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6월, 클래식 음악계는 18세의 임윤찬이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 우승자가 된 잊지 못할 순간을 목격했다. 새로운 역사가 쓰여진 순간이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2024년 12월 29일 기준, 반 클라이번 콩쿠르 공식 유튜브에 올라온 임윤찬의 라흐마니노프 3번 최종 라운드 연주의 조회수는 1600만이 넘어갔다. 현장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담긴 실황 영상이 올라온 뒤, 대중들의 폭발적인 조회수와 반응이 이어지자 주최 측은 음질을 개선한 버전을 새로 업로드했고, 클래식 음악을 듣지 않는 사람들까지 몰려와 난생 이런 연주는 처음이라며 영상에 댓글을 남겼다. 18세의 임윤찬은 말 그대로 놀라운 하나의 ‘현상’이었다. 결승 무대에서 그의 라흐마니노프 3번에 맞춰 오케스트라를 이끌다 차오르는 감동에 결국 포디움 위에서 눈물을 흘렸던 지휘자 마린 알솝처럼, 이 연주를 듣다 보면 어느 순간 눈에 눈물이 고이고는 했다.
이게 음악이지, 너무나 명백히 압도적으로 탁월하고 아름다워서 모두가 그 앞에서 굴복할 수밖에 없는 무언가. 음악의 본질이 오롯이 담긴 그의 연주에 듣는 이들은 누구나 즉각적인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참가자들을 두고 우승자를 가리는 것은 무의미한 것 같았다.

매 순간 다채로운 표정으로 들어찬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으로 압도적인 재능을 펼치기 전, 임윤찬은 이미 준결승에서 연주한 리스트의 ‘초절기교에튀드’로 일찌감치 모두를 놀라게 했다. 에튀드는 연습곡이다. 피아니스트들에게 필요한 기교와 테크닉을 훈련하기 위한 것이 그 본질이지만 쇼팽이나 리스트처럼 시대의 천재들은 연습곡으로도 자신의 음악성과 상상력을 마음껏 뽐낸다.
피아노는 과연 노래할 수 있는가?
음악이기에 기적은 가능하고,
임윤찬은 이 불가능을 피아노로 구현해 낸다.
단순하고 기계적인 반복이 아닌 음악적 표현과 감수성이 곳곳에 들어찬 이 연습곡들은 어렵다. 에튀드 중 한 곡만 악보에 놓인 음표들을 따라가고 흉내 내듯 연주하는 것만으로도 어렵다. 여기에 매 곡 서사가 느껴지는 한편의 모노드라마처럼 들리게 연주하는 건 단순히 어렵다, 는 수준을 초월한다. 에튀드의 형식적 제한에 갇히지 않고 협주곡이나 소나타와 같은 감동을 선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경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임윤찬은 이 불가능의 경지에 도달한 연주를 선보인다. 그가 연주하는 연습곡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수월해 보여서 우리가 알던 난곡 레퍼토리가 맞는지, 곡목을 다시 확인하게 만든다.

팬클럽을 몰고 다닐 정도로 당대 최고의 인기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던 리스트가 곡을 쓰면서 상상했던 이데아가 이랬을 것이다. 65분 동안 흐트러짐 없이 초절기교 연습곡 전곡을 선보이는 임윤찬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며 모두를 경악하게 만든다. 이 놀라움은 세기를 놀라게 한 걸작들과도 그 결을 같이 한다. 독보적 테크닉이라는 뼈대 위에 진한 감정의 페이소스로 살을 붙이고 세상에서 가장 많은 색이 담긴 팔레트를 쥐고 색을 입혀가는 예술가처럼, 임윤찬은 지금껏 세상에 없던, 새롭고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피조물을 만들어 나간다. 겨우 열여덟 살의 피아니스트가 도달할 수 있는 한계를 초월해 음악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음악을 듣는가, 라는 질문을 재정의한다.
피아노는 과연 노래할 수 있는가? 건반 악기인 피아노는 건반을 누르는 순간 내부의 액션 메커니즘이 움직여 해머로 현을 때리며 소리를 낸다. 20세기 들어 개량되며 굳이 분류한다면 타악기에 가까운 물성을 지녔으므로 몇몇 작곡가들은 피아니스트로 타악기적 효과를 내기도 했다.

