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1월, 닌텐도는 자사의 대표 타이틀 <젤다의 전설> 실사영화 제작 계획을 발표했다. 1986년부터 이어져 온 '젤다의 전설' 히스토리에 있어 최초의 실사 영화화인지라 시리즈 팬들과 게이머들에게는 꽤나 흥미로운 소식이었다. 닌텐도의 전무이사이자, 시리즈 최초의 작품 <젤다의 전설>의 개발 총괄이었던 미야모토 시게루는 직접 이 소식을 전했다. 여러 가지 의미로 유명한 영화 제작자 아비 아라드와 공동으로 프로듀서 직책을 맡아 실사영화 제작에 돌입했다는 것. 감독은 <메이즈 러너> 실사영화 시리즈의 연출을 맡은 웨스 볼로 낙점되었으며 소니 픽처스가 배급을 맡되 닌텐도에서 제작비의 반 이상을 조달하는 형태의 계약이라고 설명했다.
웨스 볼이 현재 <혹성탈출> 시리즈의 신작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작업에 참여하고 있어 실사영화 개봉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지만, 오랫동안 <젤다의 전설>의 영상화를 기다려 왔던 팬들은 (늘 들었던 루머와 달리) 미야모토 시게루가 직접 나선 덕분에 뜨거운 반응으로 관심을 피력했다. 물론 게임 실사영화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지난날의 수많은 사례들 때문에, 그리고 아비 아라드의 흑역사 때문에 우려되는 바도 많다. 하지만 단숨에 기대작의 자리를 꿰찼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젤다의 전설>은 1986년 시작된 시리즈로, 현재까지 닌텐도 플랫폼을 기반으로 콜렉션 패키지를 포함 총 20개의 타이틀이 발매되었다. 이 중 닌텐도 스위치의 전용 타이틀로 출시된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이 엄청난 인기를 누리면서 동시에 닌텐도 스위치의 판매량을 견인해, 국내에서도 디지털 부문 판매 1위를 기록하는 등 시리즈 최고 성공작 타이틀을 얻었다. (닌텐도 스위치는 2017년 12월 1일 정식 발매된 이후 현재까지 무려 1억 대 이상을 판매했고 타이틀은 10억 장 이상을 판매하는 등 자사의 최고 기록이었던 닌텐도 NDS를 상회하기까지 했다)
시리즈는 1986년부터 현재까지 40여 년을 이어오고 있지만, 닌텐도 스위치판으로 출시된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만큼 흥행과 평가 양측에서 호평을 받은 타이틀은 흔치 않았다. 오랜 기간을 이어온 시리즈인 만큼 시리즈 특유의 공식이나 법칙이 있었지만 이런 룰들을 깨고 참신한 방식을 도입함과 동시에 최초의 시리즈를 오마주하는 방식으로 오랜 팬들과 새로운 팬들을 동시에 사로잡는 기획을 해낸 것이 크게 어필했다.

<젤다의 전설>은 엘프 귀를 한 금발머리 영웅인 '링크'(젤다가 아니다!)가 하이랄의 오랜 전설을 되짚어 나가며 대지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의 흔적을 밝혀나가는 모험을 주요 테마로 하고 있다. 대자연을 자유롭게 탐험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퍼즐을 푸는 방식이 <젤다의 전설>에서 가장 중요한 게임적 특징일 텐데, 최근 작품은 '유저가 상상한 대부분의 행동'을 실제로 해볼 수 있는 자유도를 더해 현실과 흡사하면서도 판타지풍의 모험의 재미를 잘 살린 점이 주요한 재미 요소로 꼽힌다.
높은 자유도, 필드 인터랙션, 날씨와 행동에 따라 달라지는 현실적인 요소들 등 여러 가지 새로운 발상들은 이후 발매된 게임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기도 했다. 이후 2023년 5월에 출시된 속편인 <젤다의 전설: 왕국의 눈물>도 1,950만 장을 판매하는 등 연타 홈런을 날리며 시리즈의 인기를 입증했다. 일본 경제지에 의하면 2023년 4~6월 GDP가 전분기 대비 1.5% 증가한 것 역시 <젤다의 전설: 왕국의 눈물>의 영향이라고.

이 게임,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의 인기 요소에 대해 뭐라고 확정 지어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젤다의 전설> 두 타이틀이 전무후무한 판매량을 기록한 데에는 게임에서 기대할 수 있는 어떤 '인터랙션'의 영역이 대폭 확대된 것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시리즈가 오랜 시간 이어오면서 생긴 거대한 세계관도 영향이 없지 않겠으나, 그보다는 끊김 없는 오픈월드를 기반으로 하는 높은 자유도가 주는 확장성이 크다.
유저는 '등반'이라는 스킬을 통해 모든 절벽과 기둥을 올라갈 수 있으며 던전 내부의 일부 요소를 제외하면 원하는 모든 곳에 발을 디딜 수 있다.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소음 측정도 가능한데 소음이 너무 큰 경우 몬스터가 소리를 듣고 도망가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날씨가 너무 추운 상태에서 찬물에 들어가면 죽는 등 날씨의 영향력도 커서 기후에 따라 플레이를 달리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어드벤처 장르의 게임들이 '개발자가 지정한 공간'에서 '개발자가 지정한 행동'만 제한적으로 할 수 있는 데 비해 좀 더 자유로운 액션을 할 수 있는 자유도가 있었다.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2D와 3D를 적절히 섞은 듯한 모습으로 광활한 대자연을 콘셉트에 맞게 잘 펼쳐놓고 있어 유저가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그려나간다는 느낌을 주는 데 성공했다. 한 사람의 플레이어로서 확연히 다른 느낌의 게임 플레이 경험을 받을 수 있는 타이틀이 바로 <젤다의 전설>이었다는 뜻이다.
실사영화 소식이 걱정되는 것, 동시에 기대되는 것은 아마도 이런 지점일 것이다. 시리즈를 플레이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역으로, 링크의 모험을 통해 펼쳐지는 하이랄 왕국의 대서사시와 젤다를 둘러싼 전설의 실마리를 펼쳐가는 이야기가 평범한 판타지로서 재미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젤다의 전설>을 플레이한 대부분의 유저가 영화에 기대하는 것이 과연 '평범한 판타지' 스토리일까.

