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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스캔들〉〈싱글라이더〉〈부산행〉··· 배우 안소희가 걸어온 길

씨네플레이
안소희
안소희


아마도 ‘안소희’하면 여전히 젖살이 통통한 그때의 모습을 떠올리는 사람이 적지 않을 테다. 하지만 2007년 ‘Tell me’로부터 벌써 2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 강산이 변한 만큼 국민 여동생 소희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어린 나이에 표정, 태도, 말투 하나로 필터링 없는 악플을 온몸으로 견뎌야 했던 소희는 어떠한 구설수도 없이 연예계 생활을 이어갔다. ‘시크해보인다’는 첫인상과 달리 그를 실제로 아는 이들은 모두 하나같이 ‘예의 바르되 진솔하고 올곧다’고 평한다. 그리고 주변인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듯, 그는 자신의 유명세와 상관없이 독립영화부터 작은 조연까지, 배우로서 차근차근 성장하는 필모그래피를 보여주었다. 이번에 개봉하는 영화 <대치동 스캔들>은 그의 첫 장편영화 주연작으로, 배우 안소희의 도약을 만나볼 수 있다. 연극부터, 독립영화, 배리어프리 영화, 그리고 첫 주연작까지. 알지 못했던 배우 안소희의 진심어린 행보를 소개한다. 


 <뜨거운 것이 좋아>(2008)
 

〈뜨거운 것이 좋아〉(2008) (왼쪽 부터) 김민희, 이미숙, 안소희
〈뜨거운 것이 좋아〉(2008) (왼쪽 부터) 김민희, 이미숙, 안소희


데뷔 전부터 연기에 관심이 있던 안소희는 2008년, 이미숙, 김민희와 함께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로 스크린에 데뷔한다. <뜨거운 것이 좋아>는 10대, 20대, 그리고 40대의 연애를 옴니버스식으로 풀어낸 작품으로, 안소희는 고등학생 강애 역을 맡았다. 20대 시나리오 작가 아미는 김민희가, 40대 초반 싱글맘 영미는 이미숙이 연기했는데, 세 배우 모두 차갑고 지루한 일상을 통과하는 주인공의 심리를 저마다의 톤으로 표현해냈다. 작중에서 강애는 영미의 딸로, 싱글맘 엄마를 돕는 실질적 살림꾼으로 등장한다. 미적지근한 일상에도 어김없이 사춘기는 찾아오는데, 강애는 남자친구 호재(김범)보다 단짝친구인 미란(강해인)과의 키스에 더 설레하는 자신에게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촬영 당시 안소희는 실제로 고등학생이었기 때문에 다소 어색한 톤마저도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일부는 ‘Tell me’로 뜨니까 배우까지 노리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었으나 촬영 당시는 ‘Tell me’가 뜨기 전으로, 데뷔 전부터 연기를 준비했음을 증명했다. 

 

〈뜨거운 것이 좋아〉(2008) (왼쪽 부터) 김민희, 이미숙, 안소희
〈뜨거운 것이 좋아〉(2008) (왼쪽 부터) 김민희, 이미숙, 안소희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는 도발적인 제목과 국민 여동생 소희의 키스신으로 화제가 되었으나 실제 영화는 뜨거운 무언가를 원했으나 결국은 미지근한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27살 가난한 시나리오 작가 아미는 사랑하지만 가난한 뮤지션 애인과 소개팅에서 만난 회계사 사이에서 고민하고, 완경을 일찍 맞이한 40대 영미는 연하남의 저돌적인 대시에 잊고 있던 내면의 뜨거움을 떠올리기도 하며 지리한 일상 속 뜨거운 잠시를 누린다. 사사롭고 일상적인, 다소 느린 템포의 영화지만 ‘만두소희’ 시절을 그리워하는 팬이라면 추천하는 작품.


<부산행>(2016)
 

〈부산행〉(2016)
〈부산행〉(2016)


<뜨거운 것이 좋아> 이후 다시 아이돌 본업으로 돌아갔던 안소희는 JYP 계약 만료 이후, 본격적으로 배우로서의 길을 걸어갔다. 드라마 <하트 투 하트>에서 주인공 고이석(천정명)의 여동생으로 도도한 부잣집 아가씨지만, 배우를 꿈꾸는 고세로 역을 맡았는데, 드라마는 흥행하지 못했으나 그의 연기는 한층 성장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후 그는 <부산행>에서 고교 야구단 응원단장 진희 역으로 천만영화에 이름을 올렸다. 진희는 동갑내기 연인 영국(최우식)에게 거침없이 마음을 표현하는 십 대 특유의 밝고 솔직한 캐릭터로, 안소희는 그를 “극한 상황에 처하자 영국에게 의지하기도 하고 무서우며 떨기도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정의로워지기도 한다"라고 표현했다.  
 

