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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예측한 미래? 10년 전 영화 〈그녀〉 속 인공지능과 2024년의 인공지능 비교

김지연기자
〈그녀〉
〈그녀〉

 

영화 <그녀>(Her, 2014)가 현실화됐다고 말하기에는 어쩐지 좀 새삼스럽다. 생성형 AI(새로운 텍스트, 이미지 등을 창작하는 인공지능)가 보편화된 이래, AI와의 사람 간의 대화는 그저 ‘심심이’와 하던 이야기의 수준을 넘어섰다.

<그녀>가 10년 후 미래를 너무나 잘 예측한 것인지, 아니면 세상이 영화 <그녀>를 본뜨는 것인지 헷갈릴 만큼, 영화는 2024년과 너무도 닮아 있다. 스칼렛 요한슨이 연기한 인공지능 사만다의 목소리가 ‘테오도로’(호아킨 피닉스) 뿐만 아니라 너무나 많은 사람(641명)을 홀렸던 탓일까. 실제로, 최근 오픈 AI가 GPT-4o에 탑재한 기본 음성이 스칼렛 요한슨의 목소리를 모방했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GPT-4o를 비롯한 최근의 LMM(대규모멀티모달모델: 텍스트, 이미지, 오디오, 비디오 등의 데이터를 학습하고 생성하는 인공지능 모델)은 정말 <그녀>의 사만다처럼, 사용자와 능수능란하게 대화하고, 말에 감정을 실을 수 있다.


 

〈그녀〉
〈그녀〉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그녀>는 딱 10년 전 이맘때 개봉했다. 영화는 2025년 LA를 배경으로, 인간과 인공지능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스칼렛 요한슨은 <그녀>에서 인공지능 운영체제인 ‘사만다’의 음성을 연기하며 목소리만으로 로마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영화 <그녀> 속 인공지능(영화에서는 OS 운영체제라고 말하지만, 이 글에서는 편의상 ‘인공지능’이라고 통칭하겠다)은 하나의 인격체처럼 작동한다. (마치 요즘의 폴더블 폰 같은) 가볍고 얇은 양면 디스플레이 휴대폰 속, 인공지능은 사용자와 24시간을 함께하는 동반자와 같은 존재다.

 

〈그녀〉
〈그녀〉

 

<그녀>가 그린 퇴근길의 지하철 속 사람들은 저마다 무선 이어폰을 꽂고 중얼중얼하고 있다. 무선 이어폰이 아직 상용화되지 않았던 2014년에 상상한 근미래라니. <그녀>가 묘사한 사소한 풍경마저 지금의 일상과 너무나 닮아 있는 현재, 2024년의 모습과 <그녀>가 그린 근미래 인공지능의 공통점을 정리해 봤다.

 


컴퓨터가 작성하는 내 손글씨

 

〈그녀〉
〈그녀〉

 

<그녀>의 주인공 테오도르는 편지를 대필해 주는 작가다. 그가 사무실에 앉아 음성으로 편지 내용을 읊조리면, 손글씨로 쓴 것처럼 입력된 편지가 탄생한다. 물론, 고객에 따라 각기 다른 필체로 입력된다.

개인의 필체는 그 사람의 지문만큼이나 고유하다. 문서의 진위를 확인하는 데에 필적 감정이 꼭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그녀>에서처럼 개인의 손글씨 역시 인공지능으로 모방 가능한 시대 역시 도래했다. 단순히 개인이 직접 자신이 손으로 작성한 글씨를 폰트로 등록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인공지능은 누군가가 손글씨로 작성한 글 일부를 보고도, 그 사람의 필체로 새로운 손글씨 텍스트를 생성할 수 있다.

모하메드 빈 자예드 AI 대학교가 연구한 필체 모방 인공지능 기술. 왼쪽에서 첫번째가 인간이 쓴 손글씨, 왼쪽에서 두 번째가 대학의 기술을 활용한 모방 손글씨다. 사진=mbzuai.ac.ae
모하메드 빈 자예드 AI 대학교가 연구한 필체 모방 인공지능 기술. 왼쪽에서 첫번째가 인간이 쓴 손글씨, 왼쪽에서 두 번째가 대학의 기술을 활용한 모방 손글씨다. 사진=mbzuai.ac.ae

 

그나저나, <그녀>가 10년 전에 상상했던 근미래에는 대필 작가들이 모여 있는 사무실이 있을 정도로 편지 대필 서비스가 공공연하게 이뤄진다. 인공지능 비즈니스의 성장과 동시에 성장한 편지 대필 비즈니스라니.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전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인가 보다. 사람의 역할을 대신하는 인공지능이 발전할수록, 사람의 감정도 외주화가 이뤄지는 현상. 한편으로는 씁쓸하면서도, 스파이크 존즈의 통찰력에 감탄하게 된다.

