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스맨’ 괴담을 들어봤는가? 괴담은 많은 사람들의 꿈에 동일한 남성이 등장한다는 소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눈썹이 짙고, 대머리에 가깝도록 이마가 넓으며 인종을 추측하기 어려운 이 얼굴. 뉴욕의 한 정신과 의사가 자신의 환자 몇 명이 모두 같은 남성에 대한 꿈을 꾼다는 사실을 발견한 후, 이 남성의 얼굴이 그려진 초상화는 인터넷을 타고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윽고 세계 각국에서 이와 동일한 남성을 꿈속에서 봤다는 제보가 속출했다. 꿈속에서 그와 사랑에 빠졌다는 사람, 하늘을 날면서 그를 만났다는 사람, 그가 자신을 공격했다는 사람 등. 여러 사람의 꿈에 나타난 그 남성은 ‘디스맨’이라고 불리며, 이 현상의 원인에 대한 다양한 추측이 이어졌다. 이 남자가 창조주의 형상이라는 가설, 이 남자가 다른 사람들의 꿈에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는 ‘드림 서퍼’라는 가설 등. 믿거나 말거나, ‘디스맨’은 많은 사람들에게 도무지 잊힐 수 없는 얼굴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만약 숱한 가설들과는 다르게, ‘디스맨’이 전지전능한 창조주도 아니고 다른 사람에 무의식 속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초능력자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사람이라면 어떨까? 그것도, 자신도 모르는 새 얼떨결에 많은 사람들의 꿈에 출연하게 되어 갑자기 유명세를 얻었다면? 이 전제로부터 출발한 영화 <드림 시나리오>는 신기하게도 ‘디스맨’의 얼굴이 겹쳐 보이는 배우, 니콜라스 케이지의 열연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아리 에스터 향이 진하게 풍기는 '악몽 코미디'

<드림 시나리오>는 많은 사람들의 꿈에 나타나 어쩌다가 ‘드림 인플루언서’가 된 ‘폴’(니콜라스 케이지)의 이야기를 다룬다. 폴은 학생들에게도, 주변 사람들에게도 인기 없는 생물학 교수다. 그는 은근히 유명해지고 싶어 하며, 자신의 학술적인 성과를 모두가 인정해 주길 바란다. 그러다가 폴은 하루아침에(말 그대로) 유명인이 된다. 바로 그를 꿈에서 봤다는 사람들이 나타났기 때문. ‘드림플루언서’(드림+인플루언서)가 된 폴은 꿈으로 얻은 유명세로 또 다른 꿈을 이루고자 한다.
앤디 워홀이 “미래에는 누구나 15분씩은 유명해질 것”이라고 했던가. ‘디스맨’ 괴담과 앤디 워홀의 유명한 문구가 합쳐져 탄생한 것만 같은 <드림 시나리오>는 <해시태그 시그네>(2022)로 장편 데뷔한 크리스토퍼 보글리의 두 번째 장편 영화다. 크리스토퍼 보글리는 데뷔작 <해시태그 시그네>로 독특한 사회 풍자극을 선보이며 블랙 코미디 장르의 기대주로 자리매김했다.

보글리의 두 번째 영화 <드림 시나리오> 역시 블랙 코미디에 가까운데, 전작 <해시태그 시그네>가 그랬듯 ‘공포’ 역시 가미되어 있다. 다만 이번에는 그 농도가 전작보다 짙다. <드림 시나리오>는 코미디, 호러, SF, 로맨스 등이 혼재되어 그 장르를 규정하기 어려운 독특한 톤임은 분명하다. <드림 시나리오>를 감상하기 전까지는 보글리의 전작 <해시태그 시그네>와 유사한 영화일 것이라 예상했으나, 막상 보니 그보다는 아리 에스터의 <보 이즈 어프레이드>(2023)에 가까웠다. <미드소마> <유전> 등의 아리 에스터는 <드림 시나리오>의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는데, 그는 <보 이즈 어프레이드>로 ‘악몽 코미디’라는 새로운 장르를 선보였던 바 있다.

