명 설계부터 완전히 달라졌으니까요. 당시에는 LED 조명이 그렇게 많은 규모로 존재하지도 않았는데 이번엔 낮씬과 밤씬을 바꾸는 데 1분이면 가능했어요. 짐벌의 설계, 거기 얹히는 배의 안정성 면에서도, 또 실질적으로 풀어내는 기술력, 특히 물을 표현하는 기술은 장족의 발전을 했습니다. 이제 물에서 찍지 않아도 완벽하게 표현이 될 수 있고 그 기술력은 우리 팀이 최고일 거예요. 그런 지점을 이번 <노량>에서 원 없이 보여드립니다.

노량해전은 이순신 장군의 죽음이 역사적 사실로 전제된 전투지만, 영화적으로 그 장면을 보여주는 것은 연출자의 선택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면에서 이 영화에는 이순신의 죽음을 둘러싼 두 가지 장면이 연출되는데요. 하나는 전투 중 전사하는 장면과 그리고 죽음 이후 노제를 통해 제의를 표하는 장면이에요. 그 두 장면의 묘사가 이 영화를 바라보는 감독님의 시각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연출 과정에서의 고민이 어떤 것이었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그 장면을 안 찍어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괜히 찍어서 득 될 게 없다. 전 국민이 다 아는 장면이라 일단 새롭지 않고, ‘저 장면을 저렇게 찍는단 말이야.’ 이런 식으로 실망감을 드릴 수도 있으니 안 찍고 가는 게 더 신선하지 않을까 생각을 했는데, 그러다가 그 장면은 꼭 찍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그것은 뭐였냐면, 이 영화를 <노량>을 내가 찍어야 하는 의미가 무엇인가, 그리고 장군님의 한마디가 더 있었다면 아마 그 말이었을 거라는 확신에 찬 판단이 생겼어요. 어떻게든 그 말을 하시면서 돌아가시는 장면이 필요하다. 그게 이순신 장군의 진정성이고 내가 이 <노량>을 만드는 의미이기도 하다 싶었죠. 다만 그 장면을 어디에 배치할 것인가는 그건 또 다른 문제죠. 그래서 죽는 바로 그 타이밍에 배치는 하지 않고 어떻게든 우리가 같이 응원하고 이순신이 죽지 않았음을 상징하는 식으로 해서 죽음의 그 시점은 우리가 피해 가자 그리고 이제 그다음 어떤 타이밍에 이순신 장군의 죽음의 장면을 꼭 넣자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노제를 지내는 장면은 영화 속 캐릭터가 아닌 실제 영웅 이순신 장군을 향한 제의처럼 읽혔는데요. 우리가 안다고 믿었지만, 충분히 예를 다하지 못했던 영웅에게 바치는 헌사, 그래서 어쩌면 영화의 흐름에서 빠져나와 연출자의 감정을 드러내는 심정적 공간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장례식 같은 경우는 그 장면은 돈도 많이 들고 그 장면이 굳이 없어도 자막으로 처리해도 충분하지 않느냐라는 충심 어린 PD들의 제안도 있었어요. (웃음) 왜냐하면, 제작비가 그렇게 녹록하지는 않았으니까. 거의 300명이 동원되었고 온종일 촬영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좀 하다가 내가 우리 PD들한테 답을 준 건 찍어야겠다, 찍어야 한다 였어요. 그건 3부작을 마무리하는 측면에서도 그렇고, 이번 편이 이순신 장군을 온전하게 보내드리는 의미로서의 작품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중요했어요. 그리고 또 그 장면에서 생각지 못한 어떤 깊은 여운이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죠. 그렇게 이 장면을 넣으면서 생각지 못한 효과가 하나 더 있었는데, 이순신 장군의 죽음을 찍어 놓고 그게 다른 장면과 잘 안 붙어서 큰일이다 했는데, 장례식과 함께 가니까 무리 없이 붙더라고요. 어쨌든 그렇게 함으로써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해군에 맞서 끝까지 대항하는 강력한 상대는 왜군 최고 지휘관 시마즈 요시히로였는데요. 시마즈를 연기한 백윤식 배우의 아우라가 더해지면서, 강력한 적군의 위용을 보여주는데요. 캐릭터 설정 배경과 마치 시마즈가 환생한 듯한 백윤식 배우의 캐스팅에 대해서도 말씀 부탁드립니다.
시마즈 가문은 사쓰마(薩摩·가고시마의 옛 이름) 번주(藩主)로 남규슈의 패자이자 사쓰마번이 전쟁 중에 수많은 조선 도공(陶工)을 납치해 가기도 했어요. 시마즈 요시히로는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에 대적한 인물이죠. 시마즈 하면 이상하게 백색이 생각나요. 당시 나이도 60대 중후반이었고 하얀 장수의 느낌이 있었는데 캐릭터를 설정하고 누굴 캐스팅할까 하는데 그냥 백윤식 선생님이었어요. 화이트 백!(웃음) 하얀 백발에, 하얀 갑옷을 입혀놓으면 너무 잘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선생님 가시죠. 그랬더니, “그래 김 감독이 가자면 가야지.” 딱 이러면서 하셨어요. 그래서 시마즈는 캐스팅에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바로 백윤식 선생님으로 캐스팅을 했어요.
