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오는 3월 10일 열릴 예정이다. 기한이 다가오면서 오스카는 지난 2023년 12월 21일 10개의 시상 부문에 대한 후보를 공개했다. 이 후보들은 최종 후보 5편으로 추려져 1월 24일에 다시 공개될 예정이다. 10개의 부문은 미국 내의 영화들을 대상으로 한다. 하지만 그중 유일하게 국제영화상 부문은 외국어 영화를 후보로 선정하고 있다. 국제영화상의 출품 기준은 미국 이외 국가에서 제작된 장편 영화로 50% 이상 비영어 대사가 포함되어야 한다. 한국은 2019년 영화 <기생충>으로 처음 국제영화상을 받았다. 이후 2023년 아카데미에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 출품됐지만, 후보에 들지 못했다. 2021년에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를 출품한 일본이 이 상을 받았고, 2023년에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를 출품한 독일에게 돌아갔다. 이번 아카데미에는 총 88편의 영화가 출품되었다. 그중 한국은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출품했으나 아쉽게도 후보에 들지 못했다. 88편의 작품 중 한국으로 수입돼 볼 기회가 생긴 영화 몇 편을 소개한다.
〈립세의 사계〉 - 폴란드

폴란드는 유화 애니메이션 영화 <립세의 사계>를 2024 아카데미 국제영화상 후보로 출품했다. <립세의 사계>는 <러빙 빈센트>를 만든 도로타 코비엘라, 휴 웰치맨 감독 부부가 연출한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폴란드의 소설가 브와디스와프 레이몬트의 『농민』을 각색했다. 『농민』은 사계절의 흐름에 맞춰 4부작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이를 각색한 영화 <립세의 사계>에도 립세 마을을 둘러싼 사계절의 변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1,800년대 말 폴란드의 작은 마을 립세에 절세미녀 ‘야그나’가 산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빠진 마을 남성들은 그녀를 탐하려 한다. 야그나는 어머니에 의해 마을에서 가장 부유하고 땅을 많이 가진 홀아비 보리나와 결혼하게 된다. 그러나 이미 그녀는 보리나의 아들 안테크와 밀회를 이어가는 중이었다. 안테크는 땅과 야그나를 둘러싸고 아버지 보리나와 갈라선다. 한편, 땅을 빼앗길 위기에 놓인 보리나와 마을 사람들은 지주와 생존을 건 싸움을 시작한다.
<러빙 빈센트>가 고흐의 명화를 중심으로 활용했다면, <립세의 사계>는 밀레의 <이삭 줍는 사람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실레빈스키의 <머리를 빗는 여인> 등 전설적인 화가 30인의 그림을 스크린에 부활시킨다. 또 음악을 즐기는 립세 마을 사람들의 화려한 춤사위와 이를 담는 역동적인 카메라 움직임은 영화의 시각적 재미를 더한다. 보통의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캐릭터를 생생히 구현하기 위해 배우가 작품 속 캐릭터를 직접 연기하는 실사 촬영을 진행해 애니메이션을 덧입힌 로토스코핑 기법도 이 영화의 독특한 매력이 된다. 하지만 <립세의 사계>는 4부작에 달하는 원작의 방대한 분량을 재조립하면서 원작의 깊이를 살려내지 못한다. 서사의 군데군데에 빈틈을 만들어 두고, 인물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를 설득시키지 못한다. 또 자유를 갈망하는 야그나의 욕망을 그려내고 싶었던 감독의 의도와는 다르게 마을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고, 남자들의 성적 대상으로 전락한 비참한 상황에 놓인 야그나의 감정선은 전달되지 않는다. <립세의 사계>는 지난 12월 21일 공개된 2024 아카데미 국제영화상 후보 15편에 들지 못했다. 영화는 오는 1월 10일 국내 개봉할 예정이다.
〈퍼펙트 데이즈〉 - 일본

