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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 이전에 한반도의 비극을 공포로 승화한 영화 〈손님〉

성찬얼기자
〈파묘〉
〈파묘〉

 

<파묘>가 천만 관객 돌파를 앞두고 있다. 자손 대대로 기이한 병을 대물림되는 부유한 집안의 의뢰를 받은 무당, 풍수사, 장의사를 주인공으로 삼은 <파묘>는 영화 중간부터 단순히 공포영화가 아닌 대한민국 역사를 경유해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낸다. 덕분에 '좌파 영화'라는 이상한 낙인이 찍히기도 했으나 관객들은 이 <파묘>가 제시하는 역사관에 호응하듯 관객 수로 보답했다.

역사적 사건을 은유한 장르영화. <파묘>가 처음은 아니다. 스페인 내전을 배경 삼고 그 잔인한 역사와 대비되는 판타지를 제공하는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가 대표적이다. 인종차별적 정책 '아파르트헤이트'를 '외계인'에 빗대 표현한 <디스트릭트 9> 역시 마찬가지다. 할리우드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한국에서도 이미 역사를 빗댄 장르영화가 등장한 바 있다. 그것도 <파묘>처럼 친일과 관련한 코드로. 2015년 개봉한 <손님>이 그 주인공이다.

〈손님〉 포스터
〈손님〉 포스터

〈손님〉 우룡(왼쪽)과 촌장
〈손님〉 우룡(왼쪽)과 촌장


전쟁이 끝난 한반도. 떠돌이 악사 우룡(류승룡)은 아들 영남과 함께 어떤 산골 마을에 도착한다. 미군에게 아들의 폐병을 고쳐줄 정보를 받았다며 서울로 향하던 중 여기까지 왔지만, 촌장(이성민)만 그를 반길 뿐 다른 마을 사람들은 우룡 부자를 경계한다. 마을이 쥐 떼에 시달리는 것을 알게 된 우룡은 피리 부는 재주로 마을에서 쥐를 내쫓아주는 대신 보상금을 받기로 한다. 촌장은 쥐가 사람을 먹는다고 경고하지만 우룡은 약속을 지키겠다며 쥐를 몰아낸다. 그러나 쥐가 사라지자 촌장은 말을 바꿔 보상금을 줄 수 없다며 말을 돌리고, 마을 사람들에게 이상한 일이 벌어지며 우룡 부자와 마을 사람들의 대립은 점점 극에 달한다.


빨갱이, 색깔론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우화를 적절하게 잘 활용한 <손님>은 1950년대, 휴전한 한국을 배경으로 이른바 '닫힌 사회'를 그린다. 냉정하게 말해서 이 영화가 제시하는 스릴러 구조는 뻔하다. 외지인, 끈끈한 유대감을 뭉친 내부인들의 경계, 점차 드러나는 공동체의 비밀. 그런데 <손님>이 그 과정에서 활용한 요소들은 단언컨대 '한국'이기에 가능한 것이어서 흥미롭다.

 

〈손님〉 촌장
〈손님〉 촌장

 

​촌장은 우룡에게 신신당부한다. '전쟁이 끝났다는 사실을 말하지 말 것.' 그는 "휴전이니까 전쟁을 쉬는 것이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이상한 궤변까지 덧붙이며 마을 사람들을 외부에서부터 고립시킨다. 그뿐만 아니라 '청주댁' 미숙(천우희)을 신기가 있는 무당이라고 내세우며 내부적으로도 단결하도록 유도한다. 그런 그가 우룡의 성공에 보상금을 내주기 싫어 꺼내든 방책은 바로 '간첩'이다.

〈손님〉
〈손님〉

흔히 말하는 '색깔론'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정치권에서 대립이 심해질 때면 언제나 나오는 단어 중 하나가 '빨갱이'다(일상에서도 들어본 사람이 있으리라). <손님>은 전쟁 직후, 심지어 등장인물 대부분은 전쟁이 끝난 지도 모르는 시점이다. 그런 그들에게 "빨갱이"라는 단어는 마법과도 같다. 그들은 그토록 바라던, 쥐를 사라지게 한 우룡에게 적당한 보상을 주는 것 대신 누명을 씌우고 처벌한다.

모든 드라마가 그렇지만, 결국은 탐욕이 모든 걸 망친다. 촌장이 우룡에게 약속한 것만 줬다면, 이 뒤로 이어질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손님>은 이 인면수심의 촌장을 관객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숨겨둔 과거를 클라이맥스의 장면 하나로 간단하게 설명한다. 촌장의 방 안 깊숙한 곳에 숨겨놓은 일본 군복과 일본도, 그것이면 충분했다.


