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함께 영화를 봅니다. 멜로물을 보며 연애 시절을 떠올리고, 육아물을 보며 훗날을 걱정합니다. 공포물은 뜸했던 스킨십을 나누게 하는 좋은 핑곗거리이고, 액션물은 부부 싸움의 기술을 배울 수 있는 훌륭한 학습서입니다. 똑같은 영화를 봐도 남편과 아내는 생각하는 게 다릅니다. 좋아하는 장르도 다르기 때문에 영화 편식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편집자 주-
이삿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드디어 8평 남짓 원룸 오피스텔에서 탈출한다. 시원하기만 하냐고? 섭섭하기도 하다. 신혼집이라 온갖 애착을 가지고 집을 꾸몄다. '8평인데 꾸며 봤자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우리의 작은 오피스텔에는 없는 것이 없다.
도대체 뭐부터 버려야 되지…
우리 부부는 <미니멀리즘-오늘도 비우는 사람들>(이하 <미니멀리스트>)을 보기로 한다. 이사를 20일 앞둔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영화. 넷플릭스 영화 <미니멀리스트>는 다큐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나친 소비와 문제점, 그리고 왜 미니멀리즘을 실천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선 영화는 사람들이 왜 ‘맥시멀리스트’가 되었는지에 대해 지적한다. 사고 싶은 물품을 24시간 내로 배송받을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 문제다. 그리고 인류 역사상 우리는 광고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실 선택의 여지도 별로 없다. 큰 기관 몇 곳서 독점한 채 뭘 볼지 대신 선택해 준다. 우리 관심사와 고유 취향을 조작한다. 단지 갖고 싶었던 물건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게끔 만든다.
실제 미국 광고 산업의 연간 규모는 1950년대 50억 달러에서 현재 2400억 달러로 올랐다. 수천억 달러 들여 “너에게 이게 필요해”라고 말해주는데 안 넘어갈 재간이 없지 않은가. 이들은 우리의 모바일 장치까지 꿰뚫고 있다. 자주 가는 상점, 신용카드 빚까지 모두 알고 있다. 즉 광고메시지를 보낼 최적의 타이밍을 알고 있는 것. 이들의 최종 목표는 똑같다. 물품을 많이 사게 하는 것에 있다.

