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함께 영화를 봅니다. 멜로물을 보며 연애 시절을 떠올리고, 육아물을 보며 훗날을 걱정합니다. 공포물은 뜸했던 스킨십을 나누게 하는 좋은 핑곗거리이고, 액션물은 부부 싸움의 기술을 배울 수 있는 훌륭한 학습서입니다. 똑같은 영화를 봐도 남편과 아내는 생각하는 게 다릅니다. 좋아하는 장르도 다르기 때문에 영화 편식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편집자 주-
우리 부부의 첫 이사가 끝났다. 포터(화물차) 보유자 남편 덕분에 이삿짐센터를 부르지 않고 며칠을 나눠 짐을 옮겼다. 다만 생각지도 못한 짐이 계속 계속 나온 것이 복병이면 복병. 하루로 예상했던 이사는 일주일이 돼서야 마무리가 됐고, 짐을 모두 옮긴 날에는 실~실~ 자꾸만 웃음이 새어나왔다. “여기가 이제 우리 집이야?” 새 집에 누워 새 기분을 만끽하던 와중 들려오는 소리.
쿵.. 쿵.. 쿠쿠쿠쿠쿠쿵..콰...앙
이사가 늦어진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사 첫날부터 들려오는 위층의 소음.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알겠다. 위에는 한창 뛰어다닐 나이대의 아이가 살고 있다는 것을. 한 명이 뛰어서는 이 소리가 안 난다. 두 명 정도는 마구 뛰어다녀야 날 법한 소리다. 낮에만 그런가 싶어 일단 긍정 회로를 돌린다. 하지만 해가 지고 우리 부부는 절망에 빠진다. 눈을 감을 때까지 들려오는 소리. 이게 말로만 듣던 층간소음이란 말인가.


영화 <빈틈없는 사이>의 첫 장면이 딱 이렇다. 남자주인공 승진(이지훈)은 이사 첫날부터 소음에 시달린다. 우리 부부와 다른 점이 있다면 승진은 층간소음이 아닌 벽간소음에 시달린다는 것. 자려고 누웠는데 벽 너머 여자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비명소리까지. 이건 도저히 사람 소리가 아니다. 승진은 놀라서 집 밖으로 뛰쳐나간다.
이거 귀신영화였어? 라고 생각하던 순간 궁금증은 풀린다. 흐느끼는 여자의 소리는 옆집 여자였다. 승진의 옆집에는 여자주인공 라니(한승연)가 산다. 그리고 이 두 남녀의 집 사이에는 방음이 전혀 되지 않는 얇은 벽이 존재한다. 두 집은 서로의 말소리까지 다 들린다. 하다 하다 벽을 사이에 두고 대화도 가능하다. 이는 영화적 판타지가 가미된 부분이기도 하다. (진짜 이런 집이 있다면 심심한 위로를 전합니다)
그러다보니 라니는 승진을 내쫓아 내는 것이 목표다. 옆집에 아무도 없어야 벽간 소음에서도 벗어날 수 있기 때문. 라니는 여태 온갖 방법으로 옆집 사람들을 쫓아 내 왔다. 하지만 이번엔 만만치가 않을 모양새다. 라니가 믹서기를 돌리면 승진은 시끄러운 기타를 치고, 라니의 반죽 치대는 소리에 승진은 늦은 밤 피아노 연주로 응수한다.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승진과 라니는 결국 합의한다. 하루 4시간씩 시간을 나눠 쓰기로. 가수 지망생인 승진은 4시간을 노래 연습에 할애한다. 그리고 알람이 울리고 이번엔 라니의 시간. 조형물 작가인 라니는 반죽을 하고 무언가를 만드는 데 시간을 쓴다. 이 둘은 사이좋게 4시간씩 나눠 가졌다.
이게 무슨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집이란 말인가. 분명 내 집인데 24시간 중 절반 12시간밖에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이 둘에게는 평화가 찾아왔다. 더 이상 벽간소음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우리 부부도 한번 부딪혀 보기로 한다. 당하고만 있을 수 없지 않은가. 이사 온 기념으로 롤케이크 3개를 구입했다. 옆집, 아랫집, 윗집 인사를 가기 위함이다. 사실 윗집에 주는 롤케이크에는 하나의 의미가 더해졌다. 바로 ‘염탐’.

