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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픽: 내가 뽑은 차세대 감독⑤] 기억과 추억 사이, 카를라 시몬의 천국의 아이들

주성철편집장
〈알카라스의 여름〉
〈알카라스의 여름〉

 

스페인 출신 카를라 시몬 감독은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한 <알카라스의 여름>(2022)과 <프리다의 그 해 여름>(2018) 단 두 편으로 가장 주목할 만한 감독 대열에 합류했다. 두 영화의 공통점이라면 바로 아이들이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영화가 다른 예술과 가장 다른 점이라면, 바로 ‘배우’라는 생명을 지닌 존재가 있다는 것이다. 작가에게 펜이 있고 화가에게 붓이 있다면, 영화감독에게는 배우가 있다. 그런데 이 배우라는 존재는 그런 ‘도구’와 달리 제멋대로일 때가 많다. 말을 잘 들을 때도 있지만 아닐 때도 있으며, 말을 잘 들었다고 해서 전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만도 아니다. 영화라는 예술에서 창작자가 자신의 의도를 작품에 완벽하게 담아내는 일은 넉넉하지 않은 예산 문제부터 촬영 당일의 날씨에 이르기까지 여러 이유로 불가능에 가까운데, 역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배우다.

 

심지어 감독과 배우가 완벽하게 같은 목적과 세계관을 공유한다 해도 그것은 불가능하다. 문학과 음악과 미술과 비교해, 창작의 영역에 있어 오직 영화의 감독이라는 사람들만이 배우와의 ‘소통’ 능력을 요구받는다. 소설가가 자신이 창조한 캐릭터와 소통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영화감독은 새벽에 걸려온 배우의 상담 전화도 받아야 하고, 종종 밥도 먹고 술도 마시며 이야기를 경청해야 한다. 하물며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종종 영화의 정보를 완전하게 전달할 수 없고, 연기에 필요한 상황도 다르게 설명해줘야 할 때가 많은 아역배우는 어떤가. 영화에 있어 ‘성장영화’라는 거대한 우주가 장르의 경계를 초월해 존재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카를라 시몬 감독
카를라 시몬 감독

 

얼핏 카를라 시몬 영화의 아이들은 ‘슬픈 침묵’을 껴안은 채 살아가던 로베르 브레송의 <무쉐트>(1967)나 자크 도일론의 <뽀네뜨>(1996)를 떠올리게 할지도 모른다. 특히 같은 스페인 감독인 빅토르 에리세의 <벌집의 정령>(1973)이나 카를로스 사우라의 <까마귀 기르기>(1976)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아나 토렌트와의 비교가 가장 많았다. 하지만 데뷔 이전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기도 했던 카를라 시몬은, 타인과의 거리감이라는 걸 배울 이유도 여유도 없이 세상의 중심이 당연히 자신이라고 믿으며 살아온 아이들의 시선이나 감정의 온도를 있는 그대로 담아낸다. 거의 핸드헬드로 촬영된 모든 장면은, 카메라와의 거리감마저 지워진 것처럼 보이기에 어쩌면 아역배우와의 ‘소통’ 그 자체가 연출의 모든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장편 데뷔 이전, 에이즈에 걸린 채로 태어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Born Positive>(2012), 할머니가 잠들면 몰래 할머니 방에 들어가 화장을 하는 꼬마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 단편 <립스틱>(2013)도 그러했다. <립스틱>의 그 꼬마는 장편 데뷔작 <프리다의 그 해 여름>의 주인공 프리다로 이어졌다.

 

〈프리다의 그 해 여름〉
〈프리다의 그 해 여름〉

 

세상 모든 사람은 유년기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몸만 자랄 뿐 머리는 그때 그 시절 어딘가에 머물러 있을지도 모른다. 그를 바탕으로 이른바 자전적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야 무수히 많지만, <알카라스의 여름>으로 베를린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한 최초의 스페인 여성감독 카를라 시몬은, 그 기억 안에서 그때는 느끼지 못했던 주변의 공기나 심지어 그 기억이 생성된 땅의 기운까지 담아낸다. <프리다의 그해 여름>의 원제는 ‘1993년의 여름’이라는 뜻의 <Estiu 1993>이다. 1986년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난 카를라 시몬 감독은 바로 그 1993년, 학교라는 곳에 들어가기 직전 겪었던 자신의 기억을 끄집어낸다. 실제로 스페인어가 아닌 카탈루냐 어를 사용했고, 역시 실제로 머물렀던 카탈루냐 지방의 가로트하에서 촬영했다. 바르셀로나에 살던 6살 프리다(라이아 아르티가스)는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외숙모와 외삼촌, 그리고 사촌 동생이 살고 있는 카탈루냐의 한 시골마을로 간다. 아직 부모의 죽음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프리다는 외삼촌 가족과 어울리는 문제, 도시와는 전혀 다른 시골 생활에 적응해나가는 문제 등으로 조금씩 변해간다. 그렇게 환경이 바뀌면서 표정도 감정도 미묘하게 바뀐다.

