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기사 카테고리

Movie & Entertainment Magazine from KOREA
>영화

6월 26일 세계 마약 퇴치의 날, 꼭 봐야 할 마약에 대한 여섯 가지 이야기

씨네플레이

지난 17일, 약 12만 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분량의 필로폰을 밀수하려던 마약 총책이 붙잡혔다. 마약 상습 투약 혐의를 받는 배우 유아인의 공판은 현재진행형이다. 마약류 중독자의 수치를 추산할 수 있는 실태조사나 역학조사가 없는 한국에서 검거된 사범의 숫자에 암수 범죄율을 곱하는 방식으로 추산한 마약류 사용자(중독자) 수는 60만 명. 이는 성인 인구의 1%가 넘어가는 수치다. 더 이상 마약 중독은 미국 필라델피아 켄싱턴의 ‘좀비’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마약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6월 26일은 세계 마약 퇴치의 날(International Day against Drug Abuse and Illicit Trafficking)이다. 유엔이 지정한 기념일의 의미를 곱씹으며 마약에 대한 작품 여섯 편을 소개한다. 제약 회사의 부패와 중독의 구조적 문제를 파고든 작품 네 편과 마약에 중독된 개인을 조명해 중독의 끝을 엄중히 경고하는 영화 두 편을 추렸다.

 

<페인 허슬러>(2023)

〈페인 허슬러〉
〈페인 허슬러〉

자나 제약은 새로운 마약성 진통제 '라노펜'을 출시했지만 라이벌사에 밀려 고전하는 중이다. 야심 가득한 영업 담당 임원 피트 브레너(크리스 에반스)는 실적을 올리기 위해 의사가 있는 술집으로 향하고 이곳에서 뜻밖의 인연 라이자 드레이크(에밀리 블런트)를 만난다. 스트리퍼로 일하던 그녀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눈 피트는 라이자의 빠른 상황 판단력과 현란한 화술을 간파하고 일확천금을 안겨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제약 회사 취직을 제안한다.

딸과 함께 살던 싱글맘 라이자는 딸이 정학 당하고, 얹혀살던 언니네 집에서 쫓겨날 처지가 되자 피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의 임무는 새로 출시된 마약성 진통제를 의사가 처방하게 만드는 것. 그는 의사들을 유혹하고 매수하고 압박하며 곧 큰돈을 벌어들이기 시작한다. 피트와 라이자의 실적은 제약 회사를 나스닥에 안착 시키는데 큰 공을 세우고 둘은 고위 임원의 자리까지 오른다. 하지만 그들이 중독성이 적다고 주장했던 진통제 라노펜이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한다. 중독성이 없다는 것은 가짜 데이터였다. 라이자는 윤리적 딜레마에 빠진다. 모른 척 딸 수술비를 마련할 때까지만 약을 팔지, 부작용과 부패를 고발하고 양심의 소리를 따를지.

돈을 향한 맹목적 탐욕, 거대 자본의 위선, 부패의 악행이 차곡차곡 쌓아 올려지는 이야기 전개가 허황하다고 생각되지만 놀랍게도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말기 암환자들을 위한 펜타닐 계열의 마약성 진통제 ‘서브시스’를 일반인에게도 과다 처방하도록 의사들을 매수한 혐의로 2019년에 기소된 ‘인시스 제약사’ 사건이 소재다. 현재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페인킬러>(2023)

〈페인킬러〉
〈페인킬러〉

‘Do not use as directed, 의사의 처방대로 복용하지 마시오’. 넷플릭스 드라마 <페인킬러>의 포스터 문구다. 그렇다. 이 드라마는 약물 오남용의 주도자가 제약회사와 의사라는 믿기 힘든 고발을 할 참이다.

모든 재앙의 시작은 한 알의 알약에서 시작됐다. 옥시콘틴. 이제는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펜타닐’로 대표되는 오피오이드 중독 사태의 시작이 된 마약성 진통제다. 약물 농도가 서서히 상승해 중독이나 의존성이 매우 낮다는 거짓 데이터로 퍼듀 파마(Purdue Pharma)는 옥시콘틴 남용을 기획한다. 의료계, 미국 FDA, 정계, 사법계에 촘촘히 포진된 동조자들은 기꺼이 이 악행에 동참했다.

