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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원더랜드〉 속 가장 인간다운 캐릭터 ‘정인’을 연기한 배우 수지

김지연기자

 

쿠팡플레이 시리즈 <안나>, 넷플릭스 시리즈 <이두나!> 등 유난히도 섬세한 감정연기가 필요한 작품을 도맡으며 커리어의 다음 스텝을 밟고 있는 배우 수지가 영화 <원더랜드>로 돌아왔다. 세상을 떠난 사람과 AI 영상통화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가상의 서비스 ‘원더랜드’를 소재로 한 이 영화에서 수지는 서비스를 의뢰한 인물 ‘정인’을 연기했다. <원더랜드>의 ‘정인’(수지)은 남자친구 ‘태주’(박보검)가 사고로 의식을 잃자, ‘원더랜드’ 서비스를 의뢰해 AI로 남자친구 태주의 모습을 구현한다.

 

정인은 주요 등장인물 중, 가장 ‘인간다운’ 모순에 직면하는 인물이다. 원더랜드 속 AI들과는 달리, 정인은 사람이기에 실망도, 좌절도, 부침도 겪는다. 정인은 AI를 소재로 한 영화에서 ‘인간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캐릭터이자, 김태용 감독의 고민이 단적으로 녹아있는 인물이다. 종종 감정에 휩쓸리기도 하고, 잘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지만, 그게 가장 인간다운 모습이기도 하다. 지난 4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배우 수지를 만나 <원더랜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배우 수지. (사진제공=매니지먼트 숲,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배우 수지. (사진제공=매니지먼트 숲,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2020년에 촬영을 시작했던 영화 <원더랜드>가 6월 5일, 약 4년 만에 개봉해요. 소감이 어떠세요.

 

저도 정말 오랫동안 기다렸어요. 마치 정인이 태주를 그리워하는 마음처럼 영화를 그리워하면서. 드디어 나오게 돼서 뭉클하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해요. <안나>를 찍기 전에 <원더랜드>를 찍었으니까.

 

개인적으로 <원더랜드>에 대한 애정이 굉장히 많은 것으로 보여요. 영화 촬영 당시에는 수지 배우가 지금보다 훨씬 어렸는데요. 이제서야 개봉한 <원더랜드>를 보면서, 4년 전의 자기 자신이 연기하는 모습을 봤을 때 어떠셨나요.

 

저의 예전 연기를, 연기로 보지 않게 되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연기에만 집중해서 봤다면, 지금 시간이 흐른 후에 보게 되니까 연기보다는 영화 자체를 보게 돼요. 그래서 편안한 마음으로 보게 됐습니다.

 

그럼, 관객으로서 본 영화 <원더랜드>는 어떤 작품인가요.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다른 부분들이 많이 보였던 것 같아요. 정인이와 태주의 입장만을 보는 게 아니라,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울컥하는 장면도 많았고요. 다른 인물들의 에피소드도 와닿더라고요. 예를 들면 ‘바이리’(탕웨이)와 바이리 엄마(니나 파우)의 관계가 울컥했어요. 바이리의 딸 ‘지아’(여가원)는 바이리가 AI 인지 모르는데, 엄마는 바이리가 가짜인 걸 알고 있으니까, 그런 부분이 슬펐고요. 또, ‘해리’(정유미)가 AI 부모님과 영상통화를 하는 장면은 (AI 가족이) 일상이 돼버린 느낌이라 슬펐어요. 또, 극 중에서 해리가 “데이터를 지웠다가 AI를 새로 만들면, 이전과 같은 사람이 아니더라”라고 말하는 부분이 담담해서 더욱 슬펐어요. 왜냐하면, 해리는 자기가 AI로 부모님을 만들었는데, 그게 자기가 생각했던 부모님이 아닌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서요.

 


배우 수지. (사진제공=매니지먼트 숲,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배우 수지. (사진제공=매니지먼트 숲,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처음 <원더랜드>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는 어떤 느낌이 들었나요?

 

‘원더랜드’라는 서비스가 흥미로웠고요. 이 기술이 일상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미래적인 기술이라기보다는 정말 일어날 수 있을 것만 같은, 비현실적이지 않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리고, 태주-정인의 관계를 보면, 태주가 죽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정인과 태주의 갈등이 흥미로웠어요.