 

〈프리다의 그 해 여름〉
〈프리다의 그 해 여름〉
〈프리다의 그 해 여름〉

 

카를라 시몬의 시간 여행이 놀라운 것은, 그저 관객을 타임머신에 태워 그때 그 순간으로 데려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과 ‘추억’ 사이 그 어떤 지점에 절묘하게 착지한다는 것이다. 마치 예전의 엄마가 했던 것처럼 얼굴 화장을 하고, 손에 담배를 든 채 사촌 동생 아나를 딸 삼아 엄마가 했을 법한 이야기, 심지어 아이가 귀찮을 때와 좋을 때의 엄마의 변덕까지 담아낸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소꿉놀이를 한다. 잠들기 전에는 엄마가 들려줬던 주기도문도 직접 읊는다.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상실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한 아이의 모든 자연스러운 행동들이 사실은 새로운 환경을 견뎌내기 위한 몸부림이다. 때로는 심술이 나서 사촌 동생 아나를 버려두기도 하고, 다른 친척에게는 “저한테 일을 다 시켜요, 날 하녀 부리듯 해요”라는 거짓 불평까지 한다. 침대 위에서 방방 뛰는 게 마냥 좋을 나이에 가출까지 행동에 옮기는, 하지만 “너무 깜깜해서 내일 갈 거예요”라며 당당하게 귀가하는 프리다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소용돌이는 감히 짐작하기 힘들다. 슬픔을 억누른다는 말은 얼핏 세상 풍파 다 겪은 어른들의 것으로 여겨질지 모르지만, 카를라 시몬이 생각하기에 우리는 이미 그때 모든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엔딩 크레딧은 “나의 엄마 네우스에게 바칩니다”라는 자막으로 마무리된다.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자신을 첫째 딸로 기꺼이 받아 준, 모두가 자신을 기피할 때 자신을 안아준 외숙모에게 바치는 영화인 것이다.

 


〈알카라스의 여름〉
〈알카라스의 여름〉
〈알카라스의 여름〉
〈알카라스의 여름〉

 

<알카라스의 여름>에는 프리다보다 좀 더 자란 것 같은 10대 사춘기 소녀 마리오나(세니아 로셋)가 주인공이다. 그 나이 때 다른 친구들처럼 대중가요에 빠져 있는 그는 “나는 그 소녀가 아니야.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 소녀가 아니야. 당신을 위해 춤추는 흰 비둘기가 아니야”라고 노래하며 춤춘다. 그리고 마리오나가 포함된 솔레 대가족은 3대째 복숭아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할아버지 로헬리오(요셉 아바드)의 부모는 오래전 피뇰 가족을 지하실에 숨겨주어 목숨을 구해준 대가로 그들의 땅 일부를 경작할 권리를 부여받았다. 당시 주변 모두 지주들이 다 살해당했지만 솔레 가족으로 인해 피뇰 가족은 다시 지주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부모 세대가 세상을 떠난 후 피뇰의 아들은 계약 무효를 주장한다. 게다가 늘 해오던 대로 농사만 지을 수 없고, 수익성 개선을 위해 태양전지판을 설치해야 하는 세상의 변화도 녹아든다. 그렇게 바로 지금 카탈루냐 지방의 복잡하고도 유구한 역사가 한 가족의 현재와 엮인다.

 

〈알카라스의 여름〉
〈알카라스의 여름〉
〈알카라스의 여름〉
〈알카라스의 여름〉

 

영화의 원제는 실제로 감독의 친척들이 농사를 짓고 있는 지역명을 따온 <알카라스>인데, 굳이 제목을 바꾼다면 <알카라스의 여름>이 아니라 <알카라스의 밤과 낮>이 어울린다. 낮에는 열심히 복숭아 수확을 하고, 밤에는 그 복숭아 농사를 망치는 토끼를 사냥한다. 그렇게 밤의 어른들이 죽인 토끼를 낮의 아이들이 장례를 치러준다.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초현실의 순간은, 죽은 토끼를 묻어주려는 아이들에게 한 아프리카 이주노동자가 다가와 ‘알라마야 알라하나’라는 그들만의 주문을 외운 뒤, 아마도 그가 고향에서 했을 법한 동작을 떠올려 흙을 이마에 문지르는 장면이다. 이후 아이들은 그 주문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지만, 죽은 토끼를 볼 때마다 그렇게 주문을 외고 흙을 이마에 문지른다.

 

〈알카라스의 여름〉
〈알카라스의 여름〉
〈알카라스의 여름〉
〈알카라스의 여름〉

 

아프리카 어딘가에서 지금도 여전히 행해지고 있을 그 토속적인 주문과 동작이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한 시골 마을 꼬마의 입과 손으로 이어진다. 대서양과 지중해를 건너다 세상을 떠났을 수많은 현대의 난민들과 스페인 내전이 앗아간 수많은 과거의 목숨들이 그 주문으로 만난다. 1930년대 스페인 내전의 기억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삼대(三代)의 땅의 이야기는 그렇게 아프리카 이주노동자의 토테미즘까지 가닿는다. 말하자면 영화에서 무엇인지 모르고 행하는 아이들의 행동이 가장 아름답고 숭고하다. 앞서 “나도 물속에서 숨 쉴 수 있어요”라는 <프리다의 그해 여름>의 프리다의 대사는 어쩌면 진짜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카를라 시몬의 아이들이 펼치는 마법이고, 영화의 마법이다.

 

주성철 씨네플레이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