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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들, 구식으로 보일 것” 진일보한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의 기술력

성찬얼기자

언젠가 인간이 지구의 왕좌에서 내려온다면… 1968년 영화 <혹성탈출>은 이런 상상을 실재의 것으로 옮겨 당대에 큰 충격을 안겼다. 이제는 '반전'이라기엔 유명한 엔딩은 당시 인간 중심의 사고를 절묘하게 뒤집으며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이때 대중에게 남겨진 상상력의 씨앗은 많은 시간이 흘러 2011년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에서 싹 틔었다.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은 동물실험 중 태어난 시저가 우수한 지능으로 유인원들을 '해방'하는 과정을 다뤘다. 기존 <혹성탈출>과는 사뭇 달랐지만, 발전한 VFX(시각효과)로 구현한 동물 캐릭터들의 존재감은 관객들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일명 '시저 삼부작'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 〈혹성탈출: 종의 전쟁〉
일명 '시저 삼부작'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 〈혹성탈출: 종의 전쟁〉

이후 시저의 이야기는 2014년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 2017년 <혹성탈출: 종의 전쟁>으로 이어지고, 또 마무리됐다. 유인원들의 지도자가 된 시저는 인간과 대립각이 선 와중에도 최선의 평화책을 찾고, 또 각자의 진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성장하는 지도자의 면모를 보여줬다. 그렇다면 그의 후대들, 인류에 이어 지구를 장악할 이들은 어떻게 됐을까. 5월 8일 개봉하는 신작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는 오랜만에 다시 '혹성탈출'의 지구로 우리를 초대한다.

 

21세기 <혹성탈출> 시리즈의 핵심은 '얼마나 현실적으로 보이는가'일 것이다. 동물의 탈을 쓴 배우, 이른바 '슈트액터'가 동물을 연기하는 시대는 이제 지났다. 2000년대부터 모션 캡처, 퍼포먼스 캡처, 페이셜 캡처 등의 기술이 발전하며 비현실적인 것도 현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시저를 연기한 앤디 서키스가 그 장본인이었다(그는 골룸, 킹콩 등을 연기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이번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는 얼마나 진일보한 기술을 보여줄 것인가.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이런 궁금증에 화답하듯 4월 28일,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의 VFX를 담당한 스튜디오 웨타(Wētā)의 제작진이 한국에 방문했다. 이번 영화의 시각효과감독 에릭 윈퀴스트와 웨타에서 재직 중인 페이셜 모델러 김승석, 모션캡처 트래커 순세률 세 사람은 푸티지 시사와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는 자리를 가졌다.

먼저 현장에서 공개한 푸티지는 영화의 초반부를 담았다. 약 20분간 주인공 노아(오웬 티그)가 어떻게 부족을 떠나게 되는지 보여주는 이 영상은 시종일관 감탄을 하게 했다. 인류가 사라지고 수풀이 된 도시를 보여주는 익스트림 롱숏부터 유인원 캐릭터들의 연기를 담은 클로즈업까지 모든 장면에서 현실의 질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초반부여서 인간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음에도 이곳이 우리가 살았던 지구구나를 여실히 느끼기 충분했다.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넘어가고 싶지만, 이 20분 영상에 담긴 역동적인 장면들도 보는 이를 몰입시키기 충분한 완성도였음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에릭 윈퀴스트 시각효과감독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에릭 윈퀴스트 시각효과감독

푸티지 상영 후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무대에 오른 에릭 윈퀴스트 시각효과감독은 2005년 <킹콩> 때부터 참여했으며 2009년 <아바타>의 경험을 토대로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을 제작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의 기술적 핵심은 퍼포먼스 캡처를 야외 촬영에서 적용했다는 점이다. 이후 작품들을 참여하며 윈퀴스트는 "우리는 디지털 캐릭터에 대한 기준을 높여갔다"며 배우들의 연기를 더 사실적으로 승화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에 메가폰을 잡은 웨스 볼 감독에 대해 "디지털 스토리텔링에 능한 사람"이라서 합류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제작진은 총 11명의 새로운 캐릭터를 구현해야 했고, 다양한 장소에서 위험을 겪는 주인공의 여정에 따라 기술적인 부분을 극복해야 했다고. 윈퀴스트의 설명 중 가장 신기한 부분은 대부분을 로케이션 촬영으로 진행했다는 것이다. 그는 33분 분량만 디지털 배경이고, 나머지는 CG로 풍경을 강화하긴 했어도 모두 로케이션 촬영이었음을 밝혔다. 즉 이전 삼부작의 장점, 로케이션 촬영과 정교한 퍼포먼스 캡처를 통한 사실적인 CGI 캐릭터의 구현이 이번 작품에서도 빛을 낸다는 것이다.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이외에도 윈퀴스트는 이번 작품에서 물의 표현력을 한층 끌어올렸다고 자부했다. 물이 배경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유인원 캐릭터와 상호작용하는 과정이 많아 양방향성 시뮬레이션을 구현하는 데 1년이 걸렸다고 덧붙였다. 이 방대한 정보가 얼마나 되는지 수치로 표기하고자 윈퀴스트는 "강 시퀀스 장면의 연산 데이터는 1.2페타바이트에 달하며, 우리가 생성하고 삭제한 데이터는 약 44페타바이트"라고 설명했다. 1 페타바이트는 1024 테라바이트. 이해를 돕기 위해 기준을 세우자면 8K 해상도의 무압축 영상이 2시간 기준 40 테라바이트 정도라고 한다. 윈퀴스트는 이 CGI 작업을 렌더링하고 시뮬레이션하기 위해 96억 시간이 필요했다며, 단일 PC라면 2024년 최고 사양 컴퓨터라도 기원전 1350년부터 돌려야 2024년에 나올 수 있는 분량이라고 비유했다.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김승석 페이셜 모델러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김승석 페이셜 모델러

