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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마침표를 어떻게, 누구와 찍을 것인가? 이들처럼 나이 들고 싶어지는 영화 〈소풍〉

김지연기자

나이 80에도 함께 인생네컷을 찍고, 실수로 햄버거 5개를 주문한 친구를 놀리고, 괜찮은 남자를 보고는 한번 사귀어 보라며 너스레를 떨고, 같이 요양병원 들어가서 재밌게 놀자며 농담을 하기도 하고, 자주는 못 봐도 가끔 보면 어제 만난 듯 어색함 전혀 없는, 한없이 유치해지는 관계. 이렇게 나이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 <소풍>이 올 설에 개봉한다. 개봉에 앞서 지난 23일 진행된 언론배급시사회와 기자간담회에서는 <소풍>의 김용균 감독과 배우 나문희, 김영옥, 류승수가 참석해 함께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영화를 관람한 후기와 배우들의 말을 토대로 영화 <소풍>의 이모저모를 정리해 전한다.

 

 


연기 경력 도합 195년의 세 배우, 80대의 삶을 다룬 이야기

 

영화 <소풍>은 절친이자 사돈 지간인 두 친구가 60년 만에 함께 고향 남해로 여행을 떠나며 16살의 추억을 다시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다. ‘은심’ 역을 맡은 나문희는 연기 63년 차, ‘금순’ 역의 김영옥은 연기 67년 차, 그리고 그들의 어린 시절 친구 ‘태호’ 역의 배우 박근형은 연기 65년 차로 도합 연기 경력이 무려 195년이다.

명배우들의 연기 하모니와 관록을 지켜보는 재미도 크지만, <소풍>이 무엇보다 반가운 이유는 상업영화로는 드물게 80대의 삶을 다룬 영화이기 때문이다. 배우들과 감독은 그래서 어려움이 많았다고 작업 당시를 회상했다. 배우 나문희는 “(<소풍>에) 노인들만 나오니까 투자자가 없었다. 그런데 <아이 캔 스피크> <열혈남아>를 함께 했던 분들이 열심히 도와주셨다. 정말 진심이 많이 모였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나문희는 “(<소풍>의 배급을 담당하는) 롯데엔터테인먼트가 <소풍>의 개봉을 언제 확정할지를 12월부터 손꼽아서 기다렸다. 그런데 구정(설)에 개봉한다고 하니 축복받은 것 같고, 감사하다”라고 설 연휴에 관객들을 만나게 된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나문희와 김영옥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던 영화 속 두 사람의 우정

 

실제로 배우 나문희와 김영옥은 스무 살 즈음부터 지금까지 절친한 사이다. 그들의 60여 년 우정은 스크린에도 고스란히 담겨, 가장 숨기고 싶은 모습,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내어줄 수 있는 눈부신 관계로 감동을 선사한다.

<소풍>에서 김영옥이 연기한 금순이 “다시 태어나도 네 친구 할 끼야, 사랑한다”라고 내뱉는 부분은 그야말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다. 김영옥의 말로는, 그들은 화면에 나온 것보다도 더욱 절친하다고 한다. 그의 말로는, 둘은 “찐친”(문자 그대로 ‘찐친’이라고 말했다)이라고. 또한 그들은 서로의 존재가 <소풍>의 출연을 결정하게 된 이유가 됐다. 그들은 "네가 안 하면 나도 안 해”라며, 동반 출연을 고집했다.

​김용균 감독은 “내가 감히 이들을 이해하고 연출할 수 있겠나 싶었다. 그래서 선생님들에게 계속 여쭈었다. 내가 영화의 첫 번째 관객으로서, 그들을 지켜봤다. 관객분들도 저처럼 이분들을 보는 마음을 느끼셨으면 좋겠다”라며 둘의 각별한 우정을 언급했다.

 


‘어떻게’ ‘누구와’ 소풍을 마무리할 것인가

 

 

예상이 가는 스토리로 눈물샘을 자극하는, 따뜻하고 훈훈한 가족 코미디일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소풍>은 여러 가지 맥락으로 읽힐 수 있는 영화다. 오래된 마을을 철거하고 리조트를 만들려는 사람들, 본사의 만행으로 고통받는 가맹점주, 부모를 요양병원에 입원시키고 떠난 자식들, 그리고 존엄사에 대한 문제까지. <소풍>은 두 사람의 진한 우정이라는 외피 아래에 현실적인 고민들을 담담하게 녹여낸다.

기나긴 소풍의 끝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 배우 나문희는 지난달 남편을 떠나보냈다. 나문희는 기자간담회에서 “이 작품은 현실하고 참 가깝다. 나는 (전에) 우리 영감의 연명치료(연명의료)를 싫다고 했었다. 그런데 그때는 그게 어려웠다. 이 작품이 (존엄사 문제를 언급하고 있는 만큼) 현실에서 큰 이슈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말하며 <소풍>과 삶의 유사성을 말했다. 연명의료는 치료 효과 없이 임종까지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의료 시술로, 현재는 연명의료계획서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할 수 있는 기관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김용균 감독은 “나도 몇 년 전에 어머니를 보냈고, <소풍>은 나에게도 다가올 미래구나 싶었다. 인생을 소풍처럼 다루는 것은 나에게도 좋은 경험이 되겠구나 싶어, 연출을 시켜달라고 매달렸다”라고 영화를 연출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김용균 감독이 임영웅에게 편지 쓴 사연

 

<소풍>의 엔딩에는 임영웅의 자작곡 ‘모래 알갱이’라는 노래가 깔려 여운을 더한다. 이 노래가 엔딩의 울림을 더욱 배가하는 이유는 바로 가사 때문인데, “나는 작은 바람에도 흩어질 나는 가벼운 모래 알갱이 그대 이 모래에 작은 발걸음을 내어요 깊게 패이지 않을 만큼 가볍게” “그래요 그대여 내 맘에 언제라도 그런 발자국을 내어줘요 그렇게 편한 숨을 쉬듯이 언제든 내 곁에 쉬어가요”라는 부분은 영화 속 두 사람의 우정, 그리고 한나절의 소풍과도 같았던 인생을 은유하는 듯하다.

김용균 감독은 이 노래를 영화에 삽입한 이유를 “80대의 삶을 다룬 영화인데, 영화음악을 사용할 때 아이러니를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음악감독이 보사노바를 제안했을 때 신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가 부족했는데, 영화의 엔딩을 장식하는 복합적인 감정을 담은 곡이 필요했다. 위로일 수도 있고, 희망일 수도 있고. 그 곡을 찾기 힘들었는데, 마침 임영웅의 ‘모래 알갱이’라는 곡을 들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워낙 뜨거운 인기를 구가하는 가수의 곡이라 영화에 삽입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제작진은 온 마음을 다해 편지를 썼고 임영웅이 흔쾌히 허락했다고. 그리고 임영웅은 ‘모래 알갱이’의 음원 수익 전액을 기부하기로 했다.

한편 배우 나문희와 김영옥, 김용균 감독은 지난 21일 임영웅의 콘서트를 관람하기도 했는데, 이날 나문희가 ‘일산 사는 호박고구마’라는 닉네임으로 보낸 사연이 채택되어 화제가 됐다.

 

씨네플레이 김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