게임 실사영화가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도 어쩌면 같은 이유다. 게임은 어떤 스토리를 일방향적으로 재생하는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와는 좀 다른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유저는 직접 캐릭터를 조작해 새로운 행동을 하고, 행동에 따라 시스템은 다르게 반응하며, 전투나 인터랙션의 결과는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 그게 결국 커다란 줄기를 따라가는 식일지라도, 모든 유저가 다른 선택지를 고르기에 각 유저가 게임에 대해 기억하는 플레이 '경험'은 모두 다르다.
그에 비해 영화는 좀 다르다. 영화는 정해진 스토리가 있고, 관객의 선택에 좌지우지되지 않는다. 감독과 배우가 만들어낸 어떤 완성된 콘텐츠가 스크린을 통해 재생되고, 관객은 관람자이자 강제적 방관자로서 그 광경을 직관할 따름이다. 그 과정에서 어떤 감정과 느낌을 주느냐는 콘텐츠의 몫이지, 관객의 선택지는 없다.
덕분에 아무리 재미있는 게임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부분을 간과하는 이상 게임만큼 재미있는 '실사영화'가 되기는 어렵다. 스토리 자체가 장대하고 매력 있어서 이 부분을 잘 풀어낸다면 얘기가 다르겠지만(물론 젤다 역시 그렇지만), 게이머로서 느꼈던 재미와 관객으로서 느끼는 재미가 일치하기는 참 어려운 부분이기 때문이다.

뭐 이런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더라도, 닌텐도의 미야모토 시게루가 프로듀서로 참여한다는 소식에도 불구하고 협업자인 아비 아라드 때문에 걱정되는 것도 없지 않다. 단순히 실사영화 소식만으로도 걱정되는 게 사실인데 아비 아라드가 이제까지 해낸 것들(...)을 돌아보면 무려 36년 만에 제작되는 이 영화 역시 흑역사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아비 아라드는 마블 스튜디오에서 케빈 파이기의 전임이었으며 <스파이더맨> 오리지널 트릴로지의 제작자이기도 했지만, <판타스틱 포>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 그리고 <공각기동대> 실사영화를 열심히 말아먹은 주범이기도 하다. 즉 히어로무비 실사화가 시작될 시점에 토대를 쌓는 데 어느 정도 기여하기는 했으나 개별 시리즈에 있어서는 도저히 유능하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운 인물이라는 뜻이다. 특히 베놈을 너무 사랑해서 별 관계가 없는 상황에서도 베놈을 밀어넣는 걸로 유명한데(<스파이더맨 3>, <모비우스>가 그랬다) 정작 영화 <베놈>에서는 베놈 캐릭터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서(...) 이래저래 많이 까이는 사람이다.
2014년에 소니 픽처스가 해킹당하면서 밝혀진 문건에 의하면 아비 아라드는 이미 그 시점부터 닌텐도의 미야모토 시게루와 닌텐도가 보유한 IP 기반의 영화 제작 이야기를 진행 중이었다고 하는데...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때부터 <젤다의 전설>도 물망에 올랐을지 모를 일이다. 뭐, 젤다에는 베놈을 등장시킬 수 없을 거고(이런 걱정을 하게 하는 것부터 문제) 시리즈의 아버지이자 닌텐도의 임원인 미야모토 시게루가 직접 참여하는 만큼 불상사는 없을 가능성이 높지만, 어쩐지 걱정되는 게 사실이다.

어쨌거나,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이 보여준 2D와 3D의 중간 정도인 은은한 그래픽 풍을 생각해 보면 '지브리 풍의 실사영화'라는 얘기도 아주 동떨어진 느낌은 아니다. 오히려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인 <귀를 기울이면>이 실사영화로 제작되었던 이력도 있고(물론 흥행은 그리 좋지 못했으나) 여러 가지로 어떤 느낌일지는 대충 상상이 가긴 하는데.
실사영화인 만큼 너무 이질감이 들지 않는 캐스팅도 중요할 테고, 여기에 할리우드 영화계의 화두인 워싱 논란도 있을지 모르지만, 아직은 지켜봐야 할 시점일 것 같다. 과연 이 대작의 주인공인 링크(주인공은 젤다가 아니다!) 역을 맡을 배우는 누가 될까. '게임과 비슷한 3D 애니메이션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라는 물음표를 아직 지울 수는 없지만, 시리즈를 플레이한 전 세계 수많은 유저들을 만족시킬 만한 '무난하게 재미있는', 희망을 더하자면 '원작만큼 훌륭한' 영화로 제작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프리랜서 에디터 희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