일본은 자국과 독일의 합작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출품했다. <퍼펙트 데이즈>는 로드 무비의 거장 빔 벤더스 감독이 연출하고, <큐어>, <쉘 위 댄스>, <세 번째 살인>에서 열연을 보였던 야쿠쇼 코지가 주연을 맡았다. 이에 더해 야쿠쇼 코지가 총괄 제작까지 맡아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빔 벤더스 감독은 시부야 구의 공공 화장실을 개축하는 ‘THE TOKYO TOILET’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가 영감을 얻어 도쿄를 배경으로 한 픽션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 영화는 시부야의 공공 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의 일상과 우연한 만남을 그린다. 중년의 독신남 히라야마는 그만의 루틴을 반복하며 비슷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매일 아침 일어나 이부자리를 개고 나면 화초에 물을 준다.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뽑아 마시고, 운전대를 잡고 일터로 향하면서 1960~70년대 블루스, 포크 록, 올드 팝 등의 음악을 듣는다. 퇴근 후의 시간도 단조롭기는 마찬가지다. 집에 가서 벗은 작업복을 행거에 걸어 두고 옷을 갈아입은 뒤 집 근처 식당으로 가서 맥주를 마신다. 그 후 집에 돌아오고 나면 완벽한 그의 하루가 끝난다. 그런 그의 일상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같이 일하던 동료가 갑작스레 그만둬서 작업량이 늘어나고, 느닷없이 조카가 찾아오는가 하면, 자주 갔던 선술집 주인의 전남편을 만나 그의 넋두리를 듣게 된다. 어느덧 그는 우연한 만남으로 뒤섞인 일상을 살게 된다.
영화의 제목은 루 리드의 음악 ‘Perfect Day’에서 가져왔다. 영화에는 앞서 언급한 음악과 함께 애니멀스의 ‘The House of the Rising sun’,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Pale Blue Eyes’ 등 1960~70년대의 팝 음악이 흘러나와 귀를 즐겁게 한다. 빔 벤더스 감독은 이 영화를 공동 각본을 쓴 타카사키 타쿠와 함께 다큐멘터리처럼 찍으려 했다. 인물의 일상을 관조적이고 담담히 담아내는 영화는 종종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넘나든다.
〈프렌치 수프〉 - 프랑스

프랑스는 트란 안 홍 감독의 영화 <프렌치 수프>를 국제영화상 후보로 출품했다. <프렌치 수프>는 19세기 후반 프랑스 미식의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유명한 미식가 도댕과 존경받는 요리사 유제니는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함께 해온 신뢰 깊은 관계다. 도댕은 친구와 후원자들을 불러 미식 모임을 즐기며 나날을 보낸다. 유제니는 늘 그들에게 예술에 가까운 경이로운 요리를 선보인다. 미식가로서의 도댕의 명성은 유제니의 요리가 있어서 가능한 것이었다. 도댕은 그런 그녀를 동등한 파트너 관계로 존중한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그녀를 흠모하면서. 매일 밤 도댕은 사랑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잠 못 이루며 그녀의 방문 앞에서 서성인다. 유제니도 그가 오기를 기다리며 방문을 걸어 잠그지 않지만, 서둘러 그의 마음을 허락하지는 않는다. <프렌치 수프>는 장시간 뭉근하게 끓여 내는 프랑스 스튜 포토푀와 같이 꾸준히 서로의 곁에서 머물러 온 두 중년 남녀의 로맨스를 그려 낸다.
<프렌치 수프>는 한 편의 회화 같은 영화다. 영화 속 자연은 인상주의의 회화 속 풍경과 닮아 있다. 도댕과 유제니가 걷는 들판은 르누아르의 회화처럼 빛이 수놓여 있다. 들판의 다양한 색채는 조화롭게 어우러져 풍광 속 두 남녀를 감싸 안는다. 도댕의 주방 풍경 속 테이블 위에 놓인 갖가지 소품은 세잔의 정물화 속 꽃과 과일을 보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