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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저 없는 시저 이야기? 그래도 좋아!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후기

성찬얼기자
영화를 본 기자의 표정(셀카 아님)
영화를 본 기자의 표정(셀카 아님)

 

"이대로만 갑시다!"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를 보고 나오는 길에, 인터넷에서 유명한 사진 하나가 떠올랐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빵긋 웃으며 '이대로만 갑시다'라고 말하는 그 장면. 관객으로서 그 마음이었다. 이대로만 갑시다! 그만큼 이번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또한 만족스러웠다.​

 

5월 8일 개봉한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는 2017년 개봉한 <혹성탈출: 종의 전쟁> 이후 7년 만에 돌아온 속편이다. 신기하게도 이 영화는 시퀄은 시퀄인데 전작의 주인공이 나오지 않는, 프리퀄이니 유니버스니 하는 요즘 속편 트렌드와도 거리를 두고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또 전작의 주인공을 기억해야 한다. 이 무슨 선문답 같은 소리인가 싶을 텐데, 이것이 '시저 이후의 이야기'이자 '시저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화두를 중심으로

: 전승과 이해는 영원히 지속될 수 있는가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는 시저의 세대 이후 이야기이지만 시작부터 '시저'라는 유인원이 어떤 일을 했는지 간략하게 보여주며 막을 연다. 이번 이야기는 '독수리 부족'의 족장 아들 '노아'가 중심인물이다. 그는 친구 수나, 아나야와 함께 평화로운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어느 날 밤, 부족 영토에 침입한 '에코'(독수리 부족이 인간을 부르는 말)를 추적하던 노아는 우연찮게 '프록시무스'를 숭배하는 다른 유인원 군단에게 공격당한다. 프록시무스는 스스로를 시저라고 칭하며 동족마저 공격한다.

이 처연한 패배의 과정이 꽤 스펙터클하게 그려지며 관객의 혼을 쏙 빼놓은 후엔, 부족을 되찾기 위한 노아의 여정에 동참하도록 종용한다. 노아는 프록시무스의 군대를 추적하며 또 다른 유인원 '라카'와 만난다. (시저의 가장 듬직한 동료 모리스처럼) 오랑우탄인 라카는 유인원들 사이에서 잘못 기억되고 있는 시저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기억하려고 한다. "유인원은 뭉치면 강하다" "유인원은 유인원을 죽이지 않는다" 시저가 행동으로, 온몸으로 남긴 이 지침들을 노아는 라카에게서 처음 듣는다.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유인원 라카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유인원 라카

혹여 오랜만에 돌아온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가 전작들의 명성에 누를 끼치지 않을까 걱정했던 기자는 이 부분에서 한시름 놓았다. 영화는 이전 삼부작에서 시저가 쌓아 올린 것을 함부로 무너뜨리지 않는다. 그건 시저의 메시지이면서 동시에 그 영화들의 메시지였기에, 그리고 관객들이 사랑한 영화의 핵심이었기에 제아무리 신작이라고 해도 훼손해선 안되는 것임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몇몇 속편들이 과감한 시도랍시고 전작들을 뭉개 팬들에게 엄청난 반발을 샀던 것에 비하면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는 전작들의 유산에 꽤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그러면서도 이 '가르침'이 영원하지 않다는 묘사로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한다. 시저는 당대를 흔든 리더였지만, 그의 신념이 영원한 건 아니다. 그의 행적은 잊히고 왜곡된다. 점점 지능이 발달한 유인원이라도 문자 체계가 없으니 지식은 사라지고 희석된다. 동시에 유인원 전체를 통합해 인류에 맞선 시저라는 '전설'만은 남아 프록시무스 같은 위험한 존재에게 영향을 주기도 한다.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에서 기시감마저 느꼈는데, 이 영화가 묘사한 전승 과정의 오류가 현실에서도 일어날 법한 일이기 때문이다.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는 블록버스터이길 자처하지만, 그 와중에도 신념이나 종교나 사상 같은 사고(思考)의 것을 고심케 하는 재주가 있다.


볼거리를 중심으로

: '제2의 아바타'라 불러도 손색없는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프록시무스의 뒷모습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프록시무스의 뒷모습

 

앞서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가 결코 가벼운 영화가 아니라고 말했지만, 이번엔 정말 가벼운 영화라고도 말하고 싶다. 기존 삼부작도 그렇지만 이번 영화 또한 한 차원 발전한 VFX 세계를 만끽할 수 있다. 시각적인 부분은 '백문이 불여일견'인지라 글로 아무리 말해도, "극장에서 보세요"라는 문장 외엔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를 볼 때의 충격을 완벽하게 전할 수 없다.

