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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감히 말씀드리지만 CGI 퀄리티는 역대급”〈원더랜드〉김태용 감독

추아영기자
김태용 감독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김태용 감독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김태용 감독이 탕웨이, 수지, 박보검, 정유미, 최우식 배우라는 화려한 캐스팅과 함께 13년 만에 돌아온다. <만추>(2011) 이후 그의 첫 장편 영화인 <원더랜드>는 죽은 사람을 인공지능으로 복원하는 ‘원더랜드’ 서비스가 일상이 된 세상을 그린다. 탕웨이 배우가 어린 딸에게 자신의 죽음을 숨기기 위해 원더랜드 서비스에 가입한 바이리 역을 맡았고, 수지가 사고로 의식을 잃은 남자 친구를 그리워해 AI(인공지능)로 복원한 정인 역을, 박보검은 정인의 남자 친구 태주 역을 맡았다. 그리고 원더랜드의 수석 플래너 해리(정유미)와 신입 플래너 현수(최우식)가 원더랜드를 찾는 사람들이 소중한 기억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고, 특별 출연한 공유가 연기한 AI 성준도 함께 원더랜드 서비스를 관리한다. 김태용 감독을 만나 영화 <원더랜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김태용 감독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김태용 감독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원더랜드>가 촬영한지 오래된 작품이잖아요. 박보검 배우가 군대 가기 전에 촬영했는데,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 개봉하게 되었어요. 제작 과정이 길어지게 된 이유와 영화를 개봉하게 된 소감을 말씀해주세요.


시간이 이렇게 금방 갈지 몰랐어요. 제가 처음에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건 2016년이에요. 영화사 봄 오정완 대표님께 시놉시스 단계의 시나리오를 보여드리면서 “너무 마이너한 얘기 아닐까요?”라고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물어봤는데, 오 대표님이 괜찮다고 하시면서 한번 해보자고 하셨죠. 그 후에 이야기를 발전시키는 데 몇 년이 걸렸어요. 촬영도 COVID-19로 어려운 시기에 진행했어요.


​그리고 <원더랜드>가 CG가 엄청 많아요. 겉으로 화려하지는 않지만, CG로 구현한 장면이 많아요. 예를 들면 영상 통화 장면도 다 CG로 만든 거죠. 거의 100% CG로 만든 영화예요. 그래서 후반 작업이 길어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 장면을 일일이 다 살펴봐야 하니까요. 겉으로 화려하게 보이도록 CG를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들의 감정을 해치지 않고 연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식으로 활용했어요. 감히 말씀드리지만 CGI 퀄리티는 역대급이라고 생각해요. 어려운 장면을 구현해냈다는 뜻이 아니라 CG 장면을 각각의 인물들이 소통하는 드라마로 살려냈다는 점에서요.

 

〈원더랜드〉포스터
〈원더랜드〉포스터


영화 속 CGI를 살펴보면, 몇몇 장면에서는 뇌 모양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요. CGI는 어떤 이미지로 구현하려고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영화가 AI가 보편화돼서 사람들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내용이잖아요. 기술이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해서는 이제 사람들이 많이 알고 더 이상 궁금한 점이 아닐 것 같아요. 이 기술을 어떻게 인간적으로 표현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뇌과학자이기도 한) 카이스트의 김대식 교수랑 같이 AI 발전 속도에 대해서 몇 년 동안 계속 팔로우했어요. 왜냐하면 저희가 너무 먼 기술의 얘기가 아니라 바로 코앞에 있는 기술의 얘기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깝게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이 기술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새로운 CG적 상상력이 필요했어요. 이전에는 <매트릭스>와 같은 영화에서 문자나 숫자들이 나열되는 방식으로 장면이 구성됐는데요. 저는 그 방식으로 가고 싶지 않았어요. 김대식 교수님과 물리학 연구자 분들과 모여서 토론을 많이 했어요. 요즘 현대물리학에서 그런 세계는 숫자로 구성된 게 아니고 입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씀해 주셨고, 그렇게 표현했죠. AI가 인공신경망을 통해서 계속 딥러닝하면서 뭔가를 발견해가는 과정을 영화적인 비주얼로 표현하기 위해 그 입자들로 뇌 모양을 만들기도 했고, 우주를 닮아 보이게도 표현했어요.
 