 

마치 <엽기적인 그녀>의 ‘그녀 사용설명서’처럼, 정인이가 태주를 설명하는 ‘원더랜드 신청서’를 직접 작성해서 김태용 감독에게 보여줬다고 들었어요. 이전부터 작품을 준비할 때, 이렇게 구체적으로 상황을 상상하며 캐릭터 분석을 하는 편이었나요?

 

원래도 작품에 들어갈 때, 대본 사이사이에 일어났던 일들을 혼자 상상을 하고 만들어내서 촬영을 하는 편인데요. (대본에 공백이 있을 때) 중간에 어떤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그 감정을 연결하는 게 저는 조금 힘들어가지고 그런 상상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원더랜드>는 빈 부분이 더욱 많아서 디테일하게 상상을 하다 보니까, ‘원더랜드 신청서’를 써보게 됐어요.

 

 


〈원더랜드〉 스틸컷
〈원더랜드〉 스틸컷

 

말씀하신 것처럼, 시간과 사건, 감정의 공백이 많은 것이 <원더랜드>의 특징이기도 해요. 김태용 감독은 이 영화가 ‘난데없이 이루어지는 게 특징인 영화’라고도 말했는데요. 감정이 세세하게 나온다기보다는 그냥 툭, 하는 식으로 나와요.

 

저는 이런 작업이 처음이라서 신기하고, 좋았어요. 대사도 뚝뚝 끊기기도 하고, ‘얘가 이렇게 답변해야 할 것 같은데, 이렇게 하네?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네?’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김태용 감독님께 여쭤보니, ‘원래 사람들이 대화를 그런 식으로 한다’라고 말해주셨어요. 그래서 다시 생각해 보니까, 사실 드라마나 영화 속에 나오는 대사들과는 달리, 현실에서는 우리가 얘기할 때 뜬금없는 소리를 할 때가 많잖아요. 그래서 그런 지점이 영화에 표현이 돼서, 더 묘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요.

 

수지 배우가 연기한 정인은 AI 태주와 매일같이 다정하게 소통해요. ‘노래해 봐’라며 노래를 시키기도 하고, 아침에 늦잠을 자지 않도록 태주에게 깨워달라고 하기도 해요. 정인이는 AI 태주를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요?

 

‘진짜’와 ‘가짜’를 나눠야 한다면, 현실의 태주가 살아 돌아왔을 때, AI 태주에게 전화가 오자 정인이가 바로 끊어버리는 장면이 있거든요. 그래서, 정인이도 AI 태주를 기계로 생각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정인이도 AI 태주에게 많은 위로를 받고 살아왔지만, 현실 태주가 돌아왔을 때의 태도를 보면 ‘정인이도 다 알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원더랜드〉 스틸컷
〈원더랜드〉 스틸컷

 

정인은 혼수상태에 빠진 남자친구 태주를 그리워해서, ‘원더랜드’ 서비스로 AI 태주를 만들어요. 그런데 막상 태주가 살아서 돌아오자 자신의 상상과는 다른 태주의 행동에 혼란에 빠지고, 화를 내기도 해요. 정인이 캐릭터가 공감이 안 됐던 지점이 있나요?

 

모든 순간이 다 공감이 갔어요. 정인이가 미울 수도 있지만, 정인이의 입장에서 대변하자면 정인이는 (AI가 아닌) 사람이라서 그럴 수밖에 없었지 않나 싶어요. 모든 사람들이 좋은 선택만을 내리면서 살아갈 수는 없고. 저는 정인이의 갈등이 되게 인간적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사실, 정인이는 AI 태주를 굉장히 똑똑하게, 잘 활용한 것 같은데요.

 

맞아요. 정인이는 AI 태주를 인간이라기보다는 ‘시리’ 대하듯이, 정말 비서처럼 효율적으로 잘 사용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AI 태주는 정인이의 일상을 다 알고 있어서, 약이며 비타민도 다 챙겨주고. 그런데, AI 태주를 대하는 순간만큼은 진심이었다고 생각을 해요. 정인이가 ‘원더랜드’ 서비스를 처음 신청하게 된 이유는, 태주가 절대 깨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죽었다고 생각하고 신청을 한 거니까요. (AI 태주와 다정하게 대화하는) 그 순간만큼은, 자기가 자기를 속일 수도 있잖아요.