폐허가 된 지구에서 노아와 친구들이 독수리 알을 훔치는 장면을 시작으로 거의 모든 장면에서 실사와 VFX가 배합됐음에도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질감은커녕 나중엔 이 유인원들이 이마를 부딪히며 인사할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도는 경험까지 하게 될지 모른다. 배우들의 작은 움직임이나 표정도 놓치지 않고 캐릭터에 담아내며 극중 노아와 유인원들의 여정을 응원하게 한다.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유인원들의 인사에 울컥할 줄이야​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유인원들의 인사에 울컥할 줄이야​

 

캐릭터를 묘사하는 퀄리티 말고도 이 영화가 그리는 공간으로서의 지구 또한 볼거리다. 독수리 부족의 마을, 자연의 일부가 된 인류의 도시, 프록시무스 군대의 거주지 등 영화는 원초적인 자연을 그대로 묘사하면서 지능이 발달된 유인원들의 문화를 다양한 방식으로 공간에 녹였다. 특히 몇몇 공간은 아무리 봐도 3D 상영을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공간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장면의 쾌감을 극대화한다. 클라이맥스의 액션 장면들은 정말 롤러코스터를 탄 듯 짜릿하기까지 하다.


장르를 중심으로

: 취향에 따라 부대찌개거나, 잡탕이거나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다만 위와 같은 상찬에도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가 만장일치 '꿀잼영화'인가 묻는다면 머뭇거리게 된다. 이유는 이 영화가 전체적으로 산만한, 혹은 빈 곳이 많은 편이기 때문이다. 독수리 부족, 노아의 여정, 프록시무스의 요새를 거쳐 전진하는 과정은 드라마와 로드무비, 스릴러와 액션 등이 뒤섞여있다. 그 어느 하나 모난 부분은 없이 매끄럽게 이어지지만, 반대로 말하면 하나로 응축되는 동력은 부족하다. 요컨대 이 이야기에 몰입한 사람은 이 과정에서 변화무쌍한 재미를 느끼겠지만, 특정 장르적 매력을 기대한 사람에겐 중구난방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 삼부작을 보고 거대한 스케일(이를테면 전쟁 같은)을 기대한 관객에겐 이 영화가 다소 시시하게 보일 가능성이 높다. 많은 등장인물과 다양한 공간에도, 주인공을 쥐고 흔드는 사건은 좀 더 소박하기 때문이다.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또한 빈 곳이 많다는 느낌은 비밀스러운 캐릭터 인간 노바 때문일 것이다. 프레야 앨런이 연기한 해당 인간은 극에서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것처럼, 극중 여러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인물에 대한 설명을 다소 뭉뚱그려 넘어가곤 한다. 전개나 주제가 인간 캐릭터가 있었어야 했고, 극중 인간을 어떻게 묘사하고 싶었는지 의도가 보이긴 한다. 그럼에도 영화 145분을 보고도 인물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의 패착이 아닐 수 없다.

아,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에서 정말 훌륭한 지점이 있다면 원작, 그러니까 이전 삼부작을 포함해 1968년부터 시작한 <혹성탈출> 시리즈 전체의 요소들을 잘 활용했다는 것이다. 특히 몇몇 장면에서 흐르는 BGM은 원작의 테마를 적극 변주해 향수를 일으킨다. 심지어 원작의 팬이 아닌 기자조차도 딱 듣자마자 '이건 원작 테마 같은데?' 싶을 정도로 고전영화 특유의 청각적 요소를 완벽하게 재현했다.


포인트만 짚자면

: 이 시대 최고의 VFX, 예상보다 감성적인 유인원들

세 줄 요약이 선택 아닌 필수인 시대, 세 줄 요약까진 어렵지만 포인트만 짚는다. 평소 어떤 주제로 고민하는 걸 즐긴다, 발전한 기술을 보는 것을 즐긴다, 눈만 즐거우면 만족한다, <혹성탈출>의 분위기를 좋아한다면 추천한다. 반면 전쟁처럼 시종일관 화려하게 터지는 것을 기대한다면, 유인원들의 화려한 맨몸액션을 기대한다면, 평소 얼렁뚱땅 넘어가는 부분이 생길 때 집중을 못한다면 이번 영화가 다소 낯설거나 애매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한다. 개인적으론 CG 기술 최전선에 있는 이 영화를 가급적 극장에서 보길 권하고 싶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