친일 부역자

촌장이 보관 중인 일본 군복 (〈손님〉)
촌장이 보관 중인 일본 군복 (〈손님〉)


진작부터 영화의 전개가 눈에 보이기에 다소 느슨해질 무렵, 촌장이 꺼내든 일본도는 관객에게 그야말로 일격을 가한다. 그랬구나, 이 사람이 그래서 이렇게 사는구나! 이전까지 보아온 그의 행적들이 납득이 되는 건 친일 부역자가 어떤 인간상인지 한국 관객들 모두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저 자신의 안위를 보존하고 그러면서도 부를 축적하는 것에만 혈안이 돼있다.

<손님>의 촌장도 마찬가지다. 본인이 살기 위해서 죽어가는 이들을 제 손으로 몰아냈다. 그렇게 핍박하고 천대하던 나병환자들에게 '우리도 살아야 하지 않겠냐'라는 듯 읍소해놓고는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그 모양새. 이후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잡아두고자 종전까지 감추고, 우룡을 배신하는 그 모습. 생존의지와 권력욕. 그냥 영화 속 나쁜 놈이었던 캐릭터가 일본의 잔재들과 함께 비치며, 갑자기 과거사의 화신이 된다.

〈파묘〉 또한 일본 제국 육군을 묘사했다.
〈파묘〉 또한 일본 제국 육군을 묘사했다.

 

<파묘>의 전반부에서 '알고 보니…' 하면서 할아버지의 과거가 드러나는 순간, <손님>의 클라이맥스가 떠올랐다. 영화 전체적인 전개나 흐름상 <파묘>가 <손님>보다 희망적이지만, 어떤 면에선 <파묘>의 현실이 더 차갑다. <손님>은 그 부역자가 자신의 욕망에 휘둘리다 끝끝내 자멸했지만, <파묘>의 부역자들은 어쨌든 대대손손 부를 누리며 살고 있다. 그리고 이거야말로 현실적인 묘사라는 사실에서 더 가슴 아프다. (사견을 덧붙이자면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을 방해하여 민족반역자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평가받는 이승만 대통령을 다루는 <건국전쟁> 측에서 <파묘>를 좌파영화라고 지적한 부분이 참 재밌다)


속 시원할 수 없는 복수

〈손님〉 우룡의 복수는 성공이지만 실패이다.
〈손님〉 우룡의 복수는 성공이지만 실패이다.


사실 진짜 중요한 포인트는 '부역자'가 아니라 그보다 더 깊은 곳에 있다고 지적하는 <파묘>와 달리 <손님>은 이 지점에서 깔끔하게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우룡은 촌장을 비롯해 마을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데 성공한다. 일종의 판타지처럼 보이기는 하나, 아주 성공적인 복수인 건 틀림없다. 다만 거기에 남는 건 없다. 성취감이나 카타르시스가 있을 리 없다. 우룡은 그들에게 속아 소중한 것을 모두 잃었으니까. 영화는 우룡에게 더 이상 어떤 삶의 목적이 남지 않았다는 듯한 암시로 막을 내린다.

그래서 우룡의 복수는 관객에게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핍박받은 사람이 자신에게 수모를 준 모든 사람들에게 앙갚음하는 데 성공하지만, 돌이켜보면 이 모든 비극은 단 한 사람에게서 시작된 것이다. 진실을 숨긴 채 자신의 안위만을 챙기는 그 한 사람. 사실을 조작해 사람들을 맹목적으로 따르게 만든 단 한 사람. 한때는 나라와 민족도 버렸던 단 한 사람. 그 사람을 제외하면 우룡도, 마을 사람들도 서로의 진상을 모른 채 공격당하고 보복 당했다.

결과적으로 <손님>은 진상을 알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 사태를 유발한 사람도 죽음을 맞이하지만, 그 결과에 수많은 사람들이 휘말린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일부 관객은 <손님>의 마을 구성원이 제각기 다른 사투리를 사용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지도에도 없는 곳이지"라는 촌장의 대사는 사실 지도에 이 마을을 담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이 모인 이 마을은 한반도를 연상시키도록 유도한 것일 테니까. 한반도, 이기적인 지도자, 가려진 진실에 와해되는 사람들.

<손님>이 영화적으로 뛰어난 작품이라곤 말할 순 없다. '희비극'으로 만들려고 애쓴 나머지 다소 어색한 코미디 배치가 많고, 인물 간의 관계가 과하게 급변하는 감도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이상하리만큼 기억에 오래 남는다. 아마도 그것은 그동안 한국 사회 곳곳에서 발견된, 먼 과거처럼 느껴지지만 여전히 현존하는 '촌장'들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