〈부산행〉(2016)
〈부산행〉(2016)


하지만 개봉 후, 진희를 의존적이고 다른 생존자의 마음까지 배려하지 못하는 모습에 ‘민폐 캐릭터’로 평가하는 시선이 왕왕 나타났다. 일부는 캐릭터 문제를 넘어, 안소희의 연기력이 부족했던 것 아니냐는 의견을 제시했으나 <부산행>을 연출한 연상호 감독은 이를 완벽하게 부정했다. 그는 “소희의 연기가 아쉽다는 생각 자체를 안 했다”라며 “문제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잘했다고 생각한다. 캐릭터도 아주 많은 걸 보여주는 캐릭터는 아니었는데, 꽤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그는 ‘소희와 우식의 연기가 너무 가볍지 않냐’는 주변인의 평에 ‘내가 생각했던 반응’이라고 덧붙였는데, 실제로 그는 10대의 철없는 모습에 혀를 차다가, 그들이 정말로 이용당하고 쓰레기처럼 버려졌을 때 (관객이) 더 충격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고, 이를 중점적으로 연출했다고. 
 

〈싱글라이더〉(2017)
 

〈싱글라이더〉(2017)
〈싱글라이더〉(2017)


<부산행> 이후 연기력 논란에 시달리던 안소희였지만, 최소한 단 한 명은 그의 진솔한 노력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이주영 감독은 자신의 첫 장편 데뷔작 <싱글라이더> 집필 당시, 처음부터 안소희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밝혔다. 작품에서 그는 호주 워홀러 유진아 역을 맡았는데, 호주에서 번 돈을 모두 잃고 주인공 재훈(이병헌)에게 다급히 도움을 요청하는 인물로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한 채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지독한 외로움을 경험한다. 이주영 감독은 “광고 감독 당시 처음 봤다”라며 그와의 첫 만남을 회상했다. 그는 안소희를 “깨끗하고 반짝반짝 빛이 나는 듯했다”라고 말하며 진아 역할을 떠올렸을 때 ‘어떤 배우가 연기하면 진아 캐릭터가 더 슬프게 느껴질까’ 고민하다가 ‘안소희’를 떠올리게 되었다고 답변했다.  
 

〈싱글라이더〉(2017)
〈싱글라이더〉(2017)


<싱글라이더>는 증권회사 지점장으로 기러기 아빠지만 안정된 삶을 살아가던 남자 강재훈(이병헌)이 부실채권 사건으로 모든 것을 잃고 가족이 있는 호주로 떠난 이후의 여정을 철저하게 재훈의 시점으로 보여준다. 호주에 도착해 아내의 집에 무작정 찾아가지만 이웃집 호주 남자와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멀리서 본 그는 배신감과 질투, 후회로 그 이상 가까이 가지 못한다. 시드니에서 가족의 곁을 맴돌며 이방인이 된 그는 마찬가지로 워킹 홀리데이를 위해 한국에서 날아온 유진아를 만나게 된다. 1인 탑승객을 뜻하는 작품 제목처럼, 재훈과 진아는 홀로 떠나온 여행객이 느끼는 외로움과 상실을 두 사람의 만남을 통해 섬세하게 표현해낸다. 안소희는 진아를 연기할 때, 원더걸스 시절, 미국에 가있을 때의 외로움을 떠올렸다고 답했다. 그는“타지에서 혼자 있는 외로움은 잘 알아요. 그래서 진아가 짠하게 다가왔고, 그 마음을 생각하며 만들어 갔죠”라고 말하며 촬영 당시 심정을 전했다. <뜨거운 것이 좋아>, <부산행>으로 이미 두 차례 연기력 논란이 있었던 그에게 이병헌, 공효진과 함께하는 <싱글라이더>는 기회이자 부담이었다. 실제로 해변에서 재훈에게 진아가 도와달라고 소리치는 장면은 작중 핵심 장면인데, 이때 몇 차례나 다시 찍어야 했다. 그는 “이병헌 선배가 ‘진짜로 내가 뒤돌아 볼 수 있게 외쳐야 한다. 날 돌아보게 해달라’라고 격려해주셨고, 그 말에 힘을 얻어 진심으로 소리쳤다”고 당시 상황을 말하며 선배들의 도움으로 자신에게 붙은 꼬리표를 떨쳐내었다. 
 

<아노와 호이가>(2018)-세계 여성의 날 재능기부

 

〈아노와 호이가〉(2018)
〈아노와 호이가〉(2018)


<싱글라이더> 이후 그는 꽤나 독보적인 행보를 걸어간다. 코스메틱 브랜드 랑콤의 세계 여성의 날 기념 단편영화 <아노와 호이가>에 재능기부 차원에서 출연하고, 이후로도 꾸준히 단편 독립영화에 얼굴을 비춘다. <아노와 호이가>는 드넓은 겨울의 몽골 초원을 배경으로 연인인 아노(안소희)와 호이가(연우진)의 일상적인 짧은 대화를 소재로 하고 있다. 사랑을 나눈 직후로 보이는 두 사람의 대화는 얼핏 보면 평범해 보이지만 여성의 신체권을 통제하려는 남성의 언행들이 잠깐씩 드러난다. “여자가 남자의 게르(몽골식 가옥)로 오는 게 말이 돼?”라고 하거나 랑콤 틴트를 바르는 아노를 보고 “그렇게 예쁘게 꾸미고 낙타를 돌보러 간다고?”라고 말하며 아노의 동의 없이 침대 위로 넘어뜨린다. 단호하게 “No”라고 말해도 호이가는 입술을 들이밀고 이를 거절하자 “나쁜 년! 기센 여자 너무 싫어”라고 그를 모욕한다.