〈원더랜드〉 스틸컷
〈원더랜드〉 스틸컷


영화 속에서 영상 통화 장면이 많은데, 어떻게 촬영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배우들이 영상 통화 연기를 주로 했는데 옆에 있는 배우를 보고 하는 게 아니라 화면을 보고 연기를 했어요. 그런 상황에서도 감정선을 어떻게든 이어가야 했죠. 근데 보통 영화에서 영상통화 장면이 나올 때 자연스러워 보이기가 어려워요. 아무래도 배우가 서로 기운을 마주하면서 찍어야 되는데, 한 배우는 이번 달에 찍고, 다른 배우는 다음 달에 찍기도 하거든요. 다른 세트장에서 찍기도 하고요. 영화 속 통상적인 대화 장면의 연출 방식으로는 찍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여러 가지 부족한 점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럼에도 제가 생각하기에 이 영화의 장점이 있다면 영상 통화를 통해서 서로 감정을 표현하는 배우들의 디테일한 연기를 잘 살려낸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배우들이 서로 배려해 주는 게 필요해요. 그러니까 상대방이 촬영할 때도 와서 옆에서 연기해주는 거죠. 저희 배우들이 그렇게 해주었어요. 옆에서 에너지를 주니까 자연스럽게 나오더라고요. 디테일한 감정을 살려내려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다행히 저희 배우들이 너무 착하고 배려가 많아서 가능했죠. 또 그런 상황에서 혼자 연기할 때 컨트롤하기 힘들었을 텐데, 집중력 있게 잘해주었어요.
 

바이리(탕웨이)​
바이리(탕웨이)​


탕웨이 배우랑 시나리오 구상 단계부터 같이 이야기를 나눴다고 알고 있는데, 두 분이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는지 궁금합니다. (김태용 감독과 탕웨이는 2014년에 결혼한 부부다)


처음에 탕웨이 배우에게 죽은 사람이 어딘가로 이주해 있고 우리는 그와 계속 소통할 수 있는 얘기를 해볼까 한다고 말했어요. 탕웨이 씨는 소재에 대해서 흥미를 많이 보이더라고요. 하지만 배우로서 생각했을 때는 자신이 할 수 있을지 망설였어요. 얘기에 빠져들수록 그 감정이 어떻게 좌지우지할지 모를 것 같다고요. 그리고 당시에는 같이 하자고 제안하기에도 좀 어려웠어요. 그래서 시나리오 얘기만 같이 했었죠.


근데 오정완 대표님이 완성된 시나리오를 보고 이 역할(바이리 역)은 탕웨이 배우가 하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하셔서 그렇게 하기로 했어요. <만추>나 <헤어질 결심>이나 다 이방인끼리 만나는 얘기잖아요. 그래서 외국인이라는 설정이 그 캐릭터의 중요한 존재 이유였지만, <원더랜드>는 그게 중요하지 않아요. 보편적인 감정을 다루는 거라서 엄마로서, 딸로서, 친구로서 존재하면 되는 거예요. 지금도 그렇지만 한국이라는 사회가 점점 더 세계화되고 있으니 외국인 배우가 해도 괜찮을 것 같았어요. 존재 조건과 상관없이 보편적인 얘기를 할 수 있다면 같이 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해서 캐스팅 제안을 하게 됐습니다.

<만추> 후에 다시 호흡을 맞췄는데, 감독으로서 배우로서 서로 대하기에 변화가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그때는 촬영 장소에서만 보니까 촬영장 밖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전혀 모르잖아요. 이번에는 촬영장 밖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도 보이잖아요. 더 가까이서 보니 ‘배우 일이 진짜 힘들구나’하고 느꼈어요. 탕웨이 배우가 워낙 일에 전념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리고 자기가 맡은 캐릭터를 진짜 믿으려고 하고요. 진짜 영화 속 세계에 가 있는 것처럼 믿으려고 집에 책을 쌓아두고 그런 상황들을 계속 만들어 두더라고요.


그리고 또 질문이 많은 배우예요. 예전에는 세트장에서 질문하면 집으로 도망가면 됐는데, 집에 가서도 계속 질문하니까 집안일하기도 바쁜데 (웃음) 서로 집안일하면서 영화 얘기를 했죠. 그런 시간이 큰 도움이 되기도 했어요.

 

〈원더랜드〉탕웨이(오른쪽), 특별출연한 공유
〈원더랜드〉탕웨이(오른쪽), 특별출연한 공유


감독으로서 공유와 탕웨이라는 두 배우의 멜로를 조금 더 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네, 그래서 농담처럼 한 말이지만 <원더랜드 2>를 만들면 원더랜드의 세계에서 AI들이 우리의 사랑을 모방해서 할 테니 그들의 사랑을 보면서 우리의 사랑을 생각해 보는 영화도 만들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는 가끔 왜 화가 나는지 또 왜 서운한지, 왜 내가 사랑에 빠지는지 모르는데 우리를 모방하는 AI를 보다 보면 알 수도 있지 않을까. 어쨌든 이번 영화에서는 거기까지 담지는 않았지만, 그런 관계가 조금 궁금해지긴 하더라고요. 다음에 찍어보면 AI 간의 사랑을 찍어보고 싶어요.

