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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연속 황종잡이! 미국 배급사 네온에 대한 이모저모

김지연기자
2024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아노라〉
2024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아노라〉

 

네온이 잡으면, 황금종려상이 된다. <기생충>(2019) <티탄>(2021) <슬픔의 삼각형>(2022) <추락의 해부>(2023) <아노라>(2024)까지. 한번 받기도 쉽지 않은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무려 5번이나 연속으로 배출한, 그러나 고작 2017년에 설립된 이 수수께끼의 배급사. 배급사 ‘네온(NEON Rated)’은 A24에 이어 북미 지역 인디영화 배급의 혜성처럼 떠오른 회사다. “네온은 이제 새로운 A24다”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 A24가 초반에 ‘나만 아는 느낌’의 소규모 스튜디오 포지션으로 컬트적인 인기를 모았다면, 이제는 네온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듯 보인다.


네온의 원칙

네온이 최근 배급한 작품들. 사진= 네온 홈페이지 캡처
네온이 최근 배급한 작품들. 사진= 네온 홈페이지 캡처

네온이 고르는 작품들의 공통점이라면, 반-트럼프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반은 농담이고 반은 진담이다. (물론, 네온이 코로나19 대응에 실패한 트럼프 정부를 다룬 다큐멘터리 <토탈리 언더 컨트롤>(2020)을 배급했다는 사실이나, 네온이 여성의 임신중단권 보장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고 있다는 사실을 차치하고서라도!)

네온은 그간 할리우드가 배급하기를 주저했던 영화까지도 위험성을 감수하고 배급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네온 창립자 톰 퀸은 ‘매우 독특한 관객층’을 위한 일관성 있는 필모그래피를 꾸리고자 한다. 톰 퀸은 네온이 “45세 미만이고, 외국어 영화나 논픽션 영화에 대한 거부감이 없고, (영화 내에 표현되는) 폭력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작품을 찾는다”라고 말했다.

(왼쪽부터) 〈기생충〉 미국포스터, 네온이 판매했던 〈기생충〉 티셔츠
(왼쪽부터) 〈기생충〉 미국포스터, 네온이 판매했던 〈기생충〉 티셔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이 “1인치의 자막이라는 장벽을 넘어서면, 훨씬 더 놀라운 영화들을 많이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네온은 북미에서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제작된 작품을 배급하기를 꺼리지 않는다. 일례로 네온이 배급한 <기생충>이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타자 트럼프 전 대통령은 <기생충>이 외국어 영화상이 아닌 작품상을 탄 것에 대해 의아해했고, 네온은 “이해한다. 트럼프는 자막을 읽을 수 없으니까!”라고 받아치기도 했다.

사진= NEON 공식 X 캡처
사진= NEON 공식 X 캡처

지난 5년의 황금종려상 수상작들은 물론이고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셀린 시아마 감독, 2019)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요아킴 트리에 감독, 2021) <메모리아>(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 2021) <퍼펙트 데이즈>(빔 벤더스 감독, 2023) 등이 모두 네온의 배급작인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올해 칸영화제에서 특별언급상을 수상한 모함마드 라술로프 감독의 <성스러운 무화과의 씨앗>(2024)도 네온이 구매했다.


논픽션이 작품상을 수상하는 그날까지

‘외국어 영화’(비영어 사용자로서는 참 아이러니한 말이 아닐 수 없지만)의 첫 오스카 작품상 수상. 그러나 네온은 여전히 다큐멘터리 영화가 아카데미에서 ‘다큐멘터리상’이 아닌 ‘작품상’을 수상할 날이 오길 고대한다. 최근 국내에서도 개봉한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2022)는 물론, <어메이징 그레이스>(2018) <위대한 작은 농장>(2019) <아폴로 11>(2019) <허니랜드>(2019) 등, 네온은 꾸준히 다큐멘터리를 극장에 배급해 오고 있다. 다큐멘터리는 극장 상영에 적합하지 않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서다.

〈나의 집은 어디인가〉
〈나의 집은 어디인가〉
〈나의 집은 어디인가〉
〈나의 집은 어디인가〉

2021년 선댄스영화제에서 네온이 구매한 영화 <나의 집은 어디인가>(Flee)는 소위 할리우드에서 ‘마이너’라고 여겨졌던 요소들을 총합한 듯한 작품이다. <나의 집은 어디인가>는 애니메이션이고, 다큐멘터리이며, 덴마크에서 제작한 외국어 영화다. 그처럼, 네온은 마치 할리우드의 굳건한 기존 질서를 깨려는 양, 끊임없이 새로운 시선을 던지고 증명해 내려는 듯 보인다.


