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궁즉통. '궁하면 통하리라'는 이란의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최근 작품 활동을 가장 잘 포착하는 단어다. 각종 영화제에서의 수상 기록과 전 세계 비평가들의 극찬과는 별개로 이란 영화인들은 늘 탄압, 검열과 싸워왔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도 2010년 반정부 시위에 동조하다 체포돼, 징역 6년 형과 20년간 영화 제작, 시나리오 집필, 인터뷰 금지와 출국 금지를 선고받았다.
이후 감독은 정부의 눈을 피해 게릴라처럼 촬영해 첩보원처럼 영화를 밀반출했다. 영화가 들어 있는 USB를 케이크 안에 숨겨 칸국제영화제로 보내 깜짝 공개했고(<이것은 영화가 아니다>(2011)), 가택연금 기간 중에 캄보지아 파르토비와 공동으로 영화를 완성했다(<닫힌 커튼>(2013)).

악조건은 독창적 표현의 계기로 전환됐다.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질문하고 무너뜨리는 다큐 픽션 <택시>(2015), <3개의 얼굴들>(2018)이 전 세계적 호응을 얻었고, 제약을 돌파하기 위해 선택한 변통책은 촬영기법과 테크닉의 혁신으로 이어졌다.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완성시켰고, 선루프를 조명 삼고 계기판 옆 티슈통에 카메라를 숨긴 채 테헤란 곳곳을 누볐다. 부족함이 새로운 미학을 탄생시킨 순간이다.
2010년 이후 13년. 바뀐 건 별로 없다. 여전히 ‘합법적’ 영화 제작은 요원하고, 여전한 해외 출국 금지 조치로 세계 유수의 영화제로 딸과 조카를 대리 수상자로 보내고 있는 처지다. 다행인 건, 밟아도 가둬도 등등한 자파르 파나히의 기세도 꺾이지 않았다는 것.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유려하게 넘나든 전작 <택시>(2015)와 <3개의 얼굴들>(2018)에 이어 파나히가 영화의 감독이자 주인공이 되어 다시 관객을 찾았다. 2010년 이래 2-3년 간격으로 네 편의 영화를 쉬지 않고 내놓으며 차근히 키워온 '궁즉통'의 '짬바'는 신작 <노 베어스>에서 정점을 찍는다.
스카이프로 디렉팅하는 감독
어지러운 튀르키예의 시장 거리를 가로지르던 카메라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위조 여권을 주고받는 커플을 비춘다. 남자는 여자에게 한 프랑스 여성의 분실 여권을 건네며 유럽으로 떠나라 말한다. 기뻐하던 여자는 이내 남자 없이 홀로 국경을 건너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함께 가지 않으면 가지 않겠다"라며 화를 내며 돌아선다. 홀로 남은 남자가 담배에 불을 붙이자 누군가 외친다. "컷!". 그 순간 카메라가 천천히 뒤로 빠지며 연인의 풍경이 노트북의 작은 스크린에 띄워진다. 원격 촬영을 지시하고 있는 자파르 파니히의 노트북 화면이다.

파나히 감독은 스카이프로 영화를 디렉팅하는 중이다. 감독이 자리한 곳은 튀르키예 국경과 인접한 이란의 어느 작은 마을. 국경 너머 튀르키예에서 촬영이 한창 진행 중인 자신의 비밀스러운 신작 때문에 테헤란에서 이 먼 외지까지 온 참이다. 당국의 해외 출국금지와 영화 제작 금지 조치는 아직 살아있다. 그는 촬영 현장을 진두지휘할 수 없다. 국경은 지척이지만 그 벽은 높기만 하다. 영화 찍기를 포기할 수 없는 감독은 영상통화로 촬영 현장의 조감독과 소통해가며 영화를 진행한다. 하지만 궁벽한 시골마을, 인터넷은 수시로 끊기고 휴대전화의 신호조차 도무지 잡히지 않는다.
현실, 영화, 영화 속 영화, 영화 속 현실이 엉키는
감독 없는 현장은 조금씩 어긋나게 마련이다. 롱테이크가 들어가야 할 곳에 엉뚱한 클로즈업이 등장하고, 과도한 배우의 감정도 좀체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컷' 바깥의 세상이다. 이란 정부의 탄압을 피해 망명을 시도하는 부부의 이야기는 사실 두 사람의 실제 삶을 바탕으로 재가공한 다큐-드라마 형식의 영화다. 프랑스 여성의 분실 여권을 손에 넣으며 희망으로 잠깐 반짝이던 망명은 곧 난항을 겪는다. 커플의 출국은 좌절되고, 그렇게 영화 촬영도 어그러진다.