백병전부터 진행되는 롱테이크 장면의 압권은 아마 이순신 장군이 조선군의 사기를 위해 멈추지 않는 진격의 북소리인데요. <한산>의 학익진에 이어, <노량>은 이 스펙터클한 소리의 전투로 기억날 것 같습니다. 전투의 핵심으로 사운드를 배치하고, 사운드 설계에 있어서 중점을 둔 부분은 어떤 것이었나요.
내가 연출하면서 그렇게 당황해 본 게, 특히 후반 작업하면서 당황해 본 게 처음이었어요. 전체 전쟁 장면 설계 100분에 있어서 사운드 설계가 그만큼 중요하게 다가왔어요. 처음에는 굉장히 타성적인, 비트 있고 박진감 있는 음악으로 채웠다가 이건 아니야, 그러면 굉장히 서정적이고 센티멘털한 어떤 느낌의 음악이 필요한가 해봤더니 그것도 아니야. 결국, 신디사이저 계열의 음악을 난전에 배치하면서 병사들의 입장으로 이야기를 진행해 가다가 마지막에 이순신 장군이 태양이 뜨는 것을 보는 거로 밀어붙이다가 그다음에 환영 때는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이순신 장군을 순간 이동시켜서 사운드를 완전히 뮤트 해버리고 그 속에 아주 최소한의 절제된 사운드 이펙트와 대사만 넣어서 가니까 원래 계획했던 느낌이 살아나더라고요. 그리고 이제 북소리와 함께 다시 전투가 전개되는 상황으로 진행을 했어요. 100분의 전투 중에 사운드 설계가 정말 중요했습니다.

조선, 왜군, 명나라의 서로 다른 언어가 충돌하는 전장의 언어를 그대로 구현했는데요. 삼국의 다른 언어를 녹여 내어 극의 흐름을 진행 시키는 것도 도전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솔루션을 찾아 나갔나요.
뭐라고 할까요? 오히려 더 어떤 몰입감이 더 생기는 것 같아요. 현실적인 리얼리티도 더 느끼시는 것 같고. 그렇다면 또 반문할 수 있잖아요. 아예 일본 배우를 일본 인구 문화에 캐스팅하고 중국 배우를 명나라군의 캐스팅을 하면 더 좋지 않았겠느냐. 그런데 그러면 또 몰입감이 깨져요. <최종병기 활>(2011)을 연출하면서 경험했는데 그때 만주족 캐릭터에 중국 배우를 캐스팅하자 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한국배우가 하는 게 몰입도나 공감도에 있어서 더 나을 것 같다고 결정했어요. 그때는 본능적으로 그렇게 이야기를 했었는데, 이제는 더더욱 한국배우와 하는 게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확신이 생긴 것 같아요.
쿠키 영상으로 이제훈 배우가 연기하는 젊은 광해가 등장하는데요. 자연스럽게 <7년 전쟁>으로 이어지는 지점을 만든 것 같기도 한데요.
그 대장별의 어떤 모티베이션은 예가 있어요. 기록에 진린이 떨어지는 대장별을 보고 ‘저 별이 떨어지다니, 저 별은 당신을 의미하는데 당신이 이제 곧 죽을 것 같은데 재갈공명의 비법이라도 빌어서 하늘에 기도를 해보는 게 어떠냐’라고 했을 때 이 부분이 이순신 장군의 어떤 생사관이 드러나는 지점인데, 사람의 목숨이라는 건 하늘에 그냥 달린 거지, 빈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느냐라고 해서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죠. 또 선조실록에 보면 당시에 초신성 폭발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하늘에 크게 뭔가 배열이 빛나는 것처럼 큰 빛이 있었다는 기록들이 있는 걸 보면, 그런 부분을 이순신 장군과 그 별을 한번 연관 지어서 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고, 그 별빛이 낮에도 환하게 비침으로써 어떤 메시지를 계속 전달해 주고 유지하면 좋겠다. 그리고 그것을 이순신 장군의 유지나 대의를 후대 관객들이 느끼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걸 당시 어떤 위정자들, 그중에 아주 핵심이라고 하는 광해가 한번 되새기는 것도 큰 의미가 있겠다.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이순신 3부작을 통해 지금의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이순신 장군을 구국 영웅으로서도 볼 수 있지만 결국은 조선 사회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군자라는 상을 이순신 장군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고 봤어요. 어떤 거창한 어떤 사상체계를 이야기하는 것보다 불과 400 몇 년 전에 실존하셨던 그분을 통해서 우리가 정체성을 되새기면, 지금의 갈등이 덜하지 않을까. 그 속에서 진정한 화합의 중심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순신 장군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그런 것들이 강해져요. 역사와 전쟁사를 통해서 이순신을 보다가 그런 지점에서 보기 시작하니, 더 해석할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그러니 이순신 장군을 통해 우리가 대동단결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그 생각이 더 강렬하게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