이어 무대에 오른 페이셜 모델러 김승석은 오랑우탄 캐릭터 라카의 페이셜 모델을 맡았다고 소개했다. 페이셜 모델러는 CGI 캐릭터의 안면 근육의 모양과 움직임 등을 배우와 일치시켜 연기를 담을 수 있도록 작업한다. 그는 페이셜 모델에서 특히 표정이 중요하단 점을 강조하며 심리학자 폴 매크만의 얼굴 표정 분석법을 예시로 들었다. 얼굴 표정 분석법은 인간이 같은 문화권이나 환경을 공유하지 않더라도 비슷한 안면 근육을 이용해 감정을 표현한다는 이론을 뜻한다. 이 얼굴 표정 분석법은 안면 근육의 움직임으로 감정을 파악할 수 있는 얼굴 움직임 부호화 시스템(페이셜 액션 코딩 시스템, FACS)의 토대가 됐고, 이를 활용해 캐릭터의 얼굴에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 웨타는 여기서 애니메이션 작업을 딥 러닝 학습시킨 솔루션으로 각 애니메이션에 캐릭터에 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발전시켰다. 이 같은 방식으로 배우의 연기와 CGI 캐릭터의 간극을 최대한 좁힌 것이 웨타만의 노하우였던 것. 또한 페이셜 모델러는 이 과정에서 배우와 캐릭터의 다른 점을 파악해 연기를 모델에 입혔을 때 문제가 없도록 조치해야 한다. 김승석은 라카는 오랑우탄이라 인간과 달리 눈 위쪽 골격이 까다로웠고, 이를 위해 눈과 눈썹 부분을 수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배우와 캐릭터의 모델을 제대로 배치시킨다면, 앞서 말한 딥 러닝 솔루션으로 곧바로 표정을 옮길 수 있게 된다.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순세률 모션 캡처 아티스트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순세률 모션 캡처 아티스트

모션 캡처 아티스트 순세률은 촬영 현장의 다양한 스틸컷을 중심으로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가 보여줄 CGI 캐릭터의 섬세함을 설명했다. CGI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는 헬멧으로 두 대의 페이셜 트래킹 카메라를 장착한다. 이 카메라는 배우의 얼굴에 찍힌 101개의 점을 3D 데이터로 만들어 배우들의 연기를 CGI 캐릭터에 담을 수 있도록 한다. 퍼포먼스 캡처는 총 세 가지 방식을 병행했는데, 패시브 수트, 액티브 수트, 포캡 방식이다. 패시브 수트는 스튜디오에서 빛 반사 마커가 달린 회색 수트를 입고 촬영하는 가장 전통적인 방식. 액티브 수트는 LED 마커가 빛을 내는 수트를 입어 움직임을 담아내는, 이전 <혹성탈출> 시리즈에서도 사용한 방법이다. 포캡은 마커가 없는 수트를 입은 배우를 다양한 각도에서 담아내 이미지를 기반으로 움직임을 담는 기술이다. 수트에 마커가 없어 배우들이 액션을 하기 편하고, 별도의 빛 반사를 인지할 세팅을 하지 않아도 돼 촬영 장소 제약이 있을 때 사용한다고도 한다.

※ 전작 <혹성탈출: 종의 전쟁> VFX 영상. 상기 내용을 대략적으로 접할 수 있다.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왼쪽부터) 에릭 윈퀴스트 시각효과감독, 김승석 페이셜 모델러, 순세률 모션 캡처 아티스트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왼쪽부터) 에릭 윈퀴스트 시각효과감독, 김승석 페이셜 모델러, 순세률 모션 캡처 아티스트

 

프레젠테이션 이후 이어진 기자간담회에서도 웨타 제작진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다. 윈퀴스트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지나 미래로 가는 작품"이라고 이번 작품을 설명하며 "모험에 가까운 이야기로 새로운 룩을 구현할 수 있었다"고 이번 작품의 묘미를 언급했다. 김승석은 "제 분야에선 (유인원들이) 말을 하는 것이 어려운 부분인데, 그것이 차별점"이라고 CGI 캐릭터의 현실적 표현을 기대하게 했다. 순세률 또한 "촬영장에서 많은 사람들의 모션 연기를 커버할 수 있는 기술이 발전했다. 사실적인 원숭이들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세 사람 모두 '딥 러닝으로 컴퓨터가 만들고 아티스트는 창의성과 퀄리티에 집중'할 수 있는 웨타의 시스템을 언급하며 이번 영화에 담긴 웨타만의 창의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윈퀴스트는 마지막으로 이번 작품 역시 "시저 삼부작의 주제와 비슷하다. 조화로운 공존. 그래서 이런 메타포를 넘어 인간성을 생각하게 된다. 모두 함께 생존하거나 실패하거나인 상황에서 공존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혹성탈출>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설명하면서도 "기술의 정점을 담았다고 생각한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이 구식으로 보일 것이다"라며 이번 영화에서 진일보한 볼거리를 자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