 

〈원더랜드〉 스틸컷
〈원더랜드〉 스틸컷

 

박보검 배우와는 <원더랜드>로 처음 한 작품에서 호흡을 맞췄어요. AI 태주와 현실의 태주를 모두 연기한 박보검 배우와의 작업은 어땠나요.

 

현실 태주의 눈빛을 보고 있으면, 내가 되게 나쁜 사람인 것처럼 느껴져요. 내가 화를 내야 할 것 같은데, (눈빛을 보면)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그리고, 또 어떨 때는 많은 것을 담고 있는 눈빛이에요. (박보검 배우를 잘 모르고) 멀리서 봤을 때는 그냥 빛나고 잘생긴 사람 같았는데, 연기를 해보니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더랜드>는 옴니버스 영화다 보니까, 태주와 정인이의 서사가 충분하게 드러나지는 않아 아쉬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혹시, 촬영을 했는데 삭제된 장면이 있을까요?

 

AI 태주와 영상통화를 하며 회를 사러 가는 장면이 있었어요. AI 태주는 자기가 어떤 회가 좋은지, 어떤 게 싱싱한지 다 안다면서 회를 골라줘요. 조금 더 일상적이고, 서로 꽁냥꽁냥하는 장면이에요.

 

〈원더랜드〉 스틸컷
〈원더랜드〉 스틸컷

 

정인이는 ‘원더랜드’ 속에 AI 태주를 구현해 놓고, 우주에 있는 AI 태주와 영상통화로 소통해요. 기존의 연기와 달리, 핸드폰을 보고하는 연기가 주가 되는데요. 박보검 배우와 합은 어떻게 맞추셨나요.

 

감정을 잘 살리기 위해서 서로 진짜 자신의 핸드폰으로 영상통화를 하면서 연습을 했어요. 서로 다른 방에 들어가서. 그런 연습을 하다 보니까, 조금 더 자연스러워졌고 편해졌어요. 영상통화를 하다 보니 실제로 잘 못 알아듣고, 딴말만 하고 (그러기도 했어요). 현장에서 촬영할 때는, 태주(박보검)가 직접 와서 대사를 쳐주기도 했었고요. 감독님이 해주시기도 했어요. 그래서 그런 것들이 쌓여서 인물로 잘 녹아들 수 있었어요.

 

배우 수지. (사진제공=매니지먼트 숲,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배우로서의 수지는 쿠팡플레이 시리즈 <안나>가 연기의 터닝포인트가 된 것 같은데요. 영화 <원더랜드>는 수지의 필모그래피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저는 <원더랜드> 현장에서 느낀 소중한 감정들이 있고, 연기에 대한 재미도 좀 느꼈고, 굉장히 행복하게 작업을 했고 배운 것도 많아요. 그래서 의미가 깊게 남을 것 같아요. 저도 의견을 많이 내고, 또 잘 들어주시다 보니까 연기가 저에게는 조금 더 '확신'처럼 다가왔고요. 인물에게 더욱 깊게 다가가는 법을 배운 것 같아요.

 

수지 배우는 이전에 김태용 감독의 <만추>(2011)가 인생 영화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이번 <원더랜드>에 참여하게 된 것도, <만추>를 인상 깊게 봤기 때문인가요.

 

제가 김태용 감독님과 같이 작업을 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원더랜드> 제안이 들어왔을 때, 시나리오를 안 보고도 당연히 할 생각이 있었어요.

 

영화 <만추>를 특히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두 개가 있는데요. 하나는 ‘훈’(현빈)과 ‘애나’(탕웨이)가 서로 다른 언어로 소통하는 장면이에요. 훈은 중국어를 못 알아듣지만, 애나가 중국어로 말하는 것을 다 알아듣는 것만 같고, 위로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잖아요. 서로 다른 언어를 하지만, 통하는 느낌. 그게 <원더랜드>랑 닮아 있다고 생각해요. 또 하나는, 애나 엄마의 장례식에서, 애나가 훈에게 울면서 되게 별거 아닌 걸로 화를 내는 장면이에요. 저는 그 장면이 되게 슬펐거든요.