<드림 시나리오>에서 <보 이즈 어프레이드>를 떠올리게 된 이유는 비단 ‘악몽 코미디’라는 장르 때문만은 아니다. 두 영화 모두 어딘가 결핍이 있는 중년의 남자 주인공이 등장하며, 주인공은 현실인지 가상인지 모를 곳들을 헤맨다. 이들에게도, 관객에게도 중요한 것은 무엇이 현실이고 현실이 아닌지를 구분하는 것이 아닌 듯하다.

더불어, <드림 시나리오>의 주인공 ‘폴’ 캐릭터는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연을 맡은 영화 <어댑테이션>(2002)의 ‘찰리 카우프먼’과 겹쳐 보이기도 한다.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어댑테이션>은 현실과 상상, 픽션과 논픽션이 뒤섞인 영화다. 니콜라스 케이지는 <어댑테이션>에서는 꿈(혹은 망상)에 자주 빠지는 인물로, <드림 시나리오>에서는 다른 사람의 꿈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을 연기한 셈이다.
102분짜리 밈 그 자체인 영화
니콜라스 케이지는 ‘밈’의 제왕이다. 당장 할리우드 배우들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니콜라스 케이지가 나온 밈 몇 개는 익히 알고 있을 정도다. ‘Nicolas Cage Losing his shit’이라는 제목의 영상은 한 유튜브 유저가 니콜라스 케이지가 출연한 작품 중 기괴한 장면만 골라서 편집한 영상인데, 이는 급속도로 퍼져나가 니콜라스 케이지는 밈의 대명사 같은 존재가 되었다.
니콜라스 케이지는 자신이 출연한 작품이나 자신의 연기보다 맥락이 소거된 일부 장면만으로 자신이 소비되는 행태에 좌절해 왔고, <드림 시나리오>의 각본을 읽은 후 ‘폴’과 자신의 공통점을 발견해 출연을 결정했다. 니콜라스 케이지는 “수십 년 동안의 연기 경력에서 반드시 출연해야 한다고 확신했던 대본으로 다섯 작품을 꼽을 수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드림 시나리오>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드림 시나리오>는 ‘밈화’ 할만한 장면이 숱하게 등장하는 영화이자, 어쩌면 영화 그 자체가 밈이라고도 볼 수 있을 법한 작품이다. <드림 시나리오>의 어느 장면을 똑 떼어서 놓아도, 그 자체로 바이럴이 될 법하다. 그도 그럴 것이, 황당무계한 꿈과 그보다 어이없는 현실을 교차해 보여주기 때문이다.
영화 <드림 시나리오>는 기승전결의 내러티브가 두드러지는 영화라기보다는 기이한 상황들을 한데 엮어낸 작품에 가깝다. 따라서, 영화는 모든 콘텐츠를 밈으로 소비하는 시대에 대한 풍자로까지 느껴질 정도다. <드림 시나리오>는 맥락 없이 붙은 수십 개의 장면을 이어 만든 102분짜리 밈이자, 맥락이 소거된 채 밈으로만 존재하는 콘텐츠에 대한 풍자다.
크리스토퍼 보글리의 ‘관심사회’ 풍자


크리스토퍼 보글리가 각본 집필과 연출을 담당한 두 작품 <해시태그 시그네>와 신작 <드림 시나리오>에서 줄곧 다뤄온 대상은 이른바 ‘관심사회’다(‘관심사회’라는 대명사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른바 ‘피로사회’처럼 이 글에서만큼은 명사로 칭하기로 한다). ‘관심’이 모든 행동의 기초가 되고, 관심의 양이 마치 돈과 권력처럼 하나의 위계로 작동하는 사회. 크리스토퍼 보글리는 <해시태그 시그네>에 ‘관심사회’ 속 관심을 갈구하는 인간의 심리에 대해 다뤘다면, <드림 시나리오>는 관심의 이면에 집중했다. ‘폴’은 많은 사람들의 꿈에 등장하며 한순간에 유명세를 치르지만, 점차 많은 사람들이 ‘폴’이 나오는 악몽을 꾸게 되며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비난을 받게 된다.
아차, 그리고 ‘디스맨’ 괴담은 가짜로 밝혀졌다. <드림 시나리오>에서 다수의 악몽에 등장했다는 이유만으로 비난을 받는 ‘폴’처럼, 괴담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 아닐까.
씨네플레이 김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