 


죽은 인물 부활시키기

 

〈그녀〉
〈그녀〉

 

<그녀> 속, 사만다를 비롯한 인공지능들은 20세기 철학자 ‘앨런 와츠’를 부활시킨다. 그의 저서와 생애 등의 데이터베이스를 모아 탄생시킨 ‘궁극 버전’의 앨런 와츠는 사용자와 자유롭게 대화한다. 궁극의 앨런 와츠는 사용자와 대화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인공지능과도 대화한다. <그녀>의 사만다는 인격체처럼 작동하기 시작하며 인간 고유의 것이라고 여겨졌던 불안함까지 느끼게 되고, 인간의 영역을 탐구하는 철학자에게 조언을 구하게 된다. 사만다는 궁극의 앨런 와츠와 대화하며 자신의 불안감을 다스리는 법을 깨닫는다.

이미 죽은 사람을 디지털로 부활시키는 일, 영화 <그녀>나 곧 국내에서 개봉하는 <원더랜드>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이미 고인이 된 가수가 최신 유행곡을 부르는 것은 물론이다. 최근 중국에서는 이미 죽은 사람의 모습을 디지털로 복원하는 ‘AI 부활 서비스’가 대중적으로 유행하고 있다. 세상을 떠난 가족이 그리울 때 이 서비스를 의뢰하면, 고인과 마치 영상통화를 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고. 이 서비스는 고인의 말투, 습관 등을 분석해 정말로 그가 부활한 듯, 의뢰인과 자유롭게 실시간 대화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심지어는 ‘AI 장례식 서비스’도 출시됐다. 장례식에서 이미 고인이 된 사람이 AI로 부활해 자신의 인생사를 얘기하는 것이다.

 


비언어적 표현 감지하기

 

 

<그녀>의 인공지능 사만다는 테오도르와 대화하며 그의 목소리에서 망설임, 불안 등의 감정을 감지하고 그의 숨은 의도를 알아채거나, 평소와는 미묘하게 달라진 사용자의 태도를 말미암아 관계 회복을 위한 솔루션을 제시하기도 한다. 만약 사만다가 사람이었다고 하면 소위 ‘인싸’라고 불리는 사회성 좋은 존재였을 것이다.

 

https://demo.hume.ai/
https://demo.hume.ai/

 

그러나, 인공지능이 맥락과 비언어적 표현을 감지하는 것은 비단 <그녀>의 얘기만은 아니다. 지난 3월 흄AI는 음성이나 비디오, 이미지, 텍스트 등에서 감정을 감지하는 모델을 선보였다. 이 모델은 사용자의 말투나 억양, 한숨이나 웃음, 미묘한 표정 등에서 세분화된 감정을 감지한다. 흄AI에 따르면, 이 모델은 50개 이상의 감정을 구분해서 감지한다고 한다.

 


시각적 추론 능력

 

 

영화 <그녀>에서 사만다와 테오도르가 함께 바닷가, 공원 등에 놀러 간 것처럼, 인공지능은 사용자와 함께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있다. 아니, 인공지능은 자신이 개념적으로 어떤 공간에 ‘있다’라고 인식할 수 있다. 2024년의 인공지능은 카메라를 통해 주변 환경을 감지하고 시각적 추론을 할 수 있다.

 

 

최근 오픈AI가 공개한 GPT-4o는 사용자가 카메라를 통해 주변 환경을 비춰주면, 공간에 놓인 소품과 공간의 분위기 등을 토대로 공간의 기능을 추론한다. 오픈AI가 공개한 GPT-4o 런칭 영상을 보면, 사용자가 주변 환경을 비춰주자 GPT-4o가 “흠.. 내가 봤을 때, 너는 지금 촬영 중이거나, 생방송 중인 것 같아. 카메라, 마이크와 삼각대, 조명 등이 있으니까”라고 답한다. 인공지능은 자신이 어떤 공간에 '있다'라고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씨네플레이 김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