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히 ‘손을 뗀다’라는 말은 하던 일을 그만둔다는 뜻으로 쓰인다. 모종의 나쁜 일이나 불법적인 행동에선 손을 떼는 건 ‘손을 씻는다’라고 표현하곤 한다. 일종의 회개나 개심, 반성적 자각이 담긴 말이다. 손을 씻거나 떼는 사람은 이후 어떻게 되는가. 단지 손을 씻거나 떼는 것만으로 그 이전의 삶이 완전히 사라지거나 용서받는 건 아닐 거다. 그렇더라도 자신이 탐닉해왔거나 스스로를 옥죄던 사슬에서 풀려나는 건 분명할지 모른다. 마치 손목에 채워져 있던 수갑이 풀어지듯이.
지리한 듯 끈적끈적한 스릴러
<탈피>(2023)는 그랜트 싱어 감독의 첫 연출작이다. 베니시오 델 토로가 제작에 참여했는데, 주연 역시 베니시오다. 그저 그런 미스터리 스릴러라 폄훼할 수도 있을 정도로 지리한 면도 없지 않고, 인간에게 내재된 악마성과 모순을 어두침침하게 들춰낸 진중한 작품이라 추켜세울 여지도 없지 않다. 어째, 보는 이의 기분과 심리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원제는 ‘Reptile’, 파충류다.

파충류가 허물을 벗는다는 건 익히 아는 사실이다. 영화 초반에 뱀의 허물이 잠깐 나오는 장면이 있다. 부동산 중개업자인 사라가 새로 입주 예정인 저택을 청소하다가 발견하는데, 이내 내다버린다. 크게 눈여겨보게 되지 않는 장면이나, 제목 때문에 계속 거슬리기도 한다. 사라는 얼마 후 수십 차례 칼에 찔린 시체로 발견된다. 얼마나 세게 찔렀는지 골반에 칼이 억세게 박혀 있을 정도다. 이게 이 영화의 본격적인 시작이다.
사라는 또 다른 부동산 중개업자 윌(저스틴 팀버레이크)과 내연관계에 있는 유부녀다. 둘은 곧 결혼할 것처럼 보이지만, 윌을 만나면서도 사라가 전 남편과 은밀히 관계를 지속해 왔다는 건 사라가 죽은 직후 금세 드러난다. 그리고 윌에게 원한을 품은 또 다른 남자가 있다. 사라를 둘러싼 이 세 명의 남자를 유력 용의자로 지목하면서 수사가 진행된다. 부동산 거래와 관련한 돈 문제 또는 치정 사건일 거라는 클리셰가 제시되지만, 뭔가 미적미적, 그리고 끈적끈적하게 꾸물거리는 전개 방식은 그게 단지 클리셰에 불과할 뿐이라는 걸 짐작케 한다. 사건이 벌어진 장소는 스카버러다.
누가 범인일까? 내기해 볼래?
전직 근무처에서 파트너의 비리 내사 건으로 곤욕을 치른 베테랑 형사 톰(베니시오 델 토로)은 아내(알리시아 실버스톤)와 함께 막 스카버러로 옮겨온 상태. 아내의 삼촌 앨런이 스카버러 경찰의 수장이다. 톰은 앨런의 배려와 신뢰 덕에 살인사건의 책임자가 된다. 톰은 아내와 일밖에 모르는 남자다. 젊은 흑인 신참이 톰의 파트너가 된다. 스카버러의 토박이 경찰들과 첫 모임 장소에서 톰은 손에 붕대를 감고 있다. 주방에서 다쳤다고만 말할 뿐,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다. 베테랑 경찰들이 톰을 환대한다.

살인사건 수사는 유력 용의자들을 심문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용의자들의 태도가 다들 수상쩍다. 톰이 잘 알지 못하는 어떤 과거의 사슬 같은 것으로 엮여있는 듯 보인다. 정신 상태도 온전해 보이지 않고 뭔가에 쫓기거나 홀린 듯 행동한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였다가 슬슬 용의선상에서 물러나는 듯 보이는 윌만 외관상 멀쩡해 보인다. 윌에겐 부동산 중개업을 물려준 어머니가 있다. 어머니는 윌에게 애착이 강해 보인다. 행동 하나하나에 간섭이 심하다. 사건은 오리무중 상태가 된다.
스카버러의 베테랑 경찰들은 자주 포커판을 벌인다. 용의자들을 두고 누가 범인인지 장난스레 내기를 하기도 한다. 톰은 그들과 자연스레 어울리는 듯 보이지만, 어쨌거나 외지에서 온 사람이다. 그가 기댈 데라곤 아내와 앨런밖에 없다. 영화 전체의 흐름이 나른한 듯 느릿느릿 진행되는 건 일견 베테랑 경찰들의 여유와 관록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숨 막히는 추격전 같은 건 거의 없다. 끈적끈적하고 능글맞고 가끔 돌발적이라는 느낌은 순전히 제목 탓인지도 모른다. 뭔가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이 제기되는 상황이면 여러 장면들을 빠르게 교차시키면서 초점을 흐린다. 잡았다 싶을 때 꼬리를 자르고 달아나는 도마뱀이 떠오르는 것도 역시 제목 탓일 거다.
집요한 듯 산만한, 그러나 끈끈한
수사가 진행되는 중, 용의선상에 있던 한 남자가 톰에게 살해된다. 정당방위 불가항력 판정으로 톰은 과실 책임에서 벗어난다. 살해된 남자가 범인이었음이 특정되면서 수사가 일단락되는 분위기. 앨런은 톰에게 무공훈장이 수여될 거라고 귀띔한다. 그래도 톰은 뭔가 찜찜하다. 단순 치정이나 부동산 거래 관련 사건을 넘어 보다 큰 음모가 있을 거라는 직감도 있다. 다른 경찰들은 사건에서 손을 놓으려 한다. 그러다가 톰이 또 다른 단서를 찾아낸다. 그러면서 스카버러의 경찰들 사이에서 고립된다. 더 이상은 스포일러가 될 것이다.
베니시오 델 토로의 연기는 무던한 듯 신경증적인 톰의 캐릭터를 밀도 있게 그려낸다. 어딘가 찌들고 예민하고 집요한,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 형사의 내면이 행동거지 하나하나에서 섬세하게 드러난다. 마치 얼굴을 가득 채운 주름살과 지저분한 코털이 연기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자칫 무겁고 심각한 인물일 수도 있으나, 베테랑다운 여유와 세심함에서 신뢰감도 느껴진다. 배우로서도, 그리고 경찰로서도 참 출중하다는 느낌이다. 그는 영화에서 결국 혼자 싸우는 사람이 된다. 사건의 규모가 단순 살인을 넘어 부동산 사기와 마약 밀매까지 엮여있다는 사실은 이 영화가 가진 상투적이고 안일해 보이는 설정이지만, 때로 영화는 배우 한 명의 존재감만으로 강한 힘을 가지기도 하는 법이다.