사업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퍼듀 파마는 1996년 옥시콘틴을 출시해 20년 만에 350억 달러(약 45조 9500억 원)를 벌어들였다. 하지만 그들의 성공은 중독으로 목숨을 잃은 영혼으로 쌓은 탑이었다. 운동하다 다리를 다친 청소년과 일하다 허리를 삐끗한 노동자들이 의사의 처방전으로 마약중독자가 되었다. <페인킬러>는 각 에피소드가 시작할 때마다 실제 옥시콘틴으로 가족을 잃은 이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중년의 한 여성은 “15살에 옥시콘틴을 처방받아 중독됐고 32살에 사망”한 아들을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2009년 이후 지금까지 옥시콘틴 중독으로 최소 64만 명의 미국인이 사망했다 추정된다.

<페인킬러>는 지난 4월 한국어로 번역 출간되기도 한 동명의 탐사보도를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일부 이름과 사례는 각색됐지만 퍼듀 파마의 회장 리차드 새클러를 비롯해 옥시콘틴의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들이 실명으로 등장해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드라마를 완성했다. 한 편에 40분 정도의 에피소드 6개라 단숨에 시청 가능하다. 넷플릭스 상영 중.

 

<돕식: 약물중독의 늪>(2021)

〈돕식: 약물중독의 늪〉
〈돕식: 약물중독의 늪〉

<페인킬러>와 같은 퍼듀 파마의 옥시콘틴 파동을 소재로 삼지만 드라마 <돕식: 약물중독의 늪>(이하 ‘돕식’)의 중심에는 시골의사 새뮤엘 피닉스(마이클 키튼)가 있다. 퍼듀의 영업 직원 빌리(윌 폴터)는 돈을 벌기 위해 회사의 마케팅 전략에 따라 공격적인 영업에 나서고 옥시콘틴이 마약류라 처방하지 않겠다는 마을의사 새뮤얼을 설득한다. 가족처럼 이웃을 돌보던 새뮤얼은 결국 제약회사의 거짓에 속아넘어가 옥시콘틴을 처방하게 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 청년들을 죽음으로 몰고 자신 또한 교통사고를 계기로 중독자가 된다.

한편 옥시콘틴의 위험성을 알게 된 DEA(마약단속국) 요원 마이어(로사리오 도슨)는 퍼듀 파마와 FDA(식약품안정청)를 통해 옥시콘틴의 남용을 막아보려 하지만 FDA를 장악한 퍼듀 파마의 힘에 밀려 소득 없이 사건을 종결하게 된다. 이로부터 수년 후. 검사들이 과거 마이어의 수사 결과 등을 토대로 증인과 증거들을 다시 좇게 되며 사건의 진상이 조금씩 밝혀진다.

드라마는 기자 ‘베스 메이시’가 수년간의 취재를 바탕으로 쓴 책 「돕식: 미국을 중독시킨 딜러, 의사, 제약회사」를 원작으로 한다. 공동제작 및 주연을 맡은 마이클 키튼은 이 작품으로 에미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디즈니 플러스에서 볼 수 있다.

 

<어셔가의 몰락>(2023)

〈어셔가의 몰락〉
〈어셔가의 몰락〉

<어셔가의 몰락>은 성공한 가족기업을 일궈 왕족으로 불리는 어셔 가문이 의문의 여자로 인해 하나둘 잔혹하게 죽임을 당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거대 제약회사 포추나토를 이끄는 수장 로더릭은 쌍둥이 남매 매들린과 함께 제약사 포추나토를 초거대기업으로 성장시켜 막대한 부와 특권을 누린다. 아버지의 부와 권력을 등에 업은 로더릭의 여섯 자식은 방종하고 음탕한 생활을 하던 중 기괴하고 미스터리한 죽음을 맞는다. 죽음은 곧 가문의 어두운 비밀들을 드러내고 8개의 에피소드는 1953년부터 로더릭과 쌍둥이 남매인 매들린이 '왕국’으로 불리는 포추나토를 어떻게 장악하게 됐는지, 그리고 그 가문이 어떻게 몰락하게 되는지 보여준다.