우리 부부는 광고주들이 매우 반길만한 타입이다. 그중에서도 내가 문제. 나는 유명한 소비요정이다. 마음에 드는 니트는 깔별로 가지고 있어야 속이 시원하고 자칭 타칭 양말성애자라 깔별 소재별 양말이 한가득이다. 또 취향소나무라 내 취향이면 비슷한 옷이라도 무조건 산다. 이러고보니 의류에만 집중된 것 같지만 이는 모든 장르에 통용된다.
거기에다 남편은 그런 나의 소비를 부추기는 존재. 내가 뭘 사고 싶다고 하면 그의 사전에 NO란 없다. 소비요정에게 그야말로 천생연분 배우자다. 하지만 그 사이 8평 우리집은 더 좁아져 가고 있었다.
인스타를 보다보면 카드빚이 쑥쑥
영화는 광고 이외에도 SNS가 소비를 부추긴다 말한다. 정보 홍수 시대에 소비 홍수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 지금 현대인은 친구나 이웃, 그리고 그들의 집안 속속까지도 쉽게 알 수 있다. 휴대폰만 켜면 된다. 그러면 친구 집에 수저가 몇 개 있는지까지 알 수 있다. 이렇게 되면서 과거 세대보다 비교하는 경향이 심해졌다. 다른 사람의 인생과 내 인생을 비교하게 되는 것이다. 알고 보면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허상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우리 부부는 며칠 전 친구 부부집에 초대를 받았다. 이사를 하고 인테리어를 해 놨다는 친구 집은 너무 멋졌다. 인스타로 훔쳐보던 사진보다 친구의 집은 실물파. 원목 싱크대에 패브릭 소파. 내가 꿈꾸던 집의 모습이었다. 친구 집에서 돌아온 날. 우리 부부의 장바구니에는 몇 가지 항목이 더 담겼다. 이사 갈 때 그냥 옮겨가기로 한 소파와 식탁이 주인공. 우리가 이사 갈 집과 친구의 집은 평수도 다르고 구조도 다르다. 하지만 온통 내 머릿속은 친구의 집으로 가득 찼다.
그뿐만이 아니다. SNS는 정말 해롭다. 요 근래 가구를 몇 개 찾아봤더니 SNS에는 온통 가구 소비를 독려하는 게시물 뿐이다. 알고리즘이라는 게 이런 걸까. 그러다보면 나도 모르게 주문 버튼을 누르고 있다. 카드 빚이 늘기 전에 이 영화를 시청해서 다행이라는 생각뿐. 사지 말자. 사지 말고 일단 버려보자.
우리는 왜 이렇게 못 버리는 것일까
<미니멀리즘>의 주인공은 엄마의 죽음을 두고 이 해답을 찾아간다. 주인공은 모친의 집을 정리한다. 하지만 모친의 집에는 물건이란 물건이 다 쌓여 있었다. 접시 컵 그릇이 수백 개. 수건은 호텔을 운영해도 될 만큼 준비돼 있었다. 여름 나라에 사는데 겨울 코트 14벌은 왜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모친의 침대 밑에서 상자 네 개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 상자에는 아들이 어린 시절 기록한 공책이 쌓였다. 숙제, 일기.. 모친은 아들의 일부를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20년 내리. 그 추억을 안고 산다고 아들이 함께인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리고 아들은 그 물건을 정리한다. 추억을 간직하겠다고 상자를 갖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결론 내린다. 엄마의 물건을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일부 물건은 팔아 자선단체 수익금으로 기부한다. 모친의 잡동사니들은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었다.

"우리 엄마랑 똑같네!" 남편이 나지막이 외친다. 남편의 어머니. 즉 나의 시어머니도 추억을 가지고 산다. 오죽하면 결혼하고 얼마 안 돼 나에게 연락이 왔었다. 남편이 어릴 적 받은 웅변 트로피를 가지고 가지 않겠냐는 연락. 트로피뿐만 아니다. 남편이 어릴 적 읽었던 만화책, 남편의 옷가지. 시댁에는 남편의 추억들이 가득하다. 하다하다 남편 얼굴이 박힌 쿠션까지 있다. 그 쿠션은 누리끼리 변색된 지 오래다. 꽤나 귀여워서 가져올까 잠깐 고민도 했다. 곰팡이가 안 핀 것에 감사하며 말이다.

버리자. 비우자.
영화는 마지막으로 정리하는 법에 대해 알려준다. 방법은 두 가지로 크게 나뉜다. 우선 첫 번째는 하루에 한 가지 이상의 물건을 버리기. 도전 과제와도 같다. 하루에 하나씩 물건을 버리자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물건들만 남았다. 이 물건이 과연 내 인생에 가치가 있을까. 스스로 질문하고 또 행동한다.

다른 한 방법은 짐을 싸는 것이다. 그리고 21일 동안 그 짐에서 필요한 물품만 꺼내 쓴다. 그리고 3주 후 상자 속 80%의 물건은 꺼내지 않았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뭐가 들었는지 기억도 안 날 만큼. 그 물건은 나에게 가치 없는 물건이었던 것이다.
미니멀리즘을 실천한 사람들은 증언한다. “태어나 처음으로 자유로워진 기분이에요.” “나만의 시간 되찾고, 내 인생을 되찾았어요.” “물건이 아니라 삶에 집중하게 됐죠.”
자. 이제 우리 부부는 이사일까지 20일이 남았다. 주어진 시간은 한 달도 안 된다.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미니멀리즘을 실천할 것인가. 일단 장바구니 속 가득 넣어놨던 물건부터 삭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