이란이라는 망령에 사로잡혀 좌절된 국경 너머 중년 커플의 이야기는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파괴된 국경 안쪽 젊은 연인의 사연과 교차된다. 인터넷 신호가 끊겨 더 이상 원격 촬영을 이어갈 수 없던 감독은 집 밖에 나와 마을의 풍경 여기저기를 찍는다. 마을 주민과 촌장은 곧 파나히 감독을 찾아 젊은 한 쌍의 밀회 현장을 찍지 않았는지 추궁한다. 마을에는 여자의 탯줄이 잘리는 순간, 남편이 정해지는 오랜 전통이 있다. 하지만 이 젊은 여성은 다른 이를 사랑한다. 사랑을 허락받지 못한 젊은 연인은 튀르키예로 도피를 계획한다. 마을 사람들은 감독에게 밀회의 증거를 내놓으라 요구하고, 거절하자, 그 요구는 점차 겁박으로 바뀌어간다.

영화는 무관한 듯 관련 있는 이야기들을 교차시키며 이란이 처한 현실을 비판적으로 파고든다. 파나히 감독이 머무는 이란의 작은 국경 마을, 유럽 망명을 꿈꾸는 커플이 등장하는 영화 속 영화, '컷' 소리 다음에 펼쳐지는, 촬영지 튀르키예에서 펼쳐지는 또 다른 현실. 여기에 감독이 실제로 고립 상태라는 사실이 영화 속 서로 다른 시공간과 엉키며 <노 베어스>는 허구와 진실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곰은 없다? 영화 제목에 담긴 뜻
<노 베어스> 영화 제목은 마을에서 통행을 금기시하는 길을 지나가려는 파나히 감독에게 '곰이 나온다'라 경고한 한마을 사람의 말에서 따왔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곰을 내세워 출입을 통제하는 모습은 근거 없는 맹신과 두려움으로 국민을 조종하는 종교, 전통, 정부를 은유한다. 감독은 제목에 '곰은 없다'라고 천명하며 권력을 허구화한다. 억압된 존재들을 향해 휘둘러지는 전통과 미신의 근거 없는 맹신을 비판한다.

영화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영화 속 파나히 감독은 사진을 찍었다는 이유로 집요하게 추궁 받는다. 감독에게 가해진 정부 탄압에 대한 직설적인 은유라고 생각했던 이 장면은 “사진이 없다고 말하세요. 그럼 평화로워질 거예요”라고 속삭이는 마을 장로의 목소리에 이르면 전혀 다른 텍스트가 된다.
이제, 파나히의 카메라가 연인의 모습을 담았는지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맹세의 방'에서 '사진이 없다'고 맹세만 한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진실이 되는 절대적 미신으로 구축된 세상. 카메라는 진실을 포착하는 데 한없이 무능력하고, 현실의 무엇도 바꿔내지 못한다. 감독의 무력감은 영화의 비극적 결말로 귀결된다.

이란을 벗어날 수 없는 감독과 이란으로 되돌아올 수 없는 배우의 만남 또한 영화가 품은 강력한 아이러니 중 하나다. 극중 유럽으로 망명을 꿈꾸는 ‘자라’ 역의 배우 미나 카바니는 2014년 세피데 파르시 감독의 영화 <레드 로즈>에서 노출 연기를 한 뒤 10년째 프랑스에서 망명 생활 중이다. 실제 촬영도 이란의 국경 마을에 머물고 있는 감독이 영상 통화로 터키 촬영 현장과 소통하며 이뤄졌다.
배수진의 심정으로 영화적 증언을 이어온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처절한 '궁즉통'이 언제까지 가능할 것인가. '자라'를 잠식한 자유로울 권리를 박탈당한 이란인들의 고독과 절망은 감독의 그것일까. 아니면 현실을 증언하며 미약한 반동이라도 만들겠다는 영화적 의지 표출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