눈치챘겠지만 어셔가는 퍼듀 파마의 오너 새클러가를 모델로 삼았다. 탐욕과 저주로 얼룩진 어셔가는 몰락을 맞이했다. 현실의 어셔가는 어떻게 됐을까? 수천 건의 피해자 소송을 회피하기 위해 퍼듀 파마사는 파산을 신청했지만, 지난해 8월 법무부가 항소하며 파산 결정은 연방 대법원의 판결까지 유예됐다. 법의 맹점을 악용하려던 억만장자 가문의 책임에 다시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회사를 방패 삼아 면죄부를 받으려 했던 새클러 가문의 계획은 일시 중단됐지만 그들의 완전한 몰락은 끝까지 지켜볼 일이다.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뷰티풀 보이>(2018)

〈뷰티풀 보이〉
〈뷰티풀 보이〉

열렬한 독서가이자 재능 있는 예술가, 운동을 좋아하는 그야말로 ‘뷰티풀 보이’인 닉(티모시 샬라메)은 충동적이고 파괴적인 면도 가지고 있다. 그의 이면은 마약 중독에서 비롯됐다. 12살에 처음 마약을 접한 뒤 어느새 중독자가 된 닉은 마약의 굴레에서 고통받는 중이다. 아버지 데이비드(스티브 카렐)는 아들의 중독이 자기 때문이 아닐까 자책하며 닉의 아픔을 덜어주기 의해 애쓰지만 중독 치료는 낙관과 헌신이 아닌 고통과 절망으로 가득 찬 여정이다. 서로를 상처 입히며 포기 직전의 절망적인 순간에 놓이기도 하지만 데이비드는 닉의 손을 놓지 않는다.

이야기의 감동은 실화에서 나왔다. <뷰티풀 보이>는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셰프가 쓴 회고록 「뷰티풀 보이: 약물 중독에 빠진 아들을 구하려는 한 가족의 끝없는 사랑 이야기」와 그의 아들 닉 셰프가 자신의 경험을 서술한 「트윅: 메탐페타민에서 성장하기」에 바탕을 둔 전기 드라마로, 플랜B엔터테인먼트의 브래드 피트 등이 제작자로 참여했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고통스레 되풀이되는 치료와 재발의 낙관과 절망의 집요한 교차는 중독자의 삶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를 직시하게 한다. 네이버 시리즈온에서 감상 가능하다.

 

<레퀴엠​>(2002)

〈레퀴엠〉
〈레퀴엠〉

마약 중독에 관한 클래식 <레퀴엠>을 마지막으로 소개한다. 해리(자레드 레토)는 삶의 목표 없이 헤매는 아름다운 여자친구 마리온(제니퍼 코넬리)과 달콤하고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외부의 현실과는 단절된 채 살아간다. 그러던 중 친구 타이론(말론 웨이언즈)과 한탕 해 멋지게 살아보자 결심하고 마약 딜러로 나서지만 오히려 헤로인 중독자가 되고 만다. 더 이상 주삿바늘을 꽂을 수 없을 만큼 너덜너덜한 팔을 가지고 해리가 기능할 수 있는 곳은 마약이 구현한 환각 속뿐이다.

해리의 어머니 사라(앨렌 버스틴)의 삶도 마찬가지다. 다이어트 약물과 TV에 중독된 사라의 유일한 낙은 TV를 통해 좋았던 시절, 젊고 예뻤던 시절의 자기 모습의 환각을 보는 것이다. ‘레퀴엠’의 원제는 ‘Requiem for a Dream’(꿈을 위한 장송곡)이다. 해리는 사업에 성공하는 꿈, 사라는 자주 보는 TV 프로그램에 살을 빼고 출연하는 꿈을 꾼다. 하지만 중독은 모든 꿈을 파멸로 이끈다.

<더 웨일>, <블랙 스완>, <마더!>의 감독 대런 애로노프스키가 만든 <레퀴엠>은 약물 중독의 쾌락을 묘사한 신으로도 유명하다. 약물이 몸에 주입되는 순간, 동공이 확장되고 혈류가 증가하는 등의 몸의 변화를 잘게 쪼개 이어붙인 초고속 몽타주로 표현했다. 네이버 시리즈온, 웨이브 등에서 시청 가능.