그렇다고 톰이 무슨 슈퍼맨처럼 일당백의 활약을 하는 것도 아니다. 앞서 말했듯 영화는 느릿하고 지리한 측면이 강하다. 관객과 두뇌 싸움을 벌이는 정통 추리극도 아니다. 사건을 푸는 단서들이 암시처럼 던져지지만 다 보고 나서 곱씹어보면 작위적이거나 이야기 흐름을 배배 꼬는 허수처럼 여겨지는 부분이 많다. 산만하게 제시되는 그 단서들이 사건의 핵심을 구성하는 필수 요소로 작용하지 않는 부분도 적지 않다. 플롯의 완성도만 따지면 그리 탄탄하지도 정밀하지도 않은 영화라 혹평할 여지가 있는 거다.
그는 과연 완전 ‘탈피’한 건가
그럼에도 2시간 14분의 러닝타임이 그닥 지루하지만은 않다. 개인적으론 왜 제목이 ‘Reptile’이고, 그걸 또 왜 ‘탈피’라 번역했을까라는 의문을 곱씹으면서 보는 재미도 있었다. 물론 아주 엉뚱하거나 어이없는 제목도, 번역도 아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의문이 완전히 풀리진 않는다. 톰은 처음 등장할 때 손을 다친 상태였고, 마지막 총격전에서 또 손을 다친다. 결국 엔딩 부분에서 손을 치료하고 박피하는 장면이 나오긴 하는데, 그건 주제를 부각하기 위한 사족처럼 여겨질 뿐이다. 사건의 내막이 다 까발려지고 의외랄 수 있는 반전이 펼쳐지는데, 그 역시 기상천외하거나 완전히 예상을 뒤엎는 수준은 아니다. 반전을 통해 관객의 뒤통수를 치는 영화들은 다 보고 나면 오묘한 배신감이 쾌감이나 해소감으로 전이되기 마련이나,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 반전 때문에 더 찝찝해지는 이 기분은 내가 이상한 관점으로 영화를 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여하간 뭔가 여전히 찜찜하고, 더러워진 손을 다 씻지 못한 느낌이 요령부득이다.

사라를 살해한 동기와 배경이 다 드러나면서 영화는 끝난다. 그럼에도 여전히 뭔가 미심쩍다. 앞부분을 다시 상기하면서 리플레이시켜 본다. 사라는 죽었으나 사라의 살인사건은 어딘가 빈 구멍 같은 데 도로 갇힌 느낌이다. 뱀 허물이 잠깐 나온 장면을 다시 본다. 그저 불결하고 버석거리는 짐승의 껍데기에 불과하다. 그 장면은 빠르게 지나간다. 허물을 벗은 뱀은 어디에 숨어있는가, 쓸데없어 보이는 의문이 생긴다. 사라는 얼마 후 난자당해 죽는다. 손에는 사람이 깨문 흔적도 있으나 상처가 얕아 누구의 이빨인지 특정하지 못한 상태다. 그리고 더 불확실한 사실. 사라를 잔혹하게 찔러 죽인 당사자는 누구인가. 범인이 다 밝혀진 것 같은데, 왠지 결말이 애매하다. 전체 흐름을 돌이켜 봐도 여전히 불분명하다. 범인이 잡혔는데, 범인이 특정 안 되었다니? 허물만 남기고 몸은 빠져나간 건가. 내가 영화를 잘못 본 건가. 영화 자체가 아귀 뒤틀린 괴물에 불과했던가. 아직, 손이 잘 안 떼어진다. 집 안 어딘가 허물 벗은 뱀 한 마리가 숨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서늘하고 찝찝하다. 톰은 과연 완전히 ‘탈피’한 건가. 보는 이들 각자 판단해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