 

〈만추〉 스틸컷
〈만추〉 스틸컷

 

그렇다면, 현장에서 연출자로서의 김태용 감독님의 스타일은 어땠나요?

 

김태용 감독님은 소통을 잘 하시고, 답을 정해놓고 질문을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열린 마음으로 질문을 하는 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서로의 의견을 많이 공유할 수 있었고, 좋은 질문들을 해주시니까 저도 더 깊이 생각할 수 있었고요. 그리고, 즉흥적으로 바뀌는 장면들이 많아서 현장에는 대본을 안 들고 가기도 했어요. 현장에서 대사도, 상황도 바꿔주시니까 더 날 것처럼 할 수 있었고요. 내가 준비한 게 나오는 게 아니라, 새로운 상황에서도 정인이가 되어 연기를 해보면서, 그런 지점들이 많이 재밌었어요.

 


*아래에는 <원더랜드> 결말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원더랜드〉 스틸컷
〈원더랜드〉 스틸컷

 

만약 현실의 누군가가 <원더랜드> 속 병원에서 돌아온 태주처럼 행동한다면, 이별을 하는 게 바람직할 것 같은데요. 공원에 있는 사람들을 집에 끌어들이고, 불을 내고, 직장에 찾아오고. 그럼에도, 정인이는 그런 태주를 단박에 끊어내지는 않아요. 병원에서 돌아온 태주를 대하는 정인이의 심리는 어땠을 것 같나요.

 

태주가 공원에서 만난 사람들을 집에 불러서 파티를 하는 상황은 되게 이상하죠. 저는 그 장면을 되게 좋아하는데요. 사실은, 그 장면을 다르게 찍기도 했어요. 처음에는 모르는 사람들과 집에서 파티를 하는 태주를 다그치다가, 마지막에는 정인이가 결국 같이 놀아주는 버전이 있었어요. 현실적으로는 사실 너무 힘들죠. 그래서 영화에서도 정인이가 태주를 이해하는 방식을 택하다가도 결국 탈이 난 거고. 조금씩 다 쌓인 것 같아요. AI 태주는 정인이가 만들어낸 태주이기 때문에 정인이에게 다 맞춰진 태주이고, 다시 깨어난 태주는 그냥 인간이기 때문에 당연히 충돌하는 부분이 있을 거고.

 

영화는 정인-태주 관계에 대한 뚜렷한 답을 내지 않은 채 끝이 나요. 영화의 결말에 대해서는 만족하시나요? 스스로가 해석한 정인-태주 관계의 결말에 대해서 말씀을 해주신다면요.

 

저는 정인이가 AI 태주와도, 현실의 태주와도 완전한 이별을 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렇지 않게 생각하는 관객분들이 더 많은 것 같아요.

 


배우 수지. (사진제공=매니지먼트 숲,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원더랜드> 기자간담회에서 수지 배우는 주연 배우들 중 유일하게 ‘원더랜드’ 서비스를 신청할 마음이 있다고 답했어요. 그런데 아직은 영상통화를 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고 말했었는데요. 만약 본인이 ‘원더랜드’에 간다면, 어떤 AI가 되어 있을 것 같나요?

 

사육사요. 맹수들과 어울려 지내는 사육사는 어떨까요. 동물들과 교감을 굉장히 잘해서 잘 지내는 그런 사육사였으면 좋겠어요.

 

지금 촬영 중이신 이병헌 감독의 드라마 <다 이루어질지니>에서는 <원더랜드> 정인과 정반대, 감정 결여 캐릭터 ‘가영’을 연기하신다고 들었어요. 또, 최근 캐스팅 소식이 전해진 임선애 감독의 영화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에서는 <원더랜드>의 정인이처럼 승무원 역할을 맡을 예정인데요.

 

<원더랜드>에서는 승무원의 직업적인 면이 많이 드러나지는 않았는데요. 영화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에서는 승무원의 면모가 많이 나올 것 같아요.

 

씨네플레이 김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