동태를 살피러 윗집에 올라갔더니 보이는 어린이용품들. 네발 자전거며 장난감이며 유모차까지. 집 입구부터 장난꾸러기들의 분위기가 물씬 난다. ‘딩동’ 벨을 누르고 몇 초 후. 젊은 여성이 문을 연다. 그리고 그 여성 앞으로 열 맞춰 선 두 어린이. 그리고 어린이 두 명은 공손하게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그 순간 마음이 사르르 녹는다. ‘그래. 애기가 좀 뛰어다닐 수도 있지. 그냥 우리가 참자’ 그리고 이어지는 윗집 여자의 말.
아휴 뭐 이런 걸 다 주세요.
저희 이번 달에 이사 나가는걸요.
두 어린이의 귀여움에 이미 화가 누그러졌는데… 이사를 나간다고? 생각지도 못한 전개다. 아니 그럼 층간소음도 이번 달이 끝인 거야? 아니지 아니지. 누가 또 이사 들어올지 모르잖아. 하지만 두 어린이가 들어올 확률은 낮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내려오는데. 그때 남편의 한마디가 가관이다. “얘들아 지금부터 마음껏 뛰어라. 집에서 자전거를 타도 뭐라 하지 않을게.”
윗집에 가지는 감정에 따라 층간소음의 스트레스도 반감되는 걸까. 승진과 라니도 그랬다. 이 둘은 벽을 사이에 두고 진솔한 이야기를 나눈다. 특히 승진은 라니에게 고해성사를 하기 시작한다. “전 여자친구가 돈 많은 새끼랑 결혼한대요. 그런데 저는 서른하나에 정장 한 벌도 없고 직업도 없어요. 가수 일도 그래요. 하면 할수록 뭔지도 모르겠고. 항상 나만 제자리인 것 같네요.” 이 말에 라니는 조언을 건넨다. “항상 제자리인 사람은 없어요. 애정을 가지고 꼼꼼하게 들여다보면요. 그게 뭐든. 사물이든 감정이든. 그러다보면 앞으로 나가게 돼 있죠.”
라니가 힘들 때는 승진이 나선다. 라니는 조형물 저작권 문제로 대표와 갈등을 겪고 있다. 승진은 대표를 찾아가 혼쭐을 내주기도 하고, 라니가 잘못된 결정을 하려고 할 때 바로잡아 주기도 한다. 둘은 그렇게 가까워진다. 벽에 각자의 침대를 붙이고, 데이트는 노트북을 켜서 거리뷰로 한다. 친구도 각자 초대해서 테이블을 붙이고 함께 식사를 한다. 함께인 듯 따로인 듯. 둘은 점점 가까워진다. 고작 벽 하나를 놔둔 채.

윗집의 층간소음을 겪고 나니 문득 든 생각. 나도 층간소음의 가해자는 아닐까. 그날로 바로 소음방지 슬리퍼를 구매했다. 세탁이나 청소는 해가 지기 전에 완료하자는 우리만의 룰도 만들었다. 아참. 노래를 부르며 샤워하던 남편의 버릇도 고쳤다. 윗집 화장실에서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에게 호되게 당한 이후의 변화다.
방음이 안 되는 아파트를 탓하자고 생각하면 끝도 없는 싸움이다. 그저 서로서로 조심하기로 한다. 하지만 이사 오고 며칠 뒤 알게 된 또 하나의 복병.
하.. 우리집이 도로변이었네..
차 다니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이건 어쩌냐?
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