네온은 작품을 어떻게 구매할까

네온은 주로 영화제에서 배급작 구입에 나선다. 단지 감독의 명성이나 유명 배우의 출연 등을 이유로 작품을 선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된 영화를 보고 나서 판단한다는 의미다. 네온이 처음으로 큰 비평적 성과를 거둔 영화 <아이, 토냐>(2017) 역시 토론토국제영화제(TIFF)에서 영화를 관람한 후 배급을 결정한 작품이다.

(왼쪽부터) 〈퍼펙트 데이즈〉 빔 벤더스, 〈추락의 해부〉 쥐스틴 트리에, 〈로봇 드림〉 파블로 베르헤르 감독. 사진=네온 인스타그램
(왼쪽부터) 〈퍼펙트 데이즈〉 빔 벤더스, 〈추락의 해부〉 쥐스틴 트리에, 〈로봇 드림〉 파블로 베르헤르 감독. 사진=네온 인스타그램

물론, 칸영화제는 네온의 단골 쇼핑센터다. 네온은 칸의 바이어 스크리닝에서 영화를 보고,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2019) <슬픔의 삼각형>(2022) <추락의 해부>(2023) <로봇 드림>(2023) <퍼펙트 데이즈>(2023) 등을 구매한 바 있다. 다만 <기생충>(2019) <티탄>(2021) <메모리아>(2021) <브로커>(2022) <키메라>(2023) 등은 작품의 스크립트만을 보고 구매한 경우다.

 

(왼쪽부터) 네온이 배급한 〈아이, 토냐〉 〈슬픔의 삼각형〉 〈추락의 해부〉
(왼쪽부터) 네온이 배급한 〈아이, 토냐〉 〈슬픔의 삼각형〉 〈추락의 해부〉

 

톰 퀸에 따르면, 그가 단지 황금종려상을 수상할 것 같은 작품을 골라서 구매하는 것은 아니다. <슬픔의 삼각형>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을 때, 톰 퀸은 “정말 놀랐다. (스크리닝 후) 리뷰를 봤을 때, 황금종려상을 수상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네온이 영화제에서 작품을 구매하는 기준은 수상 확률이 높아 보이는 영화가 아니라, 그들의 원칙에 부합하는 영화라는 것. 그들의 기준에 따라 구매한 영화가, 영화제 심사위원들의 취향과도 우연히 일치하는 거였을 터다.


봉준호와의 인연

네온도, 아카데미 시상식도, 한국영화계도 <기생충>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사실은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네온은 2017년에 설립되었지만, 네온 창립자 톰 퀸은 봉준호와의 오랜 인연을 자랑한다. 톰 퀸은 네온 창립 전 배급사 '매그놀리아 픽처스' 등을 거쳐, 영화계에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매그놀리아 근무 당시였던 2006년, 톰 퀸은 칸영화제에서 봉준호의 <괴물>을 봤고, 그날 새벽 영화를 샀다. 그렇게 <괴물>은 봉준호 감독의 첫 미국 개봉작이 됐다.

〈기생충〉의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 후. 사진=네온 인스타그램
〈기생충〉의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 후. 사진=네온 인스타그램
〈기생충〉의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 후. 사진=네온 인스타그램
〈기생충〉의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 후. 사진=네온 인스타그램

 

톰 퀸은 봉준호의 7개 작품 중 5개를 북미에 배급했다. 하비 웨인스타인이 <설국열차>(2013)를 20분가량 편집하려 할 때, 톰 퀸이 봉준호 감독의 의도대로 만든, ‘가위질’ 되지 않은 <설국열차>의 개봉을 추진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올드보이〉 북미 재개봉 포스터
〈올드보이〉 북미 재개봉 포스터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 공개된 <옥자>(2017) 역시 톰 퀸이 매우 탐낸 영화다. 톰 퀸은 <옥자>의 북미 개봉을 추진하기 위해 넷플릭스와 파트너십을 맺고자 약 6개월 동안 매달렸으나, 넷플릭스가 이를 거절했다. 톰 퀸은 봉준호 외에도 한국의 영화감독과 영화시장을 20년 넘게 주목해왔고, 최근에는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2003) 20주년을 맞아 북미 재개봉을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