노래할 때, 호흡으로 신체 곳곳을 공명하며 조절 가능한 표현과 프레이징이 건반악기로는 구현하기 어렵다. 고인이 된 한 거장은 리허설에서 끝없이 단원들에게 길게 설명했다. 현악기 파트에게 그는 계속 당부했다. 노래해야 합니다, 라면서 호흡에 기반한 프레이징을 상상하며 소프라노처럼 표현해 달라는 그의 요구 역시 이론적으로는 불가능이었다. 리허설을 지켜보다 마주한 단원들의 막막한 표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물리적 한계가 명백한 활로 현을 그어 소리를 내는 악기로, 사람이 호흡을 늘려 내는 소리를 어떻게 모사한단 말인가. 하물며 건반 악기인 피아노는 해머가 현을 때린 직후부터 음이 사그러든다. 피아노라는 악기의 물성을 이해한다면, 이 악기로 노래를 하는 것은 확률이 1%도 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다.
겨우 열여덟 살의 피아니스트가 도달할 수 있는 한계를 초월해
음악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음악을 듣는가, 라는 질문을 재정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이기에 기적은 가능하고, 임윤찬은 이 불가능을 피아노로 구현해 낸다. 그의 손끝에서 펼쳐지는 정밀하고 한 치의 오차도 없는 테크닉, 타오르는 불과 같은 열정과 함께 그의 피아노는 순식간에 노래를 시작한다. 때로는 속삭이고 중얼거리기도 하면서 가장 다채로운 표정을 가진 배우의 모노드라마를 보는 듯한 착시를 주기도 한다. 마지막 곡 ‘눈보라’에서 체력적으로 한계에 달한 그가 펼쳐내는 연주는 신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선 인간이 선보이는 무엇이다. 스산하고 거대한 회오리처럼 몰아치는 눈보라와 대결하듯 피아노 한 대로 맞서는 인간의 모습에서 벅차다, 라는 말로도 다 담기지 않아 아득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 아득한 시공간에 머무르는 동안, 인간이 만든 모든 잣대나 기준은 잠시 유효하지 않다. 이런 음악에 콩쿠르의 입상 결과는 무용해진다. 결국 그가 우승하는 승리의 서사 중 일부라는 사실마저 잠시 잊게 된다.

최고의 올스타전처럼, 여러 거장 음악가들이 초청된 음악 축제에 취재를 간 적이 있다. 작은 도시라 머무를만한 호텔은 단 한 곳이었다. 출연진과 취재를 온 언론이 같은 호텔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몇 시간 기차를 타고 달려간 여독에 지쳐 쓰러지듯 잠들었는데, 아침에 들려오는 바이올린 소리에 눈이 번쩍 뜨였다. 옆방에서 들려오는 세기의 거장의 연습 소리 덕분이었다. 3성 호텔의 보통 이하인 방음 수준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거장이 사용하는 악기의 소리는 벽을 지나 고스란히 들려왔다. 단순한 음계연습이었지만, 지금까지 들어본 바이올린 소리 중 가장 표정이 또렷하고 아우라가 완연했으며, 이런 소리를 내는 악기이니 엄청난 가격이 당연하다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그의 악기가 아마도 가장 가까이에 있을 법한, 가장 소리가 잘 들리는 지점을 찾아 방 곳곳을 돌며 거미처럼 바짝 벽에 몸과 귀를 붙이고 숨죽여 귀를 기울였다. 아침이면 차 한 잔을 마시는 루틴도, 조식을 먹으러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도 까맣게 잊은 채였다.
위대한 연주자는 그런 소리를 낸다. 듣는 사람을 한순간에 사로잡고, 꼼짝도 못 하게 만들며, 오롯이 숨죽여 귀 기울이게 만든다. 임윤찬의 연주가 담긴 다큐멘터리 <크레센도> 역시 다시 한번, 이 놀라운 연주를 듣는 순간으로 세기의 연주가 탄생한 그 때로 우리를 데려가 줄 것이다.

이미 타계한 전설의 소프라노처럼 다채로운 창법과 소리를 구사하는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무대에서 한껏 빛을 발하며 피아노로 노래하는 경이로운 순간을 복기하고 싶다면, 2023년 개봉하여 불과 1년 만에 재개봉한 <크레센도> 이상의 선택은 없을 것이다. 불가능이 가능이 되는 경험, 어떤 소리를 듣는 순간 꼼짝없이 그에 사로잡혀 우리가 잠시 인간의 몸을 지닌 존재라는 사실을 -당연한 신체적 욕구나 감각을- 잠시 잊게 되는 놀라운 몰입과 벅찬 감동을 모두가 경험하길 바란다. 압도적 크기의 스크린과 음향시스템 덕분에 놀라운 밀도로 경험의 재현이 가능한 영화관이라는 공간에서.
김나희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