 

(왼) 해리(정유미), 현수(최우식)
(왼) 해리(정유미), 현수(최우식)


<원더랜드>의 해리(정유미)와 현수(최우식)의 역할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의 영화 <원더풀 라이프>에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가장 소중한 기억을 영화로 재현해주는 림보의 직원들과 비슷한데요. 이 영화를 참고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맞아요. 네, 비슷한데요. 저 그 영화 좋아했고, 영향까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사후 세계를 다루는 많은 영화들이 있잖아요. 사후 세계를 일상의 순간으로 오게 하는 영화들 중에서는 그 영화가 제일 압권이었다고 생각해요. 근데 저희 영화를 준비하면서 영향을 받았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마 좋아했으니까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었을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어쨌든 저희 영화도 사후 세계를 모험담으로 그리는 게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만든 거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사람들이 AI를 진짜라고 믿으면서 스스로를 속이면서까지 그리워하거나 절실해하는 마음을 담은 거고, 그런 선택이 가져오는 후폭풍이 커서 또 상처를 받기도 하는 그런 과정들을 그리고 싶었어요. 일상적인 감정들을 담담하게 그려보고 싶었는데, <원더풀 라이프>도 그런 담담함이 되게 좋았던 것 같아요.

감독님은 전작 <가족의 탄생>(2006)에서 혈연으로 맺어지지도 않고, 흔히 가족을 말했을 때 떠올리기 힘든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대안가족의 상을 보여주었는데요. 이번 영화 <원더랜드>에서도 현수(최우식)의 가족을 그렇게 구성하신 것 같아요. 반복해서 확장된 가족의 상을 보여주시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 당시에 그런 이슈가 있지는 않았어요. 말씀 들어보니까 관계가 확장되는 것에 대한 관심이 그때부터 무의식적으로 있었던 것 같아요. 어디까지가 가족인지 점점 더 그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시기가 올 거란 느낌이 있었고, 이번 영화도 그런 주제잖아요. 어디까지가 기계고 어디서부터는 기계가 아닌지 그 경계를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니까요. 이번 영화가 <가족의 탄생>의 연장선상에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원더랜드〉 스틸컷
〈원더랜드〉 스틸컷


해리가 어머니와 아버지, 현수와 화상 식사를 마무리하고, 부모님과 현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후에 영상 통화를 끊잖아요. 그 이후에 쓸쓸하게 혼자 남은 해리의 모습을 풀숏으로 잡아서 보여주는데요. 이 장면처럼 원더랜드 서비스의 좋은 점이 아닌 한계까지 함께 보여주려고 하신 건가요?


말씀하신 대로 저도 그 장면을 되게 좋아해요. 해리라는 인물은 바이리의 어린 딸이 성장한 느낌이잖아요. 그러니까 엄마, 아빠가 일찍 돌아가셔서 ‘엄마 학교 갔다 왔어요’, ‘오늘 뭐 했니’ 이런 일상적인 대화를 영상 통화로 말하면서 커왔을 거예요. 그렇게 AI 기술이 일상의 일부가 되어 있는 인물인데, 전화를 끊고 혼자 있으면 다가갈 수 없는 어떤 그리움이나 허탈함이 찾아왔을 것 같아요. 해리는 가짜를 진짜라고 믿어버린 사람이지만, 해리가 그것을 믿기 위해서 계속 곱씹었던 시간들이 있었을 거라 생각했고, 그 부분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저는 정유미 배우가 그 역할을 정말 잘했다고 생각해요. <원더랜드>는 하나하나 인과관계로 설명되는 드라마가 아니잖아요. 인과관계를 따지면서 보면 이 영화가 파편적으로 보여서 불편할 수도 있어요. 저는 각 상황에서 마주할 수 있는 감정들로 층층이 쌓아가는, 영화가 끝나고도 여운이 남도록 만들려고 했어요.
 

(왼) 정인(수지), 태주(박보검)
(왼) 정인(수지), 태주(박보검)


AI를 다루는 많은 영화들을 보면 AI가 인간을 위협하거나 해를 가하는 부정적인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이 영화에서는 그렇지 않더라고요. AI를 다르게 그려낸 의도가 궁금합니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우리 삶으로 들어오고, 그 기술이 우리 삶을 위협할 거라는 문제의식은 지난 몇 십 년 동안 있었잖아요. 여전히 저는 그런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AI가 우리 삶에 들어왔을 때 우리의 직업을 가져갈 거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자체를 변화시킬 거라고 생각했어요. 마치 SNS 시대에 친구 관계가 바뀐 것처럼 더 크게 바뀔 거라고 생각했죠.


그 문제를 부정적으로 혹은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이미 우리는 흔히 부정적으로 보고 있으니까 긍정적으로 바라보기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기계와 감정적 소통이 가능한 사람들의 얘기를 그리고 싶었어요. 하지만 동시에 진짜라고 믿고 있는 AI와의 영상 통화가 끝나고 나면 허무한 것처럼 그런 편리함이 행복으로 이어지는 게 맞는지도 질문하고 싶었어요. 관객분들이 이 영화를 잔인하게 보는 분도 있을 거고, AI 기술과 인간이 공존하는 세상을 따뜻하게 볼 수도 있고, 다양하게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 있으신가요?


재밌게 봤으면 좋겠어요. 제가 한 고민이 피상적일 수 있거든요. 또 이 고민을 모두 다 하는 건 아니잖아요. 영화가 풀어나가는 방식도 인과관계에 의한 게 아니라 감정 위주로 보는 드라마여서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모르겠어요. 어려운 영화가 아니고,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 관계를 되돌아보고 짚어보는 영화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