 

〈아노와 호이가〉(2018)
〈아노와 호이가〉(2018)


영화에서 아노는 곧 늑대가 올 텐데 태워주지 않을 거라는 호이가의 말에 “그러시든가. 여자가 아니라면 아닌 거야”라고 대꾸하며 흰 설원 위로 오래도록 혼자 걸어간다. 추위인지, 랑콤 틴트인지 혹은 둘 다인지,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몽골의 설원 위를 꼿꼿하게 걸어가는 아노의 뒷모습을 카메라는 끝까지 쫓아간다. 안소희의 맑고 깨끗한 얼굴은 아노의 투쟁을 순수하게 보여준다. 
 

<수학여행>-배리어프리 재능기부 / 연극 <클로저>
 

〈수학여행〉배리어프리 버전 녹음 현장. 안소희(왼쪽), 윤가은 감독
〈수학여행〉배리어프리 버전 녹음 현장. 안소희(왼쪽), 윤가은 감독


<아노와 호이가> 이후, 안소희는 <하코다테에서 안녕>(2019), <메모리즈>(2019)와 같은 단편영화를 비롯해, 독립영화 <달이 지는 밤>(2022)에 잇달아 출연하면서 작지만 분명한 자신만의 색을 만들어갔다. 그러던 중, 올해 영화 <수학여행>에 재능기부 차원에서 ‘배리어프리 내레이션’을 맡았다. <수학여행>은 1969년 개봉한 유현목 감독의 작품으로, 선유도의 초등학생들이 김 선생과 함께 서울로 수학여행을 오는 여정을 유쾌하게 그려낸다. 배리어프리 버전은 <우리들>(2016)로 유명한 윤가은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안소희는 “<수학여행> 배리어프리 버전으로 따뜻한 마음을 함께 전할 수 있어 뜻깊었고, 더 많은 분들이 영화를 더 깊이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연극〈클로저〉(2024)
연극〈클로저〉(2024)


이외에도 그는 올해 연극 <클로저>에서 주연 앨리스 역을 맡아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클로저>는 동명의 영화와 마찬가지로 앨리스, 댄, 안나, 래리 네 남녀의 얽힌 만남을 좇는다. 안소희는 앨리스 특유의 도발적이고 솔직한 면모를 자신의 방식대로 풀어나간다.  

 

<대치동 스캔들>(2024)
 

〈대치동 스캔들〉(2024)
〈대치동 스캔들〉(2024)


그렇게 연기 인생에 점을 찍어나가던 안소희는 드디어 <대치동 스캔들>에서 장편영화 주연을 맡게 되었다. 이야기의 한가운데서 극을 이끌어나가는 그의 모습에서 그간의 연기 생활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안소희는 지난 10년간의 연기 생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무언가를 이루는 데 걸리는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다고 생각한다. 지금 돌아보니, ‘나는 느리지만 조금씩 잘 걸어왔구나’싶다”라고 말하며 “나에게 잘해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대치동 스캔들〉(2024)
〈대치동 스캔들〉(2024)


<대치동 스캔들>에서 그는 무심한 성격의 대치동 1타 국어 강사, 윤임을 맡았다. 영화 속 윤임은 심드렁한 얼굴로 힘듦을 내색하지 않는다. 늘 척척해내는 모습에 간절함 따위 없어 보인다. ‘유명해지고 싶어서’ 1타 강사가 된 그의 앞에 어느 날, 10년 전 연인이었던 기행(박상남)이 찾아온다. 전 연인을 만나는 것도 껄끄러운데, 기행은 대치동에 있는 학교의 국어 교사로 일하고 있다. ‘쪽집게 강사’로 유명한 윤임과 만나서 영 좋을 게 없는 조합이다. 그럼에도 기행은 윤임을 찾아와 대학시절 윤임의 친구였던 나은(조은유)이 곧 죽는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과거의 상처를 헤집기라도 하듯, 두 사람의 만남은 곧 ‘시험 문제 유출’ 의혹으로 붉어져 그들의 현재까지 어지럽힌다. 안소희는 윤임을 연기하기 위해 대형 학원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수업 시연까지 하며 배역에 몰입했다. 
 

그의 행보는 ‘어머나’ 시절 사람들이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간다. 가수 생활에 빠르게 빛을 본 안소희지만, 배우 생활에서는 극의 메인 주연을 맡기까지 10년이 걸렸다. 그리고 ‘원더걸스 소희’만큼 ‘배우 안소희’가 유명해지기 위해선 더 많은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독립영화, 단편영화, 여성영화, 배리어프리 내레이션, 연극, 상업영화, 드라마. 가리지 않고 연기자로서 무수히 많은 점을 찍는